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펌]역사상 실존했던 여장군들(꼬마니체님 글)
[불펜펌]역사상 실존했던 여장군들(꼬마니체님 글)
부호 (BC 1200년경으로 추정)
부호는 역사상 기록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여장군입니다.
갑골문에 이름과 행적만 등장하다가
1976년 무덤이 도굴당하지 않은체 발굴되어
실제 인물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상(은)나라 왕 무정(본명은 자소)의 왕비로서
왕비와 제사장 그리고 군사령관의 위치를 겸임했죠.
그리고 1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족, 파족,투족을 격파하여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남아있는 갑골문의 기록에 따르면
임신중에도 군을 이끌고 원정을 떠난걸로 돼있네요.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432)
오를레앙의 성녀(la Pucelle d’Orléans)로 유명하며
100년전쟁 당시 열세에 몰려있던 프랑스군을 이끌고
전세를 역전시킨 구국의 영웅입니다.
이후 아군의 배신에 의해 영국군에게 생포되었으나
그녀의 덕에 즉위한 샤를 7세는
그녀의 인기를 두려워하여 몸값지불을 거부
결국 마녀재판을 거쳐 화형에 처해집니다
당시 나이 20살이었습니다.
하지만 잔다르크는 사실 장군이 아니었고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주는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부대의 지휘를 맡았던건 잔다르크의 부관이었던,
동화 “푸른수염”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며
중세의 유명한 살인마중 한명인 “질. 드레 남작”이었습니다
사족으로 그는 원수까지 진급하지만
잔다르크사후 급격히 무너져서 살인마로 돌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잔다르크를 사랑했었다가
그녀가 화형당하자 미쳐서 그랬다는
야사틱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베트남의 독립영웅 “쯩자매(쯩짝, 쯩니, 14~43)”
1세기경 후한의 지배하에 있던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싸운 쌍둥이 자매입니다.
베트남의 잔다르크로 불리우기도 하는 자매지요
AD 40년 그녀들은 후한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는데
순식간에 65개 현을 점령하여 독립을 선포한후
언니 쯩짝은 베트남의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이에 좌시할경우 다른 번국에서도 반란이 일어날것을 우려한 후한은 빠르게 진압에 나섭니다.
그리하여 당시 최고의 명장이던 복파장군 마원과
2만의 병력을 파견하여 진압에 나서는데
쯩자매가 이끄는 베트남군은 한군을 수개월에 걸쳐 괴롭히지만
전쟁에 염증을 느낀 부하들의 이탈로 결국 패하여
처형당한후 목은 낙양으로 보내집니다
당시 나이 29세 였습니다.
베트남의 야사에 따르면
후한의 부당한 지배에 저항하던 언니 쯩짝의 남편
티 사익이 후한태수 소정에게 처형당하자 반란을 일으켰으며
핫강 전투에서 패한후 자매가 손을 잡고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전해옵니다
양홍옥(1102~1132?)
송나라 숭정원년 군인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의 영향으로 무술과 병법에 능했습니다.
하지만 장군이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방랍의 난을 토벌하던 도중
군을 움직일 때를 놓쳤다는 죄목으로 죄인이 되어 쳐형당하자
18세의 양홍옥 역시 연좌제에 의해 기생으로 팔려가는 처지가 됩니다
1년후인 1121년 방랍의 난이 토벌되고 열린
전승축하연회에 불려나가 칼춤을 추는데
그 모습을 보고 반한 장교 한세충과 연을 맺게 됩니다.
이후 묘전의 난으로 송나라 고종이 구금당하자
당시 임신중이던 그녀는 도성을 탈출하여
반란사실을 한세충에게 알리고 남편과 함께 군을 이끌고
도성으로 돌아와 반란을 진압합니다.
이후 1129년 금나라의 4왕자인 울출이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남송을 침공하는데
막을 부대는 한세충의 8000명뿐인 상황에서
양홍옥의 계책으로 그들을 황천탕으로 유인하여
지형의 이점을 얻어 8천으로 10만을 포위하는데 성공하는데
양홍옥이 머리가 되고 한세충이 칼의 역할을 맡은
이 전투에서 금나라군을 거의 전멸직전까지 몰아붙이지만
한세충이 중요한 순간 그녀의 명령을 무시하여
울출과 금군생존자들은 탈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자 그녀는 남편 한세충을 명령불복(?)으로 탄핵하는 글을 조정에 올리는데
사실 이건 진회등 주화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위해
일부러 선수쳐서 고개를 숙인것이었고
그 덕에 한세충은 악비와 같이 살해되는 상황을 피하게 되고
그녀도 기녀장군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한세충과 낙향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1153년 남편 한세충이 죽자
2년후인 1155년 53살의 나이로 죽었다고 알려져왔으나!!!
