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 이야기 1화

그 사람은 평범한 마법사였다. 이리저리 뻗친 머리에 펑퍼짐한 소매가 달린 윗옷에 바닥을 스치는 긴 바지, 질질 끌려다니는 모자 달린 망토까지. 누가 봐도 골방에 틀어박혔다가 나온 마법사라고 생각할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도 평소라면 머리 정도는 빗고 다녔겠건만, 때가 한창 바쁠 시기였다.

그날도 화덕 앞에서 밤을 꼬박 새며 설원이끼의 숙성작업을 마무리한 마법사는, 기지개도 좀 펴고 신선한 공기도 들여 마실 요량으로 오두막의 낡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섰다. 안개로 가득 찬 새벽 숲의 청량한 공기가 화덕의 열기로 가득 찬 폐 속을 씻어 내주는 듯한 기분이 상쾌했다.

그때, 마법사의 퍼밀리어인 검은 토끼 이마트라가 참나무 뒤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세상이 멸망한다는데도 평소처럼 느긋하시군요!”

 

그 말에 마법사는 하마터면 뒤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농담하는 거지?”

“퍼밀리어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아실텐데요?”

 

이마트라가 참나무 뒤편에서 깡총 뛰어나오며 말했다.

마법사는 눈을 꿈뻑이며 자신의 퍼밀리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말대로였다. 퍼밀리어는 순종적이고 정직하며 봉사정신에 투철하도록 구성된 존재였다. 혹자는 마법사가 노예를 만든다며 비난했지만, 퍼밀리어는 자신의 존재의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살기에 서로에게 좋은 일이었다.

 

“곧 용사가 올 겁니다. 준비하십쇼.”

 

퍼밀리어가 다짜고짜 통보했다. 뭔가 입장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마법사에겐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는 말해줘야 할 것 아냐?”

“말 그대로예요. 수천 년간 잠들었던 마왕이 깨어났고, 심심풀이로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어하니까, 오랫동안 언제가 깨어날지 모를 마왕에 대비해 억지로 존재해온 백수 같았던 <우리들>이 나설 차례가 된 거죠. 뻔한 거 아니겠어요? 마을 사람들 세금으로 띵가띵가 지낸 주제에 의무는 내팽개치고 도망가려는 건 아니시죠?”

“그래서 하는 일 없이 세금 잡아먹는다고 눈치 보이니까 철마다 이렇게 밤 새워가며 마을 사람들 먹일 강장제라도 만들어내는 거 아니겠냐. 너는 내가 설원이끼 숙성시킬 때마다 냄새 난다고 득달같이 도망 다니는 주제에 나더러 백수 같다고 말하니까 섭섭하다, 얘.”

“그 설원이끼는 제가 따다 드렸죠. 백수 같다는 건 제 의견이 아니라 돈 내는 마을 사람들 의견이에요. 마법사님 맨날 마법 연구해야 한다고 제 편에 약만 전해주고 마을이랑 직접적인 교류는 하나도 없었으니, 사람들 사이에 평판이 그렇게 제멋대로 나빠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근 수십 년 동안 저 말고 대화한 존재가 없잖아요. 그래서야 이번에 오는 용사랑 파티 꾸려서 불화 없이 다니실 수 있겠습니까?”

“전통적으로 파티 인력 관리는 용사나 사제의 업무라고! 나는 내 지혜로 참모 역할만 제대로 해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참모 역할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뿌듯한 역할 배정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마왕을 잡으러 떠나는 용사를 도와야 한다는 운명을 부여받은 탓에 마왕 자체가 되는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과거가 있긴 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 선택을 그리 후회하지 않았다.

마주칠 때마다 투닥거리며 한 소리 하는 사이인 나무꾼 가스터에게조차 정이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이 안 갈 수가 있을까.

문득 마법사는 그의 퍼밀리어를 의심스럽게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마왕이 심심풀이로 세상을 멸망시키고 싶어한다는 건 어떻게 안 거냐?”

“마왕이 소문을 다 내고 다니고 있어요. 전단지 같은 것까지 뿌려가면서요. 이것 보세요!”

 

이마트라가 자신의 귓구멍에 꽂혀있던 둘둘 말린 종이를 뽑아 건네주었다. 마법사는 한쪽 끝에 귀지가 묻어있는 그 종이를 조심조심 펼쳐 살펴봤다.

 

 

※세상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심심해 죽겠으니☆★

◆어디 한 번 나를 막아보거라◆

☎마왕성 인력 급구☎

 

 

그 밑에는 마왕성의 위치까지 지도로 친절히 표시해놨다.

 

“도대체 뭐야, 이 감성은?”

“수천 년 전 존재라 감성이 올드하네요.”

 

마왕성의 위치는 과거와 완전히 동일했다.

