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럴드블럭

  • 장르: SF, 일반 | 태그: #SF #영생 #불멸자
  • 평점×58 | 분량: 257매
  • 소개: 먼 미래, 죽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행성으로 배달을 떠났던 화물 우주선 운전사의 이야기. 더보기
작가

스트럴드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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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장의 손에 내 표가 뽑혔을 때 기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냥 안도하기만 했다. 우리는 3번 정류장의 휴게실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두 평 반 남짓한 그곳은 이런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엔 너무 초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반장은 우리가 이곳에 모여야 한다고 부득불 우겼고 고작 소음이나 협소함 때문에 빠지기엔 일의 중요성이 너무 컸다.

3번 정류장은 외부 항성 순환계로 향하는 셔틀이 지나는 곳이었다. 외부 항성 순환계는 먼 길이었고 그리로 떠나는 것 중 비효율적으로 작은 짐을 실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태산만 한 짐을 실은 선박이 단 한 명의 사람도 태우지 않은 채 천천히 떠올라 별들을 향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때 매끈한 직선과 직각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항해와 도킹을 반복하며 낡고 닳아 드문드문 곡선을 띄게 된 육중한 선체가 정류장 바닥을 긁을 때마다 정류장 전체에 진동이 전해졌고 우리가 앉아 있는 휴게실 전체가 덩달아 겁에 질린 듯 부르르 떨렸다. 진공이라고 해서 고요한 것은 아니다. 몸이 떨릴 때마다 우리는 두꺼운 격벽 너머로 드나드는 무인 선박의 모습을 상상했다.

우리는 수송선을 모는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는 것은 저 너머 정류장에 있을 거대한 것들에 비하면 티끌처럼 작았다. 무인 수송선들의 작은 도시만한 몸체들은 은하를 가로지르거나 항성계에서 다른 항성계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행성의 표면에 착륙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기에 우리처럼 세세한 운반을 담당하는 셔틀이 필요했다. 궤도 엘리베이터의 정류장에 물건을 나르고, 낙후된 행성에 착륙하고, 같은 태양계 내의 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일, 그것들이 우리가 맡은 일이었고 또 만족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에 만족한다고 해서 모든 업무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선호하고 기피하는 업무가 있었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피하고자 하는 일도 있었다. 가령 A-3번 태양계에 배정받는 것 같은 일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업무였다. 작고 외진 데다가 몇 되지 않는 거주민들의 특성 때문에 아무도 이 태양계에 물품을 배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 차라리 블랙홀에 뛰어들고 말지. 제비뽑기에 걸려 지난 일 년 동안 그 태양계에 배정되었던 한 동료가 그렇게 푸념하는 것을 나는 들은 적도 있었다. 블랙홀에 뛰어들겠다는 말은 분명 과장이었겠지만 그만큼 지치는 일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지금, 반장의 손에 들린 조그마한 플라스틱 조각에 적힌 것은 내 이름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한 해 동안 A-3번 태양계의 물류를 담당해야 하는 것이 나라는 뜻이기도 했다. 한차례 안도의 한숨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나를 향한 동정의 눈빛이었다. 심지어 내 왼쪽에 앉은, 물류장에서 오가며 두어 번 본 적 밖에 없는 한 명은 안 되었다는 듯 내 어깨를 작게 두드리기까지 했다. 자리가 파하고 다들 떠난 뒤 반장은 내게 다가와 항해 자료를 건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일이 이렇게 되어서 유감이야.”

잘게 진동하는 휴게실 안에서 반장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반장은 숱 많은 눈썹을 찌푸리며 내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1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 오늘 하루는 가서 쉬어.”

그리고 그는 자기 수송선으로 돌아갔다. 휴게실엔 나만 남아 있었다. 먼지 쌓인 흐릿한 불빛에 의지해 반장이 넘겨준 데이터를 확인했다. A-3까지 가는 항로 네비게이션, 1년 동안 실어 날라야 할 물품의 목록과 행성 거주민들의 위치, 물품 보관 모선에 접근할 보안 코드와 이런저런 비상조치들…. 나는 조끼의 주머니 중 가슴팍에 달린 가장 작은 것에 칩을 끼워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 휴가를 받았다고는 하나 터미널은 딱히 시간을 보낼 거리가 없는 곳이었다. 인간이 접근할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되어, 진공이거나 무중력 상태인 구역이 대부분이었고 함선과 물품이 하루종일 오가는 거대하고 차가운 우주 정류장에 불과했다. 그나마 셔틀 정박지에서 보이는 광활한 우주공간의 모습은 볼 만 했으나, 행성 내 근무자라면 모를까 종일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이 일인 우리에겐 우주는 더이상 경이롭지도, 환상적이지도 않은 일상의 풍경이었다. 나는 결국 다른 이들처럼 내 우주선으로 돌아왔다. 철제 침대에 눕자 내 몸 모양대로 푹 눌린 시트가 몸을 감싸왔다. 나는 반나절 동안 자고 일어났다.

소형 수송선은 작다고는 하나 대형선박에 비해 소형일 뿐,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땐 충분히 큰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그 큰 몸체의 대부분은 기계실과 짐칸이라 생활공간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샤워실 한 칸과 내 몸 사이즈에 딱 맞는 철제 침대 하나, 업무 공간인 동시에 개인 공간인 조타실과 벽에서 튀어나온 1인용 식탁과 조리기구가 놓인 조리실이 전부였다. 아늑하고 포근한 나의 집이었다.

