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소설] ‘그 애’와 나
저는 스무살에 첫 소설을 썼습니다. 꽤 늦었지요? 익명을 빌려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첫 소설의 제목은 ‘그 애’입니다. 제가 지은 제목은 아니고 당시 자주 들어가던 인터넷 게시판의 릴레이 글쓰기 타이틀이었습니다. 새벽감성과 맥주와 픽션과 논픽션이 마구잡이로 섞인 짧은 엽편이었지요. 마지막 문장을 아직 기억합니다.
나는 그애가 좋았지만 그애의 불행이 두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 수도 있었다. 가난하더라도 불행하지는 않게.
그게 끝이었어요. 새로운 게시물에 밀려 제 습작은 금방 인터넷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갔고 약간 창피한 기분으로 가끔 새 댓글을 확인하던 저 역시 곧 그 글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프로젝트, 마감, 스트레스성 위경련, 번아웃 같은 단어로 점철된, 현실의 시간이었죠.
그러다 모르는 이에게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제 첫 소설이 마음에 남았다고, 거기 적힌 사람들의 안부가 종종 궁금하다고, 이제는 사라진 사이트의 가입 아이디를 찾아내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었습니다. 무척 기뻤고, 조금 부끄러웠고, 어째선지 뱃속이 좀 따끔거렸습니다. 그 기분이 두번째 소설을 쓰도록 등을 밀어주었지요.
쓰는 건, 즐거웠습니다.
예전에는 굳이 저까지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엔 훌륭한 작품이 넘치게 많고 저는 별다른 창의력이나 문재가 없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하찮고 뻔하고 지리멸렬하더라도, 제가 써야만 존재하는 세계가 있더군요. 설령 아무도 읽어주지 않더라도, 그저 나 혼자만의 도락이더라도, 쓰는 것이 쓰지 않는 것보다 무망할 리는 없습니다.
요즘은 틈틈이 스마트폰 메모앱으로 글을 써서 브릿g에 올리고 있어요. 속도는 느리고 결과물은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도 잘 풀리지 않는 연재에 골치가 아프지만(미워하는 마음의 저퀴_좀 읽어주세요ㅜㅠ), 역시 쓰지 않는 평안보다 쓰는 번뇌 쪽이 즐겁습니다.
모두들 각자의 첫 소설에서 멀리멀리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