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녹음 21-08-05 18:32:40

“…이상으로 초화여자고등학교 제32회 축제 기획 2차 회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기획단 학생들과 각 동아리 임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기획단장 백소정이었습니다.”

 

끝, 끝. 여기까지.

 

카메라 껐어? 교무실 보고용 촬영 끝났지? 잠깐만. 프로젝터 좀 끄고 바로 3차 회의 시작할게. 너희 지금 뭐 할지 선배들한테 들어서 알고 있지? 특히 1학년들. 처음에는 좀 웃길 수 있지. 근데 장난은 아니니까 다들 진지하게 들어야 해. 얼마 안 걸릴 거야. 3학년들은 위령제 물건 준비하고 나머지는 바닥에 둥글게 앉아 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각자 반 애들한테 돌아가서 전달해야 해.

 

아니. 녹음은 안 돼. 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해 봤자 안 될 거라는 소리야. 기계가 먹통이 되거나 휴대폰 째로 잃어버릴 거야. 이 이야기를 담으려 하면 꼭 문제가 생겨. 그래서 전자기기도 다 끈 거야. 이유는 몰라. 이 이야기는 반드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야 해.

 

 

 

다들 모였으면 시작하자. 우리 학교가 1990년대에 개교한 건 알고 있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식 학교는 아니야. 최근 십수 년 안에 이 동네가 제법 개발된 건 맞지만, 원래 굉장히 낙후된 지역이었다는 거지. 학교가 생기기 전인 8,90년대에는 아마 신제산(山) 하나만 달랑 있는 외딴 동네였을 거야.

 

그 당시 이곳에는 꽤 넓은 고물상이 자리하고 있었어. 고물상 알지? 동네 노인 분들이 폐지 주워서 가져다주는 곳 말이야. 생긴 지 수십 년 동안 땅 주인이 뭐라고 하지는 않았는지, 무슨 성처럼 고물들이 쌓여 올라가 있었대. 워낙 양도 많다 보니 처분하는 것보다 쌓인 게 많아서 어떤 더미는 아예 수십 년 동안 한 자리에 쌓인 채 버려지다시피 한 것도 있었지.

 

그런데 이 동네가 새 개발지로 선정되었다는 거야. 아, 가져왔네. 그건 거기 잠시 내려둬. 아무튼 그래서 그 고물상에도 철거 명령이 내려졌지. 흔한 일이잖아. 멀끔한 신도시에 안 어울리는 낙후된 것들을 한데 모아 치워 버리는 거. 그 고물상 주인은 끝까지 이사를 안 하고 버텼대. 자기한테 있는 물건들은 함부로 옮기면 큰일 난다면서. 참 이상하지. 그깟 고물이 뭐라고.

 

사람들은 그저 나이 지긋한 고물상 주인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는 거라고 생각했어. 아무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 그리고는 모든 공적인 일이 그렇듯, 철거와 개발은 신속하고 깔끔하게 이루어졌어. 할아버지의 마지막 경고는 무시된 채 말이야. 급하게 물건을 챙기며 할아버지는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대.

 

“이 부지 땅 파서 뭐가 나오든지 죄다 태우시오.”

 

아무도 할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어. 그 후 지질조사를 위해 보링이 진행됐지. 아. 땅 파는 걸 유식하게 보링이라고 불러. 새로운 건물을 올리려면 토지 상태를 알아야 하니까. 그런데 뽑아 올린 토사에 뗀석기랑 뼈바늘 같은 유물들이 섞여 있던 거야. 그것만이었다면 일은 빨리 해결됐겠지. 문제는 같이 올라온 정체불명의 토우였어. 일부분이었지만, 세심하게 다듬은 외형과 무늬 같은 게 상당히 발전된 당시의 기술을 말해주고 있었지. 이건 놀라운 일이야. 구석기 유물 터에서 토우가 발견된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당연히, 새로운 유물에 사람들 눈이 뒤집혀 버렸어. 모두가 유물을 보존해야 한다고 한바탕 난리를 쳤지. 공사를 빨리 진행해야 했던 시공사 측을 제외하고 말이야. 사실 시공사 측도 할아버지의 말을 기억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토우가 빨리 사라지는 편이 나았지. 그들만이 할아버지의 경고대로 유물을 처리하려 했어. 시청관계자가 문화재보호법을 들먹이며 필사적으로 보호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토우는 그대로 폐기되었을 거야.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타지에서 도굴꾼들도 몰려들어 유물터 주변은 한동안 아수라장 그 자체였대. 외지인들이 닥치는 대로 주변에 땅굴을 파대고 그곳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뇌물도 몇 푼 찔렀다고 해. 엄마가 가끔 그때 얘기를 해주더라고.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모르는 아저씨들이 만 원씩 쥐여주면서 유물 터 주변을 살펴달라고 했다나 봐.

