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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어디까지 와 있니?

분류: 영화, 글쓴이: 조나단, 18년 9월, 댓글3, 읽음: 124

저예산 장르영화를 좋아하고, 그런 영화들이 개봉하면 찾아보는 편입니다.

작은 영화들은 대자본 상업영화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전형성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미덕, 센스 같은 걸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물론 대다수의 작은 영화들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만고만함’에 그치지만, 종종 그것을 뛰어넘는 영화를 발견하면 감흥은 배가 됩니다.

지난 금요일에 <업그레이드>를 봤습니다.

 

1.

500만 달러짜리 호주 영화예요. 싼 티를 안 내려 노력했지만 한 눈에 ‘돈 못 들인’ 영화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세트는 어정쩡하고, 액션은 물량보단 몸으로 때우고, 무엇보다 톰 하디 짝퉁 같은(^^!) 주연배우와 어딘가 딱딱하고 어색한 배우들이 (초반에만) 눈에 거슬립니다.

그런데도, 재미있어요.

근미래에서 올드 슈퍼카를 튜닝하며 먹고 사는 ‘아날로그’ 주인공이 자율주행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뒤, 빈민가 강도들에 의해 아내가 죽고 자신도 식물인간이 되지요. 이후 그는 자신의 고객이었던 AI 기업의 천재 회장에 의해 ‘신경과 근육을 제어하는’ AI 칩을 이식 받고 몸이 되살아나요. 아니, 그 이상으로 <업그레이드> 되지요. 그리고는 아내를 죽인 빈민가 강도들을(손으로 총알을 발사하는 반기계 용병) 찾아나서며 복수하는… 그런 로그라인이에요.

단순한 설정이지만. 영화는 재치있게, 제법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일종의 인간과 AI의 버디영화인데, 주인공과 AI와의 대화와 관계의 확장이 흥미롭고. 센스 있는 촬영과 편집으로 커버한 액션 시퀀스들도 볼만 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설정과 묘사들이 재미있어요. 킬링타임 영화로도 만족스럽습니다.

엔딩크래딧의 감독 이름이 낫이 익어 찾아보니, <소우> 시리즈를 쓴 작가 출신이더군요. <인시디어스> 시리즈 대본에도 관여했고요. 

 

2.

무엇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시나리오예요. 작가 출신답게 감독은 장르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바탕으로, 로그라인의 단순한 설정 밑에 2중 3중의 레이어를 깔아놓고 뒤로 갈수록 스토리를 탄탄하게 전개해요. ‘뻔한 액션 영화겠지’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제법인데? 이런 화두를 던지다니!’로 마무리되죠.

그 화두란, 최근 대두되는 AI 담론들이에요. 

얼마전 타계한 스트븐 호킹도 생전에 AI를 경계했었고, 과학계에선 AI의 대두에 의한 특이점, 인간과의 관계 역전 등 트랜디하고 핫한 담론들이 펼쳐지고 있지요… ‘업그레이된 인간의 액션영화’로 홍보되긴 하지만, 이 영화의 소재와 주제는 바로 그 ‘AI에 관한 담론’ 자체예요.

그 담론들을 진지하게 말하진 않지만(그럴 수도 없지요, 영화니까요), 현재 논의되는 기대와 우려의 담론들이 모두 담겨 있어요. 저예산 영화답게 쉽고 재미있게 말이죠. 제게는 그것이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고, 감독의 역량에 감탄하게 되더군요. ‘이 감독은 SF를 잘 알고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SF를 쓰시는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 추천해 봅니다.

빅3를 읽는 것도 좋지만, 최신의 흐름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아요. 예전에 어느 과학자 분 강연회에서 들은 “SF소설을 쓰려면 현재 과학계의 프런티어를 보세요. 그곳에 SF 소재들이 널려 있어요.” 라는 말이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고맙습니다.

SF, 어디까지 와 있니? 여기까지 <업그레이드>되어 있어요.

조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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