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이야기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를 하나 할거에요.
제가 웹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건 학생때였어요. 노트에 끄적끄적 적던 글을 보던 친구가 인터넷에 이런거 올리는 데가 있더라, 하고 알려준 게 시작이었답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쓰다보니 인물들 이름이 좋아하던 만화 캐릭터 이름으로 바뀌면서(?) 2차, 그러니까 팬픽 같은 느낌의 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그 사이트에 들어가 날짜를 확인해보니 11년쯤 전.. 아무튼 그 즈음에 웹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간 정신 놓고 4권 분량을 두드렸더라고요. 연재 편수로는 170편, 용량으로는 1900kb나 되네요 새삼 확인해보니 좀 놀랍기도 하고…
운이 좋았습니다. 당시에 인기 있던 작품의 패러디 글이어서 읽어주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덧글도 꼬박꼬박 받으면서 읽어준 사람 수가 적지만 힘 날 만큼은 있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내내 패러디였어요. 패러디 글로만 장편 7개를 완결내고 나서 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뭐 별다른 포부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남이 짜둔 틀에서만 움직이려니 갑갑하네, 싶은 거였거든요. 매년 글 하나씩을 완결내면서 십년쯤 글을.. 세상에. 그러네요 제가 십년쯤 글을 썼습니다. 패러디가 아닌 걸로도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썼네요. 운이 좋았던 글도 한 두개 정도 주목을 받아봤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답니다. 거의 다 아니었어요. 책을 팔아 세 달간 번 돈이 천원인 적도 있답니다. 아무튼 잘 나가는 작가는 아니었고, 지금도 사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요.
글쓴지 십년쯤 되었을 때 갑자기 현타가 오더라고요. 혹평이나 악플에 약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때가 좀 정신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을때였나봐요. 이게 다 뭔가. 그런 생각도 들고.
일년 좀 넘게 하루종일 게임만 했던 것 같아요. 일 마치면 게임. 주말에도 게임. 사람들하고 술마시고 어울리는 횟수도 늘고 그냥 무작정 다른것들만 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브릿G를 발견했어요. 진짜로 갑자기요. 누가 황금가지가 플랫폼을 연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전해줬었는데 잊고 있다가 갑자기 찾은거였거든요. 글이 하나도 안 써지던 동안에도 시도는 했는데 잘 안됐었거든요. 여기서도 뭐, 장편이 안 써진다고 고민하면서 이런건 어떨까 대충 적어뒀던 단편을 올리고는 큰 기대를 안했어요. 똑같겠지 생각했었거든요. 어디서도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는 평범한 글쟁이의 평범한 기대였잖아요.
근데 브릿G에 처음 올렸던 글에 다들 과분한 관심을 주시더라고요. 사실은 감사했어요. 그날부로 곧 게임을 접었다고 하면 그야말로 소설이겠지마는 애석하게도 그렇게 딱 줄이진 못했습니다 ^^; 게임을 끊은 것은 본격적으로 브릿G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였던 것 같네요. 4월에 열심히 두드리다가 잠시 현업에 치이고는 다시 돌아온 게 8월.. 이후부터 약간 브릿G 지박령처럼 찰싹 붙어 글을 두드리고 있군요.
두드린 세월이야 길었지마는 항상 저 보기에 좋은 글만 쓰느라고 상업적 성공도 어떤 유명세도 갖지는 못했네요. 하지만 여전히 글쓰기를 좋아한답니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진행되고 위기에 부닥치다 완성되는 그 일련의 과정에 중독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단편소설은 브릿G에 오기 전까지는 거의 써본 적이 없었는데 좋게들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왜 이렇게 구구절절이 아무도 안 궁금할 이야기들을 쓰고 있느냐고 물으시면… 글쎄요 왤까요. 술이 덜 깼나? 그냥 이런 재능 없는 글쟁이에게도 이런 생각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나..
지금은 다시 일년에 글 하나 완결내기라는 예전 목표를 따라 열심히 두드리고 있어요. 완성도는 그게, 일년이나 글을 쉬어서 장편이 잘 감 잡히질 않는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그냥 거기까지가 제 실력인 것이란 사실을 이제는 알죠. 그래도 언제나처럼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낼 거고요. 언젠가 글 깨나 읽으신 분들이 제 닉네임을 보고 제 글 중에 뭔가를 봤었다고 떠올리게 되는 그런 원대한 꿈도 있답니다!
일단은 지금 쓰고 있는 장편을 21일 만남의 밤 전까지 완결 딱지 붙이는 게 새로운 목표에요. 이룰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부터 두 편씩 두드려야 한다는 건 알겠어요. 목표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더라고요. 작년과 올해 제대로 된 글을 쓴 적이 없으니 내년에는 두 개를 두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아무튼 게임보다는 훨씬 생산적이고 즐거운 취미고요. 아마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이는 최소한의 운동이 제게 맞는것이 아닌지.. 헛소리였고요.
생각보다 브릿G에 올려둔 게 많네요. 예전에 써둔 글 몇 개를 제외하면 다 업로드하기 위해 새로 두드린것들이고요. 단편을 쓰는 게 어렵고 재밌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장편 연재하시느라 바쁜 여러분. 제가 오늘 열두시에 크리스마스 단편제를 열 계획이거든요(?) 아무튼 주절주절 길게도 떠들었는데, 있다가들 함께 했으면 좋겠네요. 어떤 사연을 가지셨건 간에 다들 글쓰기가 즐거우셔서 여기에 글을 적고 계시리라고 믿어요!
아이구 월급루팡은 도망쳐야겠어요. 좀 있다가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