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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버트런드 러셀, 할란 엘리슨, LLM, 무당, 칸트, 명화

분류: 수다, 글쓴이: 제오, 25년 12월, 댓글2, 읽음: 90

요즘 읽은 것, 해본 것들을 묶어서 써 봅니다.

스티븐 킹: 페어리 테일

다 읽고 나서, 음, 스티븐 킹은 뭐하러 이런 소설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도 이세계 고등학생물을 한 번 써 보고 싶었던 걸까요? 아니면 그냥 돈을 벌려고?

두 권으로 번역돼서 나왔는데요, 첫 권은 주인공이 누구이고 어떻게 이세계에 넘어가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다 씁니다. 알콜 중독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노인이 다리가 부러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면서요. 아마 스티븐 킹 자신이 당한 교통사고가 재료가 된 것 같았습니다. 이전에 읽은 소설 몇 편도 그랬지만요. 그런데 문제라면 문제랄까, 이 첫 권이 두 번째 권보다 재미있었다는 겁니다. 두 번째 권 언저리에서 주인공이 이세계로 넘어가고 나서는, 그냥 일어나야 할 일들이 주욱 일어납니다. 스티븐 킹 스스로 별로 쓰고 싶지 않아 빨리 끝내고 싶었지만, 책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글을 채워넣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전 책들도 이런 단어수 채우기 느낌이 좀 들기는 했지만요.

휴대폰. 작가로서는 등장인물을 곤경에 빠트리는데 아주 방해가 되는 물건이지요. 심지어 전화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휴대폰은 이런저런 기능을 할 수 있어서 곤란합니다. 어두우면 손전등이 될 수 있고, 녹화도 되고, 기타등등. 스티븐 킹도 곤란했나 봅니다. 이세계로 넘어가니 휴대폰 통화가 안 되는 것은 물론, 그냥 벽돌이 되어버립니다. 와, 편해요.

이세계로 넘어가서는 이런저런 건물들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제가 관련 지식이 부족하고 상상력에도 한계가 있어서, 머리 속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더군요. 할 수 없이 그냥 읽어버렸는데요 – 건물은 네모나고, 첨탑은 뾰족하겠지 식으로. 그런데, 원서에는 챕터별로 그림이 하나씩 있더군요! 라이선스 때문인지 번역서에는 모두 빠져 있었구요. 모든 그림을 본 게 아니라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상상을 돕는 데에는 쓸모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표지도 마찬가지예요! 원서는 이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어린이 소설풍으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던데, 국내에서는 판매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된 걸까요? 번역서는 아무 그림 없는 밋밋한 노란색이 되어 버렸더군요. 아쉬웠습니다.

버트런트 러셀: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시대를 앞서간 천재 버트런드 러셀의 비판적 세상 읽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철학자가 쓴 책을 읽어 봤습니다. 아니다, 오래 전에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으니(머리 속에 남은 건 없음), 두 번째겠네요. 그런데, 번역서는 제목을 왜 이렇게 바꿔버린 걸까요? 원서의 제목은 Unpopular Essays. 버트런드 러셀의 의도와 정확히 들어맞는 거였는데 말이죠. ‘인기 없는 에세이’라고 그대로 번역하면 안 팔릴 게 뻔하다고 생각해서, 뭔가 설교조로 힘을 준 제목으로 바꿔버린 걸까요? 버트런드 러셀은 번역서의 제목을 적어도 재미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책은 재미있었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칼 세이건보다는 살짝 더 학구적인 것 같았지만, 충분히 좋았습니다. 4장에서 철학자들을 까는 부분이 특히 좋았어요. 4장 들어가는 말이 이렇습니다. “철학은 ‘명료하게 사고하려는 유별나게 집요한 시도’로 정의되어 왔다. 나는 오히려 ‘잘못된 사고를 하려는 유별나게 교묘한 시도’로 정의하고 싶다.” 와. 너무 좋아요.

