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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3시간

분류: 수다, 글쓴이: Izedokia, 24년 12월, 댓글14, 읽음: 142

비상계엄 3시간

 – 폭풍과 같았던 그 순간을 돌아보며 –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 경기만큼이나 냉랭한 한파 속에 설렁탕으로 속을 덥히고 온 날이었다.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오랜만에 가지는 기분 좋은 휴식 시간이었다. 좀처럼 붙잡기 힘든 일상의 작은 통제감이 아쉬워 잠이 오질 않았다. 창문 너머 은은히 불어오는 겨울바람 속에 좋은 커피 한 잔을 곁들였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었으리라. 찰나의 행복을 붙잡으려 애쓰는 이기심이, 이만하면 됐다며 슬슬 감겨오는 눈꺼풀에 그때 굴복했더라면 어땠을지. 앞날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짐승은 그렇게 다가오는 폭풍 속에 권태로운 뒤척임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송곳은 일상의 얕은 가죽을 찢고 깊숙이 찔러 들어왔다. 하나의 사실과 하나의 질문이 담긴 메시지가 돌연 들이닥쳤다. ‘내가 본 것이 맞느냐’라고 현실을 향해 의문을 던지는 지인의 연락이었다. 시간이 늦어 나중에 확인할까도 싶었지만, 평소 흉보의 전령과 같았던 친구였기에 한밤에 소식을 가져온 게 어딘가 께름칙했다. 이미 기분이 한 번 엉망이 되었으니 편히 잔다는 선택지는 날아가 버렸다. 남은 것은 이 전령이 건네는 역사의 피지皮紙를 받아드는 것뿐이었다.

[속보] 尹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이것이 2024년 12월 3일 22시 33분에 필자가 받은 연락이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은 휘몰아치는 폭풍이 되어 한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풍랑은 그런 식으로 수많은 국민의 삶을 휩쓸었다. 국회의원들은 급보를 받고 너도나도 국회로 향했고, 각지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상황을 확인하거나 통신망을 붙들고 소식이 갱신되는 것을 기다렸다. 심지어 정부 여당조차도 연락을 받지 못했을 정도로 기습적으로 발표된 사안이었다. 북풍을 타고 풍선이 넘어올 때는 요란스럽게도 울던 핸드폰이 그럴 때는 또 침묵하고 있었다. 정해진 것도, 확실한 것도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의원들이 국회로 향하는 와중, 버스를 위시한 경찰이 정문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약간의 실랑이를 거치면 그래도 통과가 가능할 정도의 적은 인원이었지만, 단시간 내 입법부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는 확실해 보였다. 계엄사령부를 세우는 속도도 신속했고, 뒤이어 시내에 장갑차가 출몰했다는 제보도 하나둘 늘어갔다. 시간이 지나자 응답기transponder를 끈 헬기가 국회 상공에 나타났고, 본격적인 작전 시작을 알리듯 후문으로 특전 부대가 들이닥쳤다. 〈서울의 봄(2023)〉은 그저 인물-중심적 영화에 불과했다면, 이것은 정말로 실제 상황이었다. 서울, 아니, 한반도 전역이 봄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계엄군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악스럽고 야만적이었다. 총기와 4안 야간투시경을 장비하고 돌입한 시점에, 국회 내부는 입법의 전당에서 작전지역AO으로 재정의되었다. 특수전 부대는 국회 본청 입구를 통해 본회의장을 점거하려다 저지당했고, 잠시 병력을 물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다 이후 창문을 깨고 내부에 진입하기도 했다. 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작전에 방해되는 시민을 바닥에 내던지고, 사람과 카메라를 향해 손전등을 겨누는 모습은 거의 위협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물러나거나 거리를 벌리는 순간조차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난날에는 철수 발표 후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시민을 향해 발포하지 않았던가? 나중에 상세한 사진이 업로드되어 계엄군의 무장 상태가 비살상 사양임이 밝혀지기는 했으나, 당시의 혼란 속에 그런 것을 알아볼 사람은 얼마 없었을 것이다.

정문 통제가 굳건해지고 추가 병력이 보충되면서 걱정은 커져만 갔다. 동반한 긴 더플백에는 어떤 장비가 포함되어 있는지, 본청에 난입한 병력이 현재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 무엇도 확인할 수 없었다. 반면, 함께 가져온 전투식량 상자에는 명확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계엄군은 12시간 이상 국회를 통제한다는 계획하에 그곳에 온 것이었다. 본회의장을 점거하여 안건의 상정과 투표를 저지하거나, 혹은 표결 결과가 방송되기 전에 통신을 방해하고 이후 내부 인원을 체포한다는 시나리오도 가능했다. 본회의장에서는 아직 안건 상정이 완료되지 않아 발만 구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끝나지 않는 악화일로의 시간 속에 정신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인간사에는 무엇이든 끝이 있는 법인지, 국회의장의 표결 선언과 함께 의혹과 불안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재적 190명 중 찬성 190명.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된 것이었다. 어쩌면 3달, 혹은 3년도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계엄이 3시간 만에 효력을 상실했다니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 체포 정황도 있었던 만큼, 빠른 연락 및 소집이 불가능했다면 계엄사령부의 계획대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 필자의 견해는 몹시 회의적이지만 ― 중대한 실수를 바로잡을 기적 같은 기회를 두 번이나 얻은 셈이다.