 

결국 일이 터졌어. 토우가 사라진 거야.

 

 

 

사람들은 열을 올리며 사라진 토우를 찾으려고 했어. 다들 겉으로는 유물의 가치를 운운했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올라오고 있었겠지.

 

사라진 토우는 이틀 뒤, 엉뚱하게도 시청 민원토지과 지적관리팀장의 집에서 발견되었어. 토우가 사라진 다음날부터 무단결근을 한 게 수상쩍었던 거야. 뒤를 밟힌 거지. 지적관리팀 주무관이 그 집에 찾아가 봤는데, 자택은 텅 비어있었고, 거실 바닥에 토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대. 참 이상한 건, 공사장에서 일부만 발견되었다던 토우가 위아래 멀쩡히 합쳐져서, 갈라진 흔적도 없이 얌전히 서 있었다는 거야. 마치 주무관이 처음부터 그리로 올 것을 알았던 것처럼 그를 노려보고 있었대. 그래, 주무관이 그랬어. 노려보고 있었다고.

 

팀장은 평판이 안 좋은 사람이었어. 다들 그가 토우를 훔치고, 나중에 이익을 얻으려 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사라진 토우의 하반신은 어떻게 찾은 걸까.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던 소문은 질문이 되었어.

 

그러나 결국 그 답은 알 수 없게 되었지. 팀장이……잠깐 거기 1학년. 그래, 너희 둘. 집중 좀 하자. 아무튼 팀장이랑 그 가족들까지 모두 증발해버린 탓에, 왜 토우를 집까지 가져갔는지, 어떻게 그것을 온전하게 복원했는지, 왜 그것만 놔두고 사라졌는지는 미제로 남겨졌어. 그런데 이후 아주 놀라운 사건이 생겨. 사라진 줄 알았던 팀장과 가족들이 발견됐거든.

 

바로 토우를 발견했던 그 고물상 부지에서 말이야.

 

 

 

팀장과 가족들은 얌전히 땅 위에 누워 있었어. 모두 미라가 된 상태로. 팀장이 처음 결근한 날부터 따져봐도 고작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되는 시간인데 죽은 지 수천 년은 족히 된 이집트 미라들처럼 온 가족의 시신이 바짝 말라 있었다고 해. 겉보기에 수분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었어. 더 압권인 건 미라들의 자세야. 경직되거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경건하게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었대. 두 손을 모으고 하늘로 뻗은 채.

 

지금은 그 미라가 팀장과 그의 가족이란 게 밝혀졌지만, 당시엔 작업 중에 우연히 발견된 옛사람들의 시신인 줄 알았대. 구석기 유물 터를 함께 조사하던 연구자들이 어느 시대 사람인지 밝혀보겠다고 유전자 감식을 보냈다고 하던데, 너무나 선명한 결과로 나와 버린 거야. 모두가 팀장의 가족에게 충격을 받은 사이 홀연히 사라진 게 있었어. 토우, 토우가 사라진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싱겁게 찾을 수 있었지. 알고 보니 누군가 훔쳐 간 건 아니고 근처 땅속에 얕게 묻혀있었대.

 

일단 다시 발견은 했지만, 워낙 이상한 일을 겪고 나자 아무도 토우를 가져가려 하지 않았어. 무언가 영험한 힘이 그걸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 어. 그 깃발은 그쪽에 내려놓자. 이후에도 토우 때문에 벌어진 것인지 모를 자잘한 사건들이 있었어. 개발 이전 그곳에 살았던 고물상 노인의 목소리는 잊힌 지 오래였지. 그때 그 할아버지 말대로 인형을 태워버렸어야 했는데 말이야.

 

응? 무슨 사건이 있었냐고? 아. 사학연구부서 신입 부원이구나. 반가워. 어쩐지 못 보던 얼굴이더라고. 사실 별 건 아닌데, 이 이야기를 그냥 넘어가려고 하면 꼭 누군가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단 말이지. 또 그런 애들이 대부분 다음 애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게 되더란 말이야. 바로 나처럼. 내 말은, 내가 꼭 작년에 너처럼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는 거야.

 

흠. 뭐 좋아. 하나쯤은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그 일이 일어나고 처음 토우가 놓인 장소는 비품 창고였어. 사람들 눈에서 아예 떼어놓고 관심도 주지 않겠다는 작정이었지.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창고에 들어갔던 관리자들의 불만이 폭주했어. 최소 3일에 한 번은 창고 문이 고장나 갇히는 일이 태반이었고, 잘 쌓아둔 비품이 이유 없이 무너져서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못쓰게 되는 일도 잦았다고 해. 그런 일이 하도 많아서 비품 창고는 2인 1조로 가는 규칙이 생길 정도였어.

