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대륙기』 은림 작가 인터뷰

2016.5.23

“『나무 대륙기』를 통해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라는 보편적 편견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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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네이버 출간 전 연재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인기를 예상 하셨는지요? 이번 신작 『나무 대륙기』는 어떤 부분들을 주로 염두에 두고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A. 굉장히 기뻤습니다. 집에 가서 신랑에게 자랑하려고요. (웃음) 예상하진 못했고, 인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어요.
최근 트위터를 중심으로 여러 매체에서 여성 이슈와 여성 혐오 문제가 대두되고 있어요. 저 역시 여성에 대한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제가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이것을 어떻게 소통해야할지 또 남들에게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트위터는 큰 시도 없이도 여러 가지 말들을 저에게 들려주는 거예요. 그 말들이 『나무 대륙기』 원고를 쓰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했던 여자분들이 있고, 누군가와 그걸 나눌 수 있다거나, 혹은 불편했지만 설명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글을 쓴 장르는 판타지, 환상 문학이지만 여성문제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을 배경으로 여성문제를 다루길 희망하지만 제가 아직 약한지라 판타지라는 필터를 쓰지 않고서는 그 문제들을 마주할 수도 써낼 수도 없었죠. 언젠가는 원하는 껍질을 마음대로 입고 써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Q. 하지만 또 그러한 판타지라는 장르적인 특성 때문에 나갈 수 있는 결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판타지라서 가질 수 있는) 힘을 지닌 강한 ‘무화’라는 캐릭터가 인기가 많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A. 맞아요. 현실의 여성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도 투영을 할 수 있었죠. ‘무화’가 남장을 하거나 남자와 똑같이 싸운다는 면에서 ‘서미’보다 남성적이라고 느껴지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우리가 보편적으로 ‘남자가 싸운다’는 전제를 두고 있기 때문에 성립이 되는 거에요. ‘남자처럼 싸운다.’에서 남성성을 빼면 무화는 무화처럼 싸우고, 서미는 서미처럼 싸울 뿐이죠. 남자도 책만 읽는 사람도 있고 싸울 수 있는 사람도 있듯이, 서미와 무화도 외모를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여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잘 싸울 수 있는 여자일 수도 있는 거죠. 보편적 편견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직, 그 편견을 완벽히 제거한 채로 갈 수는 없고 (어둠의 왼손에 성별이 없는 사람들처럼요.) 중간 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중간 지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균형을 잡는 남자 캐릭터가 ‘야르스’입니다. 야르스는 어떻게 여자가 육체적으로 잘 싸울 수 있느냐고 말하고, 여자는 못 싸운다고 생각하는 보편적 남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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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첫 장편 『나무 대륙기』를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집필하셨습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책을 펴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A. 뱃속이 후련합니다. 이걸 끝내고 나면 현실물이든, 로맨스물이든 얼마든지 도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 대륙기』는 제가 정말로 다루고 싶었던 얘기였고, 그만큼 오래 걸렸습니다.

Q. 단편을 쓰실 때 하고는 어떤 점들이 다르셨나요.

A. 일단 굉장히 많은 체력이 필요했어요. 그 분위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란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저는 굉장히 느리게 쓰는 편이라 1년에 단편 두 세편을 쓰는데요, 그것도 출산 전이었죠. 단편이 밥을 굶고 잠을 건너뛰고 분위기를 유지한 채 철야를 해서 한달 정도에 끝낼 수 있다면, 장편은 수시로 현실로 돌아와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돈을 벌면서 3년 여를 써내야 했어요. 그 시간동안 장편의 분위기와 현실을 함께 유지하기가 힘들었어요. 저쪽(원고 속)으로 건너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집중할 시간은 너무 적고, 돌아와서 현실 세계를 유지하는데 드는 체력이란 무지막지했죠. 중간에 이야기 맥을 놓치는 일은 매일매순간 일어났어요. 하지만 그 치열함이 좋기도 했어요.

Q. 작가 후기에서 『나무 대륙기』는 꼭 쓰고 가야 할 ‘징검돌’ 같은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전 단편들과 달리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어떤 필생적 간절함과 각오가 강력히 엿보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집필 과정이 어떠셨는지,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요.

