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 숏터뷰] 네 번째 게스트: 위래 작가 편!

2022.4.1

“브릿G 공개 직후 글을 올린 건 제가 브릿G 공개를 기다렸던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브릿G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특별 코너 ‘브릿G 숏터뷰’의 네 번째 게스트, 이번에는 위래 작가님의 이야기로 새롭게 인사드립니다!

사실 위래 작가님과는 브릿G 오픈 첫 날부터 각별한 인연이 있었답니다. 2017년 2월 1일 브릿G가 공개된 직후 작가 회원 처음으로 「쿠소게 마니아」라는 작품을 등록해주셨기 때문인데요, 때문에 저희에게는 언제고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남게 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웹소설과 단편 장르소설을 모두 창작하는 작품 활동이나 다양한 장르와 특색 있는 작풍의 소설 쓰기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았던 터라 숏터뷰 게스트로 모셔보고 싶었는데, 흔쾌히 수락하고 함께해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창작론을 실험하는 단편 쓰기는 물론 언젠가는 해야 할 도전이자 전업성을 위해서도 필연적인 선택이었던 웹소설 쓰기를 포괄하는 작가로서의 고민과 더불어, 장르소설에 대한 풍성하고 심도 있는 이야기도 두루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숏터뷰에 함께해주신 위래 작가님께 많은 격려와 응원, 그리고 후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리며, 인터뷰 하단에 마련된 이벤트에도 많이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cool:

 


 

Q. 2017년 2월 1일 브릿G 사이트를 공개한 이후 처음 공개 등록된 작품이 바로 작가님의 SF 단편 「쿠소게 마니아」입니다. 그간 사이트를 비공개로 업데이트하며 황금가지의 출판작품 몇 개만을 등록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작품란이 무척 허전했는데, 오픈 직후 사용자의 새로운 창작 작품이 처음 올라왔을 때의 감동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작가와 작품명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처음을 의도하신 건 아니었겠지만, 브릿G가 공개된 직후 작품을 올려주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사이트 공개일 전부터 브릿G에 대한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황금가지야 이영도와 스티븐 킹, 어슐러 K. 르 귄, 닐 게이먼 등 국내외 유수 장르 작가들의 서적을 출간한 출판사로 익히 읽어 잘 알고 있는 출판사였습니다. 한창 웹소설이 부흥하며 플랫폼들이 난립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한 브릿G 공개는 기대감을 주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장르 단편소설로 작품을 시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장르 단편소설을 쓰고 읽는 것에 대한 선호가 있기 때문에 웹소설에서 도외시되는 장르 단편 창작을 중점으로 하겠다는 브릿G의 포부가 좋았습니다.

근래에 와서야 SF와 미스터리 지면이 늘어났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당시만 하더라도 《판타스틱》 잡지가 장기 휴간하고 《웹진 문장》의 장르란이 사라지는 등, 《환상문학웹진 거울》 등 일부 커뮤니티에서만 장르소설 단편 창작이 남아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일부 데뷔에 성공한 작가들은 제도권 문예지 지면을 얻을 수 있지만, 이 또한 한정적이었기에 많은 작가들은 작품이 있어도 공개할 지면을 찾기 어려웠고요. 당시의 저는 웹소설 쓰기 습작에 발을 들이면서도 여전히 장르 단편소설을 지면에 내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정작 브릿G 공개일이 왔는데, 다들 부담이 되는지 생각보다 빠르게 작품을 올리지 않더라고요. 다른 무얼 기다릴 것도 없겠다 싶어 작품을 올려 브릿G의 첫 작품이 된 듯합니다.

