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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전에 내일로 7일권으로 여행 갔던 썰 푼다(?)

분류: 수다, 글쓴이: 김뭐시기, 5시간 전, 댓글5, 읽음: 44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게 아쉽긴 하지만 :downcast-sweat: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12월이었다는 것만 기억나고, 초였는지 중순이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시 홈 프로텍터(?)였던 저는 여러 억까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술을 마신 뒤 충동적으로 알바로 모은 돈으로 내일로 7일권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대전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살면서 처음으로 부산에 가 봤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청도 근처를 지날 때부터 창밖으로 보이던 설경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부산 분들이 모두 사투리를 쓰는 것은 편견’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지나가시던 모든 분이 사투리를 쓰고 계셔서, ‘편견이라고 생각했던 제 생각도 편견이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부산을 한 다섯 번 가봤습니다. 부 산 좋 아! 모 모 스 커 피 좋 아!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간 곳은 부산시립미술관이었습니다. 당시 앤디 워홀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인스타에서 본 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 봤는데 좋았습니다. 어덜트 룸인가? 그건 앤디 워홀한테 사과받고 싶긴 했습니다(?) 내 눈~~~ :melting:

https://blog.naver.com/purum1021/220548831216

숙소는 해운대 근처 게하 도미토리로 잡아서, 해운대구청 족욕장에서 족욕도 해 보고, 시장에 가서 돼지국밥에 소주를 깠습니다. 지금은 소주를 마시지 않지만, 여튼 그때 사장님이 서울에서 온 청년들에게 “정구지도 넣어 드이소”라고 말씀하셨는데, 청년들이 해맑게 “정구지가 뭐예요?” 하고 되묻는 걸 봤습니다. 순수하게 몰라서 되묻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떼잉, 녀석들 정구지도 모르냐…’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한 다섯 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에서는 홍대 근처 게하에 묵었는데, 사장님이 본인도 대전 출신이라며 방을 업그레이드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멘야산다이메에 가서 라멘과 교자를 먹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창덕궁 후원에 갔습니다. 제 최애 고궁이 창덕궁인데 후원 진짜 좋더라고요. 저는 비수기인 12월에 갔는데도 겨울의 휑한 분위기가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 뒤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보다가 후원이 나와서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연못에 그… 네… 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cold-face:

그리고 담양에 가려다가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삼각지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숙박객이 많았는데, 그중 한 모로코 분과 함께 응팔을 봤습니다(?) 자막이 몇 주 뒤에 나온다고 해서, 보면서 내용을 간단한 영어로 짧게 통역해 드렸어요.

게하 사장님인 줄 알았던 튀르키예 분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은 아니었고, 결국 실제 사장님은 한 번도 뵙지 못한 채 체크아웃했습니다 :thinking:

그리고 삼각지역에서 폰 액정이 박살 나는 바람에 서대전역에 가서 수리를 했는데, 여행 경비의 절반 정도가 그 수리비로 나갔습니다 ^^….


그렇게 얼이 빠진 상태로 광주송정역에 도착한 뒤 버스를 타고 담양으로 갔습니다. 예약해 둔 숙소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때 처음으로 지방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차내 정류장 안내 방송이 안 들리더라고요. 결국 감으로 한 정거장 전인가 후쯤 내려 유배 가는 성동일 짤마냥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연락을 주셨다면 데리러 갔을 텐데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하시더군요 :smiling-tear: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폰 액정 박살 난 게 충격이 꽤 컸던 것 같습니다. 20대 초중반 그지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내내 얼이 빠진 상태로 있었는데, 바비큐를 예약해 두신 다른 여행객분들이 함께 먹자고 초대해 주시더라고요. 사장님도 즐겁게 여행하러 왔는데 우울해하면 손해라는 말씀을 하셔서, 그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는데, 무려 굴비가 나오더라고요. 서울이나 부산에서 묵었던 곳과 숙박비는 비슷했는데 :loudly-crying: 조식을 먹고 전날 함께 바비큐를 했던 분들이 차로 죽녹원까지 태워 주셔서 죽녹원도 가고, 국수 거리에서 국수도 먹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가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홈 프로텍터는, 가족들과 함께 첫날 부산역에서 산 진공 포장 구룡포 과메기와 담양에서 산 죽통 막걸리를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왜 뜬금없이 여행기냐고 하신다면,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며 기억을 더듬다가 인생에서 즐거웠던 추억 중 하나인 내일로 여행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역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것저것 해 보고, 여기저기 가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면 취향도 찾게 되고 경험도 쌓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든 아니든 스스로를 조금씩 좁히고 가두며 살아가게 되는데, 짧은 외출이든 긴 여행이든 한 번 다녀오면 그 기억만으로도 한동안 삶을 버텨 갈 힘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여유가 되는 범위에서 말입니다. 때로는 분수에 맞지 않아도 되고요.

역시 야매 작가 그 이상은 못 되겠네요 :downcast-sweat: 작가라면 응당 한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글을 써야 하는데, 일단 글 쓰는 도구부터 메모장 앱이고 :lol:

결론: 건필하십쇼~~ 낙동강과 한강과 영산강의 기운을 여러분께~~

김뭐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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