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사 백일장이 열렸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보통의 도시
고대어로 쓰인 문헌들은 하나같이 기상천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통의 도시’라는 책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이는 고대인이 살았던 도시의 모습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미래의 모습을 고대인이 예언한 내용이라고도 한다. 적어도 이 도시가 지금껏 역사에 기록된 그 어떤 도시와도 다르다는 점 만큼은 분명하다.
해석에 따르면, 이 도시에는 산처럼 높고 기둥처럼 가는 집이 있으며 그 집 안에는 똑같이 생긴 백 개의 방들이 있어 손가락질 하나로 방 사이를 오갈 수 있다고 한다. 밤에는 태양처럼 밝지만 뜨겁지 않은 불이 온 도시를 밝히고 말이 없는 마차는 삼백 마리의 말이 끄는 힘으로 거리를 달린다. 까마귀 없이도 두루마리를 주고 받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그림이 도시 곳곳에 걸려있다고도 한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마법과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였다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는 부분은 ‘보통’이라는 단어다. 고대어로 ‘노마르’라고 읽히는 이 단어는 보통 혹은 평범하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나 이 보통의 도시라는 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는 이견이 있다.
어떤 학자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다고 해석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생각을 한다. 똑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 그중 몇이 없어져도 아무도 눈치채는 이가 없다.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태어나 그 자리를 메운다. 혹여 모난 이가 나타나면 모두가 야단쳐서 다듬거나 아예 없는 사람으로 치며 무시하는 것이 바로 보통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다른 학자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한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은 모두 제각각이나 그 제각각인 사람 모두가 보통인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말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은 칼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책을 좋아하나, 그 모두가 보통인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려고 돈을 모으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즐기나 모두가 굶지 않고 제각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수많은 이들과 모여 살기를 즐기고, 어떤 사람은 평생을 홀로 고독하기를 바라나 그 모두가 같은 도시에서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이 바로 보통의 도시라고 한다.
그 중 어떤 해석이 맞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어떤 경우든 보통의 도시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임은 분명하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마법과 기술이 발달한 세상에서도, 결국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모여서 살게 된다는 게 내가 이 책에서 얻은 한 가지 확실한 지식이다.
– ‘무지개’ 아르고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