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인간이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을 통한 공포를 다루고 싶다.
한 번 가면 결국엔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기묘한 힘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외딴 섬, 해무도. 20년 전 해무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뒤로 하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주인공은, 스승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다시 해무도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찾게 된 마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원한의 저주로 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라는 섬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혼란과 두려움만이 팽배해집니다.
4년 전, 이른 새벽 바다에 나갔다가 감당할 수 없는 바닷바람을 경험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 이 작품을 구상해 온 신시은 작가님은, 어렸을 때부터 옛날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특유의 정서가 녹아 있는 각 나라의 민담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꾸준히 쌓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는 한국 기담과 민담을 기반으로 한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 첫 번째 데뷔작으로 오랫동안 구상해 온 한국적 밀실 미스터리 『해무도』를 선보였습니다. 한국 미스터리 장르에서 독특한 입지를 다져나갈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신시은 작가님과 직접 나눈 인터뷰를 전합니다.
Q. 『해무도』가 작가님께서 발표한 첫 작품인데요, 토속적인 한국 기담과 밀실 미스터리가 결합된 독특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오싹한 설화와 살인사건 등의 소재들을 한데 다루게 된 집필 동기, 또는 이러한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A. 일본에는 민속적인 소재를 다룬 추리소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나 ‘미쓰다 신조’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대부분이 일본 괴기 기담, 민담을 소재로 해서 추리를 해나가거든요. 독자들은 이런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리고 대부분이 이런 작품들을 접하면서 역시 ‘기담, 민속 추리는 일본이다’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게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외할머니께 전해 들으신 옛날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해주셨어요. 거의 매일 밤 해주셨는데, 사실 일본이나 중국의 기담보다 우리나라 기담이 더 오싹하고 우리 정서에 더 잘 맞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것으로 일본이나 타국의 것보다 더 재미있는 기담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Q. 바다 안개의 특정 이미지가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작품을 읽는 내내 기묘한 오싹함이 감돌았습니다. ‘해무가 끼면 한 맺힌 할미 구렁이가 나타나 사람을 끌고 간다’는 내용의 전설도 마찬가지였고요. 바다에 대한 여러 가지 이미지 중, ‘해무’에서 연상되는 몽환적이고 음산한 분위기를 주요한 작품의 톤으로 설정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A. 예전에 어머니가 이른 새벽, 바다에 나가신 일이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처음으로 바다가 무섭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새벽에 부는 바닷바람은 사람의 몸을 휘감아 바다로 끌어당긴다고 하셨습니다. 안개가 자욱하던 바다에서 불던 그 바람이 얼마나 센지, 한여름이었는데도 감당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해무도』의 내용을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아침이 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사람의 목숨을 잡아먹으려 끌어당기는 바다의 힘…… 거대한 자연이기에 그 힘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더 무서운 것 같아요.
Q. 한편으로 ‘해무’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더러 있는데요. 몇 년 전 영화 <해무>가 개봉하기도 했고 다른 작품에서 모티브로 쓰이기도 했는데, 비슷한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 한해서 어려운 점이나 고민되는 부분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해무도』를 쓰실 때 작가님만의 기준점을 가지고 쓰셨던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제가 『해무도』를 구상한 건 벌써 4년 정도 됐습니다. 쓴 건 3년 정도 되었고요. 만약 그때 ‘해무’라는 영화가 있었다면 영화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많이 고민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는 영화가 나온 것도 아니고 딱히 해무와 관련된 작품을 접한 적도 없어서 차별화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추리소설과 좀 차별화를 두려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전문적인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고 과학적인 방법 없이도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내고 또 살인에 사용할 방법도 구상해야 했기 때문에 거기서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Q. 은폐되다시피 나무들로 뒤덮인 ‘영산’과 외딴 섬 ‘해무도’의 공간적 배경이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두 공간이 나란히 있음으로써 고립감이나 미지의 공포가 배가되는 느낌이었고, 마치 실재할 것만 같은 어느 섬의 풍광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작품의 배경을 그리실 때 참고하신 실제 지명이나 공간이 있으셨나요?
A. 딱히 어느 지역이나 공간을 참고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바다로 가족여행을 많이 갔었거든요. 어떤 곳은 해안가 바로 옆에 작은 구릉이나 야산이 있었는데, 밤이 되면 파도 소리와 어두컴컴한 산이 무섭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 기억들을 더듬어가며 머릿속으로 여러 장소를 만들어보고 장면을 그려보다가 영산과 해무도를 만들어 내게 됐지요.
이 마을엔 돌아오고 싶어 하는 사람 없을 겝니다.
돌아올 수밖에 없는 자들을 빼곤.
Q. 해무도는 가고 싶지 않은 인상을 남기는 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 간 사람은 결국 돌아오게 된다’는 기묘한 인력이 있는 섬인데요, 이런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어 사람들을 이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일단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한몫 하겠지요.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이기에 도시와는 다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통영의 바다는 청정해역이라 매우 아름답습니다. 한산도에 간 적이 있는데 그 파란 물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 섬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질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과학적인 논리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기묘한 인력’ 때문입니다. 왜 그러는지, 왜 자기도 모르게 이 섬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거죠. 해무도에는 인간의 힘을 넘어선 무언가가 존재하니까요.
