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 및 지하사원

환자는 휠체어에 탄 채로 들어왔다. 고개를 한쪽으로 꺾은 채 무기력한 얼굴로 앉아있는 중년남자. 나는 차트를 확인했다. 망상장애. 섬망과 사건 이후 트라우마로 파괴된 언행. 분열적인 사고 방식. 김인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쉽지 않은 환자가 되겠군. 속으로 생각했다. 간호사가 문을 닫고 나가자 나는 그에게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제가 앞으로 환자분 상담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디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 주시고요. 이건 녹음기에요. 환자분하고 저하고 얘기하는거 녹취를 할건데 이상한거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4월 30일 녹취 시작.
김인성이. 음 김인성이. 그래 김인성이 돌아온 게 언제냐면은 그러니까… 내 기억에 더워지기 시작했을 때니까 8월 초였던 것 같아요. 그 날도 저기 어디야. 제분소에서 농협에 갖다줄 밀가루 포대를 싣고 있었는데, 시내에서 흑염소집 철순이가 전화를 했어요. 서울에서 인성이가 왔다고.

 

이 뭐 같은 놈이 용케 돌아왔구나 싶었지. 마을을 떠날 때 서울에 있는 지인이 재개발 지역 정보를 미리 알아서 공동으로 땅 사자는 제안을 했다고, 이리저리 돈을 빌렸어요. 그놈이 어릴 때부터 똘똘하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워낙 그럴싸하게 말을 해서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던 거지. 고소라도 안 하면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놈이 제발로 돌아온 거야.

 

그러니까 뭐 어쨌겠어. 동네에 난리가 났지. 그놈 상판때기 보겠다고 온 사람만 10명이 넘었어. 나, 형석이, 용수, 재현이 또 누구였더라 동네 어르신들도 몇 분 계셨지. 또 형석이는 지가 죽여버릴 거라고 어디서 오함마를 들고 왔더라니까? 철순이랑 나랑 떼어 놓느라 고생 좀 했어요. 철순이가 나 안 불렀으면 살인났지.

 

씨발! 내가 거기서 왜, 이 꼴 보라고. 환자분 진정하세요. 아니 내가 진정하게 생겼냐고, 놓으라고, 놔! 나. 내가 얼마나. 안돼 인성아. 그만해 잘못했다! 인성아. 왜 그래 인성아. 형석이가 잘못했다잖아. 그만하자. 제발 인성아. 잘못했다니까. 이 개새끼야 형석이가 뭔 잘못을 했어. 니가 돈 들고 날은 거잖아. 돈만 아니면 제수씨랑 식도 올렸을건데.

 

*녹취 끝.
녹취는 여기서 끝이다. 후에 환자는 이성을 잃고서 거의 1시간 동안 김인성을 부르면서 발작하다 결국 기절했다.
“뭐라고 다른 말은 안 합디까?”
녹취를 같이 들은 김 형사가 말을 꺼낸다.
“이게 다입니다. 형사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게…”
김 형사는 말을 하다가 말더니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한참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담배 한 대 괜찮을까요?”
나는 김 형사에게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그… 김병국 환자 동네에 행복 정육점이라고 있습니다.”
행복 정육점. 행복 정육점. 촌스러운 이름이다. 뭔가 익숙한. 어디서 들어봤더라.
“모르실 겁니다. 워낙 시골이라 뉴스도 안 났어요.”
김 형사는 말을 멈추고 담배를 물고 깊게 빨아들인다. 그 끝에 불씨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학생 때 실습해 보셨죠?”
김 형사는 나에게 대뜸 묻는다.
“네 당연하죠. 그런데 왜…”
“행복 정육점에 지하가 있습니다. 동네 사람 아무도 몰랐다고는 하는데.”
“거기에 난장판을 피워놨어요. 김병국이가.”
“네?”
범인을 그렇게 쉽게 단정 지어도 되는 건가? 나는 말하려다 괜한 말을 하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 김 형사는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았다.

 

“다리 두 개, 팔 두 개는 1층 진열대 돼지고기 옆에 두고, 지하에는 다 썰어서 조각내서 두고. 에라이 미친놈.”
말이 끝나자마자 김 형사는 재킷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김 형사가 아까 내게 한 질문의 이유를 알게 되기까진 채 5초가 걸리지 않았다. 실습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사진을 보고 구역질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는 속이 매스꺼워져서 사진을 더 보지는 못했다. 김 형사는 의자에 기대서 천장으로 천천히 올라가는 담배연기를 볼 뿐이다. 이어지는 긴 침묵.
“앗 뜨거.”
김 형사가 내 뱉은 큰 소리에 나도 덩달아 놀랐다. 김 형사는 일어서서 허벅지를 연신 털어댄다. 바지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담뱃재가 그 위로 떨어진 듯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김 형사는 이제는 필터만 겨우 남아있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이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뭘 부탁한다는 거지. 사정사정해서 녹취를 같이 듣기는 했는데. 영 꺼림직하다. 무엇보다 당장 휠체어가 아니면 움직일 수도 없는 이가 어떻게 범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김 형사는 내가 뭐라 말 하기도 전에 문을 닫고 나갔다.

 

하품이 나온다. 시계는 벌써 새벽 1시 너머를 가리키고 있다.

“먼저 가봅니다.”
나는 당직자들을 뒤로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저 앞에 처음 보는 차가 병원 주차장을 나가는 게 보인다. 아마 김 형사이지 싶다. 나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간만에 지름길로 가기로 했다. 원래 인적도 드물고 을씨년스러운 길이라 잘 다니지 않지만. 너무 늦어서 어쩔 수 없다.

 

저 앞에 낡은 간판이 보인다. 행복 정육점. 아 어쩐지 낯익은 이름이다 싶더니. 자주 오는 길이 아니라 기억이 바로 안 난 건가. 원래는 빠르게 지나가는 길이지만 속도를 줄이고 차근차근 보았다. 깨진 유리창에 간판은 색이 바래고 모퉁이는 벗겨져 있다. 갑자기 아까 본 사진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한다. 더 선명해지기 전에 나는 엑셀을 밟았다.

호스트 코멘트

안녕하세요 김풍팡입니다. 제가 모바일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려다가 취소한다는게 완전히 닫아버렸네요… 참여해주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과 참여해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