이 소설의 마지막 편 ‘감사의 글’은 일종의 가짜 후기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후기까지가 소설의 일부인 셈이지요. 가짜 후기는 보르헤스에 대한 오마주로서 삽입했습니다. 보르헤스가 글을 완성한 시점보다 훨씬 미래에 썼다고 가정한 가짜 후기가 붙어 있는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라는 단편 소설이 존재하거든요.
정작 ‘나의 목소리가 네게 닿기를’은 보르헤스 스타일의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은 아니지만요. 아무튼 가짜 후기를 여러분들에게 먼저 보여드렸으니, 여기에 진짜 소설 후기를 따로 준비했습니다.
이 소설에는 “한국과 일본이 제주도 영유권을 가지고 갈등한다”는 소재가 설정 밑바탕에 깔려 있기는 하지만, 이것 자체가 소설의 중심은 아닙니다. 세 명의 주연인 아야나, 코유키, 민유리 모두 제주도가 누구 땅이 되던 별 관심이 없어 보이거든요. 제주 영유권 문제는 서로를 상처 입히는 사람들을 표현한 메타포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제주 영유권 분쟁이라는 아이디어 영향을 얻은 곳은 영국령 북아일랜드였습니다. 아일랜드는 영국에게서 독립하면서 아일랜드 섬의 모든 땅을 가지고 독립하지 못하고 일부 땅을 영국령으로 남겨둔 채 나라를 세워야만 했으니까요. 다만 제주도 안에서 싸워대는 한일 양국 사람들의 모습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쪽에 더 가까워 보이기는 하네요.
제주도민 분이시라면 글을 읽는 동안 제주의 풍경이 현실과 너무 달라 당황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제주와 ‘퀠파트’는 너무 다르거든요. 퀠파트는 귤 재배도 안 하고 도심에 지하철도 깔려 있지만, 우리가 아는 제주도에는 지하철이 없습니다. 인구도 제주도는 70만, 퀠파트는 350만 명입니다. 소설에서는 가전제품 공장이 된 광이오름에도, 여전히 대나무 숲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제주와 퀠파트는 닮은 점이 도저히 없다보니 그래도 수현이 느꼈을 ‘일본의 지배로 제주도가 원래 모습을 잃어가며 느끼는 상실감’을 실제 제주도민 분들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도 해 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들을 묘사할 수는 있었지만, ‘현실에서 일어났어야 하지만 소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들은 묘사할 수 없었다는 점일까요. 4.3 사건 같은 근현대사의 거대 사건들이 사라진 것만으로 변화한 풍경도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타케 아야나와 와타라이 코유키, 민유리와 세나 모두 글을 쓰는 사이 부쩍 친해져버렸습니다. 저 넷 모두 조금씩은 저를 닮아 있는 제 분신들이기에, 네 사람과 작별을 하게 되는 것이 못내 아쉽네요. 서로의 단점을 서로가 보완해 주는, 결함 있지만 굽히지 않는 네 명의 소녀들과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족한 이 소설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2020년, 11월 25일. 박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