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아르와 수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다는 말이 있듯이, 저는 누아르/하드보일드를 영화로 배웠습니다. (엥? 맞는 비유야? 뭐, 어쨌든). 누아르/하드보일드를 잘 모른다는 뜻입니다.
챈들러나 대실 해밋을 몇 권 읽었지만, 남들이 좋고 재미있다니까 그런 줄 알지, 실은 잘 모르겠더군요.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누아르 영화에서 보던 (시각적인) 암울한 분위기를 책에서는 잘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인 듯해요. 금주법시대 배경을 몰라서인 듯도 하고… 아무튼 누아르나 하드보일드 소설에 대한 재미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자칭 <누아르>라는 제목을 단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었습니다.
필립 커의 <베를린 누아르> 3부작 중 1,2권입니다. 3부는 아직 안 나왔다네요.
1부 <베를린 누아르: 3월의 제비꽃들>은 고전적인 탐정소설, 하드보일드의 맛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탐정과 사건, 전개와 분위기가 마치 챈들러나 해밋 시대의 탐정소설을 읽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 신기(?)했던 게, 작가나 책의 정보를 모르고 읽었는데, 이 책이 비교적 현대인 1989년에 영국 작가가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1930년대 나치 치하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영국 작가가 1차대전 후 독일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 미국 하드보일드 느낌을 똑같이(?) 구현하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마초적이면서도 암흑기 독일을 관찰하는 ‘베른하르트 귄터’라는 탐정은, 제 눈에는 필립 말로 만큼이나 매력적이었죠.
게다가 이 책이 다른 고전 탐정소설에 비해 신선했던 것은, 마지막에 탐정 귄터에게 부록처럼 부여된 임무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고전적으로’ 사건을 해결한 탐정 귄터는 추가 임무를 위해 강제수용소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당시의 인권 유린의 실상을 묘사합니다. 작가가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쓴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신선하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2부 <베를린 누아르: 창백한 범죄자>는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좀 더 진화했다고 할까요? 전작이 고전 하드보일드를 ‘제대로’ 구현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두 번째에선 좀 더 작가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플롯도 현대적이고, 탐정 귄터도 어딘가 세련된 느낌입니다. 고전적인 장르를 현대적으로 멋지게 해석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3부작입니다. 제게는.
브릿G에 스릴러나 하드보일드 팬들이 많다는 걸 알기에 소개해 봤습니다. 하드보일드를 시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작가가 그 장르를 어떻게 모사(?)하고 확장, 진화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즐감.
+ 수다. 벌써 해가 바뀌고 일주일이 지나가네요. 다들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를.
저는 작년에 브릿G를 만나고 계획했던, 기존 습작들을 다듬어 올려놓는 걸 마무리하고 휴지기를 갖고 있어요. 아직(?) 찾는 분은 많진 않지만 그래도 그동안 흩어져 있던 걸 한 페이지에, 제 이름 아래 모아 놓으니 괜히 든든하긴 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그래서 정말 힘이 됐는데), 정작 나는 브릿G 작품들을 많이 안 읽었구나… 내 글쪼가리 쓴답시고, 아직 모니터로 읽는 게 익숙치 않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결국 제 게으름 때문이겠죠. 반성하고요.
해서, 올해에는 브릿G 작품들을 좀 더 열심히 읽어보려 합니다. 작년엔 핸드폰이 작아서 안 읽었어. 라는 핑계였으니 이참에 아이패드를 구입하려고… (핑계 좋은데? 허락할까^^?)
좋은 작품 만나면 리뷰도 적극적으로 써보려고 합니다. 남의 작품을 평가질(?)한다는 데 거부감이 있었는데, 여기서 좋은 리뷰어님들 글들을 읽으면서, 애정과 진정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배웠으니까요.
그럼 수많은 브릿G 작품들 중에서, 어떤 작품부터 읽을까… 당연히 제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 작품부터죠^^!
…아무튼, 그러려고 합니다. 올해에는 다들 브릿G에서 좋은 작품들 쓰시고, 만나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