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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살해 사건

분류: 수다, 글쓴이: 랜돌프23, 19년 10월, 댓글4, 읽음: 57

가을이 살해되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11월, 그러나 영상 32도를 웃도는 낮 기온. 이제는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이 올 것을 염려하는 게 아니라 (그나마도 이 염려는 농담이 반쯤 섞여 있어 진지하진 않았다) 겨울이라도 와야할텐데 하는 근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르며 구름 한 점 없지만, 여름때만큼이나 태양이 가까이서 이글거리는 것 같은 눈 시릴 정도로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짜증 섞인 불만을 토해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불만 뒤에는 무언가를 해서 바꾸겠다는 열기가 아니라,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 웅크리고 있었다.

꼴에 시기가 가을이랍시고 은행 나무에서 샛노란 열매들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사람 발에 밟혀 짓이겨진 그 열매들은 여름의 열기 속에서 더한 악취를 풍겨왔다. 은행과 여름 더위의 조화라니, 끔찍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었다. 사람들은 11월에 맞지 않는 얇고 가벼운 옷차림(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 안에 챙겨온 웃옷)으로, 은행나무가 심어진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콧잔등을 찌뿌리며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코를 움켜잡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의 불만은 냄새와 함께 쌓여갔고, 이윽고 거리에서 은행나무를 싹 다 밀어버리고 감나무나 소나무, 단풍나무로 바꿔달라는 민원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눈치없이 아직 날씨가 여름인 것도 모르고 날짜만 보고 열매를 떨어뜨린 은행나무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있던 곳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뜨겁게 달궈진 도로 포장 위에서 숙성되고 발효되어 마치 가스를 내뿜는 것 같은 은행 열매들의 파편 주위에는 굶주린 개미들조차 모여들지 않았다.


10월 말인데 왜 이리 더운지 모르겠습니다. 좀 두툼하게 입고 나왔다가 더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좀처럼 물러날 생각 없는 더위에 짜증이 나 글 몇 자 끄적여봤습니다. 근데 밤에는 또 미친 듯이 춥다는 게 문제…

환절기에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전 이미 늦었습니다. 설마 하기 무섭게 감기에 걸려버렸네요 ㅋㅋㅋ

랜돌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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