A. 그러게요. 구상부터 출발하면 굉장히 오래된 작품이에요. 제가 『나무 대륙기』 타로카드를 처음 만들어서 발표한 것이 2006년이에요. 캐릭터와 설정은 그때부터 계속 갖고 있다가 쓸 필력도 없고 환경도 안 돼서 계속 묵혀 두었어요. 그러고 보니 (구상부터) 책 출간까지 딱 10년이 걸렸네요. (실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부끄러우니까 밝히지 않겠습니다;;)
부족한 쓰기능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쓰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어요. 황금가지와 계약한 후에도(2012년) 초고부터 네 번 이상 다시 썼고요. 덕분에 제 안에서 가장 뜨거워진 화두로 완결을 낸 거 같아요. 십 년 전에 썼다면 절절한 로맨스였을 것 같아요. 10년 전과는 추구하는 바가 달라진 거죠.

Q. 작품을 그토록 오랫동안 집필하시는 과정에서 혹시 결말이라든지 달라진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엔딩은 출간된 내용이 처음부터 구상해 둔 그대로가 맞아요. 다만 서미와 무화라는 두 주인공이 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다른 캐릭터들과 많이 얽히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옥인’이나 ‘어둔’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줄 알았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많이 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인간이니까 인간부터 출발하는 게 맞겠죠.

Q. 그렇다면 집필하시는 과정에서 인간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더 많아지셨던 건가요?

A. 애착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더 디테일하고 뜨겁게 할 수 있었어요. 저도 독자분들도 인간인데, 어둔이나 옥이나 돌이나 식물의 표현을 더 잘하거나 이해하기는 어려울 거 같았어요. 사실 옥인이나 어둔의 생태와 관습 체계나 소통에 대한 더 디테일한 분량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재미와 힘을 위해서 과감히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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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할티노」, 「할머니 나무」로 황금가지의 황금드래곤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셨어요. 작품집 『노래하는 숲』과 이번 장편 『나무 대륙기』까지 이어지는 ‘나무’나 ‘식물’이라는 대상에 꾸준히 천착해 오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하고요, 그 주제가 『나무 대륙기』에서 특별히 확장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지점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전작인 <노래하는 숲>의 후기에서 적었듯이, 저는 식물의 수동성이 여성성의 상징으로 주로 쓰이는 것을 의식했어요. 하지만 식물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적극적이고 강력하죠. 지구에서 가장 강한 존재니까요. 그렇게 인간으로서는 불이해한 방향으로 위대한 존재에게 반했고, 남성들에게 불이해한 방향으로 위대한 여성성에 그대로 투사했어요.
이전 작품들은 주로 식물에게 빗대거나 식물로 회귀되었어요. 나무대륙기에서는 드디어 식물을 관통해 존재 변이를 시도하죠. 상징도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빛나는 돌(옥)이나 이해할 수 없는 무(어둔)등으로 좀더 다양해지고 소설 속 세계도 물리적으로 확장됩니다. 동양풍으로 시작했지만 동서남북 대륙을 아우르죠.

Q. 출간 전 연재 때부터 많은 분들이 서양 판타지가 아닌 동양풍 느낌이 나는 『나무 대륙기』에 대한 이색적인 관심이 높았습니다. 동양의 분위기를 선택한 것은 공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일상과 이미지를 빌어 오고 숨쉬듯 가져오셨다고 했는데, 이런 배경에 대해 좀 더 알려주신다면요.