 

처음에 사람들은 그 일과 토우를 연관 짓지 않았어.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관리자들의 실수에 의한 자잘한 사고였거든. 하지만 석연찮은 부분도 있었지. 비품 창고의 관리자들은 대부분 꽤나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이었어. 실수로 물건을 엎어버리고 할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야. 사람들이 힘을 합쳐 비품의 위치도 모두 바꿔 보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구석구석 청소도 해봤지만, 이상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어. 누구도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했지. 여러 추측이 난무하던 어느 날, 드디어 사람의 힘을 벗어나는 일이 벌어진 거야.

 

그 일은 아침 일찍 근처로 출근하던 건설 노동자분들이 목격했어. 비품 창고 안에 보관한 자재 포대들이나 장비들이 모두 창고 컨테이너 위에 무더기로 쌓여있었대. 그런데 그게 마구잡이로 올라가 있지는 않더란 말이야. 마치 피라미드처럼 정갈하게, 사방이 정확한 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고 해. 다만, 가장 아래층에 벽돌 하나만큼의 빈칸이 있었어. 그 위에, 정확히는 비품의 꼭대기에서 살짝 떠 있는 토우가 있었대. 토우가 바라보는 방향은 해가 막 떠오르는 동쪽이었지. 마치 막 떠오르는 햇빛의 힘을 듬뿍 받으려는 것처럼 말야.

 

비품을 치우자 그 안에서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던 하얀 벽돌들이 나타났어. 이런 일이 벌어지면 말단 공무원들이 피곤하게 되지. 그냥 지나가도 되는 걸 누가 흉물스럽다고 동사무소에 민원을 넣었다나 봐. 하지만 어쩐지 동사무소 직원들이 주변을 조사하고 간 다음부터 일이 예사롭지 않게 진행됐어. 동네 사람들이 조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도 돌아오는 답이 없는 거야. 쉬쉬하며 입을 막는 분위기도 있었지. 드디어 이 ‘피라미드’의 정체가 시청의 고위 공무원들의 귀에도 들어갔대. 그들은 경악하며 이 이상으로 이야기가 흘러나가 쓸데없는 소란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았어. 그래서 관련자들을 철저히 입단속 시키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지. 놀랍게도 피라미드의 발견 직후, 그것과 직접 접촉한 사람들이 대부분 행적을 알 수 없게 실종되었어. 뭔가 떠오르지 않니? 그래. 아까 그 팀장네 가족들도 비슷한 경위로 사라졌잖아.

 

피라미드의 실상은 이랬어. 처음 동사무소 직원들이 조사했을 때, 그들은 벽돌에서 이상함을 느꼈대. 그래서 구청에 연락을 넣었고, 구청 직원들도 시청에 도움을 요청했어. 시청에서는 관내 공과대학에 벽돌들의 성분분석을 의뢰했지. 처음에는 벽돌 성분이 석영질로 추정됐다고 해. 하지만 면밀한 조사를 하자 그 벽돌들은 놀랍게도 생물의 잔해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어. 분쇄되어 압착된 뼈를 기반으로 사이사이에 동물 조직들이 섞여 있던 거지. DNA 시퀀싱 결과 그 생물은 사람이었어.

 

이후 벽돌 피라미드 아래의 빈칸에 하나의 벽돌이 추가되었고 이로써 피라미드는 완성되었지. 피라미드의 비밀을 숨기던 공무원들의 뼈가 마지막 벽돌의 주성분이었어. 가장 아래층에 끼워진 벽돌 말이야.

 

사람들은 흉물스럽다고 생각하며 피라미드를 부수고 창고를 아예 폐쇄하기로 했어. 하지만 그 전에, 굿판을 벌이고 온갖 동서양 신을 데려와 악귀와 사탄을 퇴치했지. 인골이 벽돌에 섞여 있다니 얼마나 끔찍했겠어. 그 땅에는 뭘 더 세우더라도 우선 터를 정화하는 게 우선이잖아. 그런데 신을 쫓기 위해 데려온 무당이며 목사, 신부들이 다들 똑같은 말을 하는 거야.

 

“양기가 가득한 곳에 두어 기운을 누르시오.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오.”

 

양기가 가득한 곳. 젊고 밝은 기운이 가득한 장소. 사람이 많고, 그만큼 감시하는 눈도 많은 곳.

 

감이 오지?

 

맞아. 사람들은 토우가 있던 그 터에 우리 학교를 세우기로 했어. 학교 교정에 장식물이 유독 많은 이유가 그래서야. 그 사이에 그때 발견된 토우가 하나 섞여 있대.

