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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게북클럽] 백묵을 읽고서

글쓴이: 프롤로그, 21시간 전, 읽음: 23

백묵이란 소설을 읽었습니다.

백묵은 단 하나의 사건을 길게 이어나가는 장편 소설로, 폐교에서 집어온 백묵과 그 후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 문장은 무난한 편이었습니다.

폐교의 먼지 가득 쌓인 복도와 칠이 벗겨진 흰색 페인트의 건물 외벽과 내벽.

소설에서 끊임없이 흰색에 관해 묘사하는데, 첫 문장과 제목부터, 그리고 먼지 쌓인 교실 창에서 보는 흰색 자작나무까지.

모든 묘사가 흰색으로 물든 시야를 집요하게 써 내려갑니다.

일종의 미장센을 위한 배치로 보입니다.

이후 화자인 가람의 할머니의 흰머리와 흰 포말, 그리고 장례식의 장면에서도 빠짐없이 흰색이 나오죠.

주인공인 가람은 어느 공포소설의 주인공처럼, 겁도 없이 교실에서 백묵 하나를 집어 옵니다.

귀신을 불러내는 의식을 위해 원을 그리는데 필요한 건, 귀신 들린 물건이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당연히, 그 의식은 실패로 돌아가는데, 그날 이후로 조금씩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나무 바닥에 발자국처럼 흰색 곰팡이가 피어나고, 그에게 마을 사람들은 다 타버린 재의 냄새가 난다고 하죠.

그리고 가람은 꿈에서 백묵을 가리키는 흰 손을 보게 됩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꾸준히 백묵을 둘러싼 공포영화와 같은 묘사가 나오지만, 귀신 같은 뚜렷한 존재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폐교와 백묵에 관한 이야기가 짧게 괴담 형식으로 서술됩니다. 당시에는 짐승의 뼈를 갈아 백묵을 만든다는 내용의 글입니다.

철저한 심리 호러극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며, 주인공인 가람은 편집증처럼 무너져 내립니다. 그가 마지막 결정을 내리는 순간조차 그는 백합의 목이 부러지듯 목이 부러졌다라는 묘사로, 아무것도 아닌 백색을 공포의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는 글입니다.

백색에 대한 공포의 상징을 집요하게 미장센으로 배치해서 현실의 백색을 의심스럽게 보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밤에 잠 못 들게 하는 소설이 아닌, 세상을 의심스럽게 보도록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집요하게 백색을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다 보니, 중간에 읽다가 끊으면 그 긴장이 약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오히려 단편이면 좋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평점은 5개 중 3개 반으로, 심리 호러를 좋아하시면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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