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는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마주한 순간 느낀 두려움이라 생각합니다.”
브릿G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특별 코너 ‘브릿G 숏터뷰’의 다섯 번째 게스트, 이번에는 배명은 작가님의 이야기로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최근 황금가지 구구단편서가에서 배명은 작가의 단편집 『폭풍의 집』이 출간되었는데요, 이를 기념하며 브릿G가 오픈했던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가님과의 인연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공포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명은 작가님만의 고유한 시선이 담긴 이야기들을 두루 전해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배명은 작가님과의 숏터뷰 재밌게 읽어 주시고 많은 격려와 응원, 그리고 후원도 보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인터뷰 하단에 마련된 이벤트에도 많이 참여해 주세요!
Q. 2017년 2월은 브릿G가 오픈한 달인데요, 이때에 작가님께서 브릿G에 처음 등록해 주신 작품이 바로 「폭풍의 집」입니다. 매혹적인 분위기와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금세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지만 막상 2020년에 열린 제2회 로맨스릴러 문학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올려주신 프리퀄 연작 단편 「괴물의 집」에서는 더욱 자세한 이야기의 전사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폭풍의 집」을 처음 브릿G에 올리게 된 이유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A. 2008년부터 네이버 ‘유령의 공포문학’ 카페에서 글을 썼습니다. 어디에 투고할 데도 없어서 습작 형태로만 글은 썼어요. 호러 말고 다른 거나 써야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같은 카페 회원이셨던 엄길윤 작가님께서 브릿G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마지막이다,라는 생각과 브릿G에 감사한 마음에 제 글 중 잘 쓴 글인 「폭풍의 집」을 올렸습니다.
Q. 이전 인터뷰에서 작가님 스스로도 가장 애착이 많이 남는 작품들로 바로 「폭풍의 집」과 「괴물의 집」 시리즈를 꼽아 주셨는데요. 작품을 읽어 보면 그 이유가 납득이 갈 정도로 두 작품 모두 서늘한 광기를 관통하는 분위기 묘사가 탁월합니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불온한 욕망을 부추기고 조종하는 ‘괴물’이라는 존재가 인상적인데요, 환상이자 실존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런 형태의 존재는 어떻게 구상하고 등장시키게 되었는지요.
A. 우리는 누구나 욕망이라는 괴물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개인마다 다르겠고요. 저는 깊은 숲속 「폭풍의 집」이라는 배경에서 괴물의 실체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기운뿐이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 그리고 주인공 소영의 욕망까지 먹어 치워 그 몸을 불린 괴물의 힘을 캐릭터들이 어떻게 겪어낼지 궁금했습니다.
Q. 최근 구구단편서가로 작가님의 단편집 『폭풍의 집: 배명은 공포 단편집』이 출간되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 등 다채로운 앤솔러지에 참여하시며 공포뿐만 아니라 장르를 넘나드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세요. 작가님의 오랜 창작 활동이 다채롭게 꽃을 피우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소회가 어떠신지요?
A.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지금은 장르의 전성시대라 그 시류에 편승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지고 있던 글들을 받아주시고 저에게 앤솔러지 제안을 해 주신 작가님들과 출판사 분들께도 감사하고요.
Q. 토속적인 배경과 풍경이 어우러진 공포가 인상적인 작품 「허수아비」와 「홍수」는 각각 웹툰과 오디오북으로도 만들어졌는데요. 원작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진 2차 창작물을 듣고 보며 어떤 감상이셨나요? 앞으로 또 2차 창작물로 계획 중인 작품이 있는지요?
A. 웹툰도 보고 오디오북도 들었는데요, 제 것 같지 않았어요. 원작자가 저라니! 믿기지가 않았죠. 소설을 보면 좀 생경한 느낌은 있었어도 많이 부족해 보이거든요. 역시 다른 방식으로 다른 분들의 노고가 들어가서 그런가 봅니다.
앞으로 두 작품의 영상화가 계획되었는데 어떻게 나올지 저도 너무 궁금합니다. 사실 「인류애가 제로가 되었다」 대본을 살짝 봤는데 이 역시 많이 다르더라고요. 친한 작가님이 2차 창작물은 내 새끼 시집보내는 마음이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대리로 느껴보네요.
