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인 호텔 404호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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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창문을 통해 싸늘한 밤공기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 도시에 온 목적만 아니었으면 난 바로 인터폰으로 프론트에 룸을 바꿔달라 요청했겠지.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방을 포기할 수도, 쓸데없는 일로 직원들이 나와 내가 머무는 층에 관심을 갖게 만들 수도 없었다.

나는 난장판이 된 후안의 마지막 거처 속에 선 채 코트 안주머니 밖으로 비져나온 권총 손잡이를 오른손 검지 끝으로 훑었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분명 난 이곳에 들어온 순간부터 무언가를 계속 놓치고 있었다. 무얼 놓치고 있는 것인가. 생각 날 듯하면서도 영 감이 잡히지 않아 답답했다.

우선 천천히 상황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401호에 투숙한 시체가 있는 412호, 라운지 바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에게서 쫓겨난 남자, 괴상한 노인…… 그리고 사라진 후안의 편지가 들어 있던 봉투.

도둑의 목적을 알 수 없으나, 그나마 확실한 건 범인의 손에는 도료가 묻어져 있으리라는 거다. 이는 곧 사람들의 손만 확인한다면 범인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범인이 아마추어라는 가정 아래에서. 그러나 그 자가 내 목표라는 보장이 없었다.

목표. 그 놈의 목표. 지금 나에겐 너무 많은 목표가 있다. 후안, 후안이 보냈다 생각했던 편지의 실 발신자, 이 복도 끝 방에 시체를 누인 살인자, 그리고…….

타겟이 많은 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난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

당연 가장 중요한 이는 후안이다.

하지만 다음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누구를 다음 타겟으로 해야 내가…… 안전할 수 있을까?

곧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이 복도 끝 방에 시체를 누인 살인자!

그가 가장 위험하다.

 

 

내가 침대에 누워 후안과 얼굴 없는 살인자를 탁구 치듯이 번갈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문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매니저였다.

“아까 요청하신 자료 중에 이것이 빠져 있어서.”

나는 시큰둥하게 그가 건네는 것을 받고 문을 닫았다.

자료를 보는 순간 난 경악하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문자로 이루어진 암호문이었다.

난 답급히 복도로 뛰쳐나갔지만, 매니저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니, 그 자가 매니저가 맞긴 했나? 이 방에 찾아오는 놈들은 도대체 뭘 했기에 하나같이 정체불명의 그림자 같은 것일까?

이번에는 지끈거리며 머리가 아파온다.

그러나 종이를 자세히 살피자 무언가 이상한 점을 알 수 있었다.

종이의 한쪽 면은 잡지용 아트지처럼 매끄럽게 코팅되어 있고, 반대쪽 면은 일반 인쇄용지와 다를 바 없는 종이였다.

나는 로마자도, 아랍 문자도, 키릴 문자도 아닌, 아니지, 문자는 맞는지 모를 것이 쓰인 그 종이를 들여다보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내선 전화를 들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프론트 직원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다리미 하나 빌립시다.”

 

-손님, 저희 호텔에서는 세탁 서비스를 따로 제공하고 있으니 빨래거리가 있으시면…

 

“아니요. 내가 할테니 다리미만 빌려주시지요.”

 

내 말에 직원은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라고 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곧 다시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방금 전과는 다른 직원이었다. 다리미를 받아든 나는 내일까지 쓰겠다고 말한 후 그가 엉망이 된 내 방을 보지 못하게 문을 재빨리 닫았다.

난 나무 테이블 위에 암호문을 올리고, 얇은 침대보로 그것을 덮었다. 다리미를 콘센트에 연결하자 금세 열판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예상이 맞길 바라며 나는 그걸로 종이를 한 번 다리고 침대보를 걷었다.

역시나, 이 종이는 감열지였다.

열 때문에 새카맣게 탄 종이엔 흰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렇지, 일반인이었다면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보곤 다른 게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거기에 정신이 팔렸을 것이다. 하지만 난 프로였다. 적어도 이런 장난을 치는 놈(어쩌면 놈들)보다 훨씬 유능한 프로.

상대도 나와 길게 장난을 치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이 암호문이 원래 닿아야 할 상대방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는지, 종이에 쓰인 문자는 나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눈으로 빠르게 읽어봤다.

 

이 편지가 그쪽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네.

더불어, 자네가 카스트로의 끄나풀 따위가 아니길 빌어.

그렇다면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죽어야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 테니까.

내가 누군지는 묻지 말게.

자네에게 전하고픈 말은 다른 게 아닐세.

고양이를 찾아!

 

그게 전부였다.

