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민의 굴레
흘러간 만화긴 합니다만, 고스트 바둑왕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명문 학교의 수준 있는 바둑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인데, 바둑을 두면서 장고하는 후배한테 선배가 ‘고민하지 마. 실력도 없으면서 고민하면 수가 나오냐?’라고 말하죠. 대사를 정확하게 옮겨 적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대충 저런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 컷은 사실 작중에서 바둑부의 긴장된 분위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선배(엑스트라지만)가 초조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컷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컷이었는데, 어째선지 저한테는 머릿속에 깊게 남더군요.
최근 저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중입니다. 이렇게 써서 하루에 얼마나 쓸 수 있는지 제 자신을 시험해보려고요. 하지만 페이지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싶어집니다. 결정적으로, 음,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건 제 이름 걸고는 도저히 공개 못하겠어요.
솔직한 마음으론 본명을 당당하게 내걸고 내보일 수 있을만큼 근사한 글을 쓰고 싶어요.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신께서 ‘제게 시간과 자금을 좀 더 주셨더라면’ 시도해봤겠지만 아마도 신은 죽은 모양이에요. 지난 주에는 제가 선택한 숫자들이 전부 약속된 여섯 개의 숫자를 모조리 피해가더군요. 신이 죽은 게 아니라면 로또 기계에 제가 찍은 숫자를 피해 당첨되게 하는 AI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저주 받아라, 4차산업혁명이여.
…고민도 변명도 이래저래 쌓여만 가고, 손은 점점 느려져만 갑니다.
그래서 서두에 말한 그 컷이 요즘 계속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고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어서요. 실력이 없다면 손이라도 빨라야 할 텐데, 이딴 잡문이나 깔짝이고 있으니 끝장이네요.
그냥, 그렇다고요. 어서 글이나 쓰러 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