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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차를 싸그리 지우기 전에

분류: 수다, 글쓴이: BornWriter, 17년 11월, 댓글6, 읽음: 112

회차라고 하기도 뭣한 짧은 글입니다.

이걸 지우는 까닭은, 내용과 별 상관이 없는 거 같고

무엇보다 제가 회사생활을 안 해봐서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얼핏 들은 이야기를 사실이고 진리인 양 써내려가는 건 역시 제 스타일이랑 안 맞는 듯하네요.

 

그래도 써놓은 게 아쉬워서 여기 남겨보고자 합니다.

<미스터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단편에 수록될 뻔 했던 내용입니다.

즐겨달라 부탁드리기에는 내용이 즐길만한 거리는 아니군요.

 

 

 

 

III.

“자네도 갈 건가?” 강 과장이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속이 안 좋아서요.” 나는 그렇게 둘러대었다.

“자네는 다 좋은데 참 그게 문제야. 사내가 술이 약해서 쓰나.”

“그러게요, 하하….”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낼 수는 없었다. 목구멍 언저리에서 깔짝거리는 말폭탄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더욱 힘껏 웃었다. 그러나 강 과장의 관심은 벌써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했다. 따라서 고개를 돌리자, 사원 몇 명이 구두를 신고 있었다. 흐물거리는 시선이 여사원의 다리 사이를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방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 그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구두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강 과장의 관음觀淫은 숨기는 데가 없이 당당했다.

2차는 어디 좋은 술집으로 간다고 했다. 거기 따라가는 여사원은 한 명도 없었다. 마치 그런 법칙이라도 존재하는 듯이. 자연히 집에 가는 무리에 나 혼자만 남자였다. 후배 몇 명이 다른 데 가서 마시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해야 했다. 아무래도 상급자가 있으면 편하게 마시기 불편할 테니까. 우리는 대로변에서 흩어졌다.

“선배는 왜 늘 1차만 있다가 집에 가는 거예요?” 후배 하나가 같은 동네 주민이다. 때문에 같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우리는 긴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그럴 마음은 없었다. 술도 조금 마셨겠다 편하게 앉아서 가고 싶었고, 자리가 많으니까 당연히 다른 자리에 앉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못 들은 척 창밖만 보고 있자 후배가 다시 물었다.

“왜 2차 안 가고 항상 빠지는 거예요?”

“몰랐어? 난 술 마시면 속이 안 좋아진다고.”

“아니, 그런 거짓말 말고요. 진짜로.”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냐.”

“그야 선배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후배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만 했다.

2차에서 마실 만큼 마시고 나면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차라리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 편이 더 적합하리라. 마실 만큼 마셨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컨디션이 별로라면 빠지겠지만, 그렇지 않은데 자진해서 빠지는 사람은 아직 못 보았다. 자진해서 장소를 물색하는 개새끼는 몇 명 있지만 말이다. 다음 날 내게 와서는 ’누구 방에는 여고생이 나왔다더라. 다음번에는 꼭 같이 가자.’고 하는 미친놈도 여럿 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첫 회식에서 나는 술과 별개로 이미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였다. 열도 나고 머리도 지끈거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끝까지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력으로 버텼다. 그리고 회식의 끝은 매춘이었다. 그런 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상황이 역겨워서 나는 거듭 토했다. 이후로 나는 술을 마시면 속이 안 좋아진다는 거짓말로 회식 도중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토하는 것을 모두가 보았기 때문에, 매춘하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매춘에 어울리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승진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은 적 있다. 서류에는 다른 식으로 적어두었겠지만, 실제 이유가 매춘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 처지에 비하면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선배, 다음 정류장이에요.” 후배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어…. 되게 빨리 왔네.”

“밤에는 도로가 안 막히잖아요. 그보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길래 불러도 대답이 없어요.”

“별생각 아니야.”

“또 거짓말.”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옛 중국의 미녀 중에는 미간을 찌푸릴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여인도 있었다고 한다. 이 후배 녀석도 비슷해서, 인상을 찌푸리는 얼굴이 참 예쁘다. 나는 그냥 씩 웃어보이고 말았다. 정류장을 가운데 놓고 그녀와 나의 집은 정반대라서, 주말 잘 보내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집으로 향하는 외길이 스산했다. 누가 뒤를 밟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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