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의식
글쎄요, 저란 사람은 상당히 목표의식이 없는 축에 속합니다. 저를 실제로 만나보신 분이라면 제가 내일 일보다는 오늘 마시는 맥주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실 거예요(어쩌면 안 만나본 사람도 알고 있을지 몰라…). 그래서 여러분들이 힘을 내서 어반 판타지 공모전에 제출할 글을 쓰시는 동안에도 저는 알콜이나 축내면서 공부는 멀리하고 있죠.
저는 글을 써서 성공하겠다 뭐 이런 목표의식이 없어요. 처음부터 없었어요. 그건 아마도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천편일률적인 판타지에 분노해서 “내가 써도 이것보다는 낫겠다아아아아!!!”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거든요. 처음 쓴 소설 치고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시 보기는 좀 부끄러운 문장들이네요. 이러한 까닭에 제 목표의식은 처음부터 이미 달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저는 여러분처럼 치열하게 글을 쓰지는 않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제가 글 쓰는 것을 놓치 않고 있는 까닭은 물론 글 쓰는 그 자체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공하겠다는 것 말고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이에요.
대학생이 되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을 때, 저는 베게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 벤치에 누워서 하늘 보는 걸 좋아했어요. 저는 그때도 지금도 타인의 시선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캠퍼스에서 그러던 잉여는 저 하나뿐이라 만약 그런 사람을 보신 적이 있다면 아마 제가 맞을 거예요(헣허헣). 그렇게 하늘을 보고 있으면 조금도 질리지 않아요. 계속 구름이 움직이고 빛깔도 변하고…. 저는 그런 순간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언젠가 저런 빛깔을 묘사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가끔 기숙사 앞 테이블에 누워서 하늘을 봅니다. 몇 년 사이에 미세먼지다 뭐다 말이 많아졌지만 하늘은 여전히 예쁘더군요.
군대에서 김훈 책을 읽었습니다. 김훈은 최근들어 도마에 자주 오르는 작가 중 하나죠. 저는 군대 안에서 ‘흑산’과 ‘내 젊은 날의 숲’을 각각 50번도 넘게 읽었어요. 그 외 다른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었거든요(군대가 다 그렇죠 뭐). 작가의 문학 세계는 성적으로 편향되어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해가 되요. 하지만 제가 집중한 것은 “먹고사는 것의 비루함”에 관한 것이었어요. 벌어먹고 사는 것이 그토록 비루하고 고난한 일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감상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브릿G는 후손도 여럿 두시고 직장에도 오래 다니신 분들이 많지만, 당시 저는 스물 두 살이었거든요. 때문에 그 이후부터 저는 벌어먹고 사는 것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지요. <카나엘 디아즈의 하루>나 <나의 인생은> 같은 작품이 그런 논조에서 나왔습니다.
살면서 불합리한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저처럼 불합리한 일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더군요. 물론 물고늘어진다고 해결될 일이었으면 모든 사람이 물고늘어졌겠죠. 대부분 일찌감치 포기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불합리한 것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들어버렸습니다. 세상에 불합리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결국 세상이 불합리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저는 그 날부터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서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군요. 짧게 줄이면 저는 “구름 떠다니는 하늘의 빛깔”을 묘사하고 싶고, “벌어먹고 사는 일의 비루함”과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해서 쓰고 싶은 글쟁이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르에 구애받거나 공모전에 구애받지 않아요.
여러분은 어떤 글쟁이신가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