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다음으로 시대를 대표할 괴물은 뭘까요?
옛날에는 늑대인간과 드라큘라와 미라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사실 프랑켄슈타인은 그 괴물을 만든 박사 이름이고, 그 괴물에게 이름은 없지만 넘어갑시디 ㅎㅎ)이 대표적인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흑백으로 나오는 B급 영화에도 분장한 드라큘라나 미라 등이 무서운 존재였을 거고요. 아, V처럼 침공 외계인도 있을 것이고 기묘하게 생긴 비행접시도 오싹함과 기괴함의 상징이었을 거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현대에 늑대인간과 드라큘라와 미라와 프랑켄슈타인과 파충류를 닮아 불쾌하게 생긴 외계인(그레이처럼 약간 불쾌한 골짜기를 자극하는 모습도 포함)과 비행접시는 그렇게까지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래 써먹으며 공포뿐만 아니리 다양한 장르의 혼합과 변주가 시도되었고 그 이미지가 변했습니다. 뱀파이어는 에로티시즘과 결합하여 로맨스로 이미지가 부각되기 시작했고, 늑대인간은 공포를 넘어서 일종의 로망이나 멋있는 존재로 종족화하거나, 자의지에 반하는 저주를 받은 불운하고 가련한 존재로 그려지거나 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기가 막 많은 건 아니지만 간혹 언급되는 걸 보면 동정론이나 슬프게 바라보며 혐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삼던 시선을 비트는 게 주가 된 것 같습니다. 흐음… 시대가 변하며 배척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게 동정의 대상으로 변해 포용되는 걸 보면 흥미롭네요.
또 외계인과 비행접시는 성격상 SF와 접목을 이루며 호러가 아닌 영역도 굉장히 넓습니다. 하늘의 비행접시를 보며 벌벌 떨기만 할 건 없는 거죠. 외계인이 항상 적대적으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쨌든 더이상 화면에 목을 콱 물어 피 빨아먹거나 인간이 버름달 보며 털이 북실북실 나면서 번뜩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는 걸 보고 예전처럼 무서워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공포는 낯섦에서 온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이제 이 존재들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못 해 이젠 너무 친숙하잖아요 ㅎㅎ
아, 서론이 길어졌네요. 제가 공포에 그렇게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감히 젠체하며 강의 같은 걸 할 생각은 없습니다. 강의 같은 걸 할 지식도 안 되고 ㅋㅋ 다만 이런 서론을 통해 얘기나누고 싶은 건, ‘좀비’도 위의 대상들과 비슷한 과정을 밟는 것 같은 인상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히 현대 괴물의 아이돌(?)이라 불릴만한 호러의 아이콘이었던 좀비가 인기를 얻고 장르가 혼합되고 변주되며, ‘전염, 식인, 인간의 탈을 쓴 포식자’라는 공포의 맥락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시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브릿G에 간혹 올라오는 좀비물도 보면 다양한 시각과 시도가 많이 보이고요. 그러면서 이 ‘걸어다니는 시체’들은 우리에게 익숙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익숙해진 걸지도 모르겠고요. 본질이 시체라서 섹시한 뱀파이어, 멋있는 늑대인간, 불쌍한 프랑켄슈타인처럼 친숙해질 수 있을지는 궁금하긴 한데 ㅎㅎ
그래서 그런데, 이렇게 좀비가 드라큘라나 늑대인간이 호러의 아이콘에서 내려온 것처럼 시대에 따라 물러나게 되면(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에 유행하게 될 괴물은 뭐가 될지가 무척 궁금해지네요. 정답이 없는 질문이지만 그냥 장르문화에 관심있는 브릿G의 모든 분들과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서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시대를 풍미할만한 괴물은 어떤 게 나오게 될지, 혹은 그 특징은 뭐가 될지 기대되면서도 흥분되네요. 좀비물처럼 이 다음으로 호러의 한 부분을 차지할 신소재(?)는 뭐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