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흔적 (미결)

우리는 아주 편안합니다. 공기는 맑고, 이불은 따뜻하고, 침대는 포근합니다. 우리는 아주 깊은 꿈 속으로 들어갑니다. 매우 어둡지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제가 숫자를 세고 종소리가 울리면 당신은 눈을 뜹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단서를 찾아나갑니다. 하나, 둘, 셋.

 

희수는 눈을 떴다. 밝은 조명이 차츰 눈에 익자 주변 환경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희수는 자신이 원룸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기숙사네요.”
희수 곁에서 눈을 비비적 거리던 동현이 말했다.
“저는 원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두 개의 침대가 서로 거리를 둔 채 나란히 있네요. 책상도 두 개고요. 옷장도 두 개고요. 여긴 두 명이 사는 기숙사방 같아요.”

 

동현의 말대로 방 안에 있는 가구는 모두 한 쌍이었다. 그의 말대로 두 명이 거주하도록 만들어진 기숙사방 같았다.
“희수 씨가 살던 기숙사인가요?”
“아뇨. 저는 4인실에서만 살았거든요. 생각해보니, 가구 갯수만 늘리면 제가 살았던 기숙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런 짐도 없고, 단서도 없는 것 같으니, 밖으로 나가볼까요?”

 

두 사람은 문을 열자마자 도로 한복판에 서있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희수 씨, 혹시 아시는 길인가요?”
희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디선가 본 거 같기도 하면서도 어디와 비슷한지 지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먼 곳의 성당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저 성당이 있는 길을 알아요.”
“그럼 저쪽으로 가보죠.”

 

그러나 그들은 성당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성당을 향해 걸어가도, 성당 십자가는 으스스한 기운을 첨탑 주위로 끌어당기며 우중충한 하늘 위에 부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기루 같네요.”
희수가 중얼거리자 동현이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
“네?”
“신기루요. 사막에서는 신기루를 향해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이 갈 수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 저 성당은 신기루라는 말인가요?”
“혹시 모르죠. 꿈속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면서요?”
“신기루라고 해도, 그게 단서가 아니리라는 법은 없어요. 꿈에서 등장하는 모든 피사체는 희수 씨의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어쩌면 성당이 신기루라는 사실 자체도 무언가 의미가 있을지도요.”
“하지만 저는 무신론자라 성당에는 가본 적도 없는 걸요.”

 

“그럼 그 목걸이는 뭔가요?”
“목걸이요?”
희수가 목 언저리를 더듬어보니 정말 목걸이가 있었다. 가는 금실로 만든 체인 끝에 손톱만 한 십자가가 매달려있는. 그러나 기억에 없는 물건이었다.
“잘 모르겠네요. 어쩌면 선물 받은 걸 수도 있죠.”
동현이 목걸이를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꿈속에서도 걸고 있는 정도면 희수 씨한테 의미 있는 물건일지도요.”

 

희수는 목걸이를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지만 볼 수 없었다.
희수는 목걸이를 떼내려 목 뒤를 더듬었지만 고리가 없었다. 손끝으로 금실을 훑어 보아도 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왜 그러세요?”
“목걸이를 벗고 싶은데 고리가 없어요.”
동현이 희수 주위를 돌았지만 고리는 없었다.
“어떻게 하죠?”

 

“저 대신 동현 씨가 목걸이를 봐주세요. 중요한 거라면 뭔가 써져 있을지도 몰라요.”
희수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다.
동현은 희수에게 다가가 목걸이를 살짝 잡아당겼다. 희수의 가느다란 몸이 동현 쪽으로 끌렸다. 희수는 아, 소리를 냈다.
“미안해요.”
“괜찮아요. 뭐라고 써져 있나요?”

 

“아무것도 안 써져있는데요.”
“음, 전 뭐라도 써져있을 줄 알았는데… 하긴, 보통 십자가에 뭘 쓰고 다니진 않죠.”
희수는 동현에게서 다시 몸을 떼려 했다.
“잠시만요!”
그렇게 소리친 동현이 십자가를 꽉 잡고 있던 탓에, 몸을 휙 뺐던 희수는 졸지에 목걸이로 자기 목을 조른 꼴이 되어버렸다.
“어어, 괜찮으세요?”

 

희수는 잠시 쿨럭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말을 이었다.
“네, 괜찮아요. 그나저나 십자가는 다시 왜요?”
동현은 십자가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있었다. 그 탓에 희수는 살짝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동현은 정신없이 십자가만 살펴보고 있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확실하진 않지만?”
“제가 이 십자가를 꾹 누르니까, 무언가 작은 부품 같은 게 움직였어요.”

 

동현은 다시 한번 십자가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들릴듯 말듯한, 극도로 작은 찰칵, 소리가 바람 결에 흩어졌다.
“십자가의 이 긴 부분……여길 뭐라고 하죠? 아무튼, 여기서 바늘 같은 게 튀어나왔어요.”
동현의 손에는 과연, 가느다란 바늘이 들려 있었다. 검지 한 마디 정도의 아주 짧고 가늘어진 은바늘이었다.

 

“대체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희수가 중얼거렸다.
“단서……가 되겠죠.”
“단서, 단서, 이 세상 속에서는 뭐든지 다 단서네요. 꼭 수능 공부를 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걸 달달 외워야 했던 그때요. 정말이지, 끔찍한 나날이었는데…….”
“단기기억상실까지 앓고 계셨다면 공부가 더욱 힘드셨겠죠.”
희수는 고개를 저었다.

 

“단기기억상실은 최근에 생긴 거 같아요. 적어도 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성적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희수가 말했다.
“아무튼 이건, 어디에 쓰일 단서인지는 모르니 다시 넣어두는 게 좋겠어요.”
동현은 그렇게 말하고서 바늘을 다시 십자가 구멍 속에 넣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바늘이 고정되었다.

 

문득 멜로디가 들렸다.
동현은 두리번거렸지만 희수는 성당 십자가를 바라봤다. 여전히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까마귀가 날아와 십자가에 앉았다.
“예배종이 울리고 있어요…….”
“예배종이요? 이건 벨소리인데요.”
“네?”
“학교 벨소리잖아요? 요즘 성당에선 종을 울리지 않아요. 이런 멜로디도 아니고요.”
희수는 멍하게 목을 문질렀다. 금실 체인이 흔들렸다.

 

동현은 희수를 지켜보다가 성당 십자가를 바라봤다.
“다시 가볼까요?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건 신기루인걸요. 아무리 다가가려 노력해도 가까이할 수 없는 거죠. 애초에 전 성당에 가본 적이 없어요.”
“신기루여도 괜찮아요. 그 너머엔 오아시스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것도 그런 건지 몰라요.”
희수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호스트 코멘트

아이디어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이끌어나가기 어려웠나 봅니다ㅠㅠ
더 이상 붙들고 있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미결)로 두고
더 좋은 아이디어로 돌아오겠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단편을 써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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