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은 원래 자장면이 올바른 표기였다. 그런데 왜 짬뽕은 원래부터 잠뽕이 아니라 짬뽕인 걸까?’
화면에 뜬 글을 보던 나는 기가 찼다.
‘이딴 내용이나 쓰고 있으니 조회수가 안 나오지.’
설마 이 정도로 최악일 줄은 몰랐다. 자신의 스레드 소설을 베스트 작품으로 만들어 달라는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알겠다며 흔쾌히 승낙한 게 죄였다.
이미 한우 풀코스도 얻어먹은 마당에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 내가 이제 이 소설을 뜯어고쳐야만 했다.
난 명색이 그래도 한가닥 한다는 작가다. 해내야 했다.
난 키보드에 손을 대다가 멈췄다.
머릿속에 번갯불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뜯어고친다고?’
왜 뜯어고쳐야만 할까. 나로서도 손을 대기 어려운 이 소설을 뜯어고치기 보단, 처음부터 다시 리셋(reset)하는 것이 어떨까.
애초에 그 친구의 부탁은 자신의 스레드 소설을 베스트 작품으로 만들어달랬지 고쳐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래, 제목은 빼고 모조리 지워버리자.’
그리고 뜬 한 문장.
‘짜장면은 원래 자장면이 올바른 표기였다. 그런데 왜 짬뽕은 원래부터 잠뽕이 아니라 짬뽕인 걸까?’
화면에 뜬 글을 보던 나는 기가 찼다.
아니, 기가 찬 정도가 아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분명 친구의 소설을 고치려 했는데, 왜 시간을 돌린 것마냥 모든 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거지?
짬뽕의 저주라도 걸린건가?
짬뽕의 어원과 유래를 써주면 풀리려나?
싶어 짬뽕에 대한 어원과 유래. 맛 평가, 대표적인 짬뽕맛집 중국요리집 10선을 써보았다.
역시
‘짜장면은 원래 자장면이 올바른 표기였다. 그런데 왜 짬봉은 원래부터 잠봉이 아니라 짬봉인 걸까?’
말고 다 지워져 있었다.
인정할 때다.
이래서야 진척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 때다.
짬봉의 권위자는 누구인가?
그렇다. 중국집이다. 언제나 중국집이었다.
“짜장면은 원래 자장면이 올바른 표기였다. 그런데 왜 짬봉은 원래부터 잠봉이 아니라 짬봉이었지?”
안개처럼 자욱한 담배연기 속, 환풍기 날에 찢긴 햇살에 흔들리는 주방장의 그림자는 더없이 불온한 분위기를 풍겼다.
“손님. 위험한 걸 즐기시는군.”
그는 쪽지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구둣방 장 노인을 찾아. 그는 답을 알지. 늘 그랬듯이.”
긴장으로 노트북을 가진 손아귀에 땀이 찼다.
구둣방 장 노인은 근방 모든 중국집의 단골이었다.
구둣방 근처 가까운 한 곳이 아니라 ‘모든’이었다.
장 노인의 직업이 그의 고객들과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곧장 장 노인을 찾아간 건 실수였다
확실히 그는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너무’많이 말이다.
구둣방에 도착했을 때, 장 노인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뒤였다.
사인은 익사다.
꽝꽝 얼은 탕수육으로 입을 제압당한 뒤, 그 위에 소스를 퍼부어 기도를 틀어막은 것이다.
달콤하고 향긋한 살인현장에는 쪽지 한 장이 보란듯이 놓여있었다.
[더 이상 짬뽕의 진리에 접근하지 마라 해. 다음은 너다 해.]
고인 앞에서 미안하지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요즘 시대에 누가 이런 말투를 쓸까.
명백한 도발 앞에서,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생각해보자. 범인은 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 대체 그 자는 나를 어떻게 안 거지?
‘혹시?’
주방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주방장이라고 치기에는 이상했다. 이중인격도 아니고. 경고하려면야 충분히 그때 당면해서 말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굳이 자신이 장 노인을 추천해 놓고 이를 다시 죽일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중국집에 있던 손님들 중 한 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은 도대체 왜, 이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짬뽕의 진리’를 막으려 하는 것일까.
하지만 범인은 날 너무 얕봤다. 난 이미 친구에게 이 소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만 하면 참치 정식도 사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온 사람이었다. 뱃속에 소기름을 칠한 자본주의의 개는 들척지근한 설탕 소스 따위에 겁먹지 않았다. 이 괴상하고 웃긴 경고문은 오히려 내가 짬뽕의 진리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
[짬뽕의 진리]
범인은 중국요리 그것도 짬뽕에 집착하고 있다.
이런 경우 정면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측면에서 다가가는게 효과적일 수가 있어.
짬뽕에 진리가 있다면 거짓도 있다는 말.
사도로 취급되는 짬뽕이 뭐가 있었지?
짬뽕의 스탠다드는 붉은 국물이었다. 해산물과 고기에서 우러난, 감칠맛나는 새빨간 고춧가루 국물. 술 먹고 속이 디비지는 날 한 모금 삼키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숙취를 눌러주는 칼칼하면서도 깔끔한, 한국인의 소울이 담긴 그 국물. 국물을 기준으로 짬뽕의 정도와 사도를 나눈다면 매운 맛이라곤 없는 나가사키 짬뽕이나 청양고추로 맛을 낸 새하얀 굴짬뽕은 그 맛이 아무리 탁월해도 짬뽕의 진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경상권 출신인 대학 동기가 죽고 못사는 야끼우동(볶음짬뽕)은 이름부터 이단이었다.
하지만 나가사키와 야끼우동이 진정 짬뽕의 사도라 해야 할까?
아니다. 두 요리는 현지 고객의 니즈를 반영했을 뿐이다.
이른바 변종. 짬뽕의 본질을 부정하진 않았다. 어쨌든 면발이 있고, 특유의 자극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자. 장 노인이 어떻게 살해당했던가. 익사다. 탕수육에 의한 익사.
어째서 탕수육이었을까.
탕수육…짬뽕…탕수…
순간, 뇌리에 한 단어가 스쳤다.
“탕짬면…!”
탕수육은 바삭하다. 면도 아니며, 짬뽕이 추구하는 테이스트와 다르다! 사도에 완벽하게 부합된다!
“범인은 퓨전요리를 증오해…!”
[1부 끝]
다음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됩니다.
호스트 코멘트
저도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했던 터라, 차마 직접 마무리는 못 짓고 이렇게 미결로 남깁니다.
스레드에 참여해주신 방랑모험가 님, Bruce 님, 무조건건강하게 님, 녹차백만잔 님, 일월명 님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요.
* 첫 스레드에 ‘난 키보드에 손을’ 이후는 글자수로 인해 짤렸었네요. 올리고 나니 수정이 안되던 ㅠㅠ
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