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이벤트 양식에 맞춰서 제출하는 걸 잊었네요.
사진이다.
다르게 묘사하고 싶지 않다. 이 사진은 그냥 그런 사진이다. 사진 속의 남자는 앉아서 한 손을 어색하게 가슴께에 올리고 있다. 이 사진은 라디오 부스 안에서 촬영되었고 남자의 왼 손에 매달린 시계는 케네스 콜에서 만든 8만원짜리 시계다. 남자의 하얀 셔츠에는 별을 닮은 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아쉽게도 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 110 사이즈 AND-Z 셔츠를 좋아했다.
남자의 안경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안경은 성의 없이 죽죽 그어놓은 선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안경이 검은 색이라는 걸 안다. 남자의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좋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또 그 눈이 갈색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가려두었다. 얼굴 전체를 성의 없이 가려두었다. 성의 있게 가려두면 그것조차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다.
저 사진을 찍은 건 여름날로 그 날의 남자는 많이 웃었다. 하지만 그는 사진 찍히는 걸 싫어했으니 저 사진에서는 웃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은 기억나지 않는다. 너가 그 날의 라디오 부스 안에서 웃었는지 아닌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색하게 올린 손으로 내 카메라를 가리고 다급하게 뭐라고 말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이 년은 긴 시간이다. 긴 시간이다. 너를 치었던 SM3가 멀쩡히 수리되어서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지 꽤 되었다. 너를 치고 도망간 사람이 감옥에서 조만간 나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너는 아니다.
아니다.
너는 이미 불에 태워져 항아리 안에 담겼으니까 아니다. 너는 다시 걷거나 기판을 만지거나 할 수 없다. 없는 형태가 되었다. 더 이상 홍대에 살지도 않는다. 너를 보려면 지하철을 타고 두 시간 가까이 가야만 한다. 너는 말하지 않는다. 너는 웃지 않는다. 너는 음악을 듣고 평가하지 않는다. 너는 이 편지를 보더라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생각나서 써 봤다.
잘 지내라.
2017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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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틀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