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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마무리 잘 읽었습니다. 저도 경위서로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글쓴이: 슬픈거북이, 2시간 전, 댓글1, 읽음: 57

1.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리뷰를 의뢰드린 이유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실력 있는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리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의뢰의 목적은 단순히 “잘 읽히는가”를 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2.
다음으로 제가 리뷰에 대해 이렇게 지금까지 글을 쓰는건,
리뷰를 부정하거나 못받아들이겠다가 아님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가님께서 “신뢰할 근거가 작품 어디에도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여기에 덧붙일 말이 어디있을까요?

작가님 한테 따지고 드는게 아니라,
자게까지 글이 올라왔으니 저도 입장표명이 필요하니까 쓰는
그냥 일종의 경위서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3.
저는 이 소설이 어딘가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실패했는가였습니다.
특히 제가 궁금했던 것은, 제가 설계한 구조가 작품으로서 성립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구조는 처음부터 분명했습니다.
1층은 환타지와 복수극의 외피, 2층은 역사와 기호, 3층은 “믿음이 현실을 만든다”는 철학적 층위입니다.
저는 독자가 1층을 따라가다가 2층에서 한 번 흔들리고, 거기서 3층까지 도달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인터루드 0, 1, 8 역시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그 3층으로 가기 위한 다리 중 하나로 두었습니다.
제가 리뷰를 의뢰드릴 때 여쭈었던 것도 결국 이 점이었습니다.
이 단서들이 정말 단서로서 기능하는가, 제가 놓은 징검다리가 실제로 독자를 다음 층위로 데려갈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독자가 실제로 그 다리를 건너오지 못할 수 있다는 것과, 제가 징검다리를 놓아두지 않았다는 것은 제게는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저는 성공 여부 이전에, 적어도 그것이 구조로서 성립하느냐를 알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카노사를 예로 들겠습니다.
카노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카노사는 세계사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기호입니다.

왕권이 교회에 무릎을 꿇었던 사건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군이 원수로 제시된 것 역시, 역사를 아는 독자라면 구체제의 질서와 은행업의 맥락 속에서 하나의 기호나 상징으로 읽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주인공이 원수와 마주하는 자리에 이 장소를 둠으로써, 그 구조가 반복된다는 점을 암시하고자 했습니다.
쓸데없이 감정선을 방해하기 위해 넣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댓글에서도 “카노사의 굴욕이 떠올랐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곧 제 의도가 완전히 성공했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심어 둔 단서가 전혀 기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카노사만이 아닙니다.
저는 역사 외에도 독자가 다음 층위로 건너올 수 있도록 나름대로 많은 상징을 깔아두었습니다.
마몬, 7죄종, 금본위제, 두카트, 기적, 계약 같은 요소들이 제게는 모두 그 역할을 하는 징검다리였습니다.
마몬은 단순한 악마 이름이 아니라 배금주의와 물신의 기호이기도 하고, 카노사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권위와 향방이 뒤집힌 장소의 기호이기도 합니다.

서사에서 복수마다 반복되는 원수들의 믿음의 붕괴 또한 나름의 장치였습니다.

저는 이런 널리 알려진 상징과 기호를 통해 독자가 1층에서 2층, 다시 3층까지 건너오기를 바랐습니다.

4.
만약 제가 처음부터 더 단순하고 더 직진적인 복수 환타지를 쓰려 했던 것이라면,
이렇게 번거롭게 역사를 끌어오고, 악마와 천사 같은 상징 체계를 배치하고, 인터루드로 독법을 흔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흔히 소비되는 직진형 환타지 문법을 따랐다면 훨씬 더 쉽게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처음부터 단순한 복수극만을 쓰려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환타지 흐름을 끊는다”, “기본기가 안된 텍스트”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감사할 뿐입니다. 55매씩이나 되는 리뷰를 써주시고, 자게에까지 따로 답변을 남겨주셨으니까요. 아직 걸음마 단계의 초고라고 생각하고, 더 노력해서 잘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는 환타지이고, 누군가에게는 역사이며, 누군가에게는 철학으로 읽히기를 바라며 쓴 작품입니다.
결과적으로 브릿G에서 리뷰가 거의 달리지 않은 것 역시 제 실패일 수 있습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1층만 읽히고, 어떤 독자에게는 2층에서 멈출 수 있다는 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만, 3층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과, 제가 연결될 단서를 놓아두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5.
그래서 제가 끝까지 여쭙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형식이 거칠고 전달에 실패했다는 지적과, 제가 놓은 단서와 구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평가는 서로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저는 후자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답변은 제게 후자에 대한 검토라기보다,
“이 형식으로는 그런 층위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큰 어긋남을 느꼈습니다.
제가 묻고 있는 질문은 구조의 성립 여부였는데, 답변은 계속 형식과 독법의 문제로만 흘렀기 때문입니다.

6.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선생님께서 리뷰 서문에서 전제하신 웹소설/출판소설의 분리주의입니다.

저는 그 구분이 설명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드래곤 라자를 읽던 시절만 해도, 그 작품은 만화가게 대여품목으로 함께 소비되던 텍스트였습니다.

지금은 장르문학의 대표작처럼 정전화되어 있지만,
당시의 유통 형식과 사회적 취급만 놓고 보면 결코 그런 권위를 달고 출발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작품이 다른 소설들과 분명히 다르다고 느꼈고, 그 안에 내용과 철학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양판소 환타지랑 같은 칸에 놓일 물건은 아니라고 말이죠.

즉 당대의 형식과 유통 환경, 장르적 분류가 작품의 실제 층위와 곧바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웹소설은 이래야 하고 출판소설은 저래야 한다는 식의 구분이 작품의 가능성을 너무 빨리 닫아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7.
저는 소설이 초보일 수는 있습니다.
형식이 서툴 수 있고, 전달 방식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배우고 고쳐 나갈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제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어떤 층위를 만들려 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려면 어떤 형식이 필요한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정확한 실패 원인을 되짚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게 돌아온 답이 “그 형식은 잘못되었고, 그 위의 층위는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다”는 식으로 들렸기 때문에,
솔직히 제가 리뷰를 의뢰드린 취지와는 다른 결과라고 느꼈습니다.

8.
끝으로, ‘1부 해설’은 처음부터 독자에게 제 독해를 강요하기 위해 올린 글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작품에 해설을 달아둔게 아니라, 어제 선생님의 리뷰를 읽고 위와 같은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려고 뒤늦게 작성한 글이었고,
애초에도 자게가 아니라 제 소설 페이지에서 설명하려던 것이었습니다.

9.
긴 시간 답해주신 점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슬픈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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