요약하자면, 브릿G 공개 직후 글을 올린 건 제가 브릿G 공개를 기다렸던 사람이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Q. 게임 속 세계관을 활용한 구조가 인상적인 「쿠소게 마니아」는 이후 출판지원작으로 선정되어 제3·4회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 작품집인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에 초대작으로 수록되어 단행본으로 출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호러 단편 「우리」 역시 작가프로젝트에서 선정되면서 『곧 죽어도 등교』라는 앤솔러지에 수록·출판이 되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이 작품 모두 학원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또 굉장히 평면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어떤 단적인 상황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설계를 통해 긴장감과 공포심을 고조시키는 구성이 두 작품에서 모두 돋보이는 것 같은데요. 각 작품의 집필 동기나 배경, 그리고 집필 시 고려하셨던 점 등을 자세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쿠소게 마니아」와 「우리」 모두 제 고등학교 시절의 망상을 단초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두 작품 모두 같은 창작 방법론을 택했습니다.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비행기의 근접 접근으로 인한 소음, 와야 할 사람이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일 등)으로부터 비일상적인 사건(비행기의 추락, 계속 사라지는 사람들)을 이어가다 환상적인 사건(타임루프, 소멸)으로 에스컬레이트되는 구조를 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중요한 건 바로 개연성입니다. 그리고 개연성은 고전적인 리얼리즘 소설에서 현실을 반영하는 도구로 인식되지만, 개연성과 현실성은 다른 것이죠. 이러한 창작은 리얼리즘 사조가 추구했던 ‘현실’이 실상 개연성이 만들어내는 불신의 유예에 비하면 유리잔처럼 얄팍한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작품은 장르소설이기도 합니다. 장르 규범은 개연성과 함께 두 작품을 구성하는 두 개의 큰 축 중 하나죠. 각각의 소설은 SF/게임판타지, 판타지/호러/스릴러/미스터리의 장르 규범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고 장르적 재미를 위해 나머지 가치를 배제했습니다. 이를테면,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기대되고 문학적인 즐거움을 준다고 알려진 입체적인 캐릭터와 인상적인 문장, 깊이 있는 구성 등이요.

「쿠소게 마니아」의 경우 제가 군인 시절 휴가 나와 짬짬이 집필했던 소설 중 하나이고, 완성 후엔 학교 수업과 학회 합평회에도 내고 졸업작품으로도 제출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재미있지만’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고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유난히 많이 들었는데 제가 볼 때 해당 작품은 소품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고, 복잡한 구조와 다양한 서사를 택하지 않는 대신 게임적 사실주의에 상당히 기대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러한 방향으로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목에 대해 유난히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쿠소게’는 일본어로 ‘쓰레기 게임’을 뜻하는데, 요즘엔 한국어로 ‘망겜(망한 게임)’이라고 번역하는 게 유연하겠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망겜’이란 단어가 많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저도 의식하지 못했기에 외래어 제목을 그대로 썼습니다. 뉘앙스도 다소 다르고요. 둘 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게임, 또는 그런 게임이라고 비난할 때 쓰이지만 당시 ‘쿠소게’는 비슷한 양식의 게임 작품을 한데 묶어 부를 때 쓰이기도 했습니다. 주로 플랫포머로, ‘게임 진행 중 부조리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어 반복되는 플레이를 요구하는 게임’이었죠(국내엔 「고양이 마리오」로 알려진 「쇼본의 액션」이 대표적). 최근 보면 ‘바카게’니 ‘병맛 게임’이니 하며 쿠소게로 뭉뚱그리지 않고 구분이 있는 듯하지만, 당시 제 이해 안에서 이 소설의 제목은 「쿠소게 마니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와 학생 주제의 작가프로젝트 선정을 목표로 썼고 그렇게 되었던 작품입니다. 프로젝트 주제를 보고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완성할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집필은 수월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두 가지 때문이었는데, 단편 안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기술적인 이유와 더불어 소설의 완결을 어떻게 짜야 할 것인지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창작 방법론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집필이 되는 경우 소설의 큰 그림이 보이지 않고 작가도 한 치 앞을 더듬더듬 짚으면서 나아가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일은 벌였는데, 수습이 되지 않는 거죠. 소설을 몇 번이나 여러 버전으로 다시 썼다가, 스스로도 놓치고 있던 아이디어를 발견해 현재의 결말이 되었습니다. 부조리 소설에 가까운 결말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 내에서 답을 밝히지 않지만 추리할 수 있는’ 이영도식의 메타적인 퍼즐 미스터리로 썼습니다.

