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본심작 2편
- 「구미호사관학교–흑여우와 출생의 비밀」
- 「하얀 돌고래」
김선희(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 심사평
올해로 NO.1 마시멜로 픽션이 9회째를 맞이했다. NO.1 마시멜로 픽션은 SF, 판타지, 역사, 리얼리즘 등 어느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NO.1 마시멜로 픽션만의 특색이 있다. 그동안 독특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좋은 작품들을 발굴했고, 열혈 독자들도 다수 확보했다. 몇 년 동안 당선작을 내지 못했어도 꾸준히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이유도 이 시리즈를 사랑하는 열혈 독자들 때문이다. 다행히 작년에는 당선작을 낼 수 있어 심사위원들 마음도 흡족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아쉽게도 걸스 심사위원들에게 올릴 두 작품을 뽑지 못했다. 올해 응모작들 중에는 본심에 올려서 논의를 해 볼 만한 작품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도깨비와 구미호, 반인반수 등의 소재가 작품에 자주 등장했다. 물론 올해에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자주 다뤄진 소재와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 흔한 성격이나 역할 등은 독자가 쉽게 친숙함을 느낄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반면, 새로움이 부족해 독창성이 떨어져 독자에게 진부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들을 사용할 때는 소재를 재해석해서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이야기는 시각적 콘텐츠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지 않을까. 결국 가장 멋지게 독자를 ‘배반하는’ 작품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
「하얀 돌고래」에는 고양이로 변신한 도깨비가 등장해서 친구와의 우정 문제에 개입한다. 이 작품에서 도깨비의 역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친구와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도깨비가 아니라 결국 주인공 자신이기 때문이다. 왜 굳이 도깨비를 넣어야 했는지 의문이었다. 도깨비 이야기를 뺀다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여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구미호사관학교-흑여우와 출생의 비밀」은 출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구미호의 여정을 담고 있다. 구미호 역시 그동안 응모작이나 기존 작품에서 꾸준히 등장했던 소재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비교적 작품을 많이 써 본 듯 문장이나 구성이 자연스럽다. 맛깔난 표현과 장면 묘사도 비교적 생생하다. 좋은 문장력과 표현력을 갖고 있지만 구미호라는 다소 평범한 소재를 택한 것이 안타까웠다. 차라리 구미호가 아니라 다른 소재였다면 더 흥미로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이야기가 잘 전개되다가 마지막 장에서 구미호사관학교 입학통지서를 받게 된다는 결말이 허무했다. 작가가 의도하기 전에 독자가 먼저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자, 진짜 이야기는 다음 편에.”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읽은 건 뭐란 말인가.
한편의 장편 동화를 완성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여 낱말이 되고 여러 개의 낱말이 모여 문장이 된다. 다듬고 다듬어서 한 작품을 완성한 뒤에는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좀처럼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절망하거나 다시 일어설 용기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올해 응모해 준 응모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부디 용기 잃지 말고 계속 정진하시길 부탁드린다.
최상희(청소년문학 작가) 심사평
얼마 전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란 프로가 화제를 모았다. 흑수저와 백수저로 나뉜 참가자들의 치열한 각축전과 이색적인 요리를 보는 재미와 함께 인상 깊었던 건 음식에 대한 심사평이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도 개성을 드러낸 요리, 흔한 재료로 허를 찌르는 반전을 선보인 요리 등이 선택됐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요리가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불필요한 장식이 가미된 요리나 지나치게 현란하거나 너무 평범한 요리는 탈락했다.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물론 ‘맛’. 맛을 좌우하는 핵심은 ‘기본기’와 ‘독창성’이었다. 하나 더 꼽자면 그게 이제 ‘상상력’.
