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서사극 『파라미터O』 이준영 저자 인터뷰!

2021.1.25

“삶의 목적을 스스로 정하는 것, 그리고 종국에는 목적 자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인공지능 포스트아포칼립스 SF 『파라미터O』 단행본 출간을 기념해 이준영 작가의 서면 인터뷰를 매거진으로 공개합니다. 『파라미터O』는 방사능으로 대기가 오염된 근미래에 살아남은 최후의 인간 ‘조슈’와 자의식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 ‘이브’가 만나 종의 몰락과 새로운 종의 탄생을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이준영 작가는 멸망의 끝자락에 놓였다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뛰어난 흡인력과 깊은 여운을 남기는 『파라미터O』는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심화된 성찰과 신화적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 작품 배경과 캐릭터에 관한 구체적인 설정, 집필에 영감을 준 것, 동시 출간된 오디오북에 관한 소감, 신화적 요소를 차용한 이유 등 연재로는 미처 만나지 못했던 풍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합니다.

 


 

 

Q.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류가 출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구를 대체할 자의식을 가진 기계종이 등장한다는 설정은 일견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에서 홀로 살아남은 네빌과 새로운 인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처음 작품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 혹은 아이디어를 떠올리시게 된 상황이 있으신지요.

A. 7년 전인 2013년 11월,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기계종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됐어요. 사람처럼 살아가면서 ‘신’에게 복종하는 주인공이 사실은 로봇이었고, ‘신’은 인간이었다는 반전으로 끝나는 단편이었죠.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에게서 ‘사람의 이야기를 써 보라’는 조언을 받았어요. 그렇게 방향을 바꿔 구상하다 보니, 멸망의 끝자락에 놓였다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어졌어요. 20대 내내 고민하고도 답을 찾지 못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도 녹여넣고요. 그렇게 느리지만 꾸준하게 나아가다 보니 지금의 작품이 완성되었답니다.

 

Q. 작품 속에 서술되어 있긴 하지만, 어떠한 일로 인해 남은 인류가 이런 종말의 과정까지 오게 된 설정이 있으셨을까요?

A. 구체적으로 설정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자전축이 뒤바뀌어서 남극대륙이 적도 근처로 오는 수준의 대혼란을 상정했습니다. 그래서 『파라미터O』 세계 속에서는 인류 문명의 잔재가 많이 나오지 않아요. 배경을 현재의 남극대륙으로 설정했거든요. 어차피 등장인물들이 부르는 지명은 지금의 지명과 달라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요.

 

Q. 정말 인류는 이들밖에 안 남은 걸까요? 이들은 이 시설에서 얼마나 생존해 있던 걸까요?

A.  작품에서 언급되는 바로는 최소한 2세대 이상은 있었을 테니…… 60년은 넘지 않을까 싶어요. 아포칼립스 때 우주로 도망친 사람들이나 다른 어딘가에서 살아남은 이들도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도 궁금하네요. 언젠가는 인류의 후손들이 이브의 후손들과 만날지도 모르겠어요. :smile:

 

 

Q.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 대하여서는 과거 여러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영감에 도움을 준 작품이 따로 있으신지요?

A. 제가 기계종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인간의 피조물로서보다는 외계인같은 제2의 지성체 종족을 바라보는 시선에 더 가까웠어요. 그들 고유의 문화를 갖고 있는 독립된 종족으로서의 로봇 말이에요. 그러니 신체적 특성은 전혀 다르지만, 게임 ‘매스이펙트’에 나오는 ‘게스 종족’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Q. 주인공 조슈는 작품의 중심이라 할 만하며, 가장 큰 감정적 변화를 겪는 인물입니다. 조슈라는 캐릭터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무엇일지요.

A. 처음부터 끝까지 쾌감기에만 빠져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조슈가 생각하는 삶의 이유는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처음에는 시설을 지키는 것이었고, 이후 어머니 가야를 찾는 일에 목숨을 걸었죠. 그 후의 목적은 작품을 읽으시다 보면 충분히 추측하실 수 있을 거에요.
그렇게 삶의 목적을 스스로 정하는 것, 그리고 종국에는 목적 자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지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조슈의 캐릭터를 설계할 때 이러한 특성을 가능한 극대화하고 싶었어요.

 

 

Q. 조슈와 엘라의 관계는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갈등 요소인데요, 처음 구상부터 이를 염두해 두신 건지요.

A. 구상 단계에서는 조슈와 엘라가 하나의 캐릭터였습니다. 이야기를 다듬어가다 보니, 게이브 목사에게 순종하려는 마음과 이브를 지키려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조슈의 내적갈등을 외적갈등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목사에게 순종하려는 자아를 엘라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분리해서 이야기를 꾸려 보았지요. 둘 사이의 갈등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요소이므로, 처음 구상부터 염두에 두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이브의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느 면에선 매우 귀여운 미니 로봇 같아서 영화 <월E>의 주인공 월E가 떠오르기도 하고, 또 어느 면에선 섬뜩한 면도 있어서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사이보그 데이빗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혹시 비슷하게 연상될 만한 게 있을까요?

A. 작품을 쓰면서 이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한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브는 그냥 묘사를 보고 독자분들이 떠올리신 것 중 최대한 귀여운 모습으로 생각해주셨음 좋겠어요! 저는 다리가 세 개라고 적었지만, 상상하기 어려우시면 그냥 두 개로 생각하셔도 좋아요!

