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추모하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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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물리면 감염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보니 좀비병에 대한 별별 헛소문이 많이 돌았습니다. 공기로도 감염되니 마스크를 써야 한다거나, 개도 감염되니까 절대 데리고 다니면 안된다거나. 그 때문에 전국적으로 유기견의 수가 크게 증가하는 헤프닝도 있었죠. 정부의 서울 방어선은 좀비병을 가뒀지만 두려움이 퍼지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백신, 혹은 좀비가 되더라도 다시 사람으로 회복할 수 있는 치료제 개발 관련 소식에 쏠렸습니다.

사태 초기 보건복지부는 좀비병 치료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당시 정부 선전물에서 방어선 내 고립된 서울 시민들의 건강과 일상을 수십 일 내로 정상화하겠다는 포부가 담긴 표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국민들을 향한 정부의 이러한 입장 전달이 다소 미흡하게 이루어졌으며, 특히 대다수의 서울 시민들에겐 전달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방어벽을 쌓은 순간부터 서울 시민 대다수는 집단 패닉에 빠졌으며, 정부의 군중 통제력은 사실상 없어졌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 동안 일어난 모든 비극의 시작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약에 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이제 사람이 더욱 무서워져서, 홀로 지냈을 뿐이니까요. 그 분이 아니었더라면 말하는 법을 잊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 분이 약을 들고 다니시긴 했죠. 두통약이나 감기약, 그런 것들이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 설령 제가 그런 치료제 같은 걸 보았다고 하더라도, 구분이나 할 수 있었겠어요? 제 눈에는 자그마하고 씁쓸한 덩어리에 불과한 것들 이었는걸요. 한 번은 붕대와 소독용 알콜을 구하러 병원에 갔다가 그 분을 마주쳤어요.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그 잠깐 사이에 부쩍 자라있었어요. 못 보던 아이들도 있었구요. 그 분은 제게 약품도 주려고 하셨지만, 저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필요해 보여서 거절했어요. 제가 필요한 건 깨끗한 알콜뿐이었죠. 그런데 그때 병원을 돌아다닌다는 건, 정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렸던 곳이었으니까요. 저는 울며 겨자먹기로 간 것이었지만… 그 분은 왜 거기 계셨을까요. 분명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의약품을 챙기려고 가셨을 거예요.

 

 

 

병원은 패닉의 악영향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은 시설입니다. 좀비병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던 환자들, 혹은 환자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이 치료를 위해 병원, 특히 대학부속병원과 같은 대형 종합병원으로 몰렸습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인구 집중은 에피데믹 상황 에서 의료 인력이 수행해야 하는 핵심 업무를 마비시키기 마련입니다. 중증 환자 수용, 감염자에게서 나타나는 급성 병증에 대한 의학적 정보 공유 등, 최전선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 모조리 멈추는 상황이 되는 거죠. 거기다 이번 좀비병 사태 때는 공격성을 띄는 환자들로 인한 의료 인력 손실까지 겹쳤습니다.

 

 

 

약은 없어요. 치료할 방법도. 사태 초반에 저를 비롯한 동료들이 내린 결론이었죠. 시간을 두고 연구한다면 완전히 극복 불가능한 병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내가 오늘 죽거나 내일 죽거나의 차이일 뿐이었죠.

특별한 사명감이 있어서 남아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저 그것 외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병원에 남아 환자들을 돌봤죠.

피투성이 여자분이 축 늘어진 아이 둘을 양팔에 끼고 뛰쳐 들어온 적이 있어요. 아이들은 이미 죽은 상태였지요. 아이를 두고 다시 뛰어나가려는 그분을 붙잡았어요. 심하게 다친 것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으시더라고요. 지혈이 좀처럼 되지 않아 끙끙대다가 옆구리에 난 이빨자국을 보고 깨달았어요. 이분, 물렸구나. 성인은 5분 이내 변이한다는 것이 그때까지 알려진 사실이었죠. 제가 치료한 시간만 해도 삼십 분은 넘었어요. 아수라장 속에서 봉합하다 손 끝을 찔린 저 역시, 어쩌면.

그런데 우리 둘 다 괜찮았어요. 아이들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분이 물었고, 저는 보장할 수는 없지만 초반에 고열이 날 때를 잘 넘기면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분은 그 후로도 여러 번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어요. 점점 살리는 아이의 수가 늘어났고 나중에는 그분이 해열제를 가지고 다니면서 직접 초기 치료를 했어요.

어느 순간 그분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걸 알았어요. 얼굴 근육이 굳어서 말투도 목소리도 달라졌어요. 치료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권했지만 그분은 고개만 젓고… 이후로는 오지 않으셨어요. 좀비 바이러스 후유증이 아닌가 싶어요. 물리고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서 정확한 연구는 지금도 불가능하지만요. 저는 직접 감염이 아니니 케이스가 좀 달라요.