 

아, 장식물이라고 해야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뭐가 토우냐고? 조금만 더 들어봐. 이 터가 처음부터 학교를 짓기로 했던 건 아니야. 산 아래 저렴한 땅값 때문에 공장을 세우려는 사람들이 많았거든. 실은, 원래 창고가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공장이 들어올 예정이었어. 있던 건물을 사용하면 되잖아. 하지만 결국 다 부수고 학교를 지을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지.

 

왜 하필 학교냐고? 좋은 질문이야. 예전에 한 선배가 매년 위령제를 도와주시던 무당분께 여쭤봤대. ‘젊은 사람의 정신력이 이런 귀신들을 버티기 가장 좋다’라고 하시더라고. 공장도 충분히 젊은 사람들을 쓰면 되겠지만 여건이 힘들 수도 있는 데다, 아무래도 일하는 곳이니 학교처럼 왁자지껄한 환경이 될 수 없어. 귀신들은 그런 산 사람들의 역동성에 맥을 못 춘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여기에 고등학교를 지은 게 문제였어. 생각해 봐. 고등학생들에게서 나오는 건 음기지 양기가 아니야. 정기적인 지필고사에 수행평가에 모의고사, 수능까지.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또 얼마나 우울하니. 아무리 중고등학교를 함께 지었대도 이 학교에서 음기가 양기를 이기기는 쉽지 않아. 지금도 그렇지만, 무슨 영문인지 이 학교가 일대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잖아. 근데, 일 년에 딱 한 번, 양기가 폭발하는 때가 있어. 바로 축제 때지.

 

우리 학교가 회의를 해가며 거창하게 축제 준비를 하게 된 것도 처음에는 그것 때문이었어. 아무리 학교라도 매일 왁자지껄할 수는 없잖아? 사실 평소엔 쉬는 시간에 시끌벅적 매점을 향해 달리는 학생들이 양기를 내뿜는 전부야. 시험 기간에는 우울의 극한을 달리지. 그래서 학교가 조용해지는 때랑 균형을 맞춘다고 축제를 크게 열기 시작했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야.

 

원래 학사 일정상 축제를 진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초여름이었대. 1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의 그 기간. 그래서 제1회 개교기념 축제도 그때 하기로 했어. 언뜻 보면 합리적이었지. 무당이 말한 양기 문제도 해결하고, 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친해졌을 시기에 담합력도 다지고.

 

이상한 거 알아챘지? 지금은 축제를 늦가을에 하잖아.

 

 

 

원래 이 동네는 장마 피해가 거의 없었어. 요즘은 3년에 한 번꼴로 동네에 물난리가 터지는 걸 생각하면 참 신기하지? 이런 폭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 토우가 발굴되고 난 이후부터야. 당시엔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장마 기간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호우에 대비한 예비계획도 세워두지 않았어. 그런데 개교 후 첫 번째 축제 당일부터 날은 우중충하고, 하늘에선 구멍 뚫린 것마냥 비가 쏟아졌지.

 

신을 부르던 사람들이 토우를 양기가 많은 곳에 두라고 했던 것 기억나? 그래서 학교를 짓기 전까지 산에서 가장 양지 마른 곳에 토우를 보관하던 김 선생님이 계셨어. 아,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던 사람은 아니었고, 어르신이라는 의미로 다들 그분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지. 터에 사립 고등학교가 세워진 다음에도 김 선생님이 학교에 상주하면서 토우를 관리하셨어.

 

그분 생각해 보면……별명이 검은 소였다고 해. 일을 잘한다는 의미로 소, 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술을 워낙 좋아해서 그랬는지 얼굴이 새카맸대. 가끔 뙤약볕 아래서 보면 눈코입이 검은색에 묻혀 안 보일 정도였지. 실제로 소를 닮기도 했고 말이야. 학생 중에는 진짜 그분이 학교 관계자인 줄 아는 애들도 있을 정도로 학교 주변을 정돈하시거나 쓰레기를 줍고 애들 복장 지적 같은 것도 열심히 하곤 했지. 그런데 축제 첫날에 늘 단정하던 김 선생님이 겉옷 앞섶도 제대로 못 여민 채로 푹 젖은 채 학교에 오셨다는 거야. 축제 날인데 얼마나 학교가 활기차겠어. 그에 비해서 김 선생님은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사람 같았어. 마침 옷차림에 아주 보수적인 교장 선생님이 김 선생님을 보셨고 한마디 하려고 다가가셨대.

 

“김 선생님. 축제 날인데 옷이 왜 그래요?”

