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에 내일로 7일권으로 여행 갔던 썰 푼다(?)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게 아쉽긴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12월이었다는 것만 기억나고, 초였는지 중순이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당시 홈 프로텍터(?)였던 저는 여러 억까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술을 마신 뒤 충동적으로 알바로 모은 돈으로 내일로 7일권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대전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살면서 처음으로 부산에 가 봤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청도 근처를 지날 때부터 창밖으로 보이던 설경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부산역에 도착했을 때 ‘부산 분들이 모두 사투리를 쓰는 것은 편견’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지나가시던 모든 분이 사투리를 쓰고 계셔서, ‘편견이라고 생각했던 제 생각도 편견이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부산을 한 다섯 번 가봤습니다. 부 산 좋 아! 모 모 스 커 피 좋 아!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간 곳은 부산시립미술관이었습니다. 당시 앤디 워홀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인스타에서 본 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 봤는데 좋았습니다. 어덜트 룸인가? 그건 앤디 워홀한테 사과받고 싶긴 했습니다(?) 내 눈~~~ 
https://blog.naver.com/purum1021/220548831216
숙소는 해운대 근처 게하 도미토리로 잡아서, 해운대구청 족욕장에서 족욕도 해 보고, 시장에 가서 돼지국밥에 소주를 깠습니다. 지금은 소주를 마시지 않지만, 여튼 그때 사장님이 서울에서 온 청년들에게 “정구지도 넣어 드이소”라고 말씀하셨는데, 청년들이 해맑게 “정구지가 뭐예요?” 하고 되묻는 걸 봤습니다. 순수하게 몰라서 되묻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떼잉, 녀석들 정구지도 모르냐…’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한 다섯 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에서는 홍대 근처 게하에 묵었는데, 사장님이 본인도 대전 출신이라며 방을 업그레이드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멘야산다이메에 가서 라멘과 교자를 먹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창덕궁 후원에 갔습니다. 제 최애 고궁이 창덕궁인데 후원 진짜 좋더라고요. 저는 비수기인 12월에 갔는데도 겨울의 휑한 분위기가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 뒤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보다가 후원이 나와서 반가웠던 기억이 나네요. 연못에 그… 네… 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그리고 담양에 가려다가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삼각지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숙박객이 많았는데, 그중 한 모로코 분과 함께 응팔을 봤습니다(?) 자막이 몇 주 뒤에 나온다고 해서, 보면서 내용을 간단한 영어로 짧게 통역해 드렸어요.
게하 사장님인 줄 알았던 튀르키예 분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사장님은 아니었고, 결국 실제 사장님은 한 번도 뵙지 못한 채 체크아웃했습니다 
그리고 삼각지역에서 폰 액정이 박살 나는 바람에 서대전역에 가서 수리를 했는데, 여행 경비의 절반 정도가 그 수리비로 나갔습니다 ^^….
그렇게 얼이 빠진 상태로 광주송정역에 도착한 뒤 버스를 타고 담양으로 갔습니다. 예약해 둔 숙소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때 처음으로 지방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차내 정류장 안내 방송이 안 들리더라고요. 결국 감으로 한 정거장 전인가 후쯤 내려 유배 가는 성동일 짤마냥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사장님이 연락을 주셨다면 데리러 갔을 텐데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폰 액정 박살 난 게 충격이 꽤 컸던 것 같습니다. 20대 초중반 그지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내내 얼이 빠진 상태로 있었는데, 바비큐를 예약해 두신 다른 여행객분들이 함께 먹자고 초대해 주시더라고요. 사장님도 즐겁게 여행하러 왔는데 우울해하면 손해라는 말씀을 하셔서, 그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조식을 먹는데, 무려 굴비가 나오더라고요. 서울이나 부산에서 묵었던 곳과 숙박비는 비슷했는데
조식을 먹고 전날 함께 바비큐를 했던 분들이 차로 죽녹원까지 태워 주셔서 죽녹원도 가고, 국수 거리에서 국수도 먹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가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홈 프로텍터는, 가족들과 함께 첫날 부산역에서 산 진공 포장 구룡포 과메기와 담양에서 산 죽통 막걸리를 먹으며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왜 뜬금없이 여행기냐고 하신다면, 무슨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며 기억을 더듬다가 인생에서 즐거웠던 추억 중 하나인 내일로 여행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역시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이것저것 해 보고, 여기저기 가 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면 취향도 찾게 되고 경험도 쌓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든 아니든 스스로를 조금씩 좁히고 가두며 살아가게 되는데, 짧은 외출이든 긴 여행이든 한 번 다녀오면 그 기억만으로도 한동안 삶을 버텨 갈 힘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여유가 되는 범위에서 말입니다. 때로는 분수에 맞지 않아도 되고요.
역시 야매 작가 그 이상은 못 되겠네요
작가라면 응당 한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글을 써야 하는데, 일단 글 쓰는 도구부터 메모장 앱이고 

결론: 건필하십쇼~~ 낙동강과 한강과 영산강의 기운을 여러분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