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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ner’s Plan

분류: 수다, 글쓴이: BornWriter, 17년 8월, 댓글5, 읽음: 94

저는 플롯 전체를 계획하고 글 작업에 돌입합니다.

그래서 장편의 경우 체력적으로 매우 힘들어요. 첫 문장 써보기도 전에 글체력을 다 써버린다는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단편의 경우에는 조금 더 단순한 플롯으로도 글작업이 가능합니다.

제가 단편 쓰기 전에 준비하는 플롯을 저는 ‘중구난방 중언부언’이라고 부릅니다. 왜냐면, 아래와 같은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원에서 마을로 돌아온다. 환상에 대해 고민한다. 답이 없음에 절망한다. 술 퍼 마시고 기절한다. 새벽에 깬다.

우선 스토리부터 짭니다.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고 스트레이트하게 씁니다. 당위성이 있는 스토리면 짧아도 괜찮습니다. 일단 대강의 흐름만 보는 거고, 나머지 디테일은 플롯 짜면서 할 거니까요.

 

 

절뚝이는 걸음으로 마을로 돌아온다. 사내가 나를 걱정한다. 그러나 나는 사내를 안심시킨다. 별 거 아니라면서.

술을 마신다. 애당초 술 많이 팔아주기로 했으니까. 사내의 펍은 펍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의 규모. 잡화점의 구석에서 술도 파는 듯하다. 마신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환상은 이상하다. 뭐였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사원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장치. 아무리 생각해봐도 셰익스피어 교수를 죽인 장치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만약 멕시코 경찰이 위험한 장치를 회수해갔다면 내가 모를 리 없다. 정확히는 야니가 모를 리 없고, 야니가 내게 알려줬을 테니 내가 모를 리 없다.

여기 오면 모든 의문 그런 게 싹 없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머리가 고민으로 가득해 두통이 생길 지경. 그걸 잊기 위해 엄청 퍼마셨다. 어차피 영수증으로 비용처리 할 생각이라서 걱정 없다. 술에 취해 오래간만에 순식간에 잠들었다.

잠에서 깼다. 화장실이 급해서 깼다고 생각했는데,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이게 제 플롯입니다. 단순한 스토리라인 뿐만 아니라 인물과의 상호작용, 인물들의 감정이나 복선 등을 포함하여 씁니다. 그리고 이걸 토대로 본 글작업에 돌입하죠.

 

 

 

점심 먹을 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나는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절뚝거리는 나의 걸음걸이를 보더니 사내가 걱정스럽게 상태를 물었다.

“무싱 이리요. 으디다 갔다 빡치기 하싱게요?”

“그런 거 아녜요. 원래 무릎이 좀 안 좋아서. 얼마 있다 보면 또 괜찮아질 거예요.” 나는 그정도로 에둘렀다. 환상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말하기 껄끄러웠다.

사내의 집에서 욕실을 빌리고 가게 위 다락방으로 돌아왔다. 조용하여 혼자 생각에 잠기기 좋았다. 나는 밥 생각도 잊고 환상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이 깊어질 수록 되려 혼란스러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만약 조교수 해머즐리 씨가 같이 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애당초 그 양반은 왜 나에게 멕시코시티 세미나를 양보한 걸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불러올 뿐 마땅한 답을 내놓는 일이 없었다.

평소 내 돈으로는 사 마시지도 못할 위스키 한 병을 가져다 잔에 부었다. 술 많이 팔아주기로 했으니까. 어차피 영수증으로 비용처리 할 생각이었기에 가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술은 고민과 같아서 첫 잔이 다음 잔을 부르고, 다음 잔이 새로운 잔을 불러서 병의 밑바닥을 보게 만든다. 그러나 위스키 한 병을 다 마시도록 나는 취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그녀를 끝장낸 것일까. 사원 아래에는 마땅한 것이 없었다. 멕시코 경찰이 위험한 장치를 수거해갔다면 그런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흔적을 찾기 위해 다시 사원 아래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지만, 예정대로 내일 멕시코시티로 돌아간다. 그렇게 결심하고도 마음이 편치 못해 나는 거푸 들이켰다. 나는 쓰러지듯 곯아떨어졌다.

누가 옮겨주었는지 다락방에서 눈을 떴다. 자정을 겨우 넘긴 시각.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했다. 속이 편치 않아 웅크린 채로 다시 잠을 청해보았다. 그러나 인기척이 거슬려서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인기척 때문에 깨버린 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을도 작아서 열한 시면 가게 문을 닫는다. 누가 뭘 훔쳐가면 꽤 높은 확률로 내가 덤터기를 쓰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내 몸을 일으켰다.

나무로 된 계단이라 발 디딜 때마다 삐걱거렸다. 조심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냥 어제 플래너는 어케 플랜을 짜나 물어보셨던 분이 계셔서, 그리고 그분의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서, 설렁설렁 적어보았습니다.

 

(아마 별 도움은 안 될 듯)

 

 

 

+ 내가 혼자 너무 글로 자게 도배 하는 거 아니게찌

Born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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