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이야기 2화

시종장이 의무에 대해 떠들다, 미지근한 반응에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마법사는 멀어지는 시종장과 병사들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어쩌다가 용사가 되버린 마왕총사령관을 쳐다보았다.

 

“말을 맞춰줘서 고맙네.”

“흥. 안 그랬으면 용사를 찾으러 못 갔을 테니, 내게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야.”

 

그 말에 마법사는 쓰게 웃었다. 그래도 마왕을 무찌르는 용사를 자처한다는 것이 얼마나 거북할 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고등학생이라는 게 뭐지?”

“전 용사가 고등학생이라고 하더군. 뭐, 나이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던데. 딱히 이렇다 할 장기는 딱히 없는 꼬맹이였지만, 매일 동료들과 추구인지 뭔지 하는 공을 사용하는 훈련을 해온 덕에 끈기와 지구력 하나는 좋았던 녀석이었어.”

 

마법사의 설명에 총사령관은 시원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뭐야, 그냥 공놀이 좋아하는 얼뜨기 인간이었다는 거잖아. 네 패밀리어는 감히 날 그런 녀석과 같은 취급했던 거냐?”

“그래도 그 덕분에 곤란한 상황을 벗어났지 않나.”

 

마법사가 말했다.

 

“이마트라에게 고마워하게, 마족.”

“총사령관이라고 불러라!”

“왜 그래야 하나? 난 자네 부하가 아닌데 말이야. 거기다 진짜 용사가 아니고.”

“그럼 마족총사령관이라고 불러라. 그대는 인간이라 총사령관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마족인 동시에 내가 마족들을 이끄는 총사령관자리에 있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너무 길어서 그렇게 부르기는 싫은데. 그리고 앞으로 다른 인간을 어디서 얼마나 만날 지도 모르는데, 그냥 이름을 부르도록 하지. 그런데 네 이름이 뭐지?”

“하.”

 

마법사의 말에 마족총사령관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네 놈한테 이름을 가르쳐줘야 하는 이유가 있나? 마법사에게 이름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저주를 내려달라고 간청하는 멍청한 짓이지.”

 

마법사는 영 엉뚱항 소리에 머리를 짚고 말았다.

마법사에게 이름이 주어진다고 손쉽게 할 수 있었으면 마법사들에게 이름을 밝히지 않는 관습이 있었겠지.

마법의 마 자도 모르는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이래서 피곤하다.

사실 지금도 마법사는 마음만 먹으면 그의 날개를 날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줄여버리거나, 열흘 내내 그가 먹을 모든 음식에서 씹다 뱉은 말똥애벌레 맛이 느껴지게끔 저주할 수도 있었다. 일반적인 추적 마법이 대상과의 접촉을 촉매로 하는 것 처럼, 이름을 촉매로 쓰는 마법도 물론 있기야 했다.

그러나 그런 건 상대의 머릿속을 알아내거나 내 생각을 알리는 등의 정신적인 영역에 치중되어 있지, 마족총사령관이 말하는 저주 계열 마법과는 별 상관 없었다.

 

“저주에 마법을 쓸 정도로 마력이 여유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너한테 저주를 걸 이유도 없고. 당장은 뜻을 같이 하지 않나.”

 

용사가 마왕에게 가는 걸 막는다는 점에서.

그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마군총사령관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피며 점심식사 내용을 말하듯 가볍게 말했다.

 

“그럼 일단 필이라고 불러라.”

“그러지, 필.”

 

분명 저것보다 더 어렵고 복잡할테지만, 이름을 물어본 게 굳이 그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름이 필이예요? 제 친구랑 이름이 똑같네요!”

 

잊고 있던 꼬맹이가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하. 그 친구란 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이름이랑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잊었나 본데 꼬맹아, 나는 마족이다.”

“어? 아까 필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냥 그렇게 부르라는 거지!”

 

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샨은 놀라 움츠러들고는 호다닥 마법사의 뒤로 숨어버렸다.

 

“현자님, 현자님.”

“왜?”

“필 머리에 뿔이 있었는데, 그럼 필도 마족이예요?”

“뿔?”

 

샨의 말에 앞의 필이 아닌, 마을 사람인 필을 떠올렸다.

지극히 평범한 빨간 머리카락에 노란 눈동자를 가진.

 

“전에 필의 집에 심부름 갔다가, 우연히 봤어요.”

 

샨이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빵 굽는 데 쓸 달걀을 얻어오라고 보내셨거든요.”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니?”

 

마법사는 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집 닭장에 필이 혼자 있었는데, 암탉 한 마리를 양손으로 잡아 들고는 벽을 보며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그때는 놀라서 필이 밖으로 나올 때 까지 숨어 있었는데, 주문을 외우는 필 머리카락 사이로 까맣고 작은 뿔이 삐죽 나와 있었어요.”

 

마법사는 아이를 자주 상대하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샨의 눈은 거짓말하는 사람의 것 같진 않았다.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 앞의 필은 팔짱을 끼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마족만 뿔을 가진 건 아니지. 당장 저기 뛰어가는 염소도 뿔이 있지 않나.”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모를 염소가 폴짝폴짝 무너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왠 염소지.

 

“비유가 이상하군. 어쨌든 그쪽 말대로 마족만 뿔을 가진 건 아니지.”

 

무너진 집으로 뛰어가던 염소는 집이 무너진 것을 뒤늦게 본 것인지, 멈칫하더니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저 염소 미친건가?”

“그걸 나한테 물어봤자.”

 

그리고 펑!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마법사 죽은 건가?”

 

집이 무너진 것을 보고 죽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쉽게도 마법사는 죽지 않았다.

염소는 눈 깜빡할 사이 익숙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필이었다.

