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거예요
언제나 인생은 낭비된 만큼만 좋았어요.
어린 시절 텅 빈 공용주차장 한쪽에 앉아서 바라보던 구름의 변화
핑크 플로이드의 다크사이드 오브 더 문을 중간에 끊을 수 없어서 한없이 걷던 대학로의 골목골목들
하루 종일 누워 바라보던 하얀 천장
입장 퇴장을 반복하며 세 번을 내리 보았던 도니다코
아무 쓸모도 없이, 그저 이해하고 싶어서 읽어대는 숀 캐럴, 도킨스, 데닛 같은 석학들의 저작
휘어져 쓰러져가는 나무에게 어깨를 빌려주던 이름모를 들꽃의 모양
그것을 한참 바라다보던 텅 빈 시간들
빗물 머금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싯귀를 혹은 노랫말을 읊어주던 친구와의 늦저녁
인생은 그런 것들의 총합만큼만 아름답더군요
딱 낭비된 그만큼만
저는 저를 독자라 생각해요. 나의 본질의 일부를.
어린 시절 다이어리 한쪽에 아무도 읽을 리 없는 글줄을 끄적거리면서도 결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고
제 글을 찾아주시는 독자님들께 편의상 작가라 불리는 지금도
저는 독자예요.
그리고 독서는 저에게 무엇보다도 사치스런 낭비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시, 인생은 그것이 낭비된만큼만…
독자이면서도 글줄을 끄적이는 이유는 머릿속에서 날뛰는 장면들, 결코 그냥은 사라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꺼내놓기 위해서예요.
그것이 왜 제게는 사극의 탈을 쓰고 왔을까
저 스스로도 의아할 때가 많지만
뭐 여러분의 글에도 저마다 스스로는 의아한 것들이 있으시겠지요.
아무튼.
그것이 왔기에 그것을 써야만 해요, 인생을 낭비하면서.
우리는 지금 인생을 낭비하는 거라며 활짝 웃는 여인의 얼굴 같은 것.
그 거친 손아귀에 손목이 붙들린 채 그런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는 사내의 깨달음 같은 것.
써내리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날뛰기를 멈추지 않는 어떤 사연들, 인생.
그런 것들을 느린 속도로 끄적이다보면
가짜이기에 내 삶에 대한 낭비인 그들의 삶만큼만
내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껴요.
모순이지만
인생은 낭비된만큼만 아름다우니까.
나는 낭비된 만큼만 인생을 좋아하니까.
장례식이 시작된다, 내 머릿속에
애도의 행렬이 이리로 또 저리로
뚜벅- 뚜벅- 걷고 또 걷는다- 그건 마치
머리를 뚫고 나가기라도 할 기세야
그들이 전부 자리에 앉자
장례 절차는 마치 드럼처럼
두드리고- 또 두드려대서- 나는 마치
머릿속이 마비될 것 같다고 생각해
그때 관이 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영혼을 가로지르는 삐걱거림
일전의 납 장화가 다시 또 뚜벅거리면
대기 중을 울리는- 종소리
천국이란 건 전부 종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그곳의 거주자는 전부 귀로만 이루어져 있는 듯
나와, 침묵은, 어떤 기이한 종족처럼
난파한 채, 고독히, 이곳에-
그러자 이성의 판자가 부러지고
나는 떨어지고, 떨어지며
모든 추락마다 온 세상과 부딪히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된다- 그때
그때 관이 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영혼을 가로지르는 삐걱거림
일전의 납 장화가 다시 또 뚜벅거리면
대기 중을 울리는- 종소리
장례 행렬이 느껴진다, 내 머릿속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리로 저리로
뚜벅- 뚜벅- 걷고 또 걸어, 그러다 마치
머리를 뚫고 나가기라도 할 기세다
장례식이 시작된다, 내 머릿속에 / 앤드류 버드 (에밀리 디킨스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