 

Q. 지난 2월 종료된 제8회 ZA 문학 공모전 결과 발표에 앞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 바로 작가님의 응모작 「지속 가능한 죽음으로부터」가 아닌가 해요. 편집부 예심을 가뿐히 통과했고 여러 반응도 호평이었는데 예상외로 본심에서 최종 선정되지 못해 개인적으로는 조금 놀랐던 기억도 있는데요.(문학상의 최종 선정은 본심위원들의 합산 결과에 전적으로 맡기기 때문에……!) 본심 평에 따르면 시의적절한 세계관이 장점으로 꼽힌 반면 시종일관 건조한 서술과 인물의 태도는 단점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다소 불친절하고 무심한 듯한 톤앤매너가 작가님 작품의 여러 특징 중 하나로 읽히기도 했는데, 작풍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는지, 또 이를 통해 의도하시는 바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A. 화제를 모은 이유는 역시 브릿G의 리뷰 공모 시스템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좋게 봐주신 분들이 많은 건 기쁘고 감사드릴 뿐입니다. 최종심에서 떨어진 건 안타깝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요. 소설 공모전을 대하는 많은 태도들이 있지만 저는 늘 작품을 제출하고 나서 돌아보면 ‘이걸로 수상하길 기대하다니 양심이 없다’ 하고 자조하는 쪽이거든요.

‘다소 불친절하고 무심한 듯한 톤앤매너’는 이번 질문이 아니더라도 종종 들어왔던 이야기긴 합니다. 이에 대해서 평소에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경험상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감정을 느끼는 일에 흥미를 덜 느낀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저는 감정이 직접 서술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설 속 서술에서 독자에게 감정을 느끼게끔 할 때, ‘슬펐다’고 쓰기보다, ‘종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서 나가지 않았다’고 쓰는 쪽을 선호합니다. 직접 서술은 감정의 상태를 전달해 독자에게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지만, 간접 서술은 독자가 감정의 여백을 직접 채움으로써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또한 간접 서술은 직접 서술에서 제한된 감정 어휘의 한계를 극복하기도 합니다. 어떤 감정은 애증으로 불릴 정도로 교차적이고, 실제의 감정은 단일하게 호명할 수 없는 회오리로 존재하니까요. 직접 서술의 간명함 또한 좋아합니다만, 제 글쓰기에 미숙함이 있을지언정, 간접 서술의 가치 자체가 퇴색되진 않는다고 봅니다.

 

Q.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구성적인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3측으로」나 「존은 맛있다」, 「동굴 속」처럼 특정한 규칙성에 의존해서 풀어나가는 작품도 있는 반면, 「우리」나 「거인」 같은 작품처럼 이미 발생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그에 대처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들도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각기 단편 집필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고 실행에 옮기는 편인가요?

