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그리고 태어난 이상 똥은 수백번은 싸지른다.
아이돌은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는 미신이 있지만
공교롭게도, 그건 산타가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산타는 없고, 아이돌은 화장실에 가며,
누군가는 생명이 죽은 후의 잔해물을 치워야 한다.
그렇기에 남을 죽이는 킬러는 똥을 치우는 화장실 청소부와 같으며,
제퍼슨의 경우, 아주 뛰어난 청소부다.
그러나 오늘은 입장이 역전됐다.
오늘의 제퍼슨은 하나의 커다란 똥주머니에 불과했다.
공교롭게도 비유가 아니다.
이것은 똥주머니와 청소부의 더러운이야기다.
독자 제군들은 유당불내증이란 것을 아는가?
심플히 말하자면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이야기다.
제퍼슨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장의 선천적인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당연하다. 의사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우유는 최대한 피해왔다.
커피도 라떼대신 에스프레소만 마셨다.
어제까진 그랬다.
덜떨어진 종업원이 주문을 착각하지만 않았다면…
극도로 민감한 킬러의 내장에 한 방울의 우유가 떨어지는일도 없었겠지.
등에 총이 겨눠진 것 같은 감각이 허리를 타고 오른다.
시야는 좁아지고, 식은땀이 광대뼈를 타고 내려가 목울대에서 곡선을 그리며 정장에 스몄다.
킬러로선 좋지 않은 전개였다.
사실, 누구든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특히나 적이 많은 제퍼슨이라면 더더욱.
그가 커피를 마신 카페는 A백화점에서도 꽤 좋은 위치에 입점해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화장실이 멀다는 뜻이다. 이 카페는 더러움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장소였다.
정확한 수치로는 약 31미터.
킬러의 눈은 그 거리 가운데 적어도 세 명의 적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포착해냈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제퍼슨은 고민했다.
총을 쓴다면 세 적을 단숨에 해치울 수 있겠지만 필연적으로 소음이 발생한다.
경찰이 오는 게 두려운 게 아니다. 그 뒤에 오게될 것을 생각하니 잔뜩 민감해진 장이 요동쳤다.
패닉. 수많은 인파.
스마트폰 카메라와 비명이 난무하리라.
그런 전개는 8시에 저녁뉴스가 방영될 것이란 것만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주저할 시간은 없다.
유당이란 이름의 하얀 사신은 사회성에 종말을 고하기 위해 장을 따라 도적처럼 내려오고 있으니까.
한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된다.
제퍼슨은 행동에 들어갔다.
킬러의 수칙 첫번째는 사람들 사이에 녹아드는 것이다.
제퍼슨이 발을 디딜 때마다 괄약근은 모든 것을 포기하려 굴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걸어 잠궜다.
그리고 웃으며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한 일행이나 된 듯이 사람들 속에 녹아서 걸었다.
적들은 그의 접근을 알아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20미터.
적 하나가 자신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적의 양복 품에서 소음기 달린 글록이 슬며시 보였다.
킬러의 수칙 두번째
불필요한 충돌을 피한다.
두 번째 수칙을 따르려면 그는 적의 시선을 피해 그를 등지고 인파에 섞여야 했지만, 지금 그랬다간 스무 걸음도 못 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될 터였다. 그러곤 아마 세상의 모든 킬러들 중 가장 비참하고 더러운 꼴로……, 내 말은, 위생적으로 더러운 꼴로 죽음을 맞이하겠지.
차라리 적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재빨리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버리자, 그리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하는 제퍼슨의 앞으로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끼어들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앞서 가던 사람이 바닥에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엎은 것이었다.
바닥은 커피색으로 미끄럽게 물들고 피해 디뎌야 할 얼음조각이 지뢰처럼 자리 잡았다.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것 처럼 자연스러운 장애물이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청소부가 걸레를 가지고 달려오고 있지만 지금의 그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 순간, 제퍼슨의 형광색 범죄세포가 아크로바틱하면서 극도로 위험한 도주경로를 제시했다.
평소라면 그렇게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곡예사가 아니다. 킬러다.
화려함보다 정확성과 은밀함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즉, 다음 행동은 생리적 황갈색 욕망이 이성을 이겼단 씁쓸한 결과물이었다.
