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액션 스릴러 『과외활동』 이시우 작가 인터뷰!

2020.11.4

살인을 취미로 하는 ‘동호회’의 범죄자들을 깨부수는 이야기, 『과외활동』

“처음부터 제가 진짜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실 『과외활동』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청춘 액션 스릴러 『과외활동』 단행본 출간을 기념해 이시우 작가와 나눈 인터뷰를 매거진으로 공개합니다. 『과외활동』은 살인을 취미로 하는 미스터리한 집단 ‘동호회’가 처음 등장했던 단편 소설 「동호회」를 장편화한 작품으로, 십대 청소년 두 명이 범죄 집단 ‘동호회’를 와해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시우 작가는 범죄물을 다룰 때 어떠한 관점으로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과외활동』 단행본 작업 시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하는데요.

“네가 죽인 거야?”라고 살인마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질문을 살인마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살인 현장에서 물어보며 강렬하게 시작하는 이야기는, 케미가 넘치는 극단적인 캐릭터와 속도감과 스릴이 있는 액션 묘사, 전 시대를 망라하는 트렌디한 IT 기술로 탄탄한 서사를 갖춘 장편소설로 완성되었습니다. 작품의 도입부 사건 속 배경이 된 단골 카페부터 인간미 넘치게 변해가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설정, 속편 및 차기작 집필과 관련된 작품 활동 등 연재로는 미처 만날 수 없던 풍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단골카페, 부엉이 다방

Q. 여기 오기 전 포털에서 부엉이 다방을 찾아보다가, 실제로는 이 카페가 상당히 아늑한 공간이란 사실에 인지 부조화를 일으켰어요! 단골 가게이신 데다, 이렇게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로스터리 카페를 작중에선 범행 장소 중 하나로 쓰시다니… 심지어 불가피하게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면도 있는데요, 이참에 공개 해명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웃음)

A. 사실 본문 중 등장하는 ‘부엉이 다방’은 이곳에서 이름만 빌려온 다른 곳입니다. 제가 이름을 못 지은 채로는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거든요. 빨리빨리 써야 하는데, 카페 이름으로 고민을 길게 하자니 이야기가 막히잖아요. 그렇다고 스타벅스라고 하기엔 말이 안 되고. (웃음) 개인 카페 이름을 써야겠다 싶어서, 구글 맵으로 찾아 볼까 하다가 이곳이 생각났어요. ‘부엉이 다방’이라고 하면 작품에 소품 이야기도 나올 수 있고 다른 카페와 구별 가는 개성도 느껴질 것 같았고요. 물론 쓰기 전에 허락은 받았습니다. 부정적인 장소로 나오는데 괜찮냐고 여쭤봤더니 흔쾌히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Q. 사실 저희가 작품을 읽으면서 각자 상상했던 ‘부엉이 다방’이 다 달랐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만…) 상당히 모던하고 큰 카페를 상상하기도 하고, 시꺼먼 필름지가 붙은 시골 다방을 연상하기도 하고.

A. 실제 모티브가 된 카페는 따로 있어요. 예전에, 제가 인터넷 모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시절, 거기 회원과 사소하지만 큰(?) 분쟁이 있어서 ‘현피’(요즘도 이런 말 쓰나요?)를 뜨러 갔던 카페인데요. (그땐 다들 E 작품에서 A파냐, R파냐 하면서 진지하게 싸우고 그랬거든요.)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러 간 건 아니었고.(웃음) 저는 친구 한 명만 대동하고 약속장소로 향했는데, 알고 보니 상대방은 엄청 많은 인원이 나와서 그 카페를 꽉 채우고 있었던 거예요. 카페에 딱 도착했는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저를 돌아보던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 기억을 이번 작품에서 살린 셈이죠. 그나저나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네요. 그 카페는 지금쯤은 없어졌을 것 같아요.

 

 

Q. 평소에도 ‘부엉이 다방’에 종종 방문하셨나 봐요.

A. 그런데 매일 와서 커피는 안 마시고 술 마시고. (웃음) 지금은 술을 팔지 않지만, 예전엔 가게를 두 곳 운영하셨거든요. 그때 카프리가 쌌는데, 또 제가 카프리를 좋아해서… 낮술을…(미소)

 

 

Q. 작가님을 단골로 만든 ‘부엉이 다방’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A. 사장님이 예전에 술을 같이 드시다가 커피로 술 좀 깨고 집에 가자며 블루마운틴을 내려 주셨어요. 그게 엄청 맛있더라고요. 너무 맛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후에 와서 핸드드립을 시키면 굉장히 귀찮아하시더라고요. (웃음) 커피를 별로 안 좋아해서 커피 맛도 잘 모르는데 술 취한 상태에서 마셔서 그런지 유독 맛있었어요.

 

 

진지한 대화 속 귀여운 부엉이 소품 배경의 조화가 어쩐지 재밌습니다..ㅎㅎ

 

Q. 저희가 매거진에 『이계리 판타지아』 출간 후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올렸던 것이 2019년 1월이더라고요. 신사동에서 진행되었던 그 인터뷰가 벌써 거의 2년 전이라니…. 시간 참 빠른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사이 많은 것이 변했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작가님 직업 특성상 훨씬 바빠지셨다고는 들었습니다만.

A. 엄청 바빠졌어요, 집 밖에도 못 나가고 있습니다. 거의 반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요. 2주에서 한 달 정도까지는 굉장히 즐거웠는데, 거기서 기간이 더 길어지니까 사람이 망가지는 것 같더라고요, 집 밖에를 못 나가니까. 새벽까지 일하다가 자고 일어나서 세수하고 다시 앉아서 일하고. 재택근무를 하기 전에도 근무 시간이 자유롭긴 했는데, 그래도 완전히 재택근무가 되니 더 생활이 제어가 안 되어서요. 이제는 일하는 시간을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잘 안 되더라고요. 해가 떠 있으면 일도 못하겠고 글도 못 쓰겠어요. (웃음)

 

 

Q. 그나저나 이번에 드디어 얼굴 노출을 허락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얼굴 노출과 관련해서 회사에서 허락을 받는 과정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비하인드 좀 들려 주세요.

