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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와 주인공의 관계

분류: 수다, 글쓴이: 수오, 17년 5월, 댓글40, 읽음: 139

네, 여기서는 어지간해서는 잘 하지 않던 덕질 이야기를 간만에 좀 풀어볼까 합니다. (취향 저격하는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포교하려 드는 영업질이란, 사실 다양한 취향이 가득한 이 세상에선 무척이나 무상한 행위라는 걸 잘 알기에ㅜㅠ 영업끼 쪽 빠진 그냥 썰이나……)

 

2017년 2분기에 재미있는 작품이 시작되었더군요. ‘Re:CREATORS’라는 일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창작물과 현실 세계와의 경계가 무너져, 현실에서 살던 사람이 창작물 속 세계로 들어가기도 하고, 창작물 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현실로 나오기도 합니다. 무너진 경계를 넘어 여러 창작물 속 캐릭터들이 현실 세계로 모여들게 되어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인데……

…… 네, 뭐 사실 설정 상으로 특이한 독창성은 없습니다. ‘블랙 라군’을 그렸던 작가가 원안 감수를 맡았기에 확실히 보는 재미는 있습니다. 다만 이런 설정을 다룬 작품들은 찾아보면 은근히 많기도 하고,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설정이기도 하죠.

창작물 속의 파워를 가지고 현실 세계로 왔을 때의 주인공들의 행각, 창작물 속의 주인공과 창작자의 만남. 극적이지만 좀 쉬운 발상이죠. 게다가 설정빨 만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은 아니라서 아무래도 보는 시청자들에게 먹힐 만한 액션씬이 절반입니다. 대신 액션씬 연출 참 잘 만들기는 했더군요.

 

 

이런 작품입니다. (임베드 태그는 여기에 처음 깔아봐서 먹힐 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덕심 표출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니 작품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 방영된 3편에서 이야기의 창작자와 이야기의 주인공 사이에 재미있는 대사가 오갔기에 소개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참고로 창작자는 영상에 나오는 저 안경 낀 소년이 아니라, 꼬질꼬질한 아저씨입니다.)

 

“너 인석, 최소한 자기를 만든 부모한테 그렇게 입 놀리는 건……”

“뭐, 부모? 안 그래도 내 세계가 당신 망상으로 만들어졌을 지도 모른다기에 충격 받았는데, 하물며 부모? 나, 당신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적 없…… 으윽.” (적과의 싸움으로 인해 부상을 입은 상태)

“어이, 괜찮아?”

“시끄러워, 손 대지 마! 당신이 날 약하게 설정해서 아주 고생이라고!”

“나도 여러모로 생각한 거라고! 멋대로 설정을 조작할 수 있다고 무적으로 만들 수 있겠냐!”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에서 매번 마주하는 강한 적 때문에 연신 고생을 되풀이해 오던 캐릭터, 그렇기에 ‘자신이 살던 세계를 만든 사람’을 마주했을 때 큰 충격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겠지요. 창작자는 창작자 대로 자기 눈 앞에 자기가 설정한 캐릭터를 쏙 빼닯은 인물이 서 있으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설정해 놓은 대로, 현실 세계에 와서까지 날아다니면서 싸우기도 하고 공격을 휘두르기도 하니 놀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일들을 목도한 상황에서 창작자와 피조물이 대화를 나누니 좋은 말이 나올 수 없겠지요.

 

뭐, 그런 의미에서 창작자 분들이 많은 브릿G를 보며 생각한 것입니다만……

창작자인 여러분의 눈 앞에,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 주인공이 나타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드실 지 한 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판타지 쪽이나 SF 쪽을 쓰시는 분들은 좀 복잡미묘한 심경을 느끼실 것 같고, 로맨스 쪽을 쓰시는 분들 쪽은 저도 좀 궁금하고, 호러나 스릴러 쪽을 쓰시는 분들은…… 크흠.

 

ps.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뭐 브릿G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올리는 장편이긴 합니다만…… 현실 세계를 무대로 삼은 이야기인 지라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차이는 크지는 않겠네요. 문제는 지금 쓰고 있는 캐릭터가 창작하는 당사자와 다르게 상당히 말빨과 머리가 좋고 반사회적인 기괴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녀석인 지라…… 아마 만나자마자 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름……

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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