최근 연구 결과로는 1135년 33살의 나이로
초주에서 금나라군에게 잡혀 죽은 걸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사족으로 황천탕전투당시
양홍옥은 만두를 만들어 병사들에게 돌렸는데
사람수에 비해 양이 너무 적다보니
마음의 점을 찍듯 조금씩만 맛보라(점점심의,點點心意)
라고 한데서 점심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진양옥(1573~1648)
진양옥은 사천성 충주에서 만력원년인 1573년
묘족출신의 호족인 진문호의 3남 1녀중 셋쩨로 태어났습니다.
고명딸이라보니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자랐고
하고 싶은건 뭐든지 하도록 놔뒀죠..
어렸을때부터 여자아이들의 놀이보다는 무술을 좋아해서
오빠들 사이에서 함께 무술을 익혔는데
그중에서도 창술에 재능을 보였고
자신도 창술을 제일 좋아했다는군요
그녀가 20살되던 1593년
그녀는 이미 창의 달인으로 유명해졌고
선무사 마천승과 결혼합니다
남편의 부대중 일부를 받아 지휘하던중
남편이 모함을 받아 투옥되었다 홧병으로 죽자
남편의 지위를 세습받아 5천의 병력을 지휘하는 선무사가 되는데
자신이 직접 훈련시킨 이 부대는
이후 흰색창을 무기로 삼은 “백간병”이라는
무적의 장창부대로 유명해집니다.
성도에서 일어난 반란들을 진압하고
도적때들을 소탕하며 명성을 날리며 50년 가까이 사천성을 지켜냅니다.
이후 청나라가 침공해오자 사천성을 방어해내고
70대에 다다랐을깨 청이 북경을 공격하자
백간병을 이끌고 북상하여
북경방어전에서 청나라군을 격파하며 북경을 지켜내는데 성공하는데.
이에 황제에게 불려가 치하를 받기도 했으나
자신이 나이 많음을 이유로 낙향할것을 청하고 낙향합니다
이후 명이 멸망하자 다시 백간병을 모아서
남명정권에 투신하여 청나라군과 싸우다
1648년 백간병을 사열하던 도중 말에서 떨어져
75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참고로 중국사에서 유일하게 정사에 열전이 남아있는 여장군입니다.
시켈가이타(1040~1090)
롬바르드 공국 공주 시켈가이타
그녀는 18살에 로베르 기스카르라는 인물과 결혼했는데
그는 현재 원래 노르망디 깡촌에서 하급귀족으로 태어나
형제들이 모두 용병업에 뛰어들어 교황밑에서 일하면서
남부이탈리아의 지배권을 인정받아
남부 이탈리아를 정복한 대단한 인물입니다
이탈리아 북부에 있던 롬바르드 공작으로서도 좋은 사윗감이었고
첫째부인이 죽은 기스카르에겐 좋은 신부감이었죠
여기까진 평범한 중세결혼인데
그녀는 남편을 따라 정복 전쟁에 나서서
여러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로베르가 보기엔 자신의 가문이 노르만족였으므로
북유럽신앙을 믿었었기에 아내가 발키리의 현신으로 보였고
그녀에게 푹빠진 그는 전처 소생의 자식을 버리고
그녀의 자식을 후계자로 임명했을 정도
그런데 로베르가 그녀가 발키리의 현신이라고 믿었다는데
그녀의 명성을 높여준 전투인 다라키움전투를 보면
로베르가 그렇게 믿을법도 합니다
다라키움에서
동로마군 25000과 시칠리아 왕국군 16000이 맞붙어
시칠리아군이 대패하고 전면적 패주가 시작되는 찰나
로베르곁에 있던 시켈가이타가 창을 꼬나쥐고 달려나가
패주하는 시칠리아군 우익을 가로막습니다
그녀는 크게 욕을 해대며 패주하던 우익을 멈추게하고
워크라이를 지르며 노르만 기사대를 이끌고
추격해오던 동로마 최정예 바랑기안 가드에 돌격해
그들을 밀어내버립니다
이에 패주하던 우익도 다시 뒤돌아 반격을 시작
그렇게 동로마군 좌익을 밀어내버리고
내친김에 동로마군 중앙으로 찌르고 들어가
동로마 황제의 지척까지 돌격하자
결국 겁먹은 황제는 튀고
황제의 뒤를 막던 동로마 근위대는 전멸하여
다라키움 전투를 승리로 이끔니다
어찌보면 가상인물이긴 하지만
삼국지의 축융부인과 가장 유사한 이미지죠.
축융도 이름이 불의 신을 뜻하니까요..
발키리 vs 축융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