A. ‘판타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서양 판타지를 떠올리게 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도 서양 판타지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특이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독자 입장에서 환타지/동양이라는 이중 장벽을 가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자들이 아예 외면할 수도 있을 것 같았죠. 싸움 같은 재미적 요소가 들어가 있지만 또 이게 딱히 무협풍도 아니잖아요. (판타지와 무협) 양쪽 독자에게 전부 다 외면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친구들은 검과 마법으로 외향성을 강조하지 않고 심리적인 부분들을 강화시킨 동양적인 판타지(꾸준히 재출간되는 『십이국기』)에 굉장히 관심을 가졌고 제가 몸담고 있는 웹진 ‘거울’의 작가들은 「지우전」, 「아홉개의 붓」 등 강하고 유려한 동양풍 작품을 꾸준히 시도해 왔죠. 서양 판타지가 육체적이라면 동양 판타지는 정신적인 면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을 『나무 대륙기』에 녹여 넣고 싶었습니다. 동양풍이 강조되긴 했지만 『나무 대륙기』는 육체와 심리 둘 다 가져가려고 무척 욕심을 냈습니다.
서미와 무화의 어렸을 적 이야기들은 제가 직접 봐 왔고 경험했던 것들이에요. 밤에 깜깜해지면 저 문설주나 대들보 뒤에 뭔가가 있을 것 같다거나 툇마루에 앉아 마당에 일군 텃밭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걸 하릴없이 바라보는 것 같은 것들요. 그런 이미지를 정서에 갖고 있는 상태니까 묘사하고 상징을 담아내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 이미지를 표현하고 공유하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요. 지금 아이들은 툇마루에서 진종일 놀아본 기분 같은 것은 모르지 않을까요? (웃음)

연꽃(사이즈조정)

Q. 『나무 대륙기』의 주축이 되는 서미와 무화라는 대조적인 두 여성 캐릭터를 함께 등장시킨 배경이나 이유가 있을까요?

A. 한 캐릭터만으로는 이야기를 설득시킬 수가 없겠더라고요. 한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의 구조와 두 사람이 있을 때 더 풍부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여성이라는 게 한 가지 모습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또 라이벌 구도가 되면 시너지도 있고 서미와 무화가 각각 끌어오는 인맥이나 스토리도 생길 수 있고요. 그리고 반목시키면서 서로를 더 드러낼 수 있는 부분들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서미는 옷을 잘 차려 입고 싶어 하지만 무화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든지, 그런 부분에서 서로를 더 극대화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었어요. 저로서도 주인공을 두 명을 등장시켜 본 것도 처음이었고 장편도 처음이었고 객관화시켜 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려웠지만 더 편리했어요.

Q. 어쩔 수 없이 한쪽 캐릭터에 더 무게가 쏠리게 되면서 상대적인 애잔함이 생기지 않으시나요.

A. 독자분들께서는 ‘무화’를 주인공으로 느끼시는 것 같은 댓글들을 굉장히 많이 주셨어요, 제가 무화에게 공을 들인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미’가 더 애잔해요. 갖가지 신비로운 불운/행운을 부여받은 무화와는 달리 서미는 인간의 몸뚱이 하나로 맞닥뜨린 모든 사건을 해결해야 하죠. 서미는 제가 전혀 모르는 캐릭터지만 제 주변의 강하고 아름다운 모든 사람들에게서 빌어 왔어요. 그래서 더 사랑합니다.

모란(사이즈조정)

Q. 무화가 보고 말하는 ‘어둔’, 평소에는 쓰지 못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또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 숨쉬는 무화의 다친 왼쪽 팔, 남장 무사 등 무화의 캐릭터가 범상치 않습니다. 『나무 대륙기』에서 작가님이 의도하신 무화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A. ‘무화’는 긍지가 강하고 친구를 믿고 싶어 하고, 두려운 순간에도 용기를 내고 싶어 하는 인물이에요. 겁나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하죠. 설령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요. 항상 본인이 전면에 서 있다는 것을 아는 인물이에요. 그림자 무사라고 묘사되지만 전체 사건을 수습하는 것은 무화, 본인이에요. 자신이 밀리면 서미가 다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자신이 마지노선이고 최전선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지요.

Q.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무화와 달리, 서미는 외모와 치장을 중요시하는 면이 엿보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외모로서 평가받으려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무화와 서미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무화와 서미는 겉으로만 보면 모든 면에서 다르죠. 둘 다 여자지만요.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둘이 상징하는 바가 달랐어요. 페미니스트를 예로 들자면, 남자처럼 차림하고 남자의 형태를 빌어서 정체성을 표현하는 남성적인 페미니스트가 있는가 하면 프릴이 잔뜩 달린 분홍 드레스를 입고 학계단상에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페미니스트가 있어요. 하지만 모두 여자죠. 성향만 다를 뿐 본질은 같아요. 그래서 저는 결국에는 무화와 서미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여자가 아니라. 그냥 서미와 무화일 뿐인 거죠.