Q. 앞서 언급한 「허수아비」와 「홍수」뿐만 아니라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산불」, 「뱀 장수는 오지 않는다」, 「아까시나무」 등 한국적인 색채가 깃든 토속 호러는 작가님의 장기가 단연 빛나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이전 인터뷰에서 ‘어릴 적 시골집에 놀러 다니며 자연의 이면에서 안락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하셨는데요, 특히 「허수아비」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던 자연 속 마네킹 사진은 정말 놀라웠던 기억이 납니다.(다시 한 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로스트」처럼 비정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현대 범죄물도 집필하셨지만, 정반대인 시골과 자연에서 어떠한 공포를 포착하게 되는지 작가님만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A. 제가 어렸을 적, 방학 때마다 천안 큰집에 갔습니다. 모든 곳이 놀이터였어요. 폐가, 깊은 숲속, 공동묘지 등등. 제가 어릴 땐 「전설의 고향」과 『오싹 오싹 으스스 공포 특급』이 유행이었거든요. 그래서 낮에는 넓은 공동묘지에서 뛰어놀다가도 밤이면 전설의 고향처럼 무덤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소복을 입은 귀신이 나오는 상상이 되더라고요. 화장실은 어떻게요. 푸세식인 데다 집에서 떨어져 있어서 밤이면 가지도 못했어요. 그 안에서 손이 쑥 나와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낮에는 생기가 가득하더라도 밤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린 시절의 저는 자연스럽게 호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허수아비」를 쓴 계기는, 2016년 여름 휴가 때였습니다. 충청도에 있는 성지였는데,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고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고 있었어요. 저는 어머니와 길을 잘못 들어 산길로 들어갔는데, 빽빽한 나무와 귓가에서 앵앵거리던 모기들이 기억납니다. 언덕을 넘었더니 옥수수밭에 마네킹이 손을 들고 서 있더라고요. 그때 어찌나 놀랐던지. 계곡 옆에도 그네를 타는 마네킹이 있었고요. 호러는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마주한 순간 느낀 두려움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새와 고라니, 멧돼지 등을 물리칠 요량으로 설치했을 마네킹에서 공포를 느꼈어요.
Q. 최근 집필 중이신 「산신 설원전」 연작은 크라임 노블 앤솔러지 『내 이웃의 살인마』에 수록된 작품인 「귀매」에서 시작이 된 시리즈예요. 인간으로 변해 지내는 호랑이 산신 ‘설원’과 종사관 ‘정윤’의 여러 활약상을 담은 시리즈로 시대 배경과 어우러지는 캐릭터들이 굉장히 매력적인데요, 이 시리즈는 어떻게 연작으로 확장하게 되었는지요?
A. 김이삭 작가님과 민속 스터디에서 살과 살풀이 그리고 저주를 공부하다가 귀매를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공부한 거 써먹자고 해서 재밌게 소설로 썼고, 운 좋게 공모전에 당선까지 되었죠. 그 때문에 다신 사극물 안 쓰겠다고 했던 말이 쏙 들어갔어요. 그리고 김준혁 편집주간님이 계약 건으로 얘기하시다가 지나가듯이 연작으로 다른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하셨을 때 뭐에 홀린 듯이 다음 이야기들이 막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고요. 덕분에 연작으로 여러 작품 썼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Q. 한국 호러 콘텐츠 창작 레이블 ‘괴이학회’ 소속으로 창립 당시부터 함께 활동해 오고 계세요. ‘괴이학회’ 자체적으로도 작품집을 꾸준히 발간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는데, 동일 창작 집단 내에서 작가들 간에 다양한 교류와 피드백이 교환되는지, 그 상호작용 내에서 작가님께서도 도움을 주고받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브릿G 독자분들께 괴이학회 소개를 해 주신다면요.
A. ‘괴이학회’는 호러와 양꼬치를 사랑하는 브릿G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창작 그룹입니다. 저도 다른 분들이 양꼬치와 칭따오를 사 주셔서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코로나로 양꼬치 모임은 없어지다시피 되었지만, 작가 40인이 계시는 소통 방은 활발히 활동 중입니다. 대개 호러에 대한 잡담(그 작가님 지하실에 고블린이 몇이더라……)과 공모전, 그리고 작가님들의 소식(신간 출간, 영상화 등)을 공유합니다. 호러에 진심이신 분들이 많으셔서 자료도 많이 추천받았습니다. 올해 하반기엔 괴이학회에서 앤솔러지 『괴이, 도시 ― 만월 빌라』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할 예정이니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Q. 브릿G에도 많은 작품들을 공개해주셨는데요. 작가님께서 지금까지 브릿G에 올려주신 다양한 이야기들 중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께 가장 추천하고 싶은 ‘나의 작품 BEST5’를 꼽아본다면요? 작가님의 만족도와 취향대로 간단한 이유와 함께 추천을 부탁드려 봅니다.
