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머리의 칼컵

어느날 눈을 떠보니 왼손에는 칼이, 오른손에는 컵이 이식되어 있었다.

 

기분 나쁜 악몽이야. 나는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진 않았다. 무심결에 왼손을 들어 눈가를 비비려다가 섬찟한 느낌에 우뚝 멈췄다. 서슬퍼런 칼날이 내 속눈썹 앞에 있었다.
속으로 몇 마디 욕설을 중얼거린 다음 다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흰 머그컵이었다. 꿈이 아니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 어느 손으로도 나의 체중을 지탱하여 균형을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트에 푹 들어간 칼자국을 다섯 개 쯤 만든 뒤에야, 난 오른손― 오른컵 컵받침을 시트에 딛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협탁에는 손이 없어진 내 신세를 배려라도 해준 건지 활짝 펼쳐진 메모 한 장이 달랑 놓여 있었다.

[왼손을 이용해서 오른손을 만족시키세요.]

 

2341년 서울시 강서구, 이 곳엔 나 같은 빈민 사이보그들이 모여사는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다. 과거에 비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명공학이나 기계공학 따위가 발달했지만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근본적으로 변함이 없었다. 돈이 없으면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

“이 인간 장난질이 참 지독도 하구만.”

나는 수술대에서 마취가 깨 일어나 내 양손을 살피며 말했다. 채무를 갚기 위해 국가에서 무상지급한 보급형 인공손 양 쪽을 장물아비 성 씨에게 팔기로 했는데, 이 고약한 놈이 손이 빈 자리에 칼과 쇠컵을 갖다 붙여놓은 것이었다.

 

역시 제대로 된 수술대도 없는 놈에게 손을 맡기는 게 아니었다. 나는 우스꽝스럽지도 않은 장난질을 쳐놓은 성 씨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일단 찾기만 하면 이 무슨 장난 짓이냐고 컵으로 머리를 두들겨줄테다. 더 성질이 뻗치면 반대쪽으로도.
하지만 방은 비어 있었다.
대신 원래 팔기로 되어있던 인공 손 한 쌍이 문에 걸려있는 걸 발견했다.
생명을 잃은 무기질적인 모습이 어딘가 섬뜩했다. 양 손은 서로를 갈구하듯 뻗어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문에 사슬로 연결된 게 보였다.
그제야 조롱하듯 놓여있던 쪽지가 떠올랐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도 아니고,(아, 반대인가?) 왼손을 이용해서 오른손을 만족시키라고? 쪽지에서 말한 왼손과 오른손이 문에 걸려있는 저 두 손을 일컫는 건지, 아니면 지금 내 양손에 나를 놀리듯이 붙어있는 칼과 컵을 일컫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사람이 유머감각이라고는 없는 저질일 거라고 짐작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에 띄는 카메라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어떤 변태 같은 놈인지는 몰라도, 지금 이 꼴을 보면서 배꼽 빠지게 웃고 있겠지.’

 

왼손을 이용해서 오른손을 만족시키라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만족의 반대말은 불만이고 지금 내가 오른손에 제일 불만스러운 점은 왜 이 딴 게 손목에 붙어있냐는 것이다. 내 머리로는 원래 오른손을 원래 자리로 돌려놔서 만족시키라는 뜻으로 들리는데 이런 짓을 하는 미친놈도 그런 뜻으로 적어놓은 걸까? 미친놈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 상상도 못 하겠다.

 

문득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불만어린 생각들을 한켠으로 싹 밀어낼만한 아이디어. 설마 나이프로 빵에 잼을 바르고,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시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라는 대우주의 계시인가? 결과적으로 잼 통은 엎어졌으며, 뜨거운 커피만 사방에 엎지르는 꼴이 되었다.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같았지만 웃어주는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없는편이 더 나았지만, 서러운건 어쩔 수 없었다.

“설마.”

그러고보니 왼손의 칼로 오른쪽의 컵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더 있긴 했다. 그가 상상할 수있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잔인한 방법은 내 취향이 아니거든?
포기하듯 양 손-물건-을 들어올린 내가 문으로 다가갔다. 인공손은 얌전히 놓여있었다.
저걸 어떻게 잡을 수 없나. 한 때의 내 손을 찜찜하게 올려다보았다. 선택지가 칼이랑 컵이니 하는 수 없지.
나는 칼로 인공 손을 푹 찍었다. 그리고 낑낑거리며 오른쪽을 향해 당겼다. 사슬이 차르륵 당겨지며 두 손이 서로를 마주 잡았다.
만족했냐?
응답하듯 문이 열렸다.
진짜 별 짓거리를. 눈을 불태우며 성 씨를 찾는데 그대신 꼬마가 보였다.
“너, 보물을 손에 넣었구나.”
웬 소녀 사이보그다.
“나 줘.

 

‘보물? 이것들이?’

웃기는 소리였다. 이것들은 불편하면 불편했지 전혀 보물이 아니였다.