 

김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을 돌아봤고, 그분은 놀랄 수밖에 없었어. 거뭇거뭇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던 데다, 동공이 뭔가에 홀린 것처럼 풀려 있었거든. 교장 선생님은 토우에 관해선 잘 몰랐기 때문에 김 선생님의 몸이 안 좋다고 생각했어. 양호실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려는 순간, 김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의 목을 졸랐어. 그리고 말했지.

 

“너, 너다, 다음은, 너.”

 

그거 알아? 축제는 옛날부터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대. 사회 시험에서도 종종 나오잖아. 하지만 제정일치 시대였던 고대에는 사회적 규범이란 곧 신의 율법이었다고 해. 그러니 그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말은 결국 세계 바깥에 있는 외법(外法)과 외신(外神)을 불러들이는 행위로도 해석될 수 있었던 거야. 말이 완전히 안 되는 건 아니지. 우리가 축제에서 부르는 가요나 틀어놓는 K-POP은 고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외신을 부르는 의식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네. 아무튼 축제를 총괄하는 교장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의식의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 제사장 역을 맡은 이가 정작 토우도, 신도, 축제의 취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신이 단단히 화가 났었나 봐. 사실 몇몇 사립 학교가 그렇듯, 그 선생님도 공정한 방법으로 교장 선생님 자리에 오른 게 아니었어. 이사장의 오촌의 당숙의 외조카 정도는 되었겠지. 그래서 토우니, 귀신이니, 축제니 하는 것들을 다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에게 떠맡기던 거였어. 교육이나 아이들을 돌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 그래서 그런 무관심에 경고하기 위해 토우가 자기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김 선생님의 몸을 빌린 게 아니었을까, 선배들은 그렇게 추측했을 뿐이야.

 

김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냐고? 그게 정말 기이한 일인데, 교장 선생님의 목을 조르다 말고 눈코입에서 샘물같이 투명한 맑은 물을 줄줄 흘렸대. 소란을 듣고 두 사람을 보러 온 선생님과 1기 선배들 앞에서 짐승 울음소리 같은 걸 내곤 기절했다는 거야.

 

그렇게 우리 학교의 첫 축제는 빗속에서, 아침부터 구급차를 부르며 시작되었어.

 

 

 

사고 이튿날은 아침부터 학교가 시끌벅적했어. 온 동네에 학교에서 터졌던 일이 소문 나버리고, 그 사건을 익히 알고 있는 노인분들께서 무당이며 오래된 교회의 목사들, 뒷산의 스님들을 닥치는 대로 데리고 와 교문에서 들여보내라고 난리였거든. 하필 전날 사건의 피해자였던 교장 선생님은 이런 미신과 종교에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고, 단 한 명. 나이 지긋한 무당 한 명만 학교에 들어오도록 허락했어. 토우의 존재와 그 인형이 처한 상황을 아는 무당은 굿판을 해야 한다고 교장 선생님에게 간청했지만, 설득이 안 돼 미칠 지경이었지.

 

결국 무당은 도박수를 던졌어.

 

“여기, 신이 들어간 물건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찾아서 내게 가져오시게.”

 

무당이 말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아챘어. 하지만 전날 쓰러진 김 선생님이 토우를 관리해오던 탓에 그걸 찾는 일은 쉽지 않았지.

 

축제 때문에 모인 선생님들, 교장 선생님까지 어쩔 줄 몰라 했어. 학생들은 더했겠지? 체육 선생님은 얼른 김 선생님이 쓰던 창고 겸 쉼터로 달려갔어.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왔지. 우왕좌왕하며 분위기만 싸늘하게 가라앉았어. 토우가 사라지던 때에,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던 건 알고 있지? 김 선생님이 그 이야기를 버릇처럼 말하던 탓에 모두가 토우의 ‘전설’을 알고 있었어. 혼란스럽던 그때, 무당과 같이 온 노인 한 분이 손뼉을 쳤어. 옛일을 기억하신 거야.

 

“옳구나! 처음 그것이 발견된 장소가 최가네 고물상 자리였던 것 기억나나?”

 

“학교에도 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있을 테지요!”

 

그제야 학생들도 김 선생님이 평소에 쓰레기를 줍던 습관을 떠올렸어.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사람들이 우르르 환경부 컨테이너로 몰려갔지. 잘 정리된 분리수거 통 옆엔 태우려고 모아둔 소각용 쓰레기통이 따로 있었어. 그 꼭대기에 정말 토우가 한 뼘 높이로 떠 있었지. 교장 선생님이 나서서 쓰레기들을 마구잡이로 밟고 그것을 잡으려고 길게 팔을 뻗었어.

 

그때, 어디선가 짤랑짤랑, 방울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사람들이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무당이 서 있었어. 눈의 초점이 풀린 채로 말이야. 하지만 그 시선은 아주 선득하게 교장 선생님을 향하고 있었지. 무당은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말했어.

