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에서 『제3의 남자』로 출판 작품 연재로 인사드리고 있는 박성신 작가님과 나눈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시나리오와 소설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작업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풀어내기라면, 시나리오는 응축하기라고 느껴집니다.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법에 익숙해 있던 제가, 이번 소설을 작업하면서 그전에 소설을 읽기만 할 때는 쉽게만 느껴졌던 작업이 거대한 장벽이 되어서 다가온 적이 있습니다. 소설에 대한 낯설음을 조금 떨치는 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Q: 시나리오를 소설로 다듬어 내신 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소설로는 첫 작품이십니다. 첫 소설을 내신 소감이 어떠신지요? 또 시나리오를 작업하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A: 먼저 제 소설 『제3의 남자』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어서 기쁩니다. 3년 정도 작업을 했지만 출판을 하는 순간까지 더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오고 나서는 다시 들여다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젠 독자들에게 맡겨야지요.
시나리오와 소설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작업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풀어내기라면, 시나리오는 응축하기라고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는 사건, 플롯, 캐릭터 들이 절묘하게 최상으로 이루어져서 관객들을 두 시간 동안 유혹해야 합니다. 최고의 장면, 대사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소설은 사건이나 플롯 위주보다는 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고, 독특한 작가만의 문체를 고민해야 합니다.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법에 익숙해 있던 제가, 이번 소설을 작업하면서 그전에 소설을 읽기만 할 때는 쉽게만 느껴졌던 작업이 거대한 장벽이 되어서 다가온 적이 있습니다. 소설에 대한 낯설음을 조금 떨치는 데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Q: 이전 작품 『처절한 무죄』나 『30년』처럼 이번 소설 역시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모와 자식, 가족이란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려 노력하신다고 하셨는데, 특별히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하고 싶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A: 기타노 다케시가 누가 안 볼 때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가 가족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겪는 사회화 집단이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형제는 스승이기도 하면서 친구이며 연인, 모든 것이 되지요.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 따라 인격 형성이 달라지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기준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신의 노력으로 변화하고 극복하는 부분과 사람도 많지만요.
저는 가족과 어린 시절이 인간에게 참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가장 많이 한 고민이 이런 부분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이 가족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는데. 왜?’ 그러나 세상에서 바꿀 수 없는 게 있다면 가족 아닐까요. 그래서 싫던 좋든 꽃밭이든 진흙창이든 그 안에서 이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서로를 미워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그렇게 원망했던 가족을 이해하고, 이해했던 가족을 원망하면서요.
제 전작 소설 『30년』에서는 무엇이 진짜 가족인가 묻고 싶었고, 『제3의 남자』에서는 가족이란 구원인가 원죄인가 묻고 싶었습니다. 이런 물음이 어쩌면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던져진 저에 대한 이해와 가족에 대한 고민인 동시에 저의 삶을 지속하는 정당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가족이란 등에 지고 가는 십자가이자 희망의 십자가가 되는 양면성을 띄는 것 같습니다. 구원이 될 수 있고 원죄가 될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 안에서 삶과 인류의 희망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Q: 『제3의 남자』에서는 과거 60~70년대 서울의 풍경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당시 시대상을 실감나게 그려내기 위해 자료조사를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집필 과정은 어떠셨나요?
A: 60~70년대의 서울의 풍경과 현재의 풍경을 배경으로,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에 아버지와 아들이 서 있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로 사진과 영화를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광고를 보면 그 시절 유행을 알 수 있어서 참고도 많이 되고 재밌었습니다. 또 영화를 보면서 ‘패션은 돌고 돈다’, ‘여자들은 언제나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죠.
Q: 『제3의 남자』 속 인물이나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했을 법한 현실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참고하셨던 사건이나 인물이 있으셨는지요?
A: 서중태는 그 시절 고문 기술자를 찾아보면서 여러 명이 합쳐져 재탄생한 부분이 있습니다. 해경은 정인숙 사건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실제로 1970년도에 벌어진 정인숙 살인 사건은 오빠가 범인으로 잡혔다가 출소 후 범행 일체를 부인하면서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이 사건이 그 당시 시대상과 문제들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호팀은 실재 안기부가 운영했던 비밀 도청팀, 미림팀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Q: 특별히 주인공의 아버지 월출이 남한에서 다른 직업도 아닌 책방을 운영한다고 설정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길을 가다가 길거리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를 보면서 ‘저 할머니는 언제부터 나물을 팔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 의문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나물을 팔지 않았을 텐데. 한때는 빛나던 청춘과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럼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소설에 나오는 미스 박의 초반 모델은 사실 나물을 파는 할머니였습니다.
주인공 직업이 책방주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제가 책방을 좋아하거든요. 책방에 ‘탁’ 발을 디디면 안정감, 호기심, 흥분감, 미스터리함이 동시에 들곤 하지요.
그 다음 그 많은 책 더미에 파묻혀있는 주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물어보면 말이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책을 찾아주는 백발의 노인. 책을 다 읽은 건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고 사연도 있어 보입니다. 처음부터 주인공의 직업으로 딱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Q: 준비 중이신 차기작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노화』라는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의 실종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이 실종자를 뒤쫓는 전직 늙은 형사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늙음과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서서히 밝혀집니다. 거대한 조직, 쫓고 쫓기는 사람들, 상식 이상의 미스터리한 일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장르는 스릴러미스터리 형식을 빌겠지만, 꼭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죽어가고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똑같은 결과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늙음을 추하게 여기고 죽음은 외면하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을 통해서 진정한 죽음과 늙음이란 무엇인지 더 깊이 고민하며, 저에게, 세상에게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