요리와 글쓰기가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맛을 좌우하는 요소를 글쓰기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탄탄한 ‘기본기’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 좋은 글이라면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기본기라 할 수 있는 문장력은 글의 신뢰성뿐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을 짐작하는 잣대가 된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선택한 언어를 정제하고 연마한 문장은 차곡차곡 쌓여 작가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개성으로 자리 잡는다. 잘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곳을 깊이 들여다보는 통찰력과 눈에 보이는 세상 그대로를 의심하며 그 이면을 읽는 넓은 세계관은 상상력의 원동력이 된다. 경험 역시 상상력을 넓히는 좋은 방법이리라. 많이 먹어 본 사람이 다양한 맛을 구사할 수 있듯이, 많이 읽고 보고 배우고 생각하고 느껴야 한다. 많이 써 봐야 하는 건 당연하다. 요리의 대가도 시작은 양파 썰기부터였고 아마도 수십 트럭의 양파를 썰며 무수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런 매운 눈물 젖은 글을 기대하며 심사에 임했다.
매해 심사 때마다 빠짐없이 거론되는 점은 소재의 편향성이다. 이번에는 특히 ‘아이돌, 구미호, 도깨비’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이돌’은 소녀 독자들이 관심 둘 소재일 법하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에 수상작으로 뽑았던지라 같은 소재 이야기를 뽑는 데 망설여졌다. 물론 매우 매력적인 이야기라면 당연히 마다할 리 없지만 아쉽게도 눈을 끄는 작품이 없었다. ‘구미호’와 ‘도깨비’ 소재 이야기는 읽기도 전에 피로감이 들 정도다. 왜 굳이 구미호와 도깨비일까? 그토록 흥미로운 소재인가? 어쩌면 쉽게 쓸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흔한 소재는 쓰기 더욱 어렵다. 만일 글이 쉽게 쓰인다면 반드시 의심해 봐야 한다. 어디서 본 이야기를 쓰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익숙한 소재는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자칫 낡고 진부할 수 있다. 진부한 소재로 무릎을 탁 칠 만한 기발한 이야기를 쓴다면 진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참, 어렵다.
작가, 그리고 미래의 작가는 저마다 마음속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품고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훌륭하게 써낼 것이다. 하지만 쓰고 싶은 이야기와 읽고 싶은 이야기의 딜레마 속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요리사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듯, 진정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면 독자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독자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여학생들이다.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기 시작하고 친구와 외모에 관심을 두며 자신의 내면을 자각하고 미래를 어렴풋이 그리며, 웹툰과 웹소설, 유튜브, OTT를 통해 온갖 미디어를 접하는 소녀들의 넓고도 깊숙한 세계를 파고들 만한 매력적인 소재를 한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하얀 돌고래」와 「구미호사관학교- 흑여우와 출생의 비밀」이다.
「하얀 돌고래」는 나쁜 도깨비 두억시니에게 마음을 뺏긴 친구 이진아를 구해 내는 이야기다. 매끄럽게 잘 읽혔으나 예상 가능한 전개라 아쉬웠다.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하게 있었다. 그런데 그 존재가 꼭 도깨비여야 했을까? 좀 더 입체적이고 위력적인 한편 매력적인 존재였다면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구미호사관학교- 흑여우와 출생의 비밀」은 가독성이 장점이다. 주인공이 ‘웬즈데이’처럼 암울하고 위악적인 캐릭터인 점이 흥미로웠고 구미호인 세 명의 아빠의 케미가 좋았다. 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주인공의 엄마 이야기(실은 세 아빠가 지어낸 이야기지만)에서 엄마가 미성년자로 임신하는데, 구태여 이런 설정을 한 이유가 궁금했다(아직 밝혀지지 않은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까?). 어린 독자들을 고려해 핍진성 있는 상황을 그린다면 보다 이야기의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소재의 편향성을 고민하며 거론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재가 아니라면 더 매력적인 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읽는 맛이 느껴지는 맛있는 글이다. 온 감각을 자극하는 풍부하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글, 어딘지 모르게 끌리고 마음이 가만히 움직이고 그 여운이 오래 희미해지도록 남는 글이다. 그런 글을 만나길 바란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며 계속 멈추지 않고 써 주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