‘날 가지고 놀려는 건가?’

최근 부유한 사이보그들이 빈민 사이보그들에게 ‘장난’ 이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신체 변형 및 결손 등을 저질르는 일이 있다는 뉴스를 언듯 들은적이 있었다.

이 상황도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고서야, 인간 엔지니어에게 최고급 기름과 부품으로 정비받으며 살 법한 저 부유해 보이는 사이보그 소녀가 이런 냄새나고 더럽고 시끄러운 빈민촌까지 올리가 없지 않는가?

“부탁 들어줄거야?”

 

날 자기 쪽으로 홱 잡아당기며, 소녀는 방 밖으로 뛰어내렸다.
비참하고 익숙한, 내가 사는 동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 속에서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 머그컵을 단 채 속절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나만 평소와 달랐다.

 

나는 철퍽하고 흙바닥에 떨어졌다. 충격으로 내 오른손에 붙어있던 쇠 컵이 찌그러져버리고 머리도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요 며칠 전부터 목이 계속 뻐근하더니 목 관절이 드디어 박살 나버렸다. 같이 떨어진 소녀 사이보그는 비싼 몸인지 그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멀쩡했다. 나는 머리를 다시 목에다 붙이려고 허우적거렸지만 내 손 상태가 이런데 어떻게 붙인 단말인가?

 

“아파?”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평온하게 물어봤다. 이런 몸을 가진 내가 비정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이런 나를 보고도 천진난만하게 저런 걸 물어보는 이 소녀가 비정상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니.”
나는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면 다시 조립해주거나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니?”
“그런가?”
그런가, 라니. 윤리적인 판단이 가능한 코어 같은 건 전혀 탑재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아파?’라고 물어볼 것 같은 모습이었다.

 

도와줄 생각이 없구나.
나는 칼이나 컵으로 머리를 잡으려는 시도는 바로 접었다. 아무렴 인공 손 때처럼 내 머리를 푹 찔러버렸다가 내 노동력보다 비싼 부품을 건드리기라도 하면 인생의 회의감이 과부화될 것이다.
바둥거리며 몸을 세운 내가 아기보퉁이를 안듯이 옆구리와 팔을 이용해 머리를 들어올렸다.
마치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나 나올 법한 몰골이다. 흉흉한 도구를 달고 제 머리를 든 괴물.
가뜩이나 손에 달린 물건때문에 사람들이 피할 상인데, 이제 종점을 찍는구나. 눈물을 삼키며 머리를 안고 달렸다.
일단 저 상식이 없는 아이는 피하자.

 

탈출은 했지만 이대로 어디로 가야 하나 걱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니 앞으로 이런 불편하고 흉측한 몰골로 살 생각에 앞이 깜깜했고 사이보그 정비소에 가서 몸뚱이를 원래대로 돌리자니 돈이 없었다. 경찰에 내가 당한 일을 전부 꼰질러버릴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랬다간 나도 손 밀매 혐의로 잡혀갈 것이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내겐 이제 생각할 여유도 사치였다. 빤히 내가 가는 모양을 보고 있던 소녀가 또 다시 팔을 뻗어왔다. 생각보다 멀리.
“놓고 가.”
“그러고 싶어도….”
반박하려던 나는 얼어붙었다. 소녀의 팔이 여덟갈래로 벌어지고 있었다. 한 팔에 네 갈래라는 단순한 계산을 하기도 전에 소녀가 눈을 번득였다.
“후회할 짓 하지마.”
이미 후회하고 있다!
저런 개조에 비하면 내 칼과 컵은 귀여워보일 지경이다. 얼마나 앙증맞은가. 하찮게 휘둘러보는 동작-정확히는 벌벌 떠는 동작-을 완료한 내가 머리를 뒤쪽으로 고정한 채 질주했다. 거기 누구 없어요?

 

하지만 이곳은 인적 드문 외곽지역이었다. 잘 곳 없고 굶주린 개떼나 경찰에 쫓겨 잠시 치안구역 밖으로 대피한 에어바이크 갱단들이 아니면 이런 깡촌 쓰레기장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설사 있더라도 저기 쫓아오는 살인 기계 문어같은 사이보그를 보면 날 구하는 대신 내가 사이보그의 천국에라도 갈 수 있게 명복을 빌어주는 걸 선택할 거다.
정신없이 뛰던 다리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엎드린 채 고개만 하늘로 치켜든 내 눈에, 궁지에 몰린 생쥐를 보는 고양이같은 얼굴을 한 소녀가 내 몸을 향해 뛰어오르는 게 들어왔다.

 

이딴 쓰레기들 말고, 쓸만 한 무기라도 손에 달려 있다면 좋으련만. 이를테면, 이를테면….