간단히 몸을 씻고 조타실로 들어가자 패널과 조명이 자동으로 켜졌다. 나는 머리의 물기를 말리며 머리 뒤에 기계를 다시 붙이고 수송선의 상태를 확인했다. 연료의 잔량과 네비게이션 컴퓨터의 작동 여부, 화물 적재량의 변동 같은 사항들. 의례적인 작업 같아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실제 중요한 작업은 대부분 자동화 되어있어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내가 하는 일도 명목상으로는 기계의 오류를 체크하기 위함이었지만 지난 이백 년간 수송선이 오작동한다는 보고가 올라간 경우는 단 세 번뿐이었다. 그나마 그중 둘은 정말 기계가 오작동 한 게 아니라 오작동한다고 생각한 사람의 착각이었으니, 우리가 하는 점검은 모든 다른 업무들처럼 무의미한 반복에 불과한 셈이다. 법은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라도 완전히 자동화가 가능한 분야에서도 최대한 인간의 자리를 마련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었고 화물선 기사 일도 그 연장선 중 하나였다.

나는 기록에 남아있는 수치와 현재 상태를 여러 번 대조한 뒤 패널을 껐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없었다.

2.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간단했다. 자원이 생산되는 곳으로 가서 배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실은 다음 중앙 물류소로 돌아가 내린다. 그리고 며칠 정도 쉬다가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물건을 싣고 필요한 곳으로 가 배분한다. 그리고 이것을 평생 반복한다.

우리가 선적하는 물건은 다양했다. 어떨 땐 식료품을, 어떨 땐 연료를, 어떨 땐 기계 장치를 날랐다. 무엇을 나르든 간에 우리는 물품에 대해 묻거나 토를 달지 않았다. 가장 기이했던 일은 소시지 수십 톤을 3기준일 안에 어느 외딴 소행성 기지로 날라야 했던 순간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의미였는지, 아마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조타실 패널이 요란하게 알람을 울리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알람은 정확하게 세 번 울린 후 꺼졌다. 첫 번째는 기상시간 알람이고 두 번째는 일정 알림음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화면을 켜자 메시지들이 들어온 게 보였다. 나는 가족들에게 보낸 메시지의 답이 온 것이길 기대하며 알림창을 눌렀다. 어제 A-3번 태양계 업무에 배정되자마자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떠오른 것은 반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간단한 인사와 격려의 말, 업무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그리고 성실함을 기대하겠다는 마무리. 컴퓨터가 써준 게 분명한 메시지를 심드렁하게 훑다가 나 역시 그것을 컴퓨터가 요약하게 시켰다. 1초도 지나지 않아 알고리즘은 핵심 단어만 뽑아 화면에 띄웠다. 성실, 감사, 적절한 업무 환경, 준비, 일정, 시작, 오늘, 저녁. 나는 단어만 남겨두고 메세지는 삭제해버렸다.

침구를 정리한 후 조종석에 앉으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제 종일 잠을 잤는데도 마치 한 숨도 자지 못한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실제로 무거운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일 것이다. 이제 1년 동안 배정된 업무지로 향해야 한다. 은하수 외곽, 일반적인 인간 거주지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쉬는 날에도 업무지를 벗어날 수 없지만, 기피되는 이유가 단순히 멀기 때문만은 아닌 곳. 그곳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때 패널이 반짝였다. 버튼을 누르자 수송선 문 앞에 사람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 동료였다. 작년에 A-3번 태양계를 맡았던 동료. 나는 의아했지만 일단 밖으로 나갔다.

우리들은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길러졌다. 혼자 있는 게 편하도록, 한 뼘 방 안에 혼자 앉아있는 일이 천국처럼 느껴지도록. 우리 사이엔 멋쩍은 침묵이 흘렀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수송선 문가에서 그는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입이 뻥긋거리는 것만 들릴 뿐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귀 뒤를 톡톡 쳤다. 아,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주머니에서 기계를 꺼내 머리 뒤에 붙였다. 어젯밤 자면서 빼놓은 것을 깜빡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네가 올해 거기를 맡았지?”

간단한 안부 인사말조차 없이 그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곳’, ‘거기’. A-3번 태양계. 동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그가 이런 어색함을 무릅쓰고 찾아왔다는 건 할 말이 있다는 뜻일 터였다. 한참 침묵이 흐른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거기 가게 되면 그냥 일만 열심히 해. 그럼 아무 일 없을 거야.”

“내가 거기서 일 말고도 할 게 있다는 것처럼 말하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그렇게 말했다. 그 외진 곳에서, 아니, 외진 곳이 아니더라도 화물기사가 일 말고 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그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가 꼭 그를 비웃는 것처럼 들려 급히 갈무리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스트럴드블럭들이 나랑 친하게 지낼 것 같진 않아.”

중앙에서는 A-3번 태양계를 ‘실버타운’이라고 불렀다. 관제탑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곳에 대해 ‘무덤가’라고 서로의 귀에 속삭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스트럴드블럭’이라 불렀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