A. 제가 『이계리 판타지아』로 인터뷰를 했을 당시 다녔던 이전 회사에서는 겸업을 안 반기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얼굴 노출을 좀 꺼릴 수밖에 없었죠. 사실, 업계 관계자분들께 좀 민망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계속 얼굴 없는 작가로 있을 것도 아니고 해서 이번엔 공개하자 싶어서 새로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인사부에 정식으로 허락을 구했는데, 의외로 회사에서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인터뷰도 좋다고, 가서 우리 회사 좀 홍보하라고 하시질 않나. (웃음)

 

 

Q. 그렇다고 하면 회사 소개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겠네요. 간단히 회사 소개 부탁드려요.(웃음)

A. ‘루닛’이라는 회사인데요. 인공지능 딥러닝 베이스로 의료 영상을 분석하고 판독해서, 영상의학과 의사분들이 하는 일을 대신하여 질병을 진단하는 AI를 만드는 곳입니다. 자랑을 좀 하자면, 월드와이드한 리딩 컴퍼니 중 하나입니다. 의료 영상 쪽에 오래 있다 보니, 기술 발전의 변천사를 지켜보고 있는 셈인데, 저희 회사 정말로 멋있어요. 보통 병원에 가서 환자가 촬영을 하면 의사가 그 결과물을 보고 질병이 있는지 판단하시잖아요. 저희 회사 제품으로 촬영하면 몇 초안에 바로 결과가 나와요. AI의 학습을 위해 실제 의사 선생님들의 참여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Q.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네요.

A. 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요. 테스트를 해 본다고 제 엑스레이 사진을 넣고 결과가 나오길 2, 3초 정도 기다리는데, 엄청 긴장되더라고요. ‘98% 암이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죠. 90% 이상이 나오면 거의 확정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Q. 결과는 어떻게……? 당연히 건강하셨겠지만.

A. 네, 생각 외로 저는 간도 위도 튼튼하더라고요. 그래도 건강을 위해 지금 다이어트를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장편, 과외활동

Q. 작가님 첫 단편이 「동호회」잖아요. 첫 작품부터 이토록 ‘센’ 작품이라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게는 너무 고통스러웠던 작품이기도 해요…. 너무 강렬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처음에 읽고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 이야기를 『과외활동』으로 동호회를 때려잡으며 풀어 주셔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는 심정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흑흑…. 어쩌다 「동호회」처럼 무서운 작품을 쓰셨던 건가요.

A.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친구들이랑 술 먹다가 ‘요즘 읽을 만한 소설이 없다, 어떻다’ 이런 이야기를 술 기운에 했더니 친구가 ‘그럼 네가 써 보든가’ 이러길래, ‘좋아, 내가 써 볼게’ 하고는 진짜로 써 본 거예요. 그게 「동호회」였죠.

어쩌다 첫 작품으로 「동호회」 같은 소재를 쓰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 첫 작품이라고 플롯도 짜고 전개를 어떻게 할지 미리 구상해 보고 대충 글로도 써 두고 하는 준비를 다 한 다음에 글을 썼던 건 기억나요. 그런 식으로 글을 쓴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저는 그런 게 안 맞는 거 같아요, 미리 플롯 짜고 계획적으로 글 쓰는 것. 재미가 없더라고요, 오래 걸리기도 하고요.

 

 

Q. 그럼 『과외활동』은 「동호회」랑 다르게 플롯을 짜지 않고 그냥 쓰신 건가요?

A. 네, 『과외활동』은 플롯을 짜진 않았어요. 「동호회」 사람들이 나오고, 이들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써야지, 생각하는 정도였어요. 아, 어떤 캐릭터들이 나오면 재밌을까 생각은 해 뒀는데, 작품 속 캐릭터들은 사실 ‘셜록’과 ‘왓슨’의 패러디예요. ‘모리어티’ 역은 ‘선생’이고요. 이 구도는 사람들이 많이 차용하고 또 편하게 쓰니까, 알기 쉽고 누구든 매력을 느낄 거라 생각했어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부부탐정』 느낌도 살짝 가져왔고요.

 

 

Q. 첫 작품 「동호회」는 범죄자의 시각에서 쓰셨는데, 이번에는 동호회의 범죄자들을 깨부수는 이야기를 쓰셨죠. 같은 소재를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다시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일부러 같은 소재를 다른 방향에서 써 보자 했던 건 아닌데요, 아, 처음부터 제가 진짜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실 『과외활동』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처음 글을 쓸 때는 제가 딱히 글을 써 본 적도 없었고, 장편을 써 본 적은 더더욱 없었으니 단편부터 한번 써 보자 싶었죠. 당시엔 범죄물 잘 쓰시는 로렌스 샌더스 작가님같이 냉정하게, 내 주관이 개입되지 않게, 그런 관점으로 한번 써 보고 싶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렇게 쓰라고 해도 못 쓸 것 같아요.

‘범죄자의 시각’ 하니 말이지만, 범죄물을 다룰 때 피해자와 범행에 대한 묘사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어떤 관점에서 써야 하는지가 이 시대의 화두잖아요. 저는 관점은 중요하다고 봐요. 수위보다는, 어떤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외활동』도 단행본 작업하면서 그런 부분을 수정했어요.