A. 항상 글을 쓸 때는 여러 가지 창작 방법론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저는 작가의 모든 작품은 다음 작품을 위한 습작이라고 생각하는데 특히 여러 도전을 하기 수월한 단편소설에서 더 그렇죠. 하지만 여러 작품을 쓰면서 어느 정도 관례화되는 부분이 없진 않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위에서 언급한 「쿠소게 마니아」와 「우리」 같은 작품처럼 일상에서 비일상으로 에스컬레이트되는 상상력의 전기소설 면모의 작품군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래에서」, 「거인」 같은 작품들이 포함됩니다. 저는 초기에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썼지만 비슷한 양식의 작품이 반복해서 나오고 제 이야기와 가까워진다고 생각해서 최근엔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제 작품 중엔 다른 장르소설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동굴 속」은 스콧 스미스의 『폐허』에서, 「존은 맛있다」는 톰 고드윈의 그 유명한 「차가운 방정식」(↗)에서, 「제3측으로」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와 비서럴 게임즈의 게임 「데드 스페이스」에 레퍼런스가 있습니다. 아이디어 자체를 직접적으로 빌려왔다기보다 쓰다가 보니, 또는 쓰고 보니 깨닫게 되는 편이지만 사람의 상상력이란 결국 자신이 읽고 보고 플레이한 것에서 오기 때문에 모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종류의 아이디어는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창작은 장르 규범을 공유하여 작가 자신이 새롭게 해석해내는 장르소설 작법 기본이라고 봅니다. 누구나 소설을 읽으며 ‘이 캐릭터/사건/배경을 내가 쓴다면……’ 생각하니까요. 이 정도가 작품과 가까우면 팬픽이 되고, 구분될 정도로 완연히 멀어지면 장르소설이 되는 겁니다.

 

근래에는 어떠한 장르 규범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 부분에서 작품을 만드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속 가능한 죽음으로부터」는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에 ‘―펑크’ 장르를 더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쓴 작품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인간펑크’라고 할 수 있는 완샹펑녠의 「후빙하시대 이야기」, ‘바이오펑크’이면서 동시에 ‘스프링펑크’라고 할 수 있는 『와인드업 걸』에 영향을 받은 겁니다. 작품의 아이디어를 직접 가져올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조합된 장르 규범의 규칙성을 빌려오는 거죠. 또한 제가 지금까지 쓴 웹소설 『마왕이 너무 많다』와 『슬기로운 문명생활』 또한 이런 방법론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웹소설을 구성하는 장르 규범들을 이리저리 뗐다 붙였다 하며 제가 연재하기 좋은 웹소설의 모양을 찾는 것이죠.

 

또 다른 방식도 있습니다. 저는 엽편(또는 초단편, 소품이라고 부르는)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실제로 브릿G에 올라간 작품 대다수는 엽편입니다. 이러한 엽편들은 늦더라도 한 시간 이내 정도로 빨리 쓰게 되어 어느 정도 자동기술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브릿G에 올리지 않더라도 종종 엽편을 쓰고 그대로 놔두는데, 이 경우 연도별로 분류되는 습작 폴더에 들어갑니다. 보통 공개할 정도의 수준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미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놔두다가 공모전이나 청탁 등의 기회가 생기면 다시 들여다보고 작품이 될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들을 선별하는데 이러한 습작과 미완 작품, 또는 단편이 되지 못한 엽편들을 중점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보는 작업을 합니다.

최근에야 이런 방식의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공개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은데, 미씽아카이브에서 ‘drag_on’ 프로젝트로 나온 단편소설 동인지 『way to dragon』 의 「백관의 왕이 이르니」, 아작 출판사의 계간지 『The Earthian Tales』 창간호의 「르네 브라운을 잊었는가」가 이러합니다. 이 같은 모자이크 방식의 창작은 자동기술적 면모에 더해 앞서 말한 모든 창작 방법론을 포괄합니다.

 

Q. 한편 작가님의 단편들 중 독보적으로(?) 캐릭터성이 있고 유쾌함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양과 하니 박사님 시리즈’인 것 같아요.(제멋대로 이름 붙여 봤습니다……) 「모기와 가설」, 「정형행동과 피크닉」, 「기계와 번역기」 세 작품이 있는데요, 핸드레이크와 솔로처가 등장하는 이영도 작가님의 ‘어느 실험실의 풍경 시리즈’ 같은 느낌도 나면서 확실히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 콤비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또 이 시리즈는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A. 저도 ‘박사님과 나 시리즈’ 정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첫 작품인 「모기와 가설」부터 장르를 SF/라이트노벨 정도로 생각하고 썼었고 그런 분위기가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이트노벨의 정의에 완전히 부합하진 않지만, ‘어느 실험실의 풍경 시리즈’도 라이트노벨에 많이 가깝다고 생각하고요. 특별한 의도는 없고 여름날 모기가 너무 싫어서 모기가 죽는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가벼운 작의와 더불어 모기의 특성을 SF적인 농담에 기대어 설명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나 싶네요.

