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심 심사위원 이영도 작가
신체강탈자 공모전에 응모한 모든 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솔직히 ‘신체강탈자’라는 소재는 참신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육체를 다른 존재에게 뺏긴다는 것이 놀라운 발상이자 대단한 공포였던 시절도 있긴 했다. 하지만, 약간의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요즘 같은 때 더 피부에 와 닿는 공포는 육체를 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정보를 강탈당하는 것이리라. 분명 이 옛 소재를 옛날 방식 그대로 다루는 것은 옛날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며, 그렇기에 오히려 이 옛 소재를 다루는 것은 응모자들의 상상력이나 재치, 통찰력을 과시할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응모작 대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적절한 어휘나 엉성한 문장, 투박한 서사 같은 것들이야 공모전에 응모하는 신인들에게서 당연히 볼 수 있는 것들이고 언젠가는 수근관 증후군과 교체되어 사라질 것들이다. 많이 쓰면 해결된다. 하지만 옛 소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신인의 상상력은? 애석하게도, 눈이 밝지 못한 탓인지 심사자는 그런 섬광을 목격하지 못했다. 오래된 소재는 낡은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읽고 있노라니 ‘왜 아직까지도 벌레나 세균인가. 신체를 강탈하는 스마트폰이나 식염수 주머니 같은 건 안 되나.’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인정한다. 급하게 떠올려서 좀 시시하다. 심사자가 말하고 싶은 건 세나 히데아키가 벌레나 세균이 아닌 미토콘드리아를 내세워 패러사이트 이브를 쓴 것이 이미 1995년이었다는 사실이다.) 늘 쓰인 방식, 소위 ‘안전한 방식’을 공모전에서 쓸 필요는 전혀 없다. 응모자들은, 다른 공모전에 또 참가하게 된다면, 좀 더 자신의 상상력과 도전 정신을 대범하게 펼쳐보였으면 좋겠다.
유감스럽지만 본선 진출작 중 「세이비어」, 「사족보행」, 「시간이 멈춘 날」, 「패스파인더」는 신체강탈자 장르보다는 좀비 장르에 가깝다. 그래서 제외했다. (반쯤 썩어있고 느릿느릿 움직이고 폭력적이어야만 좀비인 것이 아니다. 좀비는 척 보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 존재만으로 우리의 모든 희망과 욕구를 비웃고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신체강탈자의 무서운 점은 얼핏 봐서는 ‘우리인지 저들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전쟁2는 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 눈에 거슬린다. 많이 읽으시길. 베르테르 증상은 안정되어가고 있는 글쓰기를 보여주지만 아직 작가 자신의 색깔을 갖추려면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많이 쓰시길. 신체강탈자는 응모작들 중 도전 정신이 보이는 소수의 글 중 하나지만 그 도전 정신의 발휘 정도가 장점으로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많이 생각하시길.
「미래도둑」, 「운수 나쁜 날」, 「HOOK」, 「금연 클럽」을 우수작으로 뽑는다. 당선작은 고르지 못했다. 모든 응모자 여러분의 손끝에 글쓰기의 재미가 영원히 머물길 바란다.
본심 심사위원 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장
지난 ZA 문학 공모전 심사 때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이러한 소재가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물론 결과는 다들 아시겠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장편 당선작이 나오지 못해 출판 임팩트는 다소 약했지만, 단편집 『섬, 그리고 좀비』가 출간 후 3쇄에 이르는 판매치를 보면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대중(설령 그들이 대중이 아닌 마니아라 할지라도 충분히 이런 장르의 꾸준한 출판을 가능케 하는 인원)들이 있으며, 상업적 성공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었다.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은 ZA 문학 공모전보다도 훨씬 대중성이 떨어지는 소재로 시작되었다. 때문에 응모작도 ZA 문학 공모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지만, 다행히 작품들의 평균 퀄리티는 오히려 좋아진 느낌이 강했다. 덕분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다 나름의 즐거움을 주었다. 「미래도둑」, 「운수 나쁜 날」, 「HOOK」은 처음부터 눈에 띈 작품이었다. 흡인력 있는 전개와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이 장점이었다. 가급적이면 장편소설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본심에 올라온 장편소설이 당선작으로 하기에는 아직 많은 습작이 필요한 작품이었다. 당선작을 선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한 작품을 추가로 심의하였고 재치 넘치는 소재를 다룬 「금연 클럽」을 추가 선정작으로 뽑았다. 비록 선정되지 못했지만 다른 작품들이 특별히 작품성이 부족하다기보다도 신체 강탈자 문학상 특유의 성격을 잘 살렸느나 살리지 못 했느냐가 큰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