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저녁의 괴담 두 편

건물 그림자 속에 사는 것

 

어떤 뜬소문은 후텁지근한 장마철 오후 7시 반 건물 그림자 속에서 산다.

그림자 속에는 지나가는 사람의 몸을 뺏으려는 어떤 존재가 있다고.

소문을 들은 노인들은
‘물귀신이랑 똑같은 존재인가 보네.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리를 채울 누군가 필요한 게지.’ 그리 말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땡볕을 가리는 정자 지붕 위로 유리창을 번득이는 고층빌딩 하나를 올려다 봤다.

난 그 건물 유리창에 매미처럼 들러붙어 와이퍼로 비눗물을 쓸어내다 말고 내 쪽을 올려다보는 노인들을 내려다보며 그들이 나눌 이야기를 상상했다.

하지만 노인들은 소문 만큼은 모를 테다. 그것은 고층 빌딩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 살지 않았으므로 노인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사람 몸을 뺏으려는 존재는 우리 창문닦기들 사이서 여름만 되면 도는 괴담이었다. 그 뜬소문은 이변이 일어나도 알아챌 사람이 우리 창문닦이들밖에 없는 곳, 빌딩 벽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속에 살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면 별안간 유리창 주변에 그늘이 지고, 얼음장처럼 찬 시체가 등 뒤에 업히는 듯한 오싹한 느낌이 들더니 불현듯 시커먼 그림자가 목덜미를 홱 잡아당긴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빌딩에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높은 건물이 이 부근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 일대의 주택들은 죄다 빌딩의 그림자에 잡아먹혀 대낮에도 햇빛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알겠어? 살고 싶음 해 떠 있을 때 일을 끝내던가, 아니면 랜턴이라도 켜고 일해. 농담 아녀.”

이 빌딩에 처음 출근한 날, 우리 팀 십장이던 ‘김반장’ 아저씨는 나에게 진지한 눈빛으로 조언했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조언을 농담으로 치부했다. 아귀도 맞지 않는 헛소리니까 말이다.

그 망할 사건이 오늘 밤에 일어나리라, 어제까진 알지 못했다.

 

오늘 내 담당은 건물 동쪽 면 옥상부터 2층 까지였다. 이 건물은 사방으로 난 창문 개수가 비대칭이었는데, 건물 주 입구가 있는 동쪽 면의 창문이 제일 많았다. 난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렇게 짓는 편이 더 미학적이란다.

열사병으로 허공에서 혼절하는 건 피해야 했기에, 오늘 작업도 늦은 오후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러면 베테랑이면 몰라도 나 같은 초짜는 해 떨어질 때 까지 창문을 쓸어야 했다.

“어이, 기억하지? 해 떨어지면 랜턴.”

김반장이 작업자들 중 굳이 내 쪽을 보며 제 안전모 옆을 툭툭 쳤다.

나는 김반장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허리에 차고 있던 램프를 손으로 꽉 쥐었다 놓았을 뿐이다.

창문닦이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은 ‘사람의 몸을 빼앗아가는 존재’에 대한 괴담 뿐만이 아니었다. 옥상에 이따금 출몰하는 괴물이 줄을 끊어버리곤 했다.

귀를 무선 이어폰으로 틀어 막고 추락의 공포 끝에 매달려 청소에 열중하고 있던 사이, 부지불식간에 줄이 뚝 끊어진다. 그러면 남는 건 죽음 뿐…….

나는 알고 있었다. 김반장은 그 말만은 ‘금기’처럼 집어 삼켰다. 그저께 작업자 홍씨가, 일주일 전엔 작업자 박씨가 추락해서 죽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죽어나가는 작업자들의 목숨을 우리들은 ‘괴담’ 속 몸을 빼앗아가는 ‘것’이 앗아갔다고 떠들어대곤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괴담은 ‘귀신’의 것이나, 죽은 자들의 몫이 아니었다. 분명, 산 자가 줄을 끊었다.

나는 멀어져 가는 김반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듣지 앉는 쪽이 살 길이라 믿었다.

옥상에서 아스팔트 바닥까지의 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마치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허우적거려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무력감은 나를 공포에 휩쓸게 만들었다.

내가 밑을 보고 겁먹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안전 장비를 점검한 사수 아저씨가 내 등을 밀듯이 퍽 쳤다. 질겁해서 자지러지는 날 본 사수는 낄낄 성격 나쁜 웃음소릴 냈다.

“쫄았어? 새끼가. 안 떨어져 임마.”

“예, 예.”

“오늘도 잘 하자. 넌 빡센 데 맡았으니 속도 더 내서 열심히 하고.”

“삼촌은 오늘 어디신데요?”

“난 서쪽이지.”

