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412호 바닥에 시체가 되어 누운 그 자가 써 둔 걸까? 아니면 누군가 그 자나 다른 이에게 전달하려 한 메세지일까. 그리고 왜 여기에 내 방을 포함한 객실 번호들이 쓰여 있는 걸까.
나는 다시금 거울에 쓰인 글을 읽었다. 글자가 지워진 첫 문장이 거슬렸다. ‘바텐더에게’, 무엇을?
바텐더? 그러고보니 난 이 도시에 도착해 바텐더를 만났었다.
나에게 정보 제공 운운하며 다가와 살인청부와 협박을 섞은 말을 건낸 수상한 그 바텐더.
거울에 적힌 바텐더가 그 바텐더 일지는 확신 할 만한 증거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그 바텐더일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고작 직감을 가지고 과대해석한다 고개를 저을것이나. 살인 청부업자인 내게 이런 종류의 직감은 대체로 증거보다 더 유용했다.
그러나 만일 그 의뢰자가 암호 속의 바텐더라 친다면, 브랜디와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만큼 주문해야 한다는 건가? 아니면 그렇게 주문한 손님에 대한 것인가?
전자는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고, 후자는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분명 이건 다른 이에게 남긴 암호이니, 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시도조차 못 하는 것을 메모랍시고 남기지는 않았을 테니까.
어쩌면, 브랜디와 물 마저 무언가의 상징일수도 있겠지.
거울의 암호에 대한 생각이 정리될 즈음, 방 밖 복도에서 누군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서 더는 볼 게 없는 것 같아 나가려던 나는 문을 살짝 열고 문틈 새로 복도를 살폈다.
호텔 직원 유니폼을 입은 사람 둘이 401호 방문 바로 맞은편 복도에 엔드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몸집이 큰 직원이 무거워보이는 원목 테이블을 낑낑대며 설치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금박으로 화려하게 세공된 관상용 과일그릇을 손에 든 채 동료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과일 그릇 안에는 개다래 열매가 한 바구니 담겨 있었다.
나는 방 밖으로 나서지 않고 문 뒤에서 그들을 관찰했다.
저 볼품없는 과일을 뭐하러?
과일그릇을 놔둔 직원들이 복도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제서야 밖으로 나왔다. 이쪽 복도에는 나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테이블로 향했다. 그리고 개다래 열매를 하나 집어 들었다.
“설마 고양이를 유인하려는 건가?”
고양이에겐 개다래 열매보다 캣닢이라 부르는 개박하가 더 효과적이다. 아마 이걸 준비한 직원이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았거나 M시에서 개박하를 구하는 게 힘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게 고양이를 유인해줄까?
개다래 열매를 손안에서 굴리다가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혹시라도 고양이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 열매를 미끼로 사용해봐야겠다. 운이 좋다면 일이 쉽게 끝날 것이다. 물론 고양이를 찾아야 하는 이유는 아직 의문이지만 말이다.
후안, 타겟, 노인, 고양이, 브랜디와 얼음물에 대한 암호, 바텐더, 내 방, 407호, 411호.
내가 신경 써야 할 것들.
이중 정체를 확인하지 않은 건 두 개였다. 암호에 나온, 내 방을 제외한 두 방.
그러고보니 407호의 투숙객은 아까 소란이 있었던 408호의 투숙객과 연관된 인물인 것 같았다. 이 도시에서 그런 성씨를 가진 사람을 찾긴 쉽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란을 피하려면 그 방은 마지막에 조사하는 게 이로울테지.
나는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할 지 정했다. 411호. 내가 아직 모르는 것들 중 그나마 쉽게 살필 수 있는 것.
나는 다시 복도가 꺾이는 곳까지 걸었다. 408호에서 나온 남자를 내가 치운 이후로, 뒷 번호 객실들이 있는 복도엔 사람이 오가지 않은 것 같았다.
난 411호로 향했다. 그런데 그 복도의 중간을 지나던 때, 거슬리는 소음이 들렸다.
난 407호 앞에 서 있었다.
호스트 코멘트
언제 다시 시작할지는 모르지만, 여태 참여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참여자
후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