 

 

Q. 『과외활동』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속도와 스릴이 그대로 느껴지는 매력이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작가님께서 실제로 오토바이나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고 서킷에서 주행도 하신다고요. 역시 글에서 그토록 생생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즘도 계속 속도를 즐기시나요? 생각해 보면, 작가님의 취미 생활은 코로나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셨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야외에서, 혼자 즐기시는 거고.

A. 영향받은 취미 생활 많죠, 못 다니게 된 곳도 많아지고. 그럼에도, 오토바이 같은 경우는 괜찮아서요.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지만, 이게 코로나 시대에 궁극의 취미 활동이라고 그러거든요. 헬멧도 쓰고, 비대면이고. 사람들과 접촉할 때도 귀찮으니까 다들 헬멧 그대로 쓰고 있고.(웃음)

 

 

Q. 최근에 취미 생활을 즐기시며 생긴 재미있거나 혹은 무서운 상상을 불러일으켰던 경험이 있으셨나요?

A. 어, 하나 있어요. 한창 활 쏠 때의 이야긴데요, 보통 활 연습은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하거든요. 공사가 멈춘 공사장이나 산이나, 산에서도 등산로에서 벗어나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그런 곳으로 가고요. 개활지로 활이 날아가면 위험하니까 한쪽이 벽으로 막혀 있는 곳에 과녁을 놓고 쏴요.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갑자기 활이 너무 쏘고 싶어서, 그날은 아파트 뒤쪽 공터로 갔어요. 산과 맞닿아 있는 곳이고, 사람들은 그 반대쪽으로 다니는데요. 활을 쏘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이가 저를 보고 ‘호크아이인가 봐’라고 말하더라고요. 근데 그 아이와 같이 있던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저를 보시더니 경찰에 연락하시는 거예요. 사람들이 곧잘 오해하곤 하는데, 활 쏘는 건 불법이 아니고 엄연한 스포츠 활동이거든요. 그런데 활을 들고 있으니 무슨 위험인물처럼 보인 것인지, 신고를.

여하튼 경찰관분들이 오시더니 민증 확인하고 안전하게 쏘시라고 말하시더라고요. 위험해 보이니까 그러신 것 같아요. 그 뒤론 정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서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웃음)

 

 

Q. 경찰 신고 얘기가 나왔으니 말씀이지만, 사실 『과외활동』에서도 이영의 질주 장면도 그렇고, 경찰분들이 경광등 울리면서 쫓아올 만한 일이 너무 많아서 이걸 과연 우리가 청춘물로 홍보해도 될까… 10대 독자들을 위한 경고문 같은 걸 삽입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온갖 생각이… (눈물) 그나저나 작중 범법 행위를 묘사하실 때, 이런 거 써도 될까 하는 고민, 혹은 수위 조절에 대한 고민은 없으셨나요?

A. 그렇잖아도 오토바이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마 그분들이 싫어하는 오토바이 행태를 이영이 다 하는 거 같네요. (웃음) 주인공이 청소년이라서 신경 쓰인 건 사실인데, 만약 주인공이 성인이었으면 그냥 ‘반사회적인 면도 있는 사람이구나’하고 넘겼을 것 같아요. 솔직히 지금 소중한 사람이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급박한 상황인데 신호 다 지키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어쨌거나 그래도 이영은 청소년이라서 걱정이 좀 되긴 했어요. 가는 길에 공사장 헬멧이라도 훔쳐서 쓴다고 할까 생각은 했는데, 전개상 결국 그런 장면을 넣지는 않았습니다.

 

 

 

Q. 오토바이 이야기하니, 『과외활동』 표지 관련해서 준비할 때에, 작가님께 영이 삼촌의 오토바이 기종을 여쭈어 보았던 것 기억나시죠? 디자이너분께서 조사를 많이 하시고 굉장히 예쁘고 역동적인 오토바이 표지를 완성하셨어요.

A. 제가 드린 기종하고는 다른 기종인데, 클래식하면서도 힙한 기종인 모토구찌를 그려주셨더라고요. 디테일을 너무 잘 살려 주셔서, 오토바이 좋아하시는 분들이 표지 보고 사이드백 브라켓까지 달려 있다고, 그거 보고 모토구찌구나 하고 아시더라고요.

 

 

Q. 실제로 타 보신 기종이실까요?

A. 모토구찌는 제가 타 본 건 아니고요. 비싸요. (웃음) 그건 이태리제인데, 저는 무난하게 일제 좋아하는데 시국이 이래서… (일동 웃음)

 

 

Q. 영이 삼촌의 오토바이 기종으로 BMW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우리나라 30대 남자들이 헛바람이 들면, 이상하게 오토바이든 차든 상관 없이 BMW라는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에 매혹되더라고요. 난 30대인데 돈 좀 써도 되고, 멋도 부리고 싶고, 여전히 젊어 보이고 싶고 그러면 BMW 좋아하더라고요. 「동호회」에서도 보면 BMW 차 타고 그러잖아요. 「동호회」에서 주인공이 자동차 동호회 활동을 하는데, 제네시스 몰고 다니는 애들은 어린 양아치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와요.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 같은 건데. 아무튼 오토바이도 그런 의미에서 그런 기종으로 설정했습니다.

 

 

Q. 『과외활동』 디자이너가 작품을 읽고 너무 잔인하고 무서워서 표지 시안을 그렇게 잡았는데 막상 가져가면 편집부에서는 너무 표지가 무섭다고 한다는 거예요.(웃음) 이 온도차가 다른 지점이 재밌는데, 결국 디자이너가 여름의 끝이 느껴지는 시원한 색감을 반영해 멋진 표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표지에 대한 작가님의 감상이 있으시다면? (구체적으로 마구 칭찬해 주셔도 됩니다… 우후훗.)

