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하루가 지났습니다
네. 일본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제 어제네요. 하여튼 그게 출장 중 반나절 정도가 비는 그날입니다. 반나절이 비는 이유는 비행기 일정 맞는 게 나리타에 한 시에 떨어지는 건데, 두 시간 쯤 걸리는 미토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는 것 말고는 오늘 딱히 다른 일정이 없기 때문이죠.
다른 분들은 모두 숙소로 이동해서 쉬는 걸 택했지만, 저는 시간이 아깝다! 이 기회에 한 번도 못 가봤던 도쿄를 가보자! 라고 결심했던 거죠. 다른 분들이 모두 숙소행을 택하는 걸 보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사실 누가 따라온다고 할 까봐 조마조마했거든요. 계획도 안 짜고 무작정 돌아다니는 건데, 다른 사람 붙이고 다니면 너무 번거로와서요.
그런데 생각보다 도쿄가 나리타에서 꽤 멀지 말입니다. 도쿄까지 이동하고 우에노 역으로 가서 코인 락커에 짐을 맡기니 벌써 세시 반이네요. 도쿄 처음 와 보는 주제에 지하철 시스템을 만만하게 본 이유도 있었고요.
뭐 어쨌든 그로부터 대략 네 시간 동안 본님이 추천해 주신 아사쿠사를 기점으로 도보와 지하철을 이용하며 아사쿠사 – 오시아게(스카이트리) – 츠키지시장 – 시오도메 – 긴자 – 아키하바라 – 우에노를 돕니다.
아사쿠사 : 일본에 왔다는 느낌? 처음에는 너무 대 놓고 관광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실망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여기를 안 찍었으면 허탈감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거에요.
아사쿠사-오시아게 (도보) : 가장 즐거웠던 구간입니다. 원래 낯선 도시 길거리 걷는 거 좋아하거든요. 중간에 다리도 하나 건너고, 뭐 이때까지는 힘이 남았으니까요. 스카이트리가 멀리서도 보이니 길도 안 헤메고 좋았습니다.
스카이트리 : 당연히 올라가진 않았습니다. 시간도 없고, 날도 흐리고.
기요스미시라카와 : 오시아게 – 쓰키지시장 중간에 갈아타는 역입니다. 여기서 삽질을 하면서 돈과 시간을 날렸습니다. 엄한 출구로 나오는 바람에…
츠키지시장 : 지금 검색해보니 영업시간이 오후 한 시까지네요. 제가 여기 도착한 시간이 대략 다섯 시쯤 됩니다. 한 바퀴 돌면서 짐 나르는 지게차만 잔뜩 봤네요.
츠키지시장-시오도메 (도보) : 원래 저의 원대한 꿈은 레인보우 브릿지를 보는 거였습니다. 시오도메에서 오다이바를 볼 수 있다고 안내책자에 나왔거든요. 고층빌딩의 레스토랑에서 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직접 가보니 빌딩 숲에 가려 아무 것도 안 보이더군요.
시간이 한 시간만 더 있었어도 숲을 뚫고 바다 쪽으로 나갔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어요. 츠키지시장을 들르지 않고 환승역에서 헤메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짓을 했었다간 지금 제가 호텔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시오도메-긴자 (도보) : 슬슬 해가 어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고급 바들의 간판에 불이 들어오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긴자에 간 건 아니고, 얄팍한 검색으로 긴자에 하쿠힌칸이라는 대형 장난감 매장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출장의 큰 임무 중 하나가 애들 장난감 사는 거니까요.
좀 찾다가 안 나오면 말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정말 너무 쉽게 찾았어요. 아마 제 시간을 뺏기 위해서였나 봅니다. 빅실망을 안고 돌아섰습니다. 규모도 너무 작고, 대상 연령대도 너무 낮더군요. 무엇보다 일본스러운 게 별로 없어요. 그냥 롯데마트 토이저러스가 나을 지도요.
여기서 방향 감각을 잃으면서 주변 어디에서도 지하철 역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었지만, 길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뭐 일단 가보는 거죠. 한참을 헤메다 겨우 긴자역을 찾았습니다. 시간이 여섯시가 넘어가자 슬슬 초조해지더라고요.
아키하바라 : 솔직히 재미있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쉽더군요. 천천히 구경하고 싶었는데. 게다가 케로로 피규어를 사달라는 지령을 받은지라 열심히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는데, 이제 일본에서는 케로로 안 파나봐요.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피규어 중에 케로로는 단 하나도 없더군요. 아무리 유행이 지났어도 그렇지, 요괴워치, 포켓몬, 원피스, 드래곤볼, 슬램덩크, 도라에몽, 슈퍼마리오 다 있는데 케로로는 단 하나도 없더군요. 정작 제가 보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보고, 어떻게든 찾아보려고 하다가 시간을 좀 까먹었습니다.
우에노 : 미토로 가는 기차를 타야하는 우에노 역입니다. 도착한 게 일곱시 반으로, 생각보다 좀 늦었습니다. 자주 없는 노선이라 부랴부랴 표를 사서 플랫폼으로 달렸는데 너무 급했는지, 다른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매우 흔한 실수를 하면서 한 시간을 까먹었습니다. 겨우 여덟 시 이십 분 쯤에 기차를 탔는데, 미토 역에 열 시 오십 분에 도착하더군요. 중간에 계속 안 가고 기다리고 서행하고를 반복했는데, 일본어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모시와케 고자이마셍이 계속 나오는 걸로 봐서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듯 했습니다.
이미 아홉 시 조금 지나서 같이 출장온 분들에게 왜 안 오느냐는 문자가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휴대폰 설정을 어떻게 해 놨는지 답문자가 안 보내지더라고요. 로밍도 안 해와서 카톡도 못하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다가 배터리도 나갔습니다. 열한 시 넘어서 겨우 체크인 하고 와이파이 연결해서 카톡을 보냈는데 다들 주무시는지 숫자가 없어지질 않네요. 이제 내일 구박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심플하게 아사쿠사-아키하바라만 찍겠습니다. 그리고 케로로 피규어는 인터넷 주문하고요.
(참고로 저는 여행할 때 맛집 안 갑니다. 시간이 아까와서 굶으면서 돌아요. 지금 편의점에서 사온 삼각김밥과 맥주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행이 대부분 온전한 여행이 아니라 출장 때 비는 시간을 활용해 도는 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