쓸데없는 암호문이 붙어 오지 않은데 안심했더니, 내용이 암호나 다름없다.

편지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나는 번쩍 고개를 처들었다.

그 망할 고양이. 어디에 있었지?

두 마리의 고양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체가 누워있던 방에서 나와 계단을 향해 사라진 노란 눈의 고양이. 앨리베이터에서 내가 내리던 순간 복도를 돌아 사라진 고양이.

이 암호문이 가리키고 있는 게 건물 내에 동물이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아놓은 호텔을 보란듯이 돌아다니는 그놈들(어쩌면 그놈일지도 모른다.)일까?

고양이가 여러 마리든 한 마리이든, 확실한 건 내가 편지를 받은 이상 고양이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 혼자 이 넓은 호텔을 뒤지는 건 무리다.

아, 그렇지!

고양이를 발견하면 내선전화를 통해 프론트로 연락 하라는 이용규칙을 써먹자. 호텔 안에 고양이가 돌아다닌다고 알리면, 날 대신 해 프론트 직원들이 열심히 고양이를 잡아 줄 것이었다. 그렇게 판단한 뒤, 나는 내선전화기를 들어 프론트로 전화를 걸었다.

 

-네. 프론트 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호텔 내에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양이요?

 

직원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어디서 보셨습니까?

 

“계단과 엘레베이터 근처에 있던데.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해결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전화를 마치고 나는 한번 숨을 고르내쉬었다.

고양이는 이걸로 완료. 자, 이제 고양이가 처리 될 때 까지 무엇을 해야 할까?

종이를 천천히 살피자니, ‘카스트로’가 언급되어 있었다.

살해 당한 시체가 있는 412호에 투숙객으로 적혀 있는 남자.

너무 수상하지 않는가?

 

 

지금 당장 내 방을 습격한 범인을 찾기엔 증거가 부족했다.

후안을 찾는 것도 진전이 없다.

그러니, 이 두 일에 대한 것은 잠시 미뤄두고 그나마 단서가 더 있는 이 카스트로라는 인물에 집중하는 것도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난 당장의 목표로 생각해둔 복도 끝의 살인마와 그가 겹쳐보이는 게 우연이 아니길 바랬다. 편지에서 끄나풀 운운 한 것을 보면 이 쪽도 절대 일반인 쪽은 아닌 것 같으니 이 자의 뒤를 캐내면 어쩌면 후안에 대해서도…….

그래. 후안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뭐,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이지만.

좋아. 다시 움직여 보자.

혹시 모를 일을 위해 방문을 단단히 단속하고, 나는 복도로 나왔다.

제일 먼저 살펴 볼 것은 이미 투숙객이 죽어버린 401호실이었다.

 

 

모서리가 썩어 문드러져가는 낡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랫동안 청소을 하지 않은 방인것 마냥 퀴퀴한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왔다.

401호의 남자가 여기 머물렀다고 보기엔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광경이었다. 난 코를 틀어쥐고 거미줄과 먼지를 걷어내며 방의 곳곳을 살펴봤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인스팩션들은 모두 헤지거나 박살나 있어서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기엔 역부족이었다.

방에서는 건질 게 없는 것 같아, 나는 욕실 문을 열어봤다. 욕조에는 물이 약간 채워져 있으나 금방 사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수도꼭지와 세면대에는 물때가 가득 끼어있고 비누나 샴푸 같은건 남아있지도 않았다.

사람이 머문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자 슬슬 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휴우……”

 

두통을 가라앉히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자, 이내 한숨이 깊게 뱉어져 나온다.

딱히 뭐라 형언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놀아나는 기분이 든다.

난 정신을 다잡고자 거울을 쳐다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찾아야 해. 무언가 있을거야.”

그때였다. 거울속에 내가 불어낸 입김들이 부딪히며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상한 점을 알아챈 난 미친듯이 거울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댔다.

그러자 손으로 쓴 거 같지 않게 반듯한 글씨가 거울 겉면에 나타났다.

 

바텐더에게 ■■■■

브랜디 3잔 얼음물 1잔

411호

404호

407호

 

바텐더에게-라는 글자 뒤는 마구 문질러 지워져 읽을 수 없었다.

매일 청소를 하니, 이것은 분명 하루도 되지 않은 글자였다.

내가 오기 전에 적은 것인지, 그 이후에 적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404호? 내 방 번호다.

호스트 코멘트

이번 화 까지를 초-중반부로 생각하면 좋겠네요. 슬슬 다음 화부터는 떡밥을 회수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조만간 다음 화 스레를 세우겠습니다.

참여해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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