A. 이런 느낌으로 나오지 않을까 했던 표지가 나와서 기뻤습니다. 상승하는 이미지잖아요. 나락까지 떨어졌다가 벗어나는 이야기라서 그런 게 잘 담긴 것 같아요.

 

『과외활동』 표지 초기 시안

 

 

Q. 온전히 성인 독자 대상의 정말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쓰실 생각도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A. 로맨스릴러 공모전에 다크 판타지풍으로 써서 내 보고 싶었어요. 버지니아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이라는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기도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쓰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 느낌으로 써 보고 싶어요. 구상은 한가득인데, 쓸 게 많네요. (웃음) 『무명의 별』은 많이 써 뒀어요. 완결하고 브릿G에 연재하려고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Q. 글을 쓰는 속도가 보통 빠르신 건 아니신데…. 브릿G에 올리신 단편 중에 작가의 말에, 37분만에 호러 단편 하나를 쓰셨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이화령」도 비슷하게 쓰셨다고 하셨었고요. 뭔가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완성되고 나면 폭발하듯 후루룩 써 버리시는 건가요? 어떻게 그렇게 빠른 집필이 가능하신가요?

A. 모든 글이 다 그렇지는 않고요, 저는 빠르게 써지는 글이 있고, 빠르게 안 써지는 글이 있어요. 『무명의 별』은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이듯, 한 편 한 편 힘들게 쓰고 있어요.

반면 최근에 써서 브릿G에 올렸던 「996.. 997..」은 새벽 2시에 잠깐 일하다가 깜빡하고 있던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떠오른 작품인데요. 꼭대기 층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중에, 갑자기 계단 복도에 누가 서 있는 것 같아서 흠칫 놀랐거든요. 문득 어릴 때 많이 했던 놀이가 떠오르더라고요. 13층까지 30을 셀 동안 못 올라가면 귀신이 나를 쫓아 올거라며 놀았던 기억이. 어라, 이거 왠지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가자마자 일 제쳐두고 쓰기 시작했죠. 브릿G 편집기에 바로 썼습니다. 브릿G 편집기 아주 좋아요. 잘 쓰고 있습니다.(웃음)

『과외활동』도 이틀 만에 썼어요. 나중에 맞춤법 등을 수정하면서 브릿G에 연재 형태로 끊어 올린 거고요. 매번 어느 지점에서 끊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올렸어요.

 

 

Q. 피처폰, 석궁, 오토바이, 무인 자동차가 이번엔 나왔네요. 작품마다 각종 기계장치에 대한 작가님의 매혹이 느껴집니다. 최근에 출간된 구구단편서가 『출근은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에 수록된 「솔의눈 뽑아 마시다 자판기에 잡아 먹힌 소년 아직도 학교에 있다」에는 ‘식인 자판기’가 나온 적도 있는데요.

A. 제가 공돌이인데다가 회사에서 선진 기술로 기존에 없던 서비스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이계리 판타지아』에 3D 프린터로 활촉을 만드는 장면 있잖아요, 사실 그것도 직접 해 봤거든요. 3D 프린터 해상도가 높지 않은데 나사산이 과연 구현될까 싶어서, 레이저 스캐너로 나사산을 스캔하고 출력해 봤어요. 실제로 잘 꽂히더라고요.

어쨌거나 그런 소재들은 대부분 체험에서 가져와요. 『과외활동』에서 연구소에 가서 추격해 오던 차를 따돌리는 장면도, 실제로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한 연구소에서 무인 자동차 한두 대가 나와서 주행하는 걸 본 거예요. 거기서 착안하긴 했지만 작품 속 무인 자동차 설정은 실제로 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이 보면 화를 내시겠죠. 과장이 많이 섞여 있거든요. (웃음)

 

『출근은 했는데, 퇴근을 안 했대』 표지의 ‘식인 자판기’

 

Q. 『과외활동』에서도 천재 해커가 주인공이지만 각종 구식 기계가 등장하는 나름의 재미가 또 있죠. 그나저나 피처폰은 정말 해킹하고 거리가 먼가요?

A. 네. 어플리케이션이 깔려 있지 않아요. 옛날 피처폰은 녹음을 담당하는 별개의 칩이 있어서, 카세트테이프처럼 칩에 녹음이 되는 거예요. 지금은 해킹 가능한 OS에 어플리케이션을 띄워 놓고, 그걸로 녹음한 데이터가 디지털 형태로 담겨 있어요.

사람들이 해커가 모든 걸 해킹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해커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걸 털어야 이득이 있잖아요. 피처폰을 해킹하려고 하면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옛날 피처폰을 해킹하지는 않죠.

 

 

Q. 다음 작품에 나올 기계 장치가 있을까요?

A. 제가 AI 필드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까 AI 이용해서 SF 쓰란 말도 많이 듣는데요. 너무 직물적이면 또 그다지 끌리지가 않네요.
다음엔 사극을 쓰고 싶은데… 사극에 기계 장치가… (고민)

 

 

Q. 『과외활동』을 시작하실 때에 발랄한 청소년 로맨스가 될 거라고 예상하셨다고 들었어요. 놀랍습니다~ (웃음) 작품에서 어떻게든 로맨스의 냄새를 착즙하려는 1인이기는 합니다만, 작가님께서 그런 장르에 대한 욕심(혹은 상상)을 하셨다는 게 정말 재미있네요. 정말로요? 발랄한 청소년 로맨스가 되리라 예상하셨나요?

A.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게 흘러가 버렸네요. 저는 장편은 뒤를 모르고 써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뒤를 알면 지루해서 쓸 수가 없어요.