이십 년 전, 자네는 이 섬에서 벌어진 사건의 범인을 거의 잡을 뻔했네.
자네는 지금도 그 일을 기억하네. 그러니 이번에는 꼭 범인을 잡아주게.
Q. 섬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평범한 대학 교수인 ‘연치수’가 외딴 섬의 밀실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 역할을 해내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또 선장이 범인을 밝혀달라며 교수에게 직접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섬 사람이 아닌 외지인이라는 신분이,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지요?
A. 미신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미신의 지배를 받지 않는, 그러니까 저주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외지인이라는 신분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섬에 내려오는 미신은 섬사람들에게 마치 또 다른 신앙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그 미신을 두려워하고 거기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하지요. 그들은 섬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 당연히 귀신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범인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사건을 풀어나갈 외지인이 필요했습니다.
Q. 작품 전반에 드러나듯, 토속 설화나 괴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떻게 접하시는지, 또 평소 어떤 이야기들을 즐겨 읽으시는지 궁금함이 들었습니다.
A.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 찾아보는 편입니다. 학교 도서관이나 집 근처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한국 구전 문학에 관한 논문이나 민담에 관한 서적을 뒤적일 때가 많습니다. 토속 민담이나 괴담은 보통 그런 데서 많이 접하죠. 그리고 일본이나 중국의 민담, 전설 책도 많이 봅니다. 대부분 아시아의 민담과 전설은 일맥상통하는 경향이 많으니까요. 일본 민담 책은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담’, ‘~항설’ 이런 책이 많아요.
중국의 괴담이나 민담은 『요재지이』에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한 권으로 읽는 요재지이 이런 책 말고, 시리즈로 나온 책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온갖 기묘한 이야기가 다 들어있어 재미도 있고 가끔은 우습기도 합니다.
Q. 학업과 병행하며 글을 쓰시려면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집필 소재는 어디에서 얻으시는지, 평소에 어떻게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솔직하게 말하면 글 쓰는 것과는 전혀 관련 없는 학문 분야를 전공으로 하고 있어서 매우 어렵습니다. 학점 따로, 글 쓰는 것 따로, 그게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학기 중에는 글을 쓰는 게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대신 학기 중에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습니다. 전문적으로 작문을 배운 적도, 배울 기회도 없어서 훌륭한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으면서 배워야 하거든요. 또 문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서적도 읽는데, 대부분 거기에서 집필 소재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미술 관련 서적을 읽다가 모작(模作)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든지 심리학 서적을 읽다가 특정 증후군을 가진 범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이런 식으로요. 가끔 책이 읽기 싫은 날은 한자사전을 이유 없이 뒤적여볼 때도 있는데요, 멋진 한자어를 보고 뜬금없이 소재가 떠오를 때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소재가 떠오르면 소재나 줄거리를 적어두는 노트에 일단 써둡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가지치기 식으로 내용을 정돈하고 살을 붙여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요. 저는 성격 상 계획적인 글쓰기보다 큰 틀만 정해놓고 그 안에서 수많은 변화, 그러니까 내용상의 변화나 구성의 변화를 주는 게 더 좋거든요. 그래서 일단 큰 틀을 잡으면 발단부터 결말까지 단계를 나누어 작업을 합니다.
Q. 『해무도』에 이어 추리와 한국 민담, 괴기 기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준비 중인 후속작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전해주신다면요.
A. 음, 큰 그림만 그려놓고 구체적으로 정한 게 없어서 아직은 ‘뭐다’ 하고 말씀드리기가 좀 어려워요. 하지만 확실한 건 『해무도』에서 경찰의 과학적 수사를 통한 추리가 아니라 민간인의 지식으로 흔적을 찾아내고 사연을 알아냈던 것처럼, 다음 작품도 그런 식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해요. 범인은 인간이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을 통한 공포를 다루는 거죠. 물론 바탕이 되는 것은 한국 민담이나 기담에 녹아있는 한(恨)의 정서, 그리고 특유의 음산함이고요. 아직 확정된 것도 없고 밑그림만 그리고 있지만 특별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해무도』를 접하게 될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A. 단 한 명이라도 제가 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책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쓴 책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면 밤새 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한국 민담은 무서운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그런데도 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듣고 싶었지요. 그런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스마트폰에 갇혀 상상력을 묶어버리고 생각을 억누르는 현대에, 다시금 종이책에 빠져들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오싹해져서 밤잠을 설치게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특별하게 뛰어난 글 솜씨를 가지지도 않았고 탁월한 문학적인 감수성도, 풍부한 경험도 없는 편이지요. 오로지 본질을 꿰뚫는 감각과 타고난 거짓말쟁이의 기질에 매달려 글을 썼습니다. 어린 나이에 출간한 첫 작품이기에 미흡한 부분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많은 줄로 압니다. 그러니까 더 많은 경험과 끝없는 노력을 통해서 더 좋은 작품을 쓰려고 해요. 끊임없이 쓰고 지우고 노력하며 좋은 작가가 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