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AG이 감추고 두려워해왔던 이면[KA – Honor Killed the Samurai]
SWAG이 감추고 두려워해왔던 이면
“우리가 필요한 걸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해야 할 걸 했을 뿐.”
힙합이라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은 우선 SWAG부터 생각하곤 한다. 게토의 차별받는 흑인으로 태어나/혹은 흙수저로 태어나, 랩 스킬이 뛰어난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 떼돈을 벌고, 좋은 차를 사고, 예쁜 여자 수십 명과 관계를 맺었다는 상투적인 서사 말이다. 이런 서사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지겹고 무의미한 소모전을 하기 전에, 이 서사 이전에 전제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 우리나라는 예외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총기가 허용되지 않는 안전한 국가니까.
SWAG 정서의 이면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흑인들의 게토는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는 공간이다. 켄드릭 라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머리맡에 총을 두지 않으면 누구에게 총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총기를 규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다. 흑인들의 게토에는 총성이 존재하고 그들은 그 총성에 늘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들의 사운드스케이프에는 총성이 자연스럽게 개입한다. 수많은 힙합 곡에 총성이 샘플링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요즘은 어떤 래퍼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기 힘들지만, 힙합의 여명기에는 수많은 래퍼들이 총을 맞았다. 투팍과 비기라는 두 양대산맥이 총격에 맞아 죽은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빅 L이라는 천재 또한 총성에 생을 마감해야 했고, 50센트 또한 총성으로 목소리를 포기할 뻔 했다가 겨우 특유의 어눌한 발음으로 재기의 기회를 갖췄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 입장에서 SWAG이란 어떻게 보면 죽음에 겁먹은 래퍼들이 죽음 앞에서 발버둥치는 것에 가깝다. 나는 죽지 않았어. 대단한 자리에 올랐지. SWAG을 부리곤 하는 래퍼들이 공격적인 샘플링 비트를 사용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서 힙합은 죽음을 외면하기 위한 전투다.
그렇게 으스대는 데 집착하는 공격적인 부류들이 있는 반면,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담감히 대비하는 자들이 있다. 심지어 심각한 전투를 치르는 이들도 잠시 죽음에 대한 상념에 빠진다. 투팍은 죽기 전에 “If I Die 2Nite”라는 곡을 남겼고, 비기의 사후에 발매된 2집의 제목은 “Life After Death”다. 살기 위해 노래하는 자들이 죽음을 신경쓰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90년대 힙합의 이러한 전통은 2010년대까지 이어진다. 켄드릭 라마의 “DAMN.”은 자신의 죽음과 폭력, 창의력 고갈에 대한 공포가 담겨 있다. 그 가사는 수록곡 “FEAR.”에 담겨있다. “난 아마 익명으로 죽을 거야, 난 아마 약속을 못 지키고 죽을 거야, 나는 아마 캔디샵에 돌아가다 죽을 거야. 나는 아마 옷 색깔을 잘못 입어서 뒤지겠지…” 이런 가사들은 켄드릭 라마가 20대에 겪은, 흑인들 사이에 만연한 ‘서로가 서로를 죽일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공포가 잠재된 상태이다.
오늘 소개할 음반, KA의 “Honor Killed Samurai”는 그런 힙합에 내재된 죽음에 관한 공포를 전면에 드러낸 걸작이다. 이 음반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모두 처음에 의아함을 느낄 것이다. 이 힙합은, “다르다.” 디거블 플래닛이나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와 같은 부드러운 재즈 스타일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트랩 스타일도 아니다. 이 음반은 너무나도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처음 “This one known as Samurai”라는 나레이션을 듣고 나면, 우리는 밀폐된 방 안에서 울리는 것 같은 드럼과 기타 루프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KA가 읊조리는 랩은 플로우가 화려하지도 않고, DAISY 시대의 래퍼들처럼 귀에 편안하게 들려오지도 않는다. 힘이 있게 외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적당히 리듬을 타서 읊조릴 뿐이다. 묘하게 브리스톨의 트립합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지만, 그들처럼 슬픈 감정에 격양되진 않은, 오히려 므미건조한 톤이다.
“엄마가 말했지, ‘좋은 아이가 되렴,
살아있으렴, 살아남으렴, 내 착한 이웃아.’
아저씨들이 말했지, ‘명줄 붙잡고 있으렴, 아들아,
엽총이 필요할 거다, 시체가 되거나 누군가를 잡으려면.’