자신이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이랑 같은 이유인지,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안 옮긴 건지.

그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지도를 보며 헤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것보다 마왕성 인력 급구라니.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사람 밑에서 일할 인간이 있을 리가 없잖아.”

 

너무 오랫동안 심심해서 맛이 가버린 것인지.

 

쾅쾅쾅!

 

“현자님!”

 

오랜만에 듣는 부끄러운 호칭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먼저 저 호칭부터 고치라고 해야겠군.”

 

이번 용사는 어떤 녀석일지. 오랫동안 벽에 세워둔 탓에 위에 먼지가 소복이 쌓인 대외용 지팡이를 집어든 마법사는 목을 두어 번 가다듬은 후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선 사람은 세상을 구한다기엔 너무 어린 꼬맹이었다.

 

“현자님!”

“아랫마을의 샨 아니냐. 여기까지 무슨 일로 어떻게 온 거니.”

“어른들이 보내서 왔어요. 마을 사람들 중 제가 발이 가장 빠르니까… 그보다 큰일 났어요.”

 

마을서부터 내리 뛰어왔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샨이 말했다.

 

“마왕성에서 뿌린 전단지를 본 용사님이, 차라리 마왕군에 지원하겠다고 떠나셨어요!”

 

엥?

용사가 그동안 여러 모로 힘들었던 건가. 생각해 보면, 마물 토벌 업무를 위해 험난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왕국에선 매일 파티의 나날이었지. 용사의 반감이 안 생길 수 없긴 하지.

그렇다고 해도 마왕 밑으로 들어가다니. 용사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나?

 

“일단 용사를 잡자. 설득부터 해야겠어.”

“앗! 현자님! 지금 용사님 보러 가는 건가요?”

“으음.”

 

보러간다고 하기에는 조금 어페가 있는데.

하지만 잡으려면 일단 마주하기는 해야할 테니, 샨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용사를 보러가는 건 맞긴 하지만.”

“그럼 저도 데려가 주세요!”

 

해맑은 표정으로 저를 데려가 달라 하는 꼬맹이의 모습에 마법사는 반사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제 퍼밀리어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뒤에서 튀어나와 샨의 코 앞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어이구. 꼬마야, 현자님은 놀러가는 게 아니야.”

 

아니, 저게 내가 저 말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

마법사가 제 퍼밀리어에게 뭐라고 하려는 순간, 마법사의 집이 폭발했다.

 

“갸아악!”

 

마법사는 순간적으로 보호막을 펼쳐 샨과 이마트라를 보호했다.

폐허가 된 집터에 서있는 것은 무시무시하게 강해 보이는 여성형 마족이었다.

 

“네가 마법사인 이녹프리체 일루스렷다!”

“넌 누구냐!”

“나는 마군총사령관이다! 그런데 갑자기 용사가 마왕군에 들어온다고 해서 입지가 애매해졌다. 이번에 취직해서 동네 잔치까지 했는데 친인척들 뵐 면목이 없지 않는가! 그러니 너희가 인류를 배신한 용사를 처단할 생각이라면, 이 몸께서 힘을 빌려주겠다는 말이다!”

“이… 힘을 빌려준다는 녀석이 다짜고짜 남의 집을 부숴먹어!”

“우습구나. 돌아올 곳을 남겨두면 마음이 약해지는 법!”

 

저 신참 마군총사령관은 공용어를 구사할 줄만 알지, 말이 통하는 녀석은 아닌 것 같았다. 마법사는 이마를 한 번 짚고는 한 팔로 샨을 번쩍 들어 옆구리에 끼웠다.

 

“일단은 한시라도 빨리 용사를 쫓자꾸나.”

“어이, 감히 이 총사령관을 무시하는 거냐!”

“용사가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니?”

“마족이 말을 하면 들어!”

“점심 드시다가 사제님과 싸우고 바로 나서셨으니 아직 너른 들에 도착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알았다. 이마트라, 어깨에 올라와라.”

 

이마트라가 펄쩍 뛰어 마법사의 오른 어깨에 사뿐히 올라 앉았다. 지팡이 머리를 장식한 보석들 중 손톱만 한 월광석이 반짝였다.

 

“둘 다 날 꽉 잡으련.”

 

마법사는 무릎을 굽혔다 도약했다.

순식간에 양떼구름보다 높은 허공으로 뛰어오른 마법사와 아이, 그리고 토끼 한 마리는 새처럼 빠르게, 그러면서도 안정적으로 바람을 타며 산 아래로 날아갔다. 멀리 산 아랫마을의 정경이 보였다.

모험의 냄새가 실린 공기가 마법사의 뺨을 에었다. 그러나 그건 매번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낯선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니, 따라오라는 말도 없었건만 마군사령관도 태연하게 마법사 일행과 동행하고 있었다.