Q. 『나무 대륙기』에는 많은 등장인물(혹은 생물)들이 등장하는데요.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각각이 독특한 개성을 자랑합니다. 작가님이 가장 아끼시는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A. 생물이라면, ‘밤’이고요, 남자라면 ‘야르스’요. 이상형에 가깝죠 (웃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마노’였는데. 변하더라고요. 확실히 이 캐릭터는 인간이 아니었구나, 느낀 순간들이 있었어요.

Q. ‘어둔’은 보통의 기질을 배반하고 무화의 팔에 붙어 있습니다. 철저하게 방비해야 하는 두려움의 대상인 ‘어둔’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둔이 유폐된 지금의 세상을 통해 나타내고 싶으셨던 바가 있으셨나요?

A. ‘어둔’에 대해 그렇게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일단은 빛과 어둠으로 나뉜다고 해서 옥과 어둔이 선과 악의 구분은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해요. 어둔은 거기 있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존재예요. 전 그런 것들이 있기를 바라고요. 믿음으로 그 존재가 생길 수 있다면 계속 믿을 거예요. 아무튼 본문에도 나오듯 ‘옥’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제련된 것이지만, 어둔은 아직 아무것도 아닌 별이 되기 전의 먼지 구름 같은 존재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다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미지의 영역을 의미하기도 하고, 존재의 한계를 가진 것들은 영원히 소통할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무언가죠.
(작품 속에서) 세상의 균형이 깨진 것이 어둔이 (악이라서) 흔들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시작은 옥일 수도 있죠. 무화가 시발점이긴 하지만 상징적 지표일 뿐, 사실 그냥 때가 된 거죠. 모든 예언들이 그렇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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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께서 직접 독자님들 선물로 제작해 주신 팔찌들에도 그 의미가 하나하나 담겨 있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보석과 보석 세공이라는 행위가 주는 의미 자체도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보석의 무게가 생명의 무게라고 하셨는데, 특별한 애정이 있으셨던 건지 궁금했어요. 세계관과 캐릭터 이름은 식물 사전과 광물 사전을 참고했다고도 하셨는데요.

A. 보석이나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생명체가 아니고 소통할 수 없잖아요. 작품 속에서 말했듯이 저는 그것들이 어딘가에서는 다른 형태로 소통하거나 존재하는 무엇일 수도 있기를 바랍니다. 단지 우리가 인간이기에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그들끼리는 다른 감각과 체계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반짝이는 보석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저는 꾸준히 그런 책을 수집했고 그냥 계속 읽었어요. 딱히 따로 공부를 한 적은 없구요. 어렸을 때는 백과사전에서 찾아냈어요. 잡지의 보석들을 스크랩하고, 관련 미술서적들을 모았죠. 지금은 그냥 봐도 천연석과 합성석 정도는 바로 구분해요. 감별사 자격증을 따둘까도 했죠. 게을러서 못했습니다. (웃음)

Q. 이야기의 영감을 동화책에서 많이 받는다고 답해주신 걸 봤습니다. 『나무 대륙기』 역시 굉장히 다양한 작품들의 결을 지닌 이야기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평소 즐겨 찾으시고 좋아하는 이야기(동화)가 있다면요?

A. 모든 이야기가 거기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봤던 이야기책이 살면서 평생 가장 기억에 남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동화에는 이상한 틈이 있어요. 옛날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렇죠.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일 때도 있고 모르는 디테일한 음식이나 사물이 궁금하기도 하구요. 그 틈들이 특히 좋았어요. 어른이 되어서 많은 즐거운 소설들을 읽었지만 제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되살아난 느낌들은 그 동화책의 낡은 냄새와 거친 종이의 결, 매끄럽지 못한 서체들과 그 틈새의 기묘하게 뒤틀린 이야기의 공백 같은 거였어요.
어린 시절에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동화책은 계몽사의 〈어린이 세계의 명작, 어린이 세계의 동화〉입니다. 지금은 책장의 가장 아래 칸에 아이 손이 닿는 곳에 있어요. 어렵게 구한 책이라 조심조심 보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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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가님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그림도 그리시고 타로 카드도 제작하시는 등 다양한 일들을 함께하고 계세요. 독자님들에게도 직접 제작하신 타로 카드를 선물해주셨는데, 타로 카드는 제작하는 일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어떻게 배우셨는지도 궁금하고요.