 

 

Q. 독자들에게 이 장면만큼은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다 하는 『과외활동』 속 인상 깊은 장면이 있을까요?

A. 이영이 영동대교에서 급정거로 넘어지는데, 아주머니가 학생 괜찮냐며 오토바이를 세워주는 장면이 있잖아요.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좀 못됐고 반사회적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우리끼리는 브라더후드 같은 게 있어요. 예를 들면, 타다가 넘어지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서 괜찮냐며 일으켜 세워주고 차들 막아주고 그런 게 있거든요. 그 장면도 그런 면을 살린 건데,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라서 좋았어요. 그 부분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짠했다고.

또, 선생이 동호회 나머지 회원들을 죽이려고 능글능글하게 석궁 좀 배치하고 놓아 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도 맘에 들어요. 활은 쏘고 재장전을 해야 하니까 쉽게 저지될 수 있어서 말이 안 되는데, 석궁은 장전해 놓고 쏘기만 하면 되니까 가능한 장면이거든요. 원래 일반 석궁은 불법이 아니에요. 다만, 작중에 나오는 석궁은 컴파운트 석궁이라고 총보다 위력이 쎈 석궁이 있어요. 방탄복 다 뚫고 들어가고. 그게 등장하는 장면이었죠.

 

 

 

 

과외활동의 캐릭터

Q. 『과외활동』의 주인공인 이영과 김세연은 초반부를 집필할 때와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때의 인상이 많이 바뀐 캐릭터들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만 들으면 작가님은 두 사람이 맘대로 돌아다니게 그저 풀어주셨을 뿐이고, 둘의 이야기를 지켜보다가 기록할 뿐이고, 그런 느낌도 들어요.

A. 네, 애들이 제 예상과 다르게 많이 바뀌었어요. 처음엔 ‘미녀’ 김세연 이렇게 썼는데, 쓰다 보니 좀 낯간지럽기도 하고 외모 묘사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뒤에 가서는 외모 묘사를 빼고 갔어요. 이영 캐릭터는 많이 이해가 되었는데, 김세연 같은 경우는 쓰면서 계속 미스터리였어요. 사람들이 이걸 못 알아봐 주셔서 안타까운데, “네가 죽인 거야?”라는 첫 질문이 정말 캐릭터를 많이 설명해 주는 질문이거든요. 얘가 정말 똑똑한 친구인데, 살인마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질문을 살인마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살인 현장에서 물어볼 수 있다는 게 어떤 아이인가 하는 거죠. 합목적성이 뚜렷한 캐릭터예요. 그래서 만약에 이영이 범인이었다고 해도 대응할 방법이 있으니 그런 질문을 했던 거죠.

“네가 죽인 거야?” 같은 김세연의 첫 질문에서나, 『이계리 판타지아』 시작에서 미호가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구시렁거리는 장면 같은 데에 이끌려서 글을 진행해 나가다 보면 그 사람이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걸 원하는구나, 무엇을 싫어하는구나, 무엇을 좋아하는구나 등 캐릭터가 점점 명확하게 잡혀가죠.

그래서 장편은 플롯을 써 놓고 쓸 순 없을 것 같아요. 결말에서 이렇게 끝나겠지 하는 느낌은 있는데, 예상대로 끝난 적은 잘 없어요. 써 놓았던 작은 대사들을 보다 보면, 지문으로 넣어도 되는데 이걸 왜 대사로 썼을까 싶은 순간이 있는데, 나중에 그게 복선이 되기도 하고 캐릭터를 설명해 주는 힌트가 되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Q.  마치 몇 수를 내다보는 장기를 두는 듯하네요.

A. 맞아요. 재미가 없어서 공개를 안 한 단편이 하나 있는데, 김세연이 중학생 때의 일이에요. 아마 후속작에서 나올 악당 캐릭터인 중학교 학생회장과 갓 중학교 들어간 김세연이 선암여고 탐정단처럼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인데, 그 단편에 체스를 가르쳐 주는 장면이 있어요. 전교 회장이 처음 체스를 두는 김세연에게 룰을 설명해 주면서, 초보자니까 체스 말 몇 개를 빼겠다고 하자 김세연이 네가 나보다 룰을 먼저 알았다고 네가 더 잘 둔다는 보장이 어딨냐며 말을 빼지 않고 그대로 체스를 두자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장기 얘기 하시니까 문득 생각나네요.

 

 

Q. 이영이 점차 스스로 생각하고 난관을 헤쳐나가면서 갈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에 읽으면서 감탄하고 압도되었어요. 관찰력도 좋고 촉도 좋고. 그래서인지 두뇌형(?) 천재인 김세연 캐릭터에 묻힌다는 인상이 없었어요.

A. 이영이 전교 꼴등으로 나와서 머리가 나쁜 애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던데요. 사실 제가 전교 꼴등이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적이 있어요. (일동 웃음, 네???) 엄청 어렵더라고요. 이왕 공부 못하는 거 뒤에서 일등 해 보는 건 어떨까 싶었죠. 그런데 객관식 문제가 있는데 답을 다 피해 가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야기가 샜는데, 이영이 설정적으로 소년원에도 몇 번 들락날락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거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야생의 촉이 발달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Q. 부모가 죽은 화재 사건이나 다른 학생들과의 싸움, 삼촌의 학대, 오토바이 절도, 경찰서에 여러 번 불려간 일 등을 통해 이영이 배짱도 있고(물론 겁이 나지만), 싸움에 능하고, 고통도 잘 견디고(아프긴 무진장 아프지만), 오토바이 운전 실력도 뛰어나고, 학교에 방문한 경찰을 수상하게 여겨 위기를 모면하는 등 ‘캐붕’이 없는데요. 등장인물을 조형하시는 계기나 과정 등이 궁금해요.