 

“근데 마족이 친인척들 눈치를 본다고요?”

 

샨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리 가문만 그렇다. 우리 가문은 마왕님이 부활할 때마다 마군사령관 직을 맡았거든. 내가 38대 마군사령관이다. 그걸로 가문 전체가 마족 사회 내에서 막강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친인척들이 내 입지에 눈이 벌개져 있는 거지. 마왕님은 능력주의라서, 가문이건 뭐건 능력이 있어야 자리를 주시거든.”

 

사실 친인척 눈치라기보다는 용사가 오면 자기가 마군사령관직에서 물러서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것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 마군사령관 자리는 한 가문에서만 차지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물론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라서 틀렸을 수도 있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마왕군을 조직하니, 마왕을 무찌를 정도의 실력의 용사면 빠르게 2인자 자리를 노릴 수 있을 테니 제 자리를 위협받는다는 생각에 온 것이겠지.

아니면 용사가 어떤 생각으로 마왕 옆에 가려고 하는 것인지 의심을 하고 있던가.

아마 저 말도 관계에 신경쓰는 인간의 행동을 생각한 변명일 것이다.

 

“그거 참 인간적인 말이군.”

 

내 말을 들은 사령관이 아니꼽다는 듯이 콧방귀를 꼈다.

 

“흥. 가장 인간답지 않은 인간한테 그런 평가를 받다니, 영광스럽기 그지 없군 그래.”

“그 말,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그렇지 않은가? 마법사 네놈이 지난 수백 년 간 마왕님이 부활할 때만 세상에 나서고, 정작 인간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울 때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 놈이라는 건 우리 마족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입술을 힘주어 다물 뿐 가타부타 대꾸하진 못했다.

원래 그런 법이잖나. 사실을 지적 받으면 할 말 없는 거.

나는 로즈실드 공작 가문 소유의 공작령에 거주, 공작 가문이 찔끔 베푸는 세금으로 먹고사는 입장이다. 당연히 공작 가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한때 근처에 살던 연금술사 르아키르가, 사파이어 보검을 연성해 달라는 공작의 청을 힘들다고 거절했다가 대뜸 (있지도 않은) 주거료를 내지 않았다며 공작 가문의 가병들에게 퇴거 당한 일이 있을만큼, 로즈실드 공작은 이 나라의 실세.

나는 그저 용사와 마왕 잡는, 일개 마법사인 거다.

멀리 평야에 앞서가는 용사와 그를 뒤쫓는 사제로 추정되는 사람 둘이 보였다. 그리고 그 평야와 성을 연결하는 대로를 공작의 병사들이 달리고 있었고, 일부의 병사들은 갈림길에서 갈라져 평야가 아닌 마을 방향으로 향했다. 마법사를 찾으러 오는 병력을 따로 안배해둔 것 같았다.

 

“이녹프리체! 내려오라!”

 

들켰다.

 

“마군총사령관! 너는 숨어있어!”

 

마법사가 내려오니 병력의 선두에 공작의 가신 버터마가린 백작가의 시종장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국가의 도구가 자신의 쓰임새를 망각하다니! 이것은 국왕에 대한 반역이다!”

 

마법사는 코웃음을 쳤다.

 

“국왕에 대한 반역? 국왕과 나의 계약이 무엇인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

 

그 말에 시종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외쳤다.

 

“그거야 당연히 국가에 충성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말에 마법사는 삐뚤어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다른 마법사라면 그렇겠지만, 마왕을 무찌를 의무를 부여받은 나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

“뭐, 뭐라고? 그게 무슨 헛소리냐!”

“내가 나라의 대마법사처럼 굉장한 마법은 못 부리지만 딱 하나 잘하는 게 있지.”

 

그것 때문에 여태 죽지 못 하고 있는 거지만.

 

“그건 누군가를 쫓는 거야. 좀 가볍게 얘기하면 누구보다 뛰어난 사냥개랄까.”

 

물어뜯는 이빨은 다른 곳에 있지만.

 

“추적 마법을 말하는 건가? 그건 쉬운 마법 아닌가?”

“아, 물론 추적 마법 자체는 쉽겠지. 다만, 그 추적 대상을 마주한 적이 있어야 하지 않나?”

 

당연한 말을 하는 것에 시종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마법사를 빤히 보았다.

마법사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나는 추적 대상을 만난 적이 없어도 찾을 수 있거든. 설사 전혀 모른다고 해도.”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현자라고 불렸다.