노가리를 다 깐 작업자들은 각자 맡은 방향으로 흩어졌다. 난 부풀어 오르는 불안을 씻어내듯 온 힘을 줘서 창문을 쓸어냈다.

슬금슬금 땅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해가 시커먼 그림자를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남은 작업량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밑으로 향했다.

“어?”

창문을 딛고 있던 발이 공중에 처 들렸다.

황급히 줄에 매달려 올려다본 건물 꼭대기에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

그것은 분명 웃고 있었다. 안전모에 달린 랜턴의 불빛으로는 그것의 정체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웃고 있었다.

그것이 줄을 끊지 않고 들어 올리고 있었다. 재빨리 다시 발 밑을 보며 땅과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뛰어내리기는 아슬아슬한 거리인데 점점 위로 몸이 올라가고 있었다. 놈의 목적은 죽기에 충분한 높이까지 끌어올린 다음 줄을 끊는 걸까? 사람을 이렇게도 간단히 끌어올리는 이 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당황하고 있는 사이 꽤 높은 곳까지 끌어 올려졌다. 이젠 줄을 끊는 일 밖에 남지 않았구나. 이젠 짧은 인생도 끝나가는 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순간 몸이 다시 훅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내 몸은 방금 전 닦던 창문 바로 위층까지 올라와 있었다. 줄이 그만큼 당겨져 위에 걸린 듯 했다. 끔찍한 건 그 그림자가 여전히 머리 위에, 조금 더 내려와 있었다는 거다. 마치 내게 다가오는 것처럼. 그림자는 밧줄을 타고 내려오려는 듯 줄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난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랜턴 불을 껐다. 건물이 드리운 암막 커튼처럼 짙은 그림자가 나를 완전히 가려줬다.

나는 발 아래를 살피지도 못하고 나와 거리를 유지하는 그림자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2층에 닿을 때 까지 줄을 끄렀다.

마침내 발이 건물 현관 천장 위 바닥에 닿았다. 난 허겁지겁 가슴과 허리에 찬 카라비너를 풀고 몸에서 줄을 떼어냈다. 그리고 직원용 문으로 뛰려 했다.

그때 내 등 뒤로 무언가 묵직하고 단단한 덩어리가 떨어져 으스러졌다.

둔탁한 소리가 한 번 들리고, 무덤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침을 삼키고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머리가 터지고 팔다리가 기이한 자세로 꺾인 홍씨가 눈을 희게 뜬 채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는 내가 얼어있는데, 홍씨의 눈동자가 정확히 내 쪽을 향했다.

난 비명을 지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닦기 작업자들의 집합 장소인 2층 계단 뒤편으로 가니 반장과 사수, 다른 작업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비백산하여 뛰어오는 날 본 작업자들이 놀라서 무슨 일이냐 물었다.

“동쪽에 그림, 그림자…… 괴물, 홍씨 아저씨…….”

다른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시선을 주고받는 가운데 김반장 아저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꼬맹이 너, 랜턴 중간에 껐지?”

“네?”

“머저리같이…… 따라와 봐.”

그러면서 김반장이 내가 도망쳐 온 길을 거슬러 성큼 성큼 나아갔다.

나와 김반장이 건물 천장 위로 돌아가 보니, 내가 봤던 홍씨의 시체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아니.” 난 억울한 마음에 탄식을 뱉었다. “진짜 봤는데…….”

“불을 꺼서 떨어진거야.”

반장이 말했다.

“빛이 있으면 안 떨어지고 계속 매달려 있어.”

“예?”

“그림자 말이야.” 반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퇴근하자. 안전하게 일하고 무사히 집에 가야지.”

반장 아저씨가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어수룩하게 서서 내가 줄을 타고 내려온 까마득한 높이의 건물을 올려다봤다.

순간, 옥상에 아까 봤던 그림자가 다시 서 있는 걸 본 것 같았다.

홍씨도, 박씨도, 이 건물서 죽어나간 작업자들의 소식은 뉴스 한 번 타지 못하고 우리 창문닦기들만 알고 있었다.

 

-끝-

 

 

꽃샘 추위

 

그 날은 유난히 시린 바람이 부는 날이자,중간고사가 시작되는 날이었어.

2학기 이야기냐고? 아니. 4월 말에 부는 거라 믿기지 않는 스산한 바람이 유독 내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에선 겨울 칼바람처럼 느껴졌거든. 붕어빵 아주머니는 4월이 지나도록 장사가 대성황이었고, 추위에 약한 학생들은 항상 외투와 담요를 챙겨 다녔지.

수 년을 다니다 보니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해진 나는 졸업한 선배에게 넌지시 물어봤어.