저는 그분의 피에 뭔가 특별한 형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귀신이거나.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하얀 헬멧의 사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이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정부는 사태 발생 후 50일차에 중환자 및 의료 인력을 중심으로 한 서울권 대형 병원 생존자 구조 작전을 전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세 차례 진행된 대규모 민간인 생존… 비 감염자 구조 프로젝트 중 첫 번째 프로젝트였던 이 작전을 두고 정부가 서울을 국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으로 선포했던 거라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도시 전체를 내전에 준하는 특수 재난 발생 및 거주 불가 지역으로 지정, 수도권에 대한 물리적 통제를 포기하는 대신 민간인 난민을 구조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이 구조 작전은 결과적으로 작전 수행 시기까지 감염자들에게 점거 당하지 않았던 병원의 의료인들과 중환자, 아동을 비롯한 민간인 시민 다수를 구조하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다소 긴급하게 작전을 진행한 탓에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좀비병 관련 연구의 데이터 대부분이 유실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어떻게 알고 계셨던 걸까요? 아이들은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지금이야 살아난 아이들 덕에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물리면 죽거나 좀비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요. 저 역시 그분이 아이를 살리고 싶다고 하기 전에는 시도해볼 생각도 못했어요. 그분이 데리고 오기 전에는 살아서 병원까지 온 아이가 없기도 했지만…

 

 

 

당시 좀비 바이러스 연구에 참여했던 서울권 대학 병원이…….

죄송합니다. 목록을 여기 어디에 두었는데. 찾을 때 까지 잠시만 쉬었다 다시 인터뷰 진행하지요.

 

 

 

…치료제요? 그런 건 없습니다…….

글쎄, 들어본 적도 없다지 않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보십시오. 아직도 좀비가 저렇게 걸어다니는데…치료제가 대체 어딨습니까? 그런 건 단 한순간도 있었던 적 없었습니다.

치료제 같은 건 없습니다. 없어야 합니다. 만약 치료제가 정말로 있다면, 제 아내는 대체 왜 죽어야 했던 겁니까? 예? 치료제로 좀비를 사람으로 돌릴 수 있다고요?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제가 아내를 살릴 방법이 있었던 거라면……

아주 사소한 실수였습니다. 대문 빗장을 지르고, 자물쇠를 걸어놓았죠. 저는 항상 자물쇠를 채우고 두어번 세게 당겨서 자물쇠가 멀쩡하게 잠겼는지 확인하는데, 그 날은 어째서인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주 사소한 습관이었고, 그래서 더욱 중요했는데… 저는 아내에게 수집품을 보여주었고, 아내는 고생했다며 이제 자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집을 지키고, 제가 나가서 물건을 가져오면, 아내는 눈을 붙이고 제가 마저 불침번을 서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 너무도 피곤했습니다. 도저히 일어서 있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죠. 아내게에 한숨만 자겠다고 부탁했습니다. 아내는 흔쾌히 들어주었습니다.

아내가 저를 깨웠습니다. 좀비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고요. 저는 화들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아내가 서바이벌 키트를 쥐어주며 집 근처 상가로 가 있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경황이 없었고, 아내도 어떻게든 살아나오겠지, 안일하게 생각하며 개구멍을 빠져나왔습니다. 아내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상가 건물 쪽으로 오긴 했죠.

그 사람이 있었다면, 아내는 멀쩡히 상가로 돌아왔을까요? 적어도 제 손으로 아내를……그럴 필요는 없었겠지요?

 

 

 

교보문고 그룹이 와해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냐고요? 당신, 그거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에요? 그 시기에 집이요? 오히려 내 쪽에서 물어 볼게요. 들어봐요.

재난이 발생했어요. 아직 좀비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모르고, 내가 잠복 감염인지 아닌지도 확신이 서지 않아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 가족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해도 상대는 받지 않고 그들이 있었을 지역에도 좀비들이 창궐했다는 소문이 들려와요.

당신이라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겠어요? 집에 돌아가서, 거길 가서 뭘 볼 줄 알고요?

 

 

 

…그 사람이 하은이를 죽였어요. 제 동생이요. 물렸거든요. 병원에 데려가려고. 그러려고 했는데 갑자기 하은이가 절 물려고 했고… 그 사람이 나타나서, 머리를 내리쳤어요. 눈 앞에서. 제 눈 바로 앞에서 하은이가….

잠깐만, 진정 좀 하고 말할게요.

죽여버리고 싶었어요, 그 사람. 나중에 진짜 죽여버리겠다고 칼 들고 찾아갔는데, 실패했어요. 그때쯤 되니까 슬슬 제정신이 들더라고요. 그때 세상엔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던 사람들이 끔찍하게 많았고, 그게 그 사람 잘못은 아니라서, 그래서 포기했어요.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 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제 상황이 낫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저는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는 못하겠어요.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어느 방향에서 온 거냐고 물은 적 있어요. 한강 남쪽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우리 집이 그쪽에 있었어요. 그래서 물어봤죠. 내가 살던 동네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 사람이 나와 그룹 사람들을 한 번 훑고는 되묻더라고요. 자기가 거기서 뭘 했는지 듣고 싶냐고.
난 답을 듣지 않았어요. 피한 거에 가깝죠. 네, 6개월 동안.

이런 말 하긴 싫지만, 서울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당신도 인터뷰를 계속 하다 보면 이 당신 앞에 앉은 사람들이 다 범죄자라는 걸 알겠죠.
그 사람을 까내리려던 건 아녜요. 그냥, 그 사람이라고 달랐겠냐는, 뭐, 그런 거죠.

호스트 코멘트

접읍시다!
엔딩으로 쓰기에는 최악의 마무리 문구이지만,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역시 스레드소설의 편수를 나누면 화력이 유지되지 않네요.

부족한 진행에도 1, 2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같이 놀아주셔서 고마워요.

참여자


후원자

조나단그리고 익명의 후원자 6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