언제나 갈등해왔지
언제나 갈등해왔지
언제나 갈등해왔지
언제나 갈등해왔지”
첫 노래 “Conflicted”의 가사에서도 화자는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KA의 가사에서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문제가 된다. 이 주제는 다음 곡인 “Just”로 넘어가면 더욱 확대된다. 나레이터의 말은 “이것은 위험 지역의 삶을 달래기 위한 음악으로서 탄생했다.”는 내용을 전한다. 그에 바로 건조한 신스 루프와 “개싸움에서 겁쟁이가 될 순 없어, 주인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건 법이 용서하지 않지.”라는 가사가 이어진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살인 등의 범죄를 암시하는 가사가 훅으로 반복된다.
KA는 갱스터 힙합에서 주로 미화되곤 했던 범죄들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담담하게 드러낸다. “Just“의 가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라는 말은 변명처럼 들린다. 다음 곡인 “That Cold and Lonely”에 이르면 “이것은 보이는 것 그 자체”라는 훅으로 죽음과 범죄에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는 기존의 래퍼들이 보여주었던 SWAG이나 범죄를 통해 부자가 되는 신화와는 확연한 거리가 있다.
“$”은 “Just”에서 보여주었던 주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타개책을 생각한다. “나는 돈이 필요해” 이 곡은 특별히 혼란스러운 멜로디를 들려주는 루프가 반복되며, KA의 플로우 또한 혼란스럽다. 곡의 화자는 구원자가 되기 위해 돈을 필요로 하지만, 그의 랩은 돈을 위해 결정적으로 파괴를 노래한다. “너는 절대 세울 수 없어, 너의 내재적인 목적이 파괴니까” 화자는 자신의 목적을 구원을 위한 것임으로 포장해봤자, 그것이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화자는 “하지만 난 내장을 쏟으려 해, 자살하려고 해, 세푸쿠할거야.”하고 내적인 갈등 사이에서 폭발한다. 그 폭발은 잠잠하고 솔직하다. 마침내 화자는 말한다. “난 네가 누군지 몰라, 하지만 난 여기 있어, 해봐. 난 돈이 필요해. 난 돈이 필요해.”
이런 목적 아래서 다시 화자는 다음 트랙 “Destined”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죽음에 대해 노래하던 화자는 마침내 깨닫는다. 죽음 앞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시간에 앞서 “우리”가 존재함을. 트랙 “Ours”는 무미건조한 음반 전체에서 유일하게나마 전율과 긴장감을 일으키는 비트를 사용한다. 범죄자에게도, 평범한 사람에게도 지금 이 시간은 그들 스스로의 것이다. 뒤로 이어지는 “Illict Fields”는 그런 시간 속에서 약속된 미래는 없음을 드러내는 트랙이다.
마지막 트랙에 이르기 직전, 혼란한 비트와 함께 “Finer Things/Tamahagene”에서 KA는 살아가면서 자기가 “더 나은 날들을 위해” 저질러야 했던 범죄에 대해 고백한다. KA “내 피에 숭고함이 있다”는 말을 듣지만 “살점은 돈으로 되갚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혼란함과 자기고백으로 트랙을 이어나가던 KA는 마침내 마지막 트랙인 “I Wish (Death Poem)”에서 더 이상 이런 삶이 누군가에게 지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일렉트릭 기타 루프로, 칼을 내려놓은 무사의 최후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이 곡은 너무나도 관조적이고 무감정했던 기존의 트랙들과는 다르게 비장한 슬픔을 연출한다.
“Honor Killed the Samurai”는 기존의 힙합과는 “다른” 음반이다. 이것은 클럽을 위한 신나는 곡도 아니고, 실험적인 곡도 아니며, 데이지 힙합 류의 유쾌함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 음반은 죽음 앞에 선 한 게토인의 삶을 노래하고 있으며, 인간으로서 극한적인 상황에 몰린 사람의 삶에 대한 희망을 다루고 있다.
이 음반은 35분 내외로 매우 짧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질리기 쉽다. 의도적으로 만든 단조로운 루프들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조로운 루프들은 마치 흑백의 대립과도 같은 질감을 형성하여 기존의 힙합과는 다른 감성을 준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음반은 기존의 힙합과 “다르다.”
그런 점에서 “Honor Killed the Samurai”는 기존의 힙합에 질린 사람들을 위해 한번쯤 추천해볼만한 음반이다. 결코 이 음반이 “역대급”이라거나 “필청”이라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단조로운 루프는 고전 흑백영화처럼 재미없고, 너무 무거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음반은 기존의 힙합이 가지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발버둥을 하나의 실존적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음반은 “희소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