요구안이 가결되고 상황이 반전되었지만, 각자 자리를 지키고 일의 흐름을 살피던 시민들은 계속 감시를 이어갔다. 군경은 철수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실은 기자의 출입을 통제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비겁한 자들은 대의의 책무를 지니고 있음에도 본회의장에 출석하지 않았고, 국방부 역시 어떻게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불안이 남기고 간 허무 속에 의분이 싹트기 시작했다. ‘계엄 철폐, 독재 타도’, 한국의 어두운 시기에 들불처럼 번졌던 그 문구가 다시 또 어두운 새벽을 밝혔다. 일상을 빼앗기고 삶의 한순간을 유린당한 사람들은 생각했다. 가만히 둔다면 다음에 또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그러니 책임자를 반드시 심판대 위에 세워야 한다고. 탄핵, 그리고 처벌. 시민의 요구안은 분명했다. 배수지진의 시민들은 이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대여섯 시간 만에 종료된 비상계엄이지만, 이번 사태는 전혀 가볍지도 허무하지도 않았다. 필자의 견해로는, 오히려 시민 사회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미해결과제를 다시금 상기시킨 것 같다.

현 체제에 익숙해져 우리가 종종 망각하고는 하나, 한국의 대통령중심제와 의회정치 관계는 빈말로도 평범하다고 할 수 없다. 전후 재건과 경제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초기 단계부터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한국의 정책 발의는 줄곧 행정부가 주도하고 국회가 이를 보조하는 형태로 굳어져 왔다. 정부 입법이라는 것 자체도 정통적인 대통령중심제와는 거리가 있는 편이지만, 정부가 정책을 주도하고 이를 원내 다수의 여당이 보조한다는 관념도 실은 무척이나 한국적인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정부는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입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왔다. 짧은 임기 중 무려 스무 번이 넘는 거부권 행사가 있었고, 그러면서도 시행령을 통해 정부 의도를 강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반하는 국회의 강한 견제 수단이 국정감사와 ― 사실상 쉽지 않은 ― 탄핵 소추임을 생각해보면, 한국 입법부의 힘은 다소 초라하게 보일 정도다(일을 벌이는 쪽과 이를 적발하고 시정하는 쪽 중 누가 우선권을 가지느냐를 따져보면 답은 간단하다). 다시 말해, 한국의 대통령중심제는 정부(또는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얼마든지 행정부 권력이 비대해질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껏 한국 대통령중심제의 특수성을 극단적으로 남용했고, 이를 통해 여소야대와 정부 안정성의 상관관계를 어느 정도 무시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런데 각종 특수활동비의 전면 감축이 이루어지고 거부권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윤석열 대통령은 돌연 선을 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본래 비상계엄이라는 것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만 선포가 가능하다(「대한민국헌법」 제77조 ①항 및 「계엄법」 제2조 ②항).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며(「계엄법」 제2조 ⑤항), 계엄 선포는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대한민국헌법」 제77조 ④항 및 「계엄법」 제4조 ①항). 실체적인 위협 요소가 부재한 상태에서, 행정 및 사법 기능에 현저한 곤란이 없고, 국무회의와 국회의 소집 및 집회에 관한 요구도 없이 선포된 이번 비상계엄은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원칙적으로, 위헌적이고 절차가 준수되지 않은 선포는 효력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여전히 계엄사령부는 정상적으로 수립되었고, 경찰과 계엄군의 출동이 있었으며, 국회가 스스로 소집되어 해제 요구안을 상정하는 것으로 겨우 효력을 무력화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절차 정당성이 반드시 현실 정치에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 때로는 명분이나 정당성 없이도 권한만이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며, 그러한 관성대로 흘러갈 확률이 예상보다 아주 높다는 것이 바로 이번 사태의 시사점이다.