 

“어디 감히 한낱 가볍게 날아갈 마음에 이끌려 신물을 붙드느냐.”

 

교장 선생님은 토우를 집으려던 팔을 서둘러 빼고, 서둘러 쓰레기더미에서 내려왔지. 미신 같은 걸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무당이 내뿜는, 아니면 무당에 빙의한 무언가가 내뿜는 기운을 느낀 건지 몰라. 안 그랬다면 매일 시끄럽다고 타박하던 신당에 사는 할머니의 꾸짖음에 신경이나 썼겠어?

 

무당은 교장 선생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토우에게 다가가 중얼거리며 절을 올렸어.

 

“자비를 구하옵나니, 노여움을 거두소서.”

 

당연히 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냥 흙으로 빚은 인형이었을 뿐이니까. 주변 사람들도 교장 선생님의 행동을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무당은 옅게 흐르는 공기 중의 신령을 느꼈나 봐. 무당이 토우에게 사과한 순간, 토우의 고개가 위아래로 기괴하게 흔들거렸대. 무당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지고 있었어.

 

“그래, 그래. 그래야지. 목숨을 건지고자 하면 그래야지.”

 

무당은 모여든 사람들에게 담담히 말했어. 그리고는 눈에 초점이 돌아왔고, 목소리도 또렷해졌지. 한 손에는 토우가 들려 있었어. 환경부 컨테이너가 운동장에 있던 탓에 소란을 들은 학생들이 고개를 내밀었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오는 아이들도 있었지.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겠지요.”

 

무당의 눈동자가 희게 변했어. 하지만 그와 반대로 얼굴은 새까매졌어. 마치 김 선생님의 그것처럼 말이야. 무당의 목소리 위에는 다른 이의 목소리가 덧씌워졌어. 아무도 겉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지. 그게 토우의 목소리라는 걸 말이야.

 

무당이 입을 열었어.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침묵.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빼곡했지. 수업을 듣던 학생들과 수업을 하던 선생님들도 운동장에 모였어. 운동장과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둔 별관에서도 무당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나 봐.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우스웠으나, 한편으로는 즐거운 나날이었지.”

 

토우의 고개가 끼릭, 끼리릭 소리를 내며 움직였어. 마치 1만 년도 더 전에 자신이 만들어지던 직후처럼 고개는 매끄럽게 돌아갔지. 흙으로 조각된 얼굴 부위에는 전에 없던 생기가 돌았어.

 

“아주 오래전, 나는 한 아이를 알고 있었다.”

 

무당은, 아니 토우 속의 영혼은 힘겹게 한 마디를 떼었어.

 

“그 아이는 아주 어렸고, 총명했으며, 배움에 뜻이 있었지. 비록 지금처럼 발달한 세상이거나 수려한 지식을 쌓던 때는 아니었지만, 그 아이는 누구보다 미래에 관심이 있었다.”

 

무당의 갈라진 목소리는 무섭지 않았대. 슬프고, 애절한 동시에, 무엇을 추억하고 있었어. 어딘지 지금의 언어와 다른, 다른 시대의 소리가 무당의 입에서 나오는 듯했어.

 

“그 아이는 습관처럼 마을 입구 소나무 숲의 가장 외곽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했어. 시끄럽게 찰랑이는 소리가. 그리고 기분 나쁜 소음이 들린다고도 했지. 어느 날 아이는 그 숲에서 친구와 놀고 와서는 두 개의 소나무 틈에서 신기한 ‘세계’를 보았다고 했어. 그래. 신기한 ‘세계’라고 아이는 말했지. 내가 살던 곳에는 ‘세계’라는 말이 없었으니까 어른들은 아이에게 물었어. 세계가 무엇이냐고. 나는 아이의 답을 똑똑히 기억해. 아이는 ‘외롭지 않은 곳’이라고 했지. 북적북적하고 사람이 많은 곳.”

 

무당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어.

 

“아이는 그 후로 시간만 나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하지만 누구도 아이의 말을 믿지 않았지. 함께 갔던 친구는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고. 아이의 말을 증명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도 새로운 주장을 달가워하지 않지. 하지만 아이의 말에 점점 많은 이들이 요동하기 시작했어. 급기야 아이를 따라 대규모의 사람들이 소나무 숲에 갔는데, 그들은 입을 모아 ‘세계’에 대해 떠들었어.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지. 제사장과, 그래. 빌어먹을 그 제사장과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아이의 ‘세계’를 드디어 은밀히 막아버리기로 했어.”

 

무당은 깊은 숨을 들이쉬더니, 아주 긴 시간 쌓아온 듯한 깊은 목소리로 말했어.