다만 두 인물 모두 관계는 제시되어도 캐릭터의 상을 특별히 묘사한 적 없고 저도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속되는 시리즈로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캐릭터성은 있지만 캐릭터는 없는 거죠). 연속해서 쓰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리즈 작품으로서 의미를 더 가지려면 작품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배경과 그에 적합한 인물이 뒷받침되어야 할 거라고 봅니다. 당장 그런 계획은 없습니다.

박사님과 나 시리즈

 

Q. 비교적 최근에 판타지 웹소설 『슬기로운 문명생활』을 완결하셨어요.(완결 축하드립니다!) 호흡이 긴 웹소설 작품 활동과 단편 창작을 모두 하시기 때문에, 이 두 작업의 호흡 차이나 집필 동기 같은 게 확실히 다를 것 같습니다. 창작 방식부터 소비 문법까지 판이하게 다른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 또는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또 브릿G가 이러한 창작 활동에 고려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A. (감사합니다!) 저는 단편소설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제 독서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한 것은 대여점 판타지 소설이었기 때문에 연재소설은 언젠가 해야 할 도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졸업할 무렵, 대여점 판타지 소설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웹소설이 부흥했고요. 판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장르소설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둘 모두 쉽게 이해가 되기 때문에 저에겐 두 가지가 모두 가깝게 느껴집니다. 장르소설엔 장르 규범이 있고, 그걸 읽어낼 수 있다면 그걸 쓸 수도 있는 거죠.

그 외의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저는 소설가에게 전업성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왜 먹고 사는데 소설을 써야 하느냐’ 하는 질문은 잘못되었습니다. ‘소설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많은 작가분들이 본업인 작가 외에 부업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저처럼 둘 이상의 직업을 가지면 둘 다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해낼 수 없는 사람도 있거든요. 때문에 전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장할 수 있는 웹소설 쓰기는 졸업 이후의 저에게 필연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웹소설은 그 자체로도 버거운 일이죠. 많은 웹소설 작가들은 그리 달갑지 않은 노동 환경에서 글을 씁니다. 점진적으로 시장의 확대되어 다양한 작품이 독자의 선택을 받고 있고 일일 연재인 주 7일에서 이제는 주 5일 연재로 자리 잡아가는 등 나아진 부분도 있지만, 웹소설 작가의 삶에 제도적으로 개선된 부분은 특별히 찾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웹소설 작가로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만들고, 실제로 많은 작가들을 절필에 이르게 하는 요인입니다. 이런 문제는 흔히 웹소설에서 말하는 ‘작품의 성적’에 우선한다고 봅니다. 지표가 다소 낮더라도 그만큼 힘들지 않으면 계속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거죠.

이러한 지점에서 볼 때 장르 단편소설 쓰기를 여전히 이어가는 것은 웹소설 이외의 소설 쓰기로 전업 작가의 삶이 가능한지 실험해보는 것에 가까운데, 아직까지는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브릿G에서도 웹소설 작품을 하지만, 비웹소설 장르소설, 특히나 장르 단편소설을 응원하는 흔치 않은 장소 중 하나입니다. 누가 뭐래도 브릿G는 한국 장르소설을 받치는 축 중 하나죠. 근래 한국 SF의 부흥에도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얼마나 많은 SF 작가들이 자신의 작가 소개 글에 브릿G에서 데뷔했다고 적었던가요? 공개된 지면에 작품을 게재한 뒤 이용자들이 서로 작품을 읽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며, 무엇보다 편집부에서 작품을 읽고 선정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하는 이 환경이 작가들의 창작 장(場)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안전가옥과 함께 매년 다양한 공모전을 개최해 창작 의욕을 돋우는 곳이기도 하고요.