 

“필!”

 

샨이 인간(?) 필에게로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쪽을 유심히 보니, 흐트러지는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뿔이 보였다.

 

“맞아! 확실히 뿔이 있다고!”

 

샨이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샨의 말에 마족 필은 낯선 존재의 등장에 그를 훑어보고는 으르렁거렸다.

 

“너 뭐야! 마족이냐!? 그렇다면 이 몸에게 예의를 갖춰라!”

 

그 말에 인간(?) 필이 코웃음쳤다.

 

“으하하! 마족들은 언제 봐도 거만하구만! 그 말 확실히 귀에 익어. ――――의 후손인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한 발음은 아무래도 저 마족 조상의 진명인 듯 했다. 오래된 마족의 언어로 말한 듯했기에, 현대의 마족인 필조차 제대로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 가문 놈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 예의 운운하는 거 보니 너도 마군총사령관인가 뭔가가 되었구나!”

 

마법사는 알 것 같았다.

 

“드래곤?”

“과연, 현자는 날 바로 알아보는군.”

 

현자 아니라고. 마법사는 목 밑까지 치솟은 반박의 말을 삼켰다.

인간, 아니, 드래곤 필은 호탕하게 웃었다.

의태를 자유롭게 하고 다른 종족의 언어, 그것도 지금은 사라져가는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면, 그는 못해도 왕국 하나가 흥망을 겪을 동안 살아온 고룡일 터였다. 마법사는 얕보인 게 분해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해진 마족 사령관을 진정시키고, 이마트라를 시켜 뿔 달린 친구를 만나 신난 샨을 달랜 후 필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왜 인간의 마을에 숨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되나?”

“숨기는. 그냥 거기 있었던 거지.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하나 일어나려 하더군.”

 

재밌는 일이라니.

세계가 망할 수도 있는 게 무슨 재밌는 일이란 말인가.

마법사가 굳은 얼굴을 하자, 그조차도 웃기다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곱게 접힌 종이를 꺼내었다.

 

“전에는 이런 거 없이 바로 선전포고를 하더니, 희한한 짓을 하고 있으니 재밌는 일이지.”

“용사가 마왕 쪽에 붙은 걸 알아, 필?”

 

마족이 아닌 마을사람 필의 정체를 알고 나니, 샨이 존대를 하지 않는 것이 괜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필은 말의 존대보다는 내용에 집중해주었다.

 

“용사가? 더 재밌어졌네!”

 

결론은 전혀 다행스럽지 않았지만.

 

“나도 같이 가.”

“뭐? 싫어!”

 

마법사는 빠르게 반대 의견을 낸 마족의 입을 틀어막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용족이라면 전력에도 도움이 되니 좋지요.”

“아하, 좋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하지만 어린 아이의 모습은 좀 곤란할 것 같군요.”

“샨이 있잖아?”

“마을로 돌려보낼 겁니다.”

“앗, 현자님. 저는 안 데려갈 거예요?”

 

도움이 될 힘이 전혀 없는 어린 아이는 그저 짐일 뿐이다.

내 집이 무너진 거지, 마을은 멀쩡하니 돌려보내는 것이 맞았다.

 

“하아. 샨, 놀러 가는 게 아니야. 나를 따라오는 건 위험해.”

“하지만 어쩌면 저도 도울 수 있잖아요?”

“그건 또 무슨 소리니?”

“제 친구들한테 부탁할 수 있어요. 용사를 찾을 수 있게 저를 도와달라고, 현자님을 도와달라고.”

“부탁? 친구들이라니?”

“응, 부탁할게. 나도 여행하고 싶어.”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는 샨을 마법사는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오로지 아득한 지혜를 가진 모친에게서 비슷한 내용을 전해들은 드래곤 필만이 희미하게 진실의 끝자락에 가 닿았을 뿐이었다.

 

“흐응.”

“예전에 친구가 없어서 심심했을 때,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매일매일 생각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이 눈에 보였어요. 물론 필이 오고 나서는 덜 심심해졌지만……. 용사님 소식도 친구들이 알려준 거예요.”

 

이 차원에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인가.

그런 능력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샨이라는 것이 놀라웠을 따름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능력을 자각하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법사는 흥분해서 샨에게 물었다.

 

“정령사? 아니면 다른 걸 느끼는 거야?”

“무슨 헛소리야?”

 

마법사는 재밌는 새 장난감을 쥔 듯 싱글거리는 드래곤 필과 당장의 대화를 헛소리로 치부하는 마족 필을 번갈아 보며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능력을 자각한 이상 제대로 길을 터줄 스승이 필요했지만, 마을에는 그럴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본인이 스승이 될 수도 없고.

 

“멋진 능력인걸? 쟤도 데려가자!”

 

흥미 위주로 움직이는 드래곤의 말에 마법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필…….”

“나?”

“아니, 너 말고.”

“그냥 드래곤이라고 불러도 돼.”

“음, 드래곤님.”

“그래, 그래.”

“능력 때문에 샨을 데려간다고 해도, 샨이 능력을 제대로 못 쓸 수 있습니다.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어요.”

“내가 확실하게 지켜주지 뭐. 저 능력은 확실히 희귀하다고. 나도 없는 능력이지만, 그래도 대충 어떻게 가르치는 지는 알고 있으니까.”

 

그 말에 마법사는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스승이 될 존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샨의 동행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럼, 샨의 교육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면 같이 가도 되는 건가요?”

“그래.”

“야호!”

 

마법사가 긍정을 하자, 샨은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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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하게 끊긴 부분과 4차원의 벽을 뚫는 부분을 수정, 추가 했습니다. 이외에 내용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조금 더 손을 보았습니다.
다음 스레드는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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