“그거? 생각해보니 내가 졸업하기 전에 그 전설을 동아리에 물려주지 못하고 나왔구나. 마침 잘 됐다. 네가 이 이야기를 계속 후배들한테 알려줘라.”

그렇게 나는 서늘한 성화를 전달받은 다음 주자가 됐어. 무슨 이야기가 기다릴까 내심 기대했지. 첫 마디가 뭔지 알아?

“너 학교 근처 일식집인 ‘후유노카제’ 알지? 거기서부터 시작된 얘기야.”

 

“거기가 우리 학교 미팅 명소야. 룸실 벽을 보면 하트 쳐진 이름들이 수십 쌍이 있어. 다 거기서 미팅해서 바로 이어진 애들이 쓴 거지.

아, 다는 아니지만.

거기 사장님은 젊은 애들이 자기 식당에서 인연을 맺어 연애를 시작하는 걸 보람으로 느꼈어. 그래서 벽에 낙서를 하고 100일 뒤에 자신들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서비스로 음식을 거하게 내주셨지. 음식 대신에 귀한 술을 주는 경우도 있었고 말이야. 그것 때문에 ‘대학교에서 연애하고 겨울 바람도 못 찾으면 바보다.’라는 말이 생긴 거야.”

나는 물었지, 사기 커플들도 많지 않았냐고. 공짜 음식은 누구나 좋아하니까 말야. 선배가 내게 눈치 빠른 놈이라며 이야기를 계속했어.

“그게 재밌는 부분이야. 밥만 먹고 제 갈 길 가는 애들이 너무 많았거든. 사장님도 그때 방법을 하나 떠올리셨지. 커플들을 시험하려 일본에서 가져온 술을 쓴 거야.

술, 마시는 그거 맞아.

일명 운명주. 저주 들린 술이야.”

세상에 저주 같은 게 어디 있냐 물었더니 선배가 그러대.

자기도 직접 보지 않았으면 못 믿었을 거라고.

“웃긴 게 뭔 줄 알아?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로 이뤄진 가짜 커플이냐, 둘 모두의 합의 하에 이뤄진 가짜 커플이냐에 따라서도 저주의 종류가 달라졌다는 거야.”

계속 선배의 말을 듣고 있자니, 왠지 ‘죽음’이라는 단어가 슬금슬금 떠오르더라.

억지로 생각했어. 저주라고 해 봤자 길에서 나자빠져서 코가 깨졌다거나 하는 거겠지. 왠지 떠오른대로 말하면 들어서는 안 되는 걸 들어야만 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선배는 갑자기 목소리를 작게 낮췄어.

“다들 알면서 입을 다물었지만, 그 저주들은 공통점이 있어. 누군가가 반드시 죽는다는 거지.

누가 죽는지는 감이 오지? 한 쪽이 강요했던 관계면 강요한 쪽이, 둘이서 작당한 거면 둘 다 죽어버려. 졸업하기 전에. 무조건.”

공짜 밥 좀 먹으려다 저주를 받아 죽는다니. 그럴 수 있기 이전에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선배가 이렇게 말했어.

“너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 해봤을 걸? 공짜에 미쳐서 남의 진심을 흐리게 만들고. 누군가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이 매우…… 역겨워 보인다고.

그 술이 그런 사람들을 줄이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하면 편해.”

그 말을 듣던 나는 다시 한번 궁금해졌지.

그 저주와 4월 말까지 불어 닥치는 시린 바람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거냐고.

“내가 방금 말했지? 사랑을 가지고 사기 치는 녀석들은 모두 졸업 전에 죽는다고.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릴 때가 되면 말이야. 시뻘건 휴지를 코에 틀어 막은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거든. 그럼 좀 있다 얼굴이 시퍼레져서 때에 맞지 않는 두꺼운 옷을 껴입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여. 그럼 곧이야.”

선배가 손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데. 와. 그 광기 어린 눈. 뭐냐. 입은 또 왜 웃고 있어.

“그리고 꽃샘 추위는 4월 내내 기승을 부리지. 마치 저주가 이뤄지는 때를 앞당기려는 듯이.”

거기까지 말한 선배는 놀릴 건 다 놀렸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어.

“암튼 이거 동아리에 잘 전해줘. 지금 애들은 잘 모를 거야.”

난 고갤 끄덕였지만 식은땀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었어.

그도 그럴 게……

나랑 같은 학교를 다니는 사촌의 얼굴 색이 얼마 전부터……

운명주를 먹고 저주 받았다는 사람들과 똑같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거든.

 

-끝-

호스트 코멘트

무더위가 서서히 가고 있네요. 여름 저녁 괴담 프로젝트를 종료합니다.
두 편의 괴담이 만들어졌네요 :) !
다음 번엔 보다 일찍 스레드를 세워 열 세 편을 모두 채워보고 싶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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