 

“나쁜 건 겁 많은 어른들이야.”

 

그리고는 말을 이어갔지.

 

“하루는 과일을 따서 오는데 마을 분위기가 이상한 거야. 제사장들과 마을 어른들이 한데 모여 있었어. 그리고 말없이 집에서 나오지 않던 아이 친구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 그날 이후로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어. 제사장이, 아이의 영혼을 멸(滅)했다고 하더라고. 그뿐이었어. 간단하더라고. 육신은 바닷가에 버렸는지 산에다 묻었는지 알 수 없었지. 어른들이 아이 하나를 없애는 건 그때에도 쉬웠어.”

 

무당은 고통스러운 숨을 내쉬었어.

 

“그래. 그 아이는 내 딸이었단다. 하나뿐인 딸.”

 

무당은 눈을 가늘게 떴어. 그리고 주위를 한 번 돌아봤지.

 

“그로부터 며칠 뒤, 아이의 친구가 찾아왔어. 인형을, 하나 만들었다고 하더군. 친구의 솜씨는 놀라웠어. 전혀, 아무도 그만한 토우를 만들 수는 없었을 거야. 친구는 아이와 소나무 숲에서 봤던 ‘세계’, 그곳에 가고 싶어 하던 아이의 얼굴과 그 ‘세계’의 사람들이 입고 있던 가죽을 조각한 거였어. 지금은 그 가죽을 ‘옷’이라고 부른다더군. 나는 그 인형을 안고 한참을 울었다. 아이의 영혼이 소멸했다지만, 나는 그걸 믿고 싶지 않았던 게지.

 

그 뒤로 나는 얼마 살지 못했어. 어차피 그 아이 외에는 가족이 없었으니 세상에 미련도 없었다. 스스로 죽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어. 나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아이가 말했던 소나무 숲 외곽의 모든 나무를 뒤졌어. 샅샅이. 제사장들이 아이를 멸한 후 숲의 입구를 막았지만, 얼마 살지 못할 걸 알았기에 주저하지 않고 입구의 경고문을 부쉈지. 그리고 하루를 꼬박 살핀 끝에 이상한 기운이 도는 두 나무를 찾아냈어.

 

그 두 나무 틈에서 아이가 본 ‘세계’가 보였다.”

 

무당은 토우를 만지작거렸어.

 

“아이를 멸한 제사장은 나의 아버지였어. 나는 아버지에게 배운 마지막 주술로 내 영혼을 이 인형 안에 가두었어. 틈으로 인형을 던지는 동시에 온 힘을 다해 내 영혼을 그 안에 봉인했지. 나를 주운 그 고물상인지 뭔지를 하던 영감탱이의 말로는 그곳이 ‘백화점’이었다더군. 그렇게 시끌벅적한 곳은 처음이었어. 틈으로 볼 때와는 완전히 달랐고, 마음 편할 새 없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대다 오래지 않아 비닐로 된 쓰레기통에 버려졌지. 아이의 말대로 외로울 틈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정한 사람은 없었어.

 

묵직하게 쓰레기통 한구석에 있던 나를 집어 올린 건, 환갑을 맞아 자식들과 백화점에 온 고물상 영감이었어. 나는 이 ‘세계’에 온 지 한 시간도 안 되었지만, 영감의 옷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지. 영감이 내뿜는 건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의 기운이었어. 영감도 나와 똑같이 어색한 사람이었던 거야. 나는 옳거니, 하는 마음에 영감이 나를 넣은 주머니를 꽉 잡았어. 내 예상대로 영감과 나는 잘 어울리는 단짝이었지. 영감은 한동안 일하러 나갈 때 나를 꼭 챙겨갔어. 나는 영감의 말동무였고 영감도 오래 전, 아내와 자식을 잃었더군. ‘사고’. 그래. ‘사고’ 말이야. 이곳에서는 원치 않았던 비극적인 일을 사고라고 부르지.

 

우리는 환상의 짝꿍이었어. 영감이 실수로 나를 고물 더미 아래에 흘리기 전까지는 말이야. 몇 날 며칠 나를 찾는 소리가 고물상 터를 울렸어. 흐느끼는 영감에게 재개발 소식이 들려온 건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영감이 외치는 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선하군. 영감은 재개발을 막으려던 게 아니야. 나를 찾기 전까지는 그 터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게지.