A. 저는 오컬트 쪽에도 관심이 많아요. 오컬트, 보석, 식물, 판타지 책들은 손닿는 대로 구해서 읽었죠. 타로카드는 국내에 첫 작품은 만화가 김진 작가님께서 그린 그림이 만화잡지의 메이저 카드만 부록으로 나온 거였어요. 저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작은 카드 세트 안에 정교한 그림들을 넣고 이미지를 불러내는 작업들에 매혹되었죠. 디자인과 졸업 작품으로 타로카드를 작업해 냈을 때, 제가 이걸로 이렇게 오래 먹고 살 줄은 몰랐죠.(웃음) 국내에서 타로 풀 세트를 제작한 건 제가 처음일 거예요. 『나무 대륙기』 테마로 타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활용 하실 수 있게 트럼프 도안을 병행했습니다.

Q. 여성 작가로서, 육아와 생활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의미를 여쭤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A. 어휴, 집중을 전혀 할 수 없죠. 글을 쓰려면 이따금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야 하는데 (특히 이 작품은 판타지인걸요.) 그런데 전혀 갈 수가 없거나 간다 해도 아주 짧아요. 평소에도 그런 부분들이 힘든데, 육아병행은 말도 마세요.
남편도 글을 쓰고, 똑같이 육아와 직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확실히 저와는 차이가 있어요. 남편도 물론 주말에 많이 (육아를 도우려고) 노력하지만, 입장과 책임감이 달라요. 가령 저는 일을 해도,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죠. 오늘처럼요. 아이를 데리고 인쇄소에 가고, 지류상가에 가고 회의에 들어 갈 때도 있었어요. 그냥 길을 가도 아이가 있는 것만으로 불쾌감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반대로 지나친 간섭으로 숨통을 조이기도 했죠. 모든 상황에서 늘 바닥의 바닥까지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고 배려 받아야 했고요. 반푼이가 된 기분이었고 자존감이 낱낱이 갈리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에 저는 제가 남편보다 돈을 적게 벌기 때문에 제가 육아를 떠맡는 거라고 쉽게 납득했었어요. 그런데 점차 억울해지더라고요. 이렇게 노력하고 이렇게 많이 일하고 이토록 힘든데 아무런 가치도 발견할 수 없었고 의무만 족쇄처럼 걸려 있었어요. 트위터를 하고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어째서 내가 (더) 적게 벌게 됐는지 사회적 장치와 오랜 인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Q. 작가의 말에서도 ‘여자인 것을 잊을 수도 떨쳐낼 수도 없었다’고 하셨는데, 서미와 무화를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어떤 것들을 풀어내고 싶으셨는지요?

A. 서미와 무화의 경우는 서로 생존 기술이 달라요. 서미는 미모가 있으니까 여성스러움을 힘으로 삼아 이용하죠. 보통 그런 여자들을 남자/혹은 여자들도 비난할 때가 있잖아요, 여성스러움을 무기로 사용한다고. 하지만 (제 소설에서는) 이 부분은 반하도 똑같아요. 반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남자이기 때문에 이걸 적극 활용하지요. 여자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무기일 수 있어요. 누구나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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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반공주의 엄마인 ‘녹옥’의 이야기가 조금 남아 있다고 하셨어요. 『나무 대륙기』의 남은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조금 더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본편에는 넣을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녹옥은 굉장히 미스터리한 인물이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드러나질 않았죠. 누구랑 결혼했고 누구의 애를 가졌는지 등등…. 어째서 그런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지도요. 녹옥에 대한 못 다한 이야기를 더 써 보고 싶어요. 이번에야말로 다양한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로맨스를 써 보고 싶네요. (웃음)

Q. 마지막으로 『나무 대륙기』 출간 전 연재를 함께해 주시고, 책으로도 완전하게 만나보게 되실 독자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재미있게 읽어 주셨으면 해요. 시간과 책값을 투자하신 만큼 즐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작품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으시는 건 독자님들의 몫이니 제가 덧댈 말은 없을 거 같아요. 하지만 분명 『나무 대륙기』에 홀리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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