A. 제가 쓰는 단편의 화자들은 캐릭터가 없어요. 사건 쫓아가며 묘사만 하는 사람들이거나,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있거나, 자기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죠.

반대로 장편 같은 경우에는, 일부러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설정해 놓아요. 그런 사람들이 알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극단적인 사람들을 모아 놓으면 이야기가 서로 튀는 게 있잖아요. 명확하게 그려지는 게 있어요.

옛날에 우리나라 소설가분들 중에 어느 분이 ‘영웅의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다, 나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그런 이야기도 가치가 있지만, 대중소설을 읽는데 전 왜 평범한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나는 재밌는 이야기 읽고 싶고, 그 순간을 즐기고 싶어서 보는 건데. 그래서 막 재미있고 극단적인 설정을 몰아 넣어 만들어요.

 

 

Q. 이영은 작중에서 가공할 만한 체력을 보여 주는데, 평소에 하는 운동이라도 있을까요? 긴박한 상황에 따른 아드레날린 과다일까요?

A. 제가 자전거를 원래 많이 타서 칼로리를 얼마나 섭취해야 운동하다가 쓰러지지 않는지 알거든요. 이영이 뜀박질하는 부분도 대충 몇 미터 뛰었는지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칼로리가 소비되는지 보이고. 저녁을 못 먹었으니 아마 엄청 후들거렸을 테고, 그러다 보니 햄버거 허겁지겁 먹고 그러는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은 칼로리만 충분히 들어가면 견딜 수는 있어요. 아, 아마 그 나이대 싸움 좀 하는 친구들은 집에서 팔굽혀 펴기 운동 좀 할걸요?

 

 

 

Q. 김세연은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싫은 내색을 하지만 지켜만 보는 건 아니고 옳은 일이라 도와줘야겠다 싶으면 (이영에게만 다소 위험할지라도) 행동을 하는 점이 『이계리 판타지아』의 미호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그러고 보니 『이계리 판타지아』에도 세연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동일인물은 아닐 터인데, 선호하는 이름일까요? 참고로 캐릭터 작명을 하는 작가님만의 방법 같은 게 있을지도 궁금하네요.

A. 처음에는 캐릭터 이름을 짓는 걸 싫어했어요. 그래서 『과외활동』도 3분의 1 이상이 전개되어서야 이영의 이름이 나오죠. 처음에는 이영의 이름도 정하지 않은 채로 ‘나, 소년’ 이렇게 쓰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이름이 나와야 하는 순간이 됐을 때 고민을 많이 했죠. 여튼, ‘세연’이라는 이름은 아무런 의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나온 이름인 것 같아요. 『이계리 판타지아』 미호는 신경 써서 지은 이름이에요. 김귀녀 할머니의 경우, 개그 포인트처럼 집어넣었죠. 보고 웃을 수 없는데 말이에요.

 

 

Q. 선생과 김세연은 ‘천재’로, 특히 IT 계열에 능해 보입니다. IT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이영과 같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는데요. 관련해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지만 따라 읽으며 큰 그림(?)은 그릴 수 있도록 상당히 쉽게 풀어서 안내해 준 인상이었습니다. 그런 작가님의 배려가 반영된 걸까요? 또, 노트북 하나면 가능한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A. 개발자들 레벨에서 보면 ‘아, 또 뻥치고 있네’ 이런 느낌이고, CS 엔지니어들이나 실제 필드에 적용하는 분들은 ‘아, 약간 이럴 수 있지’ 하실 것 같은 정도의 수준으로 용어 레벨을 맞췄어요.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해킹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용어가 안 나오면 김세연의 능력을 보여 주기 힘드니까요. 매뉴얼을 많이 써 본 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개발자들이 제일 화내는 게, 영화에서 보면 노트북 하나로 다 뚫는 장면 나오잖아요. 그런데 사실 불가능해요. 그래서 『과외활동』에서는 김세연이 이영을 서버실로 보내서 자기 노트북과 연결할 수 있는 백도어를 만들거든요. 이영이 안 갔다면 김세연이 해킹도 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또 금방 막히고 그러죠. 이런 부분은 리얼리티를 지킨 건데요. 과장한 건 비밀번호 맞추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또, ‘여길 누가 뚫어?’ 싶은 곳은 의외로 간단한 비밀번호로 해 두기도 하더라고요.

 

 

Q. 동호회 내에서 ‘선생’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잖아요. 일종의 맥거핀일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이런 우상화가 가능한 존재는 마치 종교처럼 보이기도 해요. 또 한편으로는 약점 잡은 사람들을 도구로 삼아 수족처럼 부리며 세력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최근의 ‘N번방 사태’가 생각 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각종 전문직들이 참여하는 은밀한 동호회라는 점이라든지… 소설은 이미 집필된 이후에 터져 나온 사건인데, 작가님도 보시면서 비슷한 인상을 느끼셨던 부분이 있을까요.

A. N번방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인간수업>과 비슷하다는 말도 들었어요.

 

 

Q. 『과외활동』도 영상화하기 정말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A. 영상 관계자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과외활동』이 영화화가 힘든 이유는 주연이 고등학생이라서 스타 파워를 싣기가 어려워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선생 캐릭터를 내세우는 게 낫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선생 캐릭터로 목소리 좋고 잘생긴 정우성 배우님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작품 활동

Q.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차기작 관련 언급을 몇 가지 하셨는데요. 다음 얘기에서, 이영이랑 김세연이 다투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셨다고도 했고, 『이계리 판타지아』의 프리퀄 격인 구한말 배경 이야기도 구상 중이라고 하셨고…. 자, 그래서, 『과외활동』의 속편도 쓰시겠다고요? 언제요? 썰 좀 풀어 보시죠. (웃음)

A. 속편에서 이영과 김세연이 무슨 일 때문에 싸워요. 이영이 어떻게 김세연을 이기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이영은 김세연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있거든요. 김세연의 사고방식이나 패턴 등을 다 알고 있고 이영이 잔머리도 좋아서 둘이 그럴듯한 대적이 되죠.