읽으면서 뭔가 어렸을 때부터 접해 왔던 것들의 원류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원서는 1950년에 나왔습니다) 아마 버트런드 러셀(과 그의 정신적인 동료?)로부터 영향을 받은 만화가와 소설가들의 작품을 제가 읽고 영향을 받아 왔던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을 못 믿고, 필요하면 찍어눌러야 한다는 식의 생각도 살짝 비쳐서 약간 그렇기는 했지만, 1950년이라는 시점과 그의 개인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할란 엘리슨: 걸작선

와… 제 취향이예요! 이 분. 저의 글짓기 능력에 백만을 곱하고, 처절함을 듬뿍 더하고, 자기 검열을 다 풀어버리면 이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몇몇 작품은 지루하고 쓸데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세 권짜리 선집 중에 두 권째를 읽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읽은 ‘폭신한 원숭이 인형’이 특히 강렬하더군요. 첫 권에서는 ‘지니는 여자를 쫓지 않아’가 정말 웃겼고, ‘소년과 개’의 결말이 충격적이었고 (납득 가능하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더 그랬죠), ‘잃어버린 시간을 지키는 기사’의 분위기가 좋았고, ‘괘종소리 세기’의 개념이 신선했습니다.

인상적이고 마음에 와닿는 표현들도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지키는 기사’에서 어떤 사람의 집의 삭막함을 묘사한 문장인데요 – ‘그곳은 목적지라기보다 그저 대기장소였다’.

LLM, 무당

저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인데요, 요즘 LLM(ChatGPT나 Gemini 같은 녀석들) 응용 프로그래머의 입장을 이해해야 할 일이 있어서 관련 책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고 있자니… LLM은 신이고, LLM 응용 프로그래머는 무당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이예요. 변덕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신과 어떻게든 잘 대화해서 쓸만한 걸 뽑아내려는 무당. 그래서, (그 자체가 LLM인) ChatGPT에게 그걸 소재로 시를 써 보라고 했습니다.

ChatGPT 대화 링크입니다: https://chatgpt.com/share/6946b3be-6b94-800b-8e2b-6e72137873f8

흠, ChatGPT 성격을 기본값으로 해 놔서 그런지 아주 독특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LLM 응용 프로그래머에게 한 번 보라고 했더니 상당부분 공감하더군요.

칸트, 헛똑똑이

ChatGPT와의 대화 두 번째. 버트런드 러셀 책을 읽은 영향 때문인지, 칸트를 까내려 보고 싶더라구요. 칸트 작품을 하나도 안 읽은 주제에. 칸트를 멍청이로 그린 철학 개요 만화 서적을 읽기는 했지만요. 그래서, ChatGPT에게 칸트는 헛똑똑이라는 걸 설득(내지는 가스라이팅)해 봤습니다.

ChatGPT 대화 링크입니다 (길어요! 저는 길게 말 안 했는데 어떤 기사에서 비유했듯이 ChatGPT가 소방호스처럼 말을 뿜어내서…): https://chatgpt.com/share/6946b514-9208-800b-822d-129157a3e8e4

대화는 만족스러웠고, 제가 제 단편들에서 말하고 싶었던 주제들도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ChatGPT는 좋은 자기만족 대화 상대인 것 같아요.

명화 바꿔보기

ChatGPT와의 대화 세 번째. 이번에는 그림 – 옛날 명화? – 바꿔보기입니다. 요즘 ChatGPT의 이미지 생성 능력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하던데요, 마침 뭔가 성질을 건드리는 그림이 있어서 바꿔보라고 시켜봤습니다. 그림은 예쁜 옷을 입은 아가씨가 그네를 타면서 연인인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의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둘의 역할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시도: https://chatgpt.com/share/6946b6ab-7258-800b-b2e5-8c4299b5fce2

안 되더군요! 포기하고, 새로 대화를 시작해서, 좀더 간결하게 지시했습니다.

두 번째 시도: https://chatgpt.com/share/6946c6e0-b704-800b-9caa-ce4683ce4811

초현실적으로 흘러가더군요! 또 실패. 때려치우자고 하니까, ChatGPT가 사과하면서 ‘당신은 이런이런걸 요구했는데, 잘 안 되네요’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런이런걸 요구했다’는 부분이 제가 지시하고 싶었던 내용을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걸 복사해서, 세 번째 시도의 지시로 사용했습니다.

세 번째 시도: https://chatgpt.com/share/6946b76d-eef8-800b-91a0-0b3b9dfe24cf

성공했어요! 역시 프롬프트가 중요했던건지.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좀 수정하라고 했더니 슬슬 이전 버릇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멈췄습니다. ‘좀 그렇지만 또 어떻게 될지 무서우니 이 정도에서 만족할게’라는 식으로 말했더니, ChatGPT는 ‘ㅋㅋ 그 공포, 이해돼요… 멈추는 게 나아요’라고 하더군요. 뻔뻔한 녀석…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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