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러 영화 삼대장을 연달아 봐봤습니다.
네, ‘링’을 시작으로 ‘주온’, ‘착신아리’까지, 일본 호러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세 영화를 연달아 봐봤습니다. 다만 시리즈를 전부 본 건 아니고, 각각 ‘링1’, ‘주온1’, ‘착신아리1’으로 1편만 봤습니다. 사실 ‘주온’은 극장판이 아니라 비디오판이 진짜 대박이라는 말이 있어서 보고 싶었으나… 구할 방도가 없어서 아직 못 봤습니다 ㅠㅠ
(*호러 영화 팬이 겪는 흔한 고충: 어째서인지 공포만으로 평가가 좋은 호러 영화들은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업로드가 되지 않는다.)
제 입장에서는 세 영화 중 ‘주온>링>착신아리’ 순으로 좋았습니다. 세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여, 스포일러는 최대한 빼고 제 개인적인 감상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글이라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ㅎㅎ
1. 주온
주온은 보면서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로 보는 내내 감탄하고 놀랐습니다. 특히나 주온에서는 너무나 절절하게 ‘호러 장르에서 소설의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되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청각적 자극’의 부재였습니다. 주온은 호러 장르에서의 청각적 자극을 한껏 활용한 작품입니다. 물론 시각적 자극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만, 저에게 일단 강렬하게 다가온 건, 그 불쾌하고 섬뜩한 청각적 요소들이었습니다. 그건 정말로 소설에서 구현해내기 힘든 것들이니까요. 정말… 정말… 굉장한 영화였습니다.
물론 옛날 영화이기 때문에 그래픽이나 연출이나 분장이 좀 낡긴 했습니다. 현대의 연출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그게 눈에 안 보일 리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게 있더라도, 카메라 구도, 위화감 들고 쎄한 분위기의 연출, 시각과 청각의 자극은 요즘 나오는 공포영화들과 견주어도 될 정도, 아니, 그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세련되었던 건 시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사각지대의 활용이 꽤 노련해서, 작중인물은 눈치를 못 챘지만 관객 눈엔 들어와 소름끼치게 만드는 거라든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두려움과 긴장이 느껴지도록 하는 게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습하고 축축한 일본의 여름, 느리지만 그렇기에 더욱 무섭게 죄어오는 저주의 공포가 궁금하시다면 주온을 추천합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말한 바이긴 하지만, 주온의 의의는 공포영화에서 관습적으로 남아있던 안전지대들을 전부 없애버렸다는 것에 있습니다.
2. 링
이건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전설의 고향’에 머물러있던 아시아의 호러가 20세기~21세기를 맞이하며 어떤 식으로 변주되어 계승되어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링이 개봉한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나, 오히려 ‘아날로그 호러’라는 영상 장르가 유행하는 지금에 와서 링은 더 고평가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링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노이즈 많은 옛날 영상의 감성은 지금 더 공포요소로서 호소력이 있지 않나 싶네요.
동양적인 스산함이 20세기 이후의 문물과 만나서 어떻게 공포를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라고 보여집니다. 원래 언제나 신문물은 우리에게 경이로움과 함께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주기 마련이니까요. 특히나 그 작동원리가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고 마법처럼 보일 경우, 거기엔 초자연적인 불안이 끼어들 자리가 더 커지게 됩니다. 받기 전까지는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옛날 전화기, 틀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이름 없는 비디오… 이런 감성을 링은 정확하게 집어내어 우리 앞에 들이밉니다.
앞으로 제가 호러 소설을 쓸 때 소재와 배경을 어떻게 구축해나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게 한 영화였습니다. 혹시나 ‘그 유명한 장면’의 패러디를 하도 많이 봐서 ‘그 장면을 알면 이미 다 본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서 보는 걸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게 전부가 아니니 봐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 착신아리
저는 언제나 호러 장르는 윤리적 메시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윤리적인 것에 대한 고찰 없이는 호러 장르의 성립이 어렵다고까지 생각합니다. 호러 장르 작품들을 면밀히 살펴보시면, 호러는 세상의 부조리함과 권선징악, 그리고 인간의 죄와 죄의식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굉장히 강렬하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착신아리는 그런 표현이 꽤나 직접적인 영화입니다. 타인의 실제 죽음이 그저 구경거리, 흥미거리, 그리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이 상당히 끔찍하게 묘사됩니다. 어떤 장면인지는 영화 보시면 바로 아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전화로 걸려오는 저주가 진짜 저주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새롭게 형성된 환경 그 자체가 우리에게 사람을 죽이는 저주로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까지 남길 정도입니다.
다만, 착신아리는 그 벨소리의 섬뜩함, 소재의 매력, 그리고 사회비판적 메시지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생각했던 건,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과 소재가 앞서 말했던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굉장히 자연스럽게 섞여있다기보다는 다소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건 ‘링’이 보다 간접적이고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결말부를 보시면, 링의 저주 방식이 현대 사회의 어떤 면과 연결되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결말은… 모르겠습니다 ;; 제가 여러 예술 영화들도 많이 보고 난해하다는 영화도 꽤 많이 봐오긴 했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당최 감이 오질 않습니다. 이건 속편을 봐야 알 수 있나 싶긴 하네요 ㅎㅎ;
여기까지가 세 영화에 대한 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절대 정답 같은 걸 제시할 생각도 없고 제 감상이 정답이라는 생각도 안 하고 있으므로, 흥미가 생기신다면 직접 봐보시고 본인의 감상을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ㅎㅎ 어쨌든 결론은, 이때의 일본 호러 영화들은 확실히 굉장했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일본 호러 영화에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도 있습니다만, 이건 다음에 기회될 때 따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처서까지 무더위 조금만 더 잘 버텨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