 

무기라면 내 손에 달린 이것만큼 마땅한 게 없다. 될대로 되라라는 심정으로 왼칼-손-을 내뻗었다. 까강하고 되도않는 호승심이 호되게 부러지는 소리를 예상했으나 내 귀에 잡힌건 선득한 베이는 소리였다.
다단으로 이루어진 촉수 팔이 정말 물컹한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 칼이 부드럽게 찌르고 들어갔다.
“…뭐야?”
나는 피라도 터질까 놀라 멈칫했다. 바보같이. 소녀의 공격수단이 몇 개나 있는지 좀 제대로 세어둘 걸 그랬다. 하나는 잘랐지만. 나머지 팔이 쉽게 내 목을 졸라 기절시켰다. 곧장 시야가 끊겼다.

 

아니 잠깐 내가 왜 정신을 잃는 거지? 내 목은 아까 전에 분질러졌는데?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머리통은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왼 칼로 소녀의 남은 팔도 잘라버렸다.

 

분질러진 목으로도 기절을 한 줄 알았다니 아직도 연결되었을 적 기억을 못 버린 모양이다. 허우적거리는 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머리통을 반대쪽으로 넘겨받으니 훨씬 수월했다.
잘린 팔이 바닥에 나뒹구는 걸 본 소녀의 얼굴은 담담했다.
“더, 더 가까이 오면 다른 부분도 성치 못할걸?”
“그래서 필요했던 건데.”
소녀가 중얼거렸다. 연결이 끊긴 촉수 팔들이 꿈틀거리더니 치익 소리를 내며 녹아버렸다. 마치 기계가 아니라 진짜 생물체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 갖고 있다간 너도 저렇게 될 거야.”
저렇게? 저렇게가 무슨 저렇게인데?

 

뭐, 나도 저런 촉수를 달고 살게 될 거란 말인가?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었다.
안드로이드가 발명됨에 따라 인간들은 자신의 피조물이 자신과 완전히 같아질 것을 우려 해, 안드로이드는 반드시 무기질로만 만들어 졌다.
저런 유기질의 어떤 것과 연결 되는 것은 설계 구조 상 무리였다.
도대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무..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날 좀 내버려 둬!”
연산처리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상황에 짜증과 분노, 왠지 모를 울컥함을 섞어 소녀에게 토로하듯이 외쳤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매캐하게 탄 냄새가 피어올랐다. 약간 거슬리는 정도였던 연기가 콧속을 쥐어짜듯 매캐하게 타들어가는 정도로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당황한 내가 잘린 머리를 위로 들어올렸다. 촉수 팔이 녹아버렸던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소녀는 뼈가 발라진 양 팔뚝을 펼치며 눈을 감았다.
“그 분이 오신다.”
바닥에서 가는 전선들이 자라나는 실버섯처럼 기어오르더니 종내는 솟구쳐올랐다.

 

“죽은 건가.”
이렇게 주인공은 중얼거렸다.
비록 그 표현이 사이보그의 최후라는 상황에 걸맞는 표현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손이 손인지라 분리가 된 머리를 결합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엔 해내고 만다.
그렇게 겨우 숨을 돌리고 앉아 있는 주인공을 향해 누군가 다가왔던 것이다.
사실, 그 누군가라는 자는 아까부터 주인공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롭게 등장한 그 사람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주인공을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아주 조용한 박수였다.
주인공은 말했다.
“도대체 누구세요?”

 

박수를 치던 그 사람은 이번엔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당신은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시험, 이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시험이라니?”
“지금은 그냥 간단하게 우리의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걸 알아보는 시험이라고 해 두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인데요? 대체 지금 이게 무슨 난리냐고!”
주인공의 외침에 그 사람은 깜짝 놀라는 듯 했지만, 금방 원래의 그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기요. 지금 절 죽일 거죠? 그렇죠?”

 

“죽이다니요? 우리가 왜 당신을 죽이겠어요? 우리한테 꼭 필요한 사람인데?”
“그럼 대체 왜 저를 괴롭히는 건데요? 방금 죽을 뻔했다고.”
“원래가 다 그러는 거 아닌가요?”
“뭐가?”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선 그 만한 대가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방금 뭐라고? 많은 돈?”
“네. 돈이요. 그것도 아주아주 많은 돈.”
주인공은 돈이라는 얘기를, 아니, 아주아주 많은 돈이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방금까지 겪었던 상황들을 말끔히 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지금 아주아주 많은 돈이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조용해진 걸 보니. 제 얘기를 잘 알아들은 모양이네요. 자 그럼 가실까요?”
“간다고요? 어딜…”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자동차였다.
그 검고 커다란 자동차가 착륙하는 순간 거기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방금 전에 그 사람은 주인공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보자면 실상, 주인공은 그 사람들에게 잡혀서 끌려가는 거였다.
주인공을 태운 자동차는 하늘 위로 솟구쳤다.
한편.
소녀의 형상이었던 건 이제 다 녹아 버려 그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소녀는 제거 된 것이다.

호스트 코멘트

날짜가 되었기에 분기점에서 마무리하고 이어 가겠습니다.

참여자


후원자

민트박하그리고 익명의 후원자 6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