제퍼슨은 얼음조각 위에 올라타, 잘 닦여진 백화점 중앙 통로를 따라 주르륵 미끄러졌다!
괄약근과 평형감각의 사회적 생존을 위한 업무협약은 예술적이게까지 보였다!
그 누가 팔짱을 낀 채 꼿꼿이 서서 화장실을 향해 미끄러져 가는 그를 킬러라 상상이나 하겠는가!
14미터! 13미터! 10미터!
코앞까지 다가온 고지,
그러나 운이 없는 날은 완벽한 계획이라도 그르치기 마련.
이 계획은 완벽은 커녕 즉흥이였다.
오히려 맞는 패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풀 하우스를 잡은 것 마냥 올 인을 해버리는 포커 플레이어의 블러핑에 가까운 악수.
각 요소를 종합한 결과, 운명의 여신은 머피의 법칙을 향해 미소지었다.
마지막 얼음이 녹은 순간 균형을 잃은 제퍼슨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어디서나 있었을 일.
인류에게 있어선 작은 한 걸음에 불과했다.
균형을 잡기 위해 무심코 내딛은 한 걸음은, 제퍼슨의 내장엔 치명적이었다.
지금껏 절묘한 밸런스로 유지되고 있던 내장의 압력이 틀어지고, 꾸륵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장을 타고 위장으로, 식도로 올라와 폐를 전율시킨다.
온다.
제퍼슨은 유사이래 최대급의 공포와 절망을 느꼈다.
다리가 떨리고, 눈의 초점이 엇나간다.
‘놈’은 제퍼슨의 역량을 뛰어넘은지 오래였다.
더 이상 하복부에 가해지는 압박을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손은 이미 벨트 버클을 누르고 있었다.
바지가 느슨해져 적이 접근하면 발목을 잡는 꼴이 되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장 아랫도리가 처참한 꼴이 되는 것보다는 나앗으니까.
가까운 쇼윈도로 적의 동태를 확인한 뒤, 제퍼슨은 혀를 찼다.
제퍼슨을 노리고 노골적으로 동선을 좁혀오는 적은 이제 두명이었다.
그나마 화장실 입구에 도달한 것이 위안거리였으나…
운명의 여신은 여전히 머피의 편이었다.
세면대 파이프가 터진 화장실 바닥은 홍수상태였던 것이다!
남은 생애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끌어다 쓰고 싶은 생각이 절실히 들어도 입 밖으로 내진 못한다.
말을 하려면 목과 배에 힘을 줘야한다.
폐에서 공기를 빼야 한다.
즉, 욕지거리를 위한 모든 행위는 내장에 영향을 준다.
아, 인간의 존엄함은 사람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하는가!
제퍼슨은 차라리 모든 것을 해방하고 싶었다. 중력에 순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진 못한다! 그는 아직 인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순간, 제퍼슨은 변기를 향한 이 여정에서 가장 큰 도박을 시도했다.
달렸다.
갓 태어난 아기사슴처럼 입을 벌린 채.
식은땀이 저 영국의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캐서린의 목숨을 앗아간 비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버클을 풀고 두 손으로 흘러내리는 바지를 움켜쥔 채.
미끄러 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사상의 지평선 너머로 보내 둔 채.
달렸다. 제퍼슨은 달렸다!
바지에 똥을 지린다는 운명과의 마지막 결투장에서, 제퍼슨은 선명한 용기를 증명해냈다.
이 순간, 운명의 여신은 판결을 내린다.
잔인하게도…
여신의 엄지는 지면을 향했다.
제퍼슨은 변기 앞에서 미끄러졌다.
역시 바닥의 물이 문제였던 것이다.
무너져간다.
시선의 높이가, 인간의 존엄이, 킬러의 명성이.
킬러 제퍼슨은 그저 화장실에 가고 싶었을 뿐이었으나…
오늘,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언제부터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운에 맡겼는가.
제퍼슨은 킬러다.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는 현대사회에선 엄연한 불법.
만사를 운명에 맡긴다는 것은 ‘바른 길’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킬러는 신에게 기대지 않는다.
다만 활로를 계산하고, 개척할 따름이다.
킬러의 수칙.