약간의 오해 때문에 대적하게 되는데, 동호회 잔당들이 동호회를 부활시키려고 해요. 중학생 김세연과 체스를 두었던 학생회장 캐릭터가 『과외활동』의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나왔던 대학생인데요. 그 대학생이 동호회를 부흥해서 자신이 제2의 선생이 된다는 인상을 주는데, 알고 보니 사실 김세연을 선생 자리에 앉히려는 거죠.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김세연이 그걸 따르고, 그 과정에 이영의 친한 친구가 죽어서 이영의 눈이 돌아가요. 이런 이야긴데, 쓰다 보면 바뀔 수도 있어요.

(이 둘의 이야기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부부탐정』처럼 써 보고 싶어요. 김세연이 탐정 회사를 차리고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하는 그런 이야기도 좋겠죠. 『과외활동』 2부 제목은 조금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Q. 이렇게 떡밥을 막 던져 주시다니… 행복해서 퇴사를 못하겠…(입틀막) 『이계리 판타지아』프리퀄로 구한말 배경 사극 판타지라니… 이건 또 언제 시작하시나이까?

A. 많이 써 뒀어요. 초반 도입부와 시놉시스도 다 짜 놨죠. 조풍과 귀녀 할머니가 메인으로 등장합니다. 미호는 나오지 않고요. 귀녀 할머니의 본명은 ‘말금’인데, 조선 말기에 흔하게 많이 쓰인 여성의 이름인지, 실제로 당시 노예 계급에서도 쓸 수 있는 이름인지 자문도 구했어요. 이 작품은 구한말 배경으로 하니 지명, 호칭, 사람 이름 등이 정말 너무 벅차고 어려워서 공부도 많이 했어요. 아는 분이 역사 스터디 동호회도 소개해 주시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못 갔네요. (아쉽)

 

 

Q. 아니 근데, 그럼 미호는… 미호는요…. 우리 미호도 연애해야 되는데…. 조씨 호랑이는 또 언제 키우고요.(풍무룩)

A. 아하하, 그러고 보니 『이계리 판타지아』 읽은 독자분들의 평이 정말 다양하더라고요.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제 지인이 책을 재미있게 봤는데 그래서 얘네가 부동산 사기 일당이냐고 말했을 때였어요. (일동 웃음) 그분이 시골에 사는 분인데 생각 외로 시골 가면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 (괴이 현상을 보면서도) 그저 유별난 사람 한둘인가 하고 받아들이시는 것도 같고요. (웃음) 프리퀄 제목은 『노호한담』으로, 『이계리 랩소디』는 아닙니다.

 

 

Q. 정말 많은 작품을 동시에 집필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화령」 장편화 작업도 저희와 하고 계시고, 괴이학회 활동도 하시고, 펀딩에도 참여하시고. 어떻게 안배해서 작업하세요?

A. 이걸 저희 전문 용어로 컨텍스트 스위칭이라고 하거든요. 『이계리 판타지아』 쓸 때랑 『과외활동』 쓸 때랑 좀 다르게 써야 해서요. 『이계리 판타지아』 쓸 때는 맨날 술 먹고. 맨정신으로 쓴 적이 없어요. 그래야 쓰면서 이상한 문장도 나오고요. 옛날 작가들 막 대마초 피면서 썼다고 하잖아요? 약간 좀 그런 기분으로 쓰는데. 아, 저는 물론 대마초 안 핍니다. (웃음) 술이라는 국가가 허용한 합법적 수단이 있는걸요.

예전에 한 작품씩 쓸 때는 괜찮았는데, 지금 회사 일도 해야 하고 쓰는 작품도 많다 보니 쉽지가 않네요. 어쩔 땐 분위기가 나질 않아서 다시 처음부터 읽기도 해요.

 

 

Q. 제가 읽은 작가님 작품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니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계리 판타지아』, 『과외활동』, 『무명의 별』, 「솔의눈 뽑아 마시다 자판기에 잡아 먹힌 소년 아직도 학교에 있다」 등 이야기에 따라 캐릭터나 시점이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걸까요?

A. 전 글을 쓰다 보면 이입하는 대상이 여성 화자일 때가 많더라고요. 제 생각엔 할머니의 성정이 강해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저희 할머니가 어떤 분이셨냐면, 해변에서 부산 깡패를 수박으로 후려치신 적도 있어요. 엄청 무서운 분이었는데, 귀녀 할머니 같은 분이었어요. 집안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기도 하고요. 제 여성 캐릭터가 실제 여성과 거리감이 있을까 봐 많이 걱정은 돼요.

 

 

Q. 『이계리 판타지아』가 빨간망토 차차의 오마주라고 하셨던 짧은 글을 타임라인에서 본 것 같은데요. 어째서 그런 거죠?!

A. 차차는 활을 쏘는 마법소녀가 나오는 개그물입니다. 주인공이 변신한 다음에 활을 쏘는데요, 결정타가 항상 활이에요. 거기 늑대인간도 나오고 도깨비도 나오는데. 사실은 거짓말입니다. (웃음) 써 놓고 나서 보니, 그렇더라고요. 좋아해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웃음)

사실 『이계리 판타지아』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이라는 작품입니다. 동화가 아니라 우화인데, 우화를 만화로 정말 완벽하게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좋아해요.

 

 

 

Q. 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계신 책이 있으신가요? 추천 도서가 있으시다면 알려 주세요.

A. 최근에 제미신 선생 책을 정말 재밌게 잘 읽었어요. 『다섯 번째 계절』 정말 재밌게 읽었고, 이제 단편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를 읽으려고 합니다.

