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래 작가의 ‘백관의 왕이 이르니’ 감상
(주: 해당 단편은 미씽아카이브에서 텀블벅 펀딩을 받아 진행한 ‘drag_on’ 프로젝트의 ‘way to dragon’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위래 작가는 브릿G에서도 활동하고 좋은 단편들도 많이 올렸으나 이 단편은 아쉽게도 당분간은 다른 지면에 공개할 예정이 없는 듯 합니다.)
백관의 수호룡인 라디로비엔, 약칭 라비는 율법으로써 왕과 맹약으로 묶여 있다. 왕자 오연은 미친 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다. 백관의 마지막 율법학자인 주인공 수요에게 라디로비엔은 왕자의 운명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질문을 갖고 찾아온다.
요약하자면 이 단편은 위와 같은 이야기이다. 즉, 일종의 이지선다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가 나오게 된 경위를 되돌아보고 답을 내리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당히 일반적인 단편 쓰기의 방법론이며, 여기에 대해서 재밌는 답을 내리는 것만을 가지고도 괜찮은 단편 하나는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작에서 그것은 이야기를 이루는 하나의 축일 뿐이다. 동시에 화자인 수요의 외부 세계의 이야기일 뿐이다. 당연히 또 다른 축은 화자이자 백관의 마지막 율법학자, 그리고 라비의 친구(일단은)인 수요를 중심으로 진헹된다.
수요의 이야기는 좀 더 개인적이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궁을 동경한 아버지에 의해 궁으로 들어갔다. 타고난 능력인 완전기억능력을 바탕으로 율법학자가 될 수 있었고, 궁에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율법학자가 되는 것은 동시에 그녀의 내부에 모순을 만든다.
수요는 라비와 친구(일단은)지만, 율법학자는 라비를 묶는 족쇄이다. 이 상황에서 그녀 또한 일종의 이지선다의 상태에 몰리게 되고, 여기서 율법학자로써의 자신을 이겨낼 수 없었기에 라비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자신은 궁과 라비의 곁에서 떠나게 된다.
각자의 축만을 떼어놓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지에 몰린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라비는 왕자의 운명을 율법에 따라 결정해야 하고, 수요는 율법학자라는 이유 때문에 라비의 친구(일단은)로만 남을 수 없게 된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나올 수 있는 결말의 폭은, 제시된 재료와 논리적인 귀결만을 보았을 때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인간의 감정을 깊게 다루고, 이는 논리를 넘어서는 힘이 된다. 수요와 라비의 관계는 세계와 개인이라는 이야기의 두 축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내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나의 문양을 자아낸다. 그리고 마침내는 소설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의미를 갖고 빛나게 된다.
사람들이 글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 정답과 오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내가 글을 읽는 이유는 <백관의 왕이 이르니>와 같은 글을 읽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