 

 

Q. 오디오북도 함께 발매되었는데요, 텍스트로 씌어진 작품을 성우들의 소리나 BGM, 효과음이 들어간 건 또 새로운 느낌일 듯합니다. 소감이 있으신지요.

A. 성우 분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주셔서 순식간에 몰입이 된 거 같아요. 특히 욕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캐틀린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시원시원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잘 살려서 연기해주신 것 같아요.

음악도, 효과음도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화약으로 작동하는 총과 분명히 구분되는 멋진 레일건 효과음이 기억에 남아요. 에필로그에서는 잔잔하게 깔리는 배경음악 덕분에 눈물이 날 뻔했어요. 이런 명품 오디오북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Q. 작품 속 감옥의 모습은 매우 기괴합니다. 죄수들이 벽에 묶인 채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무한으로 갇혀 있어야 한다는 건 거의 인권이 없다고 보일 정도인데요, 그렇게 구상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A. 문명이 무너진 후 소수 인원으로 구성된 작은 사회가 유지되려면 어떤 사법 체계가 필요할까 고민해 보았어요. 일단 시설의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독방을 제공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좁은 방 안에 최대 효율로 수감하고 있는 편이 잔인하지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중범죄 가해자의 형이 끝나면 피해자는 가해자와 함께 좁은 시설에서 살아야 할 텐데, 이 경우 일상 자체가 공포와 트라우마로 가득할 것 같았어요. 피해자의 정신건강과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생각해 봤을 때, ‘용서받을 때까지 영구격리’ 원칙이 있으면 최소한 피해자는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작품 속 감옥의 모습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Q. ‘이브’라는 이름이나 기계종들이 바벨탑을 만드는 이유 등 작품 속에서 신화적 요소가 매우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신화와 SF를 결합을 의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재미있어서요! 신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SF가 가질 수 있는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가상 신화이긴 하지만 게임 ‘창세기전’ 시리즈에서도 그랬고, 테드 창의 「바빌론의 탑」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빠삐용』을 비롯해 많은 SF에서 그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작품을 쓸 때 ‘혹시 먼 옛날 인간을 창조한 누군가가 실재했다면,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답니다. 조슈의 이름 역시 예수에서 따 왔고, 가야는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에서 따 왔어요. 어쨌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니까요.

 

Q.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직업이 『파라미터O』의 집필에 도움을 주거나 영향을 끼친 게 있을까요?

A. 자료를 조사하고 실험을 수행해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일련의 과정에 익숙해진 것이, 앞뒤가 맞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자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개연성과 핍진성이 작품 전체의 설득력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 글을 쓸 때 신경쓰는 편이거든요.

 

 

Q. 브릿G에 연재하는 동안 인상 깊었던 일이나 혹은 독자 의견이 있으신지요.

A. 첫 장편을 연재하던 중 쓰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고 앞이 캄캄했을 때, ‘흔들림’ 님이라는 분이 ‘정말 재미있다’는 반응을 남겨주셔서 큰 힘이 되었어요. 완결까지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정 전과 수정 후의 작품을 모두 읽어주시고, 좋은 리뷰를 두 번이나 써 주신 Ello 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Q. 새로운 작품을 연재하고 계신데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미래정보역행금지법』 이라는 작품은 미래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 있게 된 근미래 한국 사회를 다룬 SF 소설입니다. 타임 패러독스를 막기 위해 미래 메시지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세상 속에서, 죽음이 예견된 주인공 ‘허강민’이 겪는 긴박한 모험을 그렸습니다.

『비를 내리는 소녀』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가 가득한 한국식 판타지 소설입니다. 기우제에서 미르에게 제물로 바쳐진 소녀 ‘구름’이 겪게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상상해 낸 세상이 얼마나 세련되고 멋지며 또 아름다운지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준영

1988년 태어났다.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여가 시간을 글쓰기로 보내고 있다. 2017년 「님아 그 우주를 건너지 마오」로 제5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우수상을 수상했다. 『파라미터O』는 첫 번째 장편 소설이다.

 

 

방사능으로 대기가 오염된 근미래,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종의 보존을 위한 작은 시설에서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다. 그러나 방사능의 후유증으로 기형아를 낳거나 불임으로 더 이상의 후세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존자간의 다툼은 결국 피를 부르는 참극으로 이어진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과거의 참극이 잊혀질 즈음, 시설의 관리자이자 엔지니어인 조슈는 우연한 기회에 구형 전파수신기 하나를 얻게 된다. 전파수신기는 특정 지역에서 보내오는 전파를 수신하고 있었기에, 조슈는 과거 참극에 휘말려 시설 밖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어머니 ‘가야’가 보내는 전파일 거라는 기대를 갖고 발신지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발신지에는 어머니의 흔적 대신 낯선 기계종 ‘이브’만이 발견된다. 인간의 말에 절대적인 복종을 하는 시설 내의 기계종과 달리 ‘이브’는 마치 사람처럼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 외로움을 느끼거나 개체를 늘리길 원하는 욕구 등 인간과 흡사한 행동을 하는 이브는, 조슈를 ‘창조주’라고 따르며 시설의 생존자들과 합류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삶들의 반목과 다툼을 지켜보며 이브는 점차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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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미터O

인류와 기계문명에 대한 저자의 깊이있는 통찰과
신화적 상상력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SF 서사극!

“최후의 인류로서,
선조들을 대표해 마지막 발자취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근거 없는 망상.
그 족쇄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세대의 절망감과 뒤섞여,
이 외진 곳까지 나를 끌고 왔다.”

김성화, 김예림, 강새봄, 김다올, 장서화, 최현수 성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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