그 세번째.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라’
앞으로 고꾸라지기 직전, 제퍼슨은 팔을 뻗어 변기를 붙잡았다. 몸을 앞으로 당겼고, 순수 완력만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복부의 압력은 이미 레드존을 돌파했다.
그 상황에서 허리를 비튼다는 것은, 화장실이 절박했던 경험이 있는 독자제군이라면 전율할 행동일 것이다.
제퍼슨은 이를 실행했다.
몸을 비틀었을 때의 회전과 탄력을 이용, 변기위에서 아주 낮게 점프했다.
체공시간, 약 1.3초.
감미로운 방향제가 코 끝을 간지럽히는 가운데, 제퍼슨은 공중에서 바지를 내렸다.
이윽고, 착석.
“으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환희와 배설감, 달성감과 고통. 안도와 기쁨.
감정의 소용돌이가 장을 지나 몸에서 떠나는 것들과 함께 가슴이 웅장해지는 카타르시스의 하모니를 이뤄냈다.
한 순간, 그럼에도 영원과 같은.
해방의 시간이 끝난 뒤, 제퍼슨은 환희의 잔향이 남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지를 적당량 뜯어 남은 악몽을 닦아내고, 정중히 변기뚜껑을 닫은 다음 버튼을 눌렀다.
뚜껑 아래에선 끔찍한 기억이 소용돌이를 만들며 종말처리장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리라.
제퍼슨은 화장실 문을 열고 새로운 세상의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배설욕구로 포화되었던 뇌에 온갖 정보가 들어왔다.
자스민 방향제와 화장실 타일의 냉기, 화분 속 커피찌꺼기의 냄새.
그리고- 그를 죽이기 위해 적이 화장실 칸막이 너머로 던진 소형 폭탄이 풍기는 희미한 화약냄새도.
운명은 음지의 사람들에게 미소짓지 않는다.
킬러의 세번째 수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진리를 나뭇잎을 핥는 햇살처럼 선명하게 알 것이다.
그리고 이날, 운명의 여신은 평소보다 좀 많이 악독했다.
제퍼슨이 앉은 변기는 커버가 본체와 완전히 맞물리지 않고 뒤가 약간 떠 있는 형태였다.
이른바 불량품이란 녀석이다. 지금껏 아무도 불편을 느끼지 못했기에 교체되지 않고 있었다.
뒤가 약간 뜬 만큼, 뚜껑을 내려도 변기 뒤에 빈틈이 생긴다.
그 구멍의 크기는 소형 폭탄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작지만 고성능인 소형폭탄의 뇌관이 변기의 수면에 착지하기 직전 격발했고, 약간 큰 소리를 내며 변기를 터트렸다.
이 소리 때문에 백화점 일대에 혼란이 생기지는 않았다. 제퍼슨을 추적해온 두 킬러는 용의주도하게 화장실 입구에 ‘청소중’ 안내판을 설치하고, 문을 닫아 소리를 최소화 시켰다.
백화점을 오가는 사람들은 폭발음을 들었지만 ‘청소부가 뭐 엎었나보네’라는 생각만 한 채 가던 길을 갔다.
한편, 제퍼슨은 폭발 반경에선 벗어나 있었지만 몸이 무사하진 않았다.
도자기 파편 일부가 등에 박혔지만 그것까진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느껴지는 축축한 감각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피범벅이 되었느냐 하면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신체피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킬러의 감각은 활동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보고를 보냈다.
액체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제퍼슨은 어깨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봤다.
약간의 이물감과 함께 액체가 손에 묻어나왔다.
액체의 정체는 당연히 변기물이었다.
미처 하수도 저편으로 떠내려가지 못한 갈색의 이물질이 섞인 변기물.
폭발과 동시에 일시적으로 수압이 올라갔던 배관에서 뿜어진 물이, 그대로 제퍼슨의 등 뒤에 쇄도했던 것이다.
제퍼슨은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찾아온 두 킬러를 바라봤다.
제퍼슨은 킬러고, 생명의 잔해물을 치우는 일을 한다.
간단히 말해, 죽여주는 일이다.
직장이 직장이니 만큼 오늘도 누군가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만큼은 평소보다 더 감정을 실은 채 일을 처리할 예정이다.
킬러 제퍼슨은 그저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이것은 단지 그뿐이었던, 어느 청소부의 평소보다 더 더럽고 불운한 이야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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