A.
허수아비 – 첫 종이책 앤솔러지. 그야말로 제 이름이 들어간 첫 책입니다. 첫 출간의 그 기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때 비 오는 날 배경 묘사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폭풍의 집 – 처음 브릿G에 올려서 추천받은 이야기. 제가 꿈을 자주 꾸는 편입니다. 작품 내용에 나왔던 2층은 제 꿈에 여러 번 나왔어요. 아무도 없는 방에 TV나 라디오가 켜져 있고 재떨이에선 누군가가 피던 담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 모습이 기이하면서도 아련했어요.
뱀장수는 오지 않는다 – 브릿G에서 처음 뱀 주제 글쓰기로 낸 작품. 그때 작가님들과 재밌게 썼던 것 같아요. 배경을 70~80년도로 잡았는데, 뱀술 담그는 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혼자 신났었어요.
묘지기 이야기 – 처음으로 쓴 장편. 정말 제가 좋아하는 소재로 글을 잔뜩 썼어요. 일본 만화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 미도리카와 유키의 『나츠메우인장』을 너무 좋아하는데 저도 한국의 이야기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산신 설원전 – 첫 사극물. 사극계의 김이삭 작가님과 이재인 작가님의 도움으로 쓰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괴력난신을 주제로 제가 쓰고 싶은 장르를 섞어서 쓰는데 기본 코미디는 꼭 지키고 있습니다.
Q. 한편, 작가님께서 브릿G에서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거나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추천을 부탁드려 봅니다. 숏터뷰가 만났으면 하는 작가나 리뷰어 추천도 좋습니다.
A.
얼마 전에 녹차빙수 작가님의 「붉고 가는 선」을 봤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제목과 같은 붉고 가는 선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고, 그 어딘가가 저의 집 같고. 작가님의 필력과 글에서 묻어나는 끈적한 분위기가 붉고 가는 선을 현실로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저승 이주 프로젝트』 오메르타 작가님의 작품들은 유쾌, 상쾌, 통쾌합니다. 이는 작가님의 경쾌한 에너지가 작품에 반영되었기 때문이겠죠. 넛크랙커 시리즈, 보들레르 시리즈도 매번 언제 나오나 기다리는데 이는 제 머릿속의 어둠도 퇴치하시어 정화 시켜주니 어찌 다음이 기대되지 않을까요.
「가택신도」 – 이일경 작가님의 작품엔 굳건한 구조의 힘이 있습니다. 그 힘으로 두려움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시죠. 알 수 없는 어떠한 믿음이 생기는 순간입니다. 이 작품에서 신앙을 설파할 때에 어둠의 교주 탄생이 이것이며, 홀리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그 힘을 마주하자 저는 하나의 신도가 되었답니다.
연여름 작가님의 「면도」를 읽는 순간, 작가님이 저를 데리고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느낌이었어요. 왁자한 소음을 차단하는 부드럽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끄는 몰입감. 비단 이 작품만이 아닌, 작가님의 모든 작품이 가진 힘이 아닌가 싶어요. 숏터뷰에서 연여름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Q. 마지막은 고정 질문입니다. 브릿G에 바라는 점(기능적, 제도적 부분 등 다 좋습니다.)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며, 앞으로의 다양한 활동 계획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저는 호러를 쓰고자 하는 작가님들에게 적합한 플랫폼은 브릿G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많은 공모전과 출판사들이 호러를 지향하지만, 브릿G는 작품들을 마음 편히 선보일 수 있는 곳이거든요. 저에게도 꿈을 이뤄 주었던 이곳이 오래오래 남아 많은 신인 작가들의 꿈도 이뤄 주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단편을 줄이고 중편과 장편으로 도전하려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제안을 해 주신 곳들이 있어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브릿G와도 작업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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