앞서 장르 단편소설 쓰기로 전업 작가의 삶이 연전연패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한국 장르소설의 과거를 생각하면 브릿G와 같이 버티고 있을 장소라도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Q. 평소 궁금했으나 물어볼 기회가 없는 것이 바로 필명에 관한 건데요. 웹소설 및 단행본 출판 가릴 것 없이 단일하게 활용하시는 ‘위래’라는 필명은 어떻게 짓고 사용하게 되셨나요?

A.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장래를 생각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호와 형편에 맞는 직업을 물색하니 소설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알고 있는 소설이라는 건 대여점 판타지 소설에 가까웠어요. 제도권 문학에 대해선 그 존재도 몰랐고, 제가 아는 대중소설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이사카 코타로나 파울로 코엘료 같은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다 보니 어떻게 되어야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여점 판타지 소설은 방법을 알았죠. 당시 대여점 판타지 소설을 쓰려면 우선 웹에서 작품을 써야 했고, 웹에선 일반적으로 필명을 쓰니까 저도 필명을 정해야 했습니다.

필명을 정할 때 그리 깊게 고민하진 않았네요.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가던 중 여러 단어를 떠올리다 ‘위아래’에서 가운데 ‘아’를 빼니 어감이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검색창에 넣어도 아무것도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요즘처럼 네이버 검색창에서 ‘위례 신도시’가 관련 검색어로 나오지 않았고 ‘연예인 누구가 n위래’ 하고 트위터 타임라인이 펼쳐지지도 않았죠.

처음 필명을 만들 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이제 와서는 단독적으로 별다른 뜻이 없이 그저 기능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부분을 좋아합니다.

 

Q. 앞서 이야기 나눈 작품들 외에도 브릿G에도 공개해주신 작품들이 더 많이 있는데요, 작가님께서 지금까지 브릿G에 올려주신 다양한 이야기들 중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께 가장 추천하고 싶은 ‘나의 작품 BEST5’를 꼽아 소개를 해 본다면요? 작가님의 만족도와 취향대로 간단한 이유와 함께 추천을 부탁드려 봅니다.

A. 우선 브릿G 계약작과 추천작으로 뽑힌 작품은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이미 한 번 노출이 되었으니 다른 작품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5위는 「거인」입니다. 호러 엽편입니다. 부조리 소설이고요. 부조리함을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 제 작품 중엔 흔하지 않게 개인적인 정서가 많이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에게 읽히면 부조리 소설로밖에 읽히지 않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4위는 「존은 맛있다」입니다.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은 SF 호러 엽편인데, 이영도 작가님이 악평을 남겨서 더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평은 지금도 제 마음에 잘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 2017년 3월경, 편집부 요청으로 이영도 작가님이 ‘브릿G 중단편 게시판에 들어가 끌리는 대로 고른 것들 중 타자가 끝까지 읽은 글들’ 12편에 대한 코멘트를 전해주셨었는데, 그중에 「존은 맛있다」가 포함이 되어 있었더랬지요. 그 코멘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의 창작 관련 강의에선 왕과 왕비가 죽어가고 있겠지요. (3월이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 ‘왕이 죽었다. 그리고 왕비가 죽었다.’와 ‘왕이 죽었다. 슬픔을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의 차이에 대한 저 유명한 예시 말입니다. 이 글엔 소재와 사건뿐이고 구성은 없군요. 그것이 이 글의 장점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드보일드는 감상주의 없음이지 구성 없음은 아니니까요.

3위는 「리모컨을 찾아줘」입니다. 로맨스 엽편입니다. 개인적으로 따뜻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의견이 다소 갈리더라고요. 이 작품의 기술적인 요소를 좋아합니다.

2위는 「아래에서」입니다. 판타지 단편, 정확하게는 전기물입니다. 작품을 올린 시기와 무관하게 브릿G에 올린 제 작품, 동시에 다른 공개된 지면의 제 작품 중 가장 초기에 쓰인 작품으로, 친구 출판사에서 출간된 단편집 표제작이기도 했습니다.