무엇이든 척척 찾아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 두지 않은 채 벽지에서 양을 치거나, 농사를 짓거나, 넘으면 안 되는 산맥에서 강도단 짓이나 하며 그야말로 평범하게 사는 일반인이었던 이들이 운명의 명령으로 용사가 되어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마왕을 무찔렀던 것도, 다 그들이 어디를 목표로 나아가야 하는지 옆에서 조언해준 마법사의 공이었다.

 

“그러니 만일 내가 당신의 표현마냥 도구라면, 난 허드렛일 하는 점토 골렘이 아니라, 영지 하나를 주고도 사지 못할 고급 나침반이란 말일세.”

 

뭐, 지금 그가 쫓는 쪽은 그 나침반을 써야 할 양반이지만

마법사의 말에 잠깐 당황해하던 시종장은 곧 제가 할 말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뻣뻣이 들고는 외쳤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자리에서 이탈하는 것 역시 명을 어기는 것 아닌가! 폐하의 명을 어기는 것은 그 또한 반역!”

 

쳇바퀴 돌듯 같은 말을 하는 시종장의 행태에 마법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놈의 반역, 좋아하시네. 진짜 반역 하려고 하는 양반 찾으러가는 거니까 좀 비켜줬으면 하는데.”

 

그 말에 시종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뭐라! 반역자에게 가려고 한다고! 반역 하려고 한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냐!”

 

저 쳇바퀴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않는 것에 마법사는 뒷목을 잡았다.

그 때였다.

 

“아오 답답해, 확 쓸어버려!”

 

마군총사령관이 벌컥 튀어나와버렸다!

 

“웨, 웬놈이냐!” 시종장은 범상치 않은 여성의 출현에 당황했다.

“정체를 밝혀라! 생김새를 보아하니 설마, 마족…?”

“나는 마군총사령, 읍읍…”

 

마법사가 사령관의 입을 틀어막았다. 시종장에게 마족과 함께 있는 모습까지 보여준다면 상황이 더 꼬일 건 당연한 일.

 

“어, 이 녀석은, 어…”

 

뾰족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젠장 망할 총사령관 녀석!

그때, 이마트라가 말했다.

 

“이세계에서 넘어온, 새로운 고등학생 용사님이시다!”

 

야, 이마트라…….

아무 말이나 막 뱉으면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고등어생?”

 

시종장은 그 낯선 단어를 어설프게 발음하며 마법사와 그의 퍼밀리어를 번갈아보았다.

 

“고딩이라고도 하지!”

 

이마트라가 물어보지도 않은 (게다가 별 도움도 안 되는) 정보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마법사는 한쪽 손을 이마에 탁 치며 갖다댄 후, 얼굴을 아래로 쓸어내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놈들을 데리고 지금 뭘 하러 가려는 건지 돌연 회의가 들었다. 자신들을 보면 용사가 ‘마왕에게 가는 게 역시 옳았어’라고 확신을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무튼 용사라는 게 중요하지 않아?”

 

무기를 든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하나도 쫄지 않고, 마군총사령관이 말했다.

그래도 맞장구를 칠 눈치 정도는 있나보다.

 

“나도, 이 마법사 놈도 한시가 급하다. 네깟놈들이 앞길을 방해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당장 길을 비켜라!”

 

그의 기세에 눌렸는지, 시종장이 움츠러들었다.

마법사도 이게 먹힐 줄은 몰랐던 터라, 어이 없는 표정으로 시종장과 고등학생이 된 총사령관과 이마트라를 번갈아 봤다.

이마트라가 마법사에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마법사는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용사는 분명 한 시대에 한 명만 나타날 텐데.”

 

시종장이 말했다.

 

“하아. 용사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마왕을 잡기만 하면 되지 않나? 용사가 많으면 마왕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니까 좋은 거 아닌가?”

 

마법사의 말에 시종장은 이상하다는 듯이 보면서도 긍정해주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어쨌든 용사님하고 마왕 잡으러 가는 거니까 막지 말고 비켜주시죠! 한시라도 빨리 막아야 하니까!”

 

이미트라의 말에 시종장은 눈치를 보다가 선심을 쓰듯 거드름을 피우며 외쳤다.

 

“좋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대는 그대의 의무를 다하도록!”

 

이 상황을 어떻게든 넘겼다는 것에 마법사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호스트 코멘트

이렇게 특별한 마법 하나를 아는 평범한 마법사 1과 그의 퍼밀리어, 용사가 된 마족총사령관, 그리고 중간에 묻혀버린 꼬마 샨과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박수)
내용에 따라서 제목도 바꾸어볼까 했는데, 따로 좋은 제목이 생각 나지 않아서 제목은 이대로 하겠습니다. 퇴고 후에도 수정이 가능하니까, 혹시 괜찮은 제목이 생각나신다면 추천해주세요!
오늘 내일 내로 마법사 이야기의 새로운 스레드를 세우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참여자


후원자

익명의 후원자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