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문4답] 추구미 찾습니다
안 써져서 슬퍼하던 중에 이런 이벤트를 발견해서 기쁩니다.
주최해주신 담장 작가님께 구글 맵을 켜고 동서남북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어요.
1. 내 글에 영향을 준 창작물 (ex: 영화, 게임, 노래, 책…)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할지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저는 좋아하는 걸 글로 옮기는 사람이니 그게 그거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SF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영국 드라마 <닥터 후> 였습니다. 쓰레기통이 사람도 잡아먹고 플라스틱 인간이 레이저 건도 쏘는 기묘하고 이상한 드라마지만 낯섦과 인간의 결합이 얼마나 흥미로워지는지 알 수 있거든요. 인간중심적이라는 점은 저도 참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우주적 스케일로 인간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니 적당히 감안하고 있습니다.
SF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제게 SF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생각만 했는데 SF에서는 논리를 통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전제할 수 있잖아요. 얼마나 신나겠어요. 바라기만 하다가 그 너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습니다. 이래서 제 SF는 좀 낙관적이에요.
기묘한 영국 드라마가 제 SF적 세계관을 다졌다면 공포나 미적 기준을 길러준 건 <서던리치: 소멸의 땅> 입니다. 이것도 영화로 먼저 만났네요. 영상물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닌데다 잔인한 영상물(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은 절대 못 보는 성격이라 친구를 베개처럼 끼고 봤습니다. 저는 ‘경계’에 대해 자주, 오래 생각하는데요. 그걸 시각적으로 잘 드러낸 영화라고 생각해요. 인식의 붕괴나 불가해에서 오는 공포 같은 것들… 늘 생각해왔지만,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지 못했던 관념들이 이걸 계기로 형상화되었습니다.
2. 내 글의 지향점
이거 정말 고민이 많은데요. 지향점은 쓰고 싶은 글이잖아요? 글쎄요… 제가 뭘 쓰고 싶은걸까요. 일단 지금은 인간이 아닌 인격체의 이야기와 존재론적 공포를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막연하지만요. 요즘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데 이러다 보면 또… 이거 내가 다룰 수 있는 소재/내용인가? 싶어지기도 해서 당장 쓸 수 있는 이야기부터 쓰게 되는 것 같네요. 글 쓸 때 40% 정도 되는 시간은 이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이거 내가 써도 되는 거 맞나…’ 제가 충분히 이해한 목소리를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 빌릴 수 있는 목소리가 다양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 내가 세운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알기 위해선 목표부터 세워야 할 텐데 저는 단순하게 쓰고 읽는 걸 즐겨서 내걸만한 목표란 게 (아직은) 없습니다. 여기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언젠간 편집부 추천작에 올라보고 싶다… 는 생각을 해봤는데 지난주에 걸려서 여한이 없네요. 브릿G의 활동 목표라면 ‘뭐가 됐든 꾸준히 쓰기’입니다. 1년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많을 텐데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뭐라도 올려보고 싶어요. 2/12 정도 달성한 것 같습니다.
4. 글이 안 써질 때 나만의 방법 (ex: 노래를 듣는다, 앞부분을 다시 읽는다…)
다른 분들의 비법을 삼키고 싶은데… 저부터 꺼내야겠죠?
읽는다는 건 다른 분들도 충분히 언급해 주셨으니 넘어가고. 저는 미래의 제게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전보를 보내둡니다. 지금 모르겠으면 어떤 방식으로 고민해보라는 얘기도 적어두고… 제가 쓰고 싶어서 쓰는 얘긴데 답을 저 아니면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겠어요. 그동안 저는 앞부분부터 계속 읽으면서 뒷부분을 붙여나갑니다.
진짜 이러고 씁니다.
좋아하는 걸 글로 옮기는 사람이라고 초반에 적어뒀는데. 막힐 땐 제가 뭘 좋아하고 뭘 좋아해 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쓰다 보면 뭘 쓰고 싶은 건지 불분명해질 때가 많아서요. 그럴 때 뭘 쓰고 싶었는지 왜 쓰게 됐는지 생각하다 보면 방향성은 좀 잡히더군요.
그래도 안 되면 방법은 없습니다. 읽어야죠. 한참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폭 빠져있다 보면 이상하게 뭔가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이런 사람들이 글을 쓰나 봅니다.
문답 구경하면서 다른 작가님들과 내적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네요.
쓰는 사람들의 쓰는 이야기는 언제 봐도 좋습니다.
다들 원하시는바 충분히 이루는 24년 보내시길 바라며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