지난 대선, 누군가는 입버릇처럼 전임 정부의 탄핵 사례를 운운하며 다음에도 문제를 바로잡는 게 가능할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입법부의 행정부 견제는 후속 조치의 성격을 띠며, 실제로 이행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행정부 견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재차 상기하게 되었다. 지난번 계엄은 그저 실현되지 않은 문건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기에 선포되었으며, 군경이 움직임으로 인해 실제 실현되었다. 만일 즉흥적이고 독단적인 계엄 선포가 아닌, 상세한 계획 위에 조직적으로 수립된 비상계엄이었다면 시민 사회는 저항다운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상계엄의 관장 사항은 ‘계엄지역의 행정사무와 사법사무’에 한정한다(「계엄법」 제7조 ①항). 계엄 시에도 입법부는 소관 업무를 장악하거나 국회 해산을 명령할 수 없으며, 국회의원은 현행범이 아니라면 ‘체포 및 구금’할 수 없다(「계엄법」 제13조). 그런데 이번 계엄 선포 후, 계엄사령부는 국회‧지방의회‧정당의 활동을 금지하였으며, 국회의장과 여야 핵심 인원의 체포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부당한 명령이 내려졌음에도, 현장에서 계엄군과 경찰의 항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만일 국회 본청에 투입된 계엄군이 특수임무단이라는 제보가 맞다고 밝혀진다면, 이는 더욱 심각한 사안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보통 특임단의 최하 계급은 특전부사관으로, 현장 사정에 따라서는 독자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작전을 속행하는 수준을 상정한다. 그런 그들이 ‘자국민을 향해 투입될 때도’ 맹목적으로 명령에 따르고 집단의 목표에 매몰된다는 것은 전혀 유효한 변명이 될 수 없다. 국가적 관점에 한해, 그러한 행위는 아이히만의 진부함banality에 비견할 악덕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국민의 보루라 믿고 근거 없는 평화를 영위하고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다 서늘하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건이지만, 결국 시민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하나로 수렴한다. ‘과연 (권한이 비대한) 개인이나 기관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선포 당시에는 국무회의의 심의가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가,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후에는 국무회의의 의결 정족수가 미달이라는 사유로 의결을 지연시켰다. 모든 과정이 엉망이었지만 법률 및 절차상의 안전장치는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이것은 소위 “고도화된” 현대 정치 체계에서 보여서는 안 되는 한 편의 부조리극이다.

아무리 자격과 제약을 성문화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권한 앞에 쓸모가 없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으로 권력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가? 어쩌면 관습이나 편의, 또는 신속성 때문에 무시되어왔던 독립성과 자율성을 재평정할 때가 온 건지도 모르겠다. 21세기 한국에 필요한 것은 잘 수초화된 일방통행의 조직체가 아니라, 권한과 담당이 세분화된 양방향 소통의 유기체 집단이 아닐까, 필자는 어설프게나마 상상해본다.

 

중언부언 글을 쓰는 동안 계엄 자체는 일단락되었으나, 이번 사태가 향후 어떤 파급을 몰고 올지 막연하게 두렵다. 환율/외자 유치/관광/수출입/국가신용등급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우려할 점이 많지만, 정치나 외교 측면에서도 그동안 폐기‧붕괴된 합의점이 너무나도 많다. 위기 상황에 시민들은 역사가 그랬듯이 다시 들고 일어나 싸웠지만, 언제까지 이런 싸움을 반복할 수 있을까? 3시간을 분투하고 6시간 만에 종료된 사태가 10년이나 20년 뒤에는 어떤 사태의 전조로 평가받게 될까? 앞날을 모르는 어리석은 짐승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잠깐의 안식을 누릴 뿐이다.

 


 

본래 쓰던 작품을 다 쓰고 오려고 했지만, 이런 일을 글로 남기지 않고는 글쟁이를 자처할 수 없을 것 같아 급히 써서 남기고 갑니다. 올해 1월에 올릴 수 있게 노력해보겠다 했던 80매 기획은 어느새 400매를 넘겨서 작업이 지지부진하네요. 작년이나 올해에 게시하는 것이 가장 적절했을 작품인데, 이렇게 아까운 시간을 놓치게 되어 아쉽고 부끄럽습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역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에 사과드립니다.

 

제목을 ‘비상계엄 3시간’으로 한 것은,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시점을 기준으로 지속 가능성이 소멸했다 생각하여 그렇게 정했습니다. 실제로 해제 요구안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해제를 선언한 시간은 5~6시간 경과 시점이었으니, 그때를 종료 시점으로 생각하신다면 그 시간으로 대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3시간의 분투 속에 정말 여러 시민분들께서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어 주셨습니다. 소식을 듣고 바로 국회로 가 투표에 참여해주신 의원분들도, 신속히 모여 국회 정문을 지켜주신 노동조합 조합원분들, 본회의장이 점거되지 않도록 막아주신 보좌관분들, 그리고 이 심각한 사태에도 용기를 내어 각자의 역할을 해주신 동료시민분들. 너무나 큰 빚을 져서 저도 더 힘을 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께서도 무탈하셨으면 좋겠고, 만약 무탈하시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것 같습니다.

긴 중언부언과 조촐한 인사를 끝으로 저는 다시 작품을 완성하러 가보겠습니다. 혹시 댓글을 남겨주시거나 글이 문제가 되어 내려야 한다면, 그 시점엔 제가 확인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냉랭한 계절, 부디 감기 조심하시고 마음에 위안이 되는 일이 선물처럼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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