 

하지만 재개발은 계획대로 이루어졌어. 영감은 고물 더미 위에 대고 말했지. 평안히 사시오. 허허. 그 영감은 마지막까지 내가 평안히 살기를 바라더군. 자신은 평안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야. 그곳은 원래 우리 부락이 있던 곳이니까 지질조사니 뭐니를 하다가 고물 더미 아래에서 유물이 나온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한 번에 얼마나 땅을 깊이, 함부로 파는지 내가 땅속으로 굴러떨어져 버렸지 뭐야. 덕분에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다른 유물과 함께 발굴한 줄 알았고, 그 뒤의 일은 자네들이 아는 그대로일세.

 

그냥 나에게 잘해줬던 영감을 괴롭힌 사람들에게 복수를 좀 해줬던 것뿐이야. 영감은 내가 비범한 영혼일 거라고 확신해서 발견하면 인형째 태우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모든 일을 자초한 거야. 그게 언짢았다면 어쩔 수 없지. 나와 영감의 가족을 빼앗아갔다던 ‘사고’쯤으로 생각하라고.”

 

무당의 표정은 홀가분했어.

 

“딸의 모습으로, 흙으로 살아온 시간이 적지 않아 여기저기 뻐근하구먼. 게다가 긴 이야기를 한 번에 하자니 입도 바싹바싹 말라. 그래도 들어주어 고맙군. 영감에게 이곳 말을 처음 배웠으니 말투가 좀 고루하더라도 이해하게. 젊은이들의 말을 몰라 미안하네.

 

자, 이제 자네들이 나를 편한 대로 처분할 테지?”

 

토우의 목이 좌우로 돌아갔어.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 아쉽군.”

 

 

 

“꺄악!!”

 

3학년 학생들이 서 있던 앞줄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어. 그리고는 한 학생이 쓰러졌지. 비명과 동시에 무당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어. 그리고 토우에 감돌던 생기 역시 사라졌지. 쓰러진 3학년 학생이 서서히 일어나더니, 풀린 눈으로 입을 열었어. 목소리는 둘로 갈라져 있었고.

 

“내 딸아이가 딱 이만했을 거야. 호기심이 많고. 배울 것도 많았지.”

 

학생의 입꼬리가 슬프게 위로 찢어졌어.

 

“나는 잠시 이 아이의 몸을 빌리겠네. 이 학교의 양기가 마음에 들어. 나는 가끔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양기가 참 좋거든. 귀신이라고 침침한 음기만 즐기라는 건 딱 질색이야. 나를 양지 마른 운동장 둘레에 세워주게. 저 흙 인형과 함께 말이야.”

 

말을 마친 아이의 몸이 서서히 흙처럼 굳어갔어. 토우 안에 있던 영혼이 첫 번째로 선택한 학생이었어. 학생이 돌로 변함과 동시에 교장은 흙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교장은 토우를 괴롭혔던 마지막 사람이었던 거야. 그 뒤는 짐작이 가지?

 

우리가 위로하려는 건 첫 번째 축제에서 죽은 사람들이 아니야. 토우의 원래 몸이었던 아이. 만 년도 더 전에 미래를 보았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한 아이를 위로하려던 거지. 그 아이와 어머니의 영혼은 지금도 우리 학교를 수호하고 있어.

 

아까 2학년 학생들이 들고 온 조각상이 바로 그 토우야. 평소에는 운동장의 장식물 가장 앞에 놓여 있지. 1학년 학생들이 들고 온 깃발은 지금부터 쓰일 물건이고. 우리 학교는 축제 3차 회의를 기점으로 기획단장 위임식이 이루어져. 지금부터 그 위임식을 거행할 거야.

 

아. 무당 선생님이 오셨네. 아까 말했지? 매년 위령제를 도와주시는 분이 있다고. 이분이 바로 처음에 토우의 말을 전해주셨던 분이야. 무당 선생님이 이 깃발을 이 토우에 대는 순간. 내 영혼이 토우 속의 영혼으로 뒤바뀌게 되는 거지. 학교 운동장에 있는 수많은 장식물은 단단한 흙으로 바뀐 역대 기획단장들의 몸이야.

 

그럼 잘 부탁해. 부단장 진아에게 이 시간 후로 단장 자리를 위임할게. 어차피 나는 단장 역할을 할 수 없으니 말이야. 아. 다음 기획부단장은 아까 질문을 했던 사학연구부 1학년. 호기심이 많으면 좋지 않아. 다음 지목 대상이 된다고.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웠어. 다른 친구들.

 

무당 선생님. 위령제를 시작해 주세요. 나는 언제나 운동장 옆에서 너희를 지켜볼 거야. 초화여고의 역사가 이어지는 한, 나는 그럴 거야.

 

그럼 모두 안녕.

 

 

 

 

잠깐, 거기 1학년.

 

 

“내가 녹화하지 말랬지.”

호스트 코멘트

참여해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했으니 좋은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같은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참여자


후원자

익명의 후원자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