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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이상한 작품추천

분류: 작품추천, 글쓴이: OuterSider, 17년 4월, 댓글3, 읽음: 188

 

스토리텔링 작법서를 잘 믿지 않는 편이다. 특히 그 저자가 추리/미스터리 계열의 작가라면 더더욱 그런 편이다. 왜냐하면 내가 쓸려하는 장르는 공포이며, 공포의 효과를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은 가르쳐 주는 작법서들은 굉장히 적은 것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작법서는 공포 소설의 플롯과 인물 성격등을 소개할 때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피해야 할 원칙들을 공포 장르에서만 찾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찌보면 지극한 당연한 이론이기도 하다. 공포 소설 혹은 영화 속의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들은 오로지 공포를 느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인물들이 스토리에서 겪게 되는 사건이나, 갈등을 겪게 되는 과정 또한 역시 공포의 순간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공포 장르의 인물들은 평면적이다. 그들이 속하는 세계 역시 평면적이다. 하지만 이런 치명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공포 장르는 살아 남아 있다. 그리고 이따금씩 우리를 매혹한다.

다른 장르에서는 인물이 이야기를 주도한다. 주인공이 어떤 전형에 속해 있다고 해도, 그들은사건과 경험을 통해 변화를 겪게 된다. 보다 더 영웅적이 되거나, 나약해지거나, 도덕적으로 변화한다. 경험을 통해 그들이 변화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항상 대단원의 해결은 어떤 외부적이거나 혹은 인위적인 장치의 개입 없이 인물 자체의 역량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 어떤 작법서에는 이 마지막 원칙이 상업적 소설의 성공을 위한 핵심이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작품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납득하기 힘든 점들이 많다. 공포 장르에서 영웅적인 인물이 등장했던 적이 있던가? 그런 인물이 등장했다더라도 얼마나 뚜렷한 업적을 남겼는가? 단적으로 말해, 공포 장르의 인물들은 성장하지 않는다. 인물은 단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악의 정체와 대결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럴 만한 동기부여만 갖고 있을 뿐이다.

당신을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뛰어난 공포 장르의 작품들을 생각해 보라. 최소한 내 경우에는 그 세계에는 영웅적 인물이 없었다. 있었다 해도 다른 장르의 영웅들에 비교될 정도는 아니었다. 공포의 관습에서 그나마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양들의 침묵>같은 작품 조차, 우리의 기억에 남은 존재는 조디 포스터의 명연기가 아니었다.

이렇게 단순한 구도가 공포를 불러오는 참된 매력을 만드는 것이다. 공포 장르에 돈을 지불하는 독자나 관객들이 개성 넘치는 인물과 만나기 위해서, 또한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미를 느끼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는 가정은 아주 특별한 경우에 불과하다. 간혹 작법 강사들조차 이런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그만큼 공포 장르가 순수한 공포적 요소만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장르인 현실에 대한 반증 같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공포적 체험이란 본질적으로 비인간적이란 것이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비현실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악의 존재가 인간이라고 해도, 그 악의 존재는 우리의 일상적인 세계로 침입해 들어와 사회 질서와 우리의 내면적 질서를 교란하기 위해 존재한다. 악의 대상이 악랄할 수록 ‘해결’에 대한 바람은 강렬해진다. 설령 해결이 되지 않는 결말이라 해도, 우리를 납득시키는 이유는 그 대상의 ‘악랄함’ 만으로 충분하다. 결국 인물이 아니라 ‘악의 대상’이 공포적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나는 국내에서 공포 장르를 쓰는 작가들이 이런 본질을 얼마나 캐치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공포라는 감정 자체가 갖고 있는 성격 때문에 이 장르는 특별히 호불호가 나뉜다. 하지만 공포에 매혹을 느끼려는 사람들조차,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장르에 뛰어드는 작가들 스스로도 의구심을 가져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본인 또한 마찬가지다.

이 짤막한 엽편에는 단순하고 분명하게 악의 대상이 암시된다. 단순히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그 대상에 접근하게 될 동기가 부여된다. 플롯의 많은 부분이 결여되어 있지만, 그 구조만큼은 확실하게 공포적 체험을 조성하는 역활을하고 있다. 물론 흠없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더 많은 인과관계가 설정되어야 하겠지만, ‘절벽위에 있는 외딴 집’이란 한 기묘한 장소라는 한 가지 배경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공포적 체험의 본질을 잡고 있다.

필자를 비롯해서 공포를 쓰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인물의 서술에 너무 많은 힘을 들인다. 이야기의 다층적 구조를 체험시키기 위해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며, 인물의 성격을 종잡게 하기 힘들도록 너무 지나치게 많은 대화를 부여한다. 이야기의 양적인 부분이 크게 문제 되진 않는다 해도, 질적인 부분에서 핵심들을 놓치는 작가들이 분명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만약 작품이 영화라면 더 많은 시공간적 배경을 위해 본질에서 벗어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이라면 대화는 훨씬 더 간결하거나, 오직 사건과 경험의 핵심과 관련되는 대사만이 있어야 한다. 성격 묘사 또한 마찬가지다. 공포적 감정을 느끼는 동기 외에 다른 성격에 관한 묘사는 최대한 배제되어야 한다. 영화보다 더 공포적 체험만이 작품의 생명력을 지니는 매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덜 시각적이다.

공포가 아닌 다른 장르라면, 제기한 단점들이 용서될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이 공포라면, 가능한 최대한의 시간과 노력을 공포적 체험이 될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하는 정도에 그치고, 그 외의 남은 여력을 강렬한 공포 체험의 순간으로 인도하도록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지극히 미안한 말이지만 이 미완성의 작품 외에 공포라는 관점에서 훌륭한 소설은 나는 그다지 발견하지 못했다. 공포 장르에 뛰어든 다른 대부분 작가들에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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