1위는 「지속 가능한 죽음으로부터」입니다. 호러/SF이자 좀비펑크 단편입니다. 세계관이 시의적절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보다는 동료 작가들과 좀비펑크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던 기억 때문에 좋아합니다. 본래는 좀 더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Q. 작가님께서 브릿G에서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거나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추천을 부탁드려 봅니다.

A.

양진 작가의 「나의 단도박 수기」는 스페이스 오페라 단편입니다. 어째서인지 생활감이 느껴지는 어휘와 대사들이 임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이시우 작가의 「넷이 있었다」는 호러 단편입니다. 작품 끝 화자의 독백은 요란한 축제 뒤의 적막처럼 스산하기만 합니다.

히포그리프 작가의 「처형학자」는 판타지/추리 단편입니다. 인물과 사건 모두 비장감 있는 세계와 잘 어울립니다.

전견 작가의 「잠자는 여왕의 종이 궁전 아래에서」는 판타지 단편으로 전기물입니다. 메타픽션이기도한데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작품으로 의미의 적층으로 이루고 있습니다.

fool 작가의 「세상이여, 안녕.」은 SF이자 아포칼립스 단편입니다.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관조와 사색이 문장의 울림을 자꾸만 더합니다.

 

Q. 마지막은 고정 질문입니다. 브릿G는 올 한 해를 중요한 기반을 닦는 시간으로 삼고 작가와 독자 모두 사이트 내에서도 활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기능들을 보완해 나가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브릿G에 바라는 점(기능적, 제도적 부분 등 다 좋습니다.)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며, 앞으로의 다양한 활동 계획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근간 홍보 해주셔도 됩니다!)

A. 본래 계획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규모 대회를 지원하는 툴이 있으면 어떨까 하네요. 특정 주제를 기준으로 열 수도 있고, 주최자 몇이 상금을 모을 수도 있는 식으로요. 브릿G는 이제 소설 창작가 외에도 공모전으로 비평가를 선발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용자가 심사위원이자 후원자가 될 기회도 열어둔다면 더 활발한 활동이 생기지 않을까요? 브릿G의 공식 공모전과 겹치는 문제는 해당 기간에 자유 공모전을 중지하는 식이면 충분치 않은가 싶습니다. 물론 공모전 작품들 중에서도 공식 추천작과 계약작이 나올 수 있겠죠.

🔖 잠깐 코멘트를 덧붙여보자면, 언제나 감사하게도 회원분들께서 직접 다양한 주제로 주최해 주고 계신 ‘소일장’이 저희 사이트의 특징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이를 시스템으로 안착시킬 수 있는 제안이 무척 반갑고 더없이 적절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목표하고 있던 여러 보완 사항들이 마무리되면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꼭 시스템으로 정례화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근황을 밝히자면, 이전 웹소설 연재 종료로부터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그 사이 브릿G ZA 공모전을 비롯, 여러 공모전에 단편소설을 제출했다가 소리소문없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내지도 못하고 포기한 공모전도 있고요. 흔히 있는 일입니다. 공모전에서 떨어질 계획은 없었지만 연재를 끝내고서 몇 달 동안 쉬는 것은 계획에 있었습니다. 충분히 쉬었기 때문에 저번 달부터는 웹소설 신작을 준비 중이네요. 그 외에도 옴니버스 장편 단권 작품과 그간 작품을 꾸린 단편집이 계획에 있는데 아직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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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래 작가의 단편이 수록된 앤솔러지 『꼬리가 없는 하얀 요호 설화』 또는 『곧 죽어도 등교』를 도서를 랜덤으로 1권 보내드립니다.(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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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3분께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로 드립니다.(마일리지 구매 건도 정상 응모)

 

이벤트 기간: 2022년 4월 1일(금) ~ 2022년 4월 17일(일) / 당첨자 발표: 2022년 4월 18일(월)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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