『부적』은 저 중학생 때 정말 좋아했어요. 혹시 속편은 안 하시나요? (관심) 부적 진짜 진짜 재밌습니다. (강조) 현실에서 도망가는 이야기거든요. 환상의 세계로 도망가는 소년에 대한 이야긴데, 판타지 작품들이 대부분 딴 세계로 도망치는 거잖아요. 원형적인 이야길 다루면서도 너무너무 재밌죠. 『끝없는 이야기』라고 미하엘 엔데의 판타지 소설도 소년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다른 세계로 도망가는 이야기인데 정말 좋아하거든요. 『부적』을 같이 쓰셨다는 피터 스트라우브도 정말 좋아합니다. 이 작가 좋아한다는 분은 우리나라에 저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웃음) 스티븐 킹 너무 좋아해서 정말 한 권도 안 빼놓고 다 읽었습니다.

 

 

 

 

Q. 단편 「이화령」 장편화 작업도 하시는 중이신데, 그밖에 또 장편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단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원래 「솔의눈 뽑아 마시다 자판기에 잡아 먹힌 소년 아직도 학교에 있다」도, 네다섯 개의 옴니버스 식의 에피소드를 생각했어요. 결국 남자 주인공이 장하연에게 끔찍한 실연을 당하는 이야기로, 그래서 ‘그 소년은 아직도 학교에 있다’ 이런 제목으로 하려고 했죠. 퇴마물 같은 식으로 가도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화령」은 장편화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을 하다가, 서너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하루 정도로 확장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24처럼. 끝나는 게 조금 갑작스럽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쓰고 나서 보니까 스포츠 라이벌리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렇게 풀어내도 괜찮겠다 싶었죠.

제가 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친 사람들입니다. 좀 제정신들이 아니에요. 스트라바에 기록들 보면요. 미국에 출장 갔을 때 일어난 일인데, 엔비디아라고 유명한 반도체 회사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분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사람이 야근하고 집에 와서 자는데, 샌프란시스코 가면 4000미터부터 자전거 타고 몇십키로로 내려올 수 있는 구간이 있거든요. 그분이 거기 다운힐 1등이었는데, 누가 자기 기록을 깼다고 알림이 온 거예요. 피곤해 죽겠는데 못 참겠다고 차를 끌고 가다가 추락사하셨어요. 자전거에 컴퓨터가 있어서 그런 알림을 해 줘서 라이벌리를 부추기죠.

 

 

Q. 브릿G에 올린 단편들 중 가장 좋아하는 단편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괴담」, 「웃겨봐요, 울어줄 테니.」를 좋아하는데요. 두 작품 다 빨리 쓰기도 했고 모호하게 시작해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죠. 「괴담」은 써 놓고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들이 이 내용을 이해할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정도는 다르지만 무섭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왜 무서운지 궁금하더라고요.

 

 

Q. 2년 전 공통 질문인데요. 브릿G에 바라는 점 한마디 여쭙겠습니다!

A. 편집기에 바로 글을 쓰는 편인데, 맞춤법 검사기까지 붙으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만 들어가면 더 들어갈 게 없어요.

 

 

이시우

바닷가 태생. 호러 소설 창작 그룹 괴이학회의 창립 멤버이다. 현재는 딥러닝 AI 회사의 프로그래머로 생업을 유지하며 주로 공포와 판타지 색채가 강한 작품들을 집필 중이다. 황금가지에서 장편 『이계리 판타지아』를 출간하였고 단편집 『단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에 「이화령」을 수록하였다. 괴이학회의 도시괴담 소설집들에 「금요일 밤」과 「불청객」을 수록하였다.

 

 

“네가 죽인 거야?” 등굣길, 담벼락 밑 쓰레기 봉지 사이에 놓인 여학생의 시체를 발견한 이영의 뒤에 김세연이 나타나 김세연이 묻는다. ‘부모를 죽였다’는 소문에 시달리는 전교 꼴찌 문제아 이영은 자신과는 모든 것이 반대인, 아이돌처럼 예쁜 얼굴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김세연이 말을 걸자 ‘살인 현장의 최초 목격자’라는 당황스런 상황 속에서도 풋풋한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경찰이라면 질색팔색인 이영인지라, 그는 신고를 세연에게 부탁하고 황급히 자리를 뜬다. 하지만 어쩐지 학교에는 몇 시간만에 ‘부모를 죽인 패륜아가 우리 학교 여자애를 죽였다’며 소문이 퍼지고 만다. 이영이 시체를 목격하는 장면이 찍힌 CCTV 캡처 화면이 SNS를 떠돌기까지! 김세연에게 얽힌 몇 가지 사건들을 떠올린 이영이 김세연에게 혹시 이거 네가 쓴 글이냐며 따지자 김세연은 이영에게 화면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 설명해 주며 이 영상을 구할 수 있는 건 CCTV에 접근할 수 있는 관계자뿐임을 일러 준다.

해당 CCTV의 관리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문제를 따지자, 관리자는 대화 끝에 만남을 제안해 온다. 하지만 그는 녹음파일을 확보하자마자 태도가 변해서 이영을 죽이려고 든다. 약속장소인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패란 사실을 깨달을 때쯤, 갑자기 김세연의 목소리가 카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그녀의 도움으로 이영은 간신히 그 자리를 탈출해 패거리를 따돌린다. 그 와중에 김세연은 특정한 오디오 수리점에 들러 안쪽에 있는 기묘한 비밀방에 있는 컴퓨터에 접속할 것을 지시하는데, 그곳은 기묘한 피비린내가 나는 장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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