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에게 묻는다.

그 혹은 그녀…그러니깐, 본인 입으로 ‘천사’라고 부른 생명체는 내가 생각했던 천사와는 달랐다. 모습은 나와 같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머리카락은 검은 고무관처럼 굵었고, 그 무수한 고무관은 물속을 부유하는 것처럼 제각기 놀았다. 몸은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애매해 보였다.

 

“제가 생각한 천사와는 많이 다르네요.”

나는 질문했다.

 

“원래 천사는 날개가 없나요?”

“없어요. 하늘을 날 필요가 없으니까요.”

“왜죠? 천국은 하늘에 있지 않나요?”

“스카이 라운지도 하늘과 맞닿아 있지만, 날아서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럼 천국이란 탑이라도 따로 있다는 건가요?”

“너무 깊은 것을 알려 하지 마세요. 진실을 알려다 그 진실의 실체에 잠식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답니다.”

“그렇다면 잠식되지 않을 만큼의 사실 정도만 말해주면 안되나요?”

 

천사는 아무런 대답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느린 동작이 이어지고 반복되었다. 나는 그 춤을 넋을 잃고서 바라보다 어느새 밤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이 춤이 답인가요?”

“당신이 절망하지 않을 만큼이죠.”

 

천사가 동작을 완전히 거둬들이고 말했다. 고무관 같은 머리카락을 너울대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던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실망할 정도의 답은 알려줄 수 있나요?”

“실망은 기대하던 것에 충족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죠. 실망할 정도의 답을 원한다면 기대치를 먼저 알려줘야하지 않을까요?”

“실망은 이미 충분히 하고 남은 것 같은데요.”

 

나는 앞서 천사가 보여준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늘을 날지 않아서 날개가 없는 천사가 사실을 알려준다고 하고서 답이라고 보여준 거라고는 춤 밖에 없으니까요. 대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고, 이해할 수도 없는 행동이고요.”

 

그 춤을 넋놓고 본 것을 제외하더라도.

 

“항상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볼 때마다 실망했죠.”

 

천사는 머리카락 한 올을 양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도 사람들에 대해서 실망합니다. 왜 천사는 날개를 가져야만 하는가. 그것도 백옥처럼 하얗고 순결해 보이는 날개만 가져야 하며, 그 이외의 날개는 천사의 날개라고 말하지 않을까.”

 

천사는 나와 눈을 맞췄다. 그 뒤편으로 칠흑의 머리카락들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왜 사람들은 저를 보고 하늘을 날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 밑에는 악마가 있으니까요.”

 

나는 아래로 흐르는 천사의 머릿결을 주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린 아무런 토대 없이 하늘과 맞닿을 수 없어요. 하지만 하늘과 달리 땅에서 우린 계속 나아갈 수 있어요. 파도 파도 발을 디딜 곳이 있으니까. 우리가 땅을 파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동안 거기서 천사를 본 적이 없었고, 동시에 우리가 땅에서 나온 걸로 썩어가는 동안 악마를 느꼈죠. 실제로 악마를 발견한 건 아니지만 우리의 침체는 그들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당신들과 비슷한 건 아직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요. 악마는 대지 아래에 살아가고 그 대지를 오랫동안 밟는 당신들은 악마를 느낄 기회가 많았겠죠. 그리고 당신도 나와 비슷한 걸 아직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당신은 이미 느꼈던 적이 있어요.”

“그것이 무엇인가요? 당신은 대지로부터 두 발을 뗄 수 있는 날개가 없잖아요.”

 

천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 조용히 용솟아치는 감정에 이끌린 채 나는 계속 말했다.

 

“하늘 천에 사신 사. 애초에 하늘의 사신인데, 하늘에서 날아다닌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정상이 아닐까요?”

“그 이름도 결국 인간이 정한 것 아닌가요? 지금이야 하도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서 우리도 받아들이긴 했지만, 애초에 우린 스스로 천사라고 한 적이 없어요.”

 

조금 높아진 언성과 함께 천사의 머리카락이 파르르 떨렸다. 그 파동은 처음에는 약해 보였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심하게 요동쳤다.

 

“악마도 마찬가지에요. 당신들이 침체와 절망을 겪었단 이유로 ‘악의 사신’이란 이름을 붙였죠.”

 

그제서야 나는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왜 당신들은 하늘과 땅을 선악으로 구분하셨나요? 왜 우리에게 선악을 구분하는 이름을 붙였죠?”

 

그 질문에 나는 변명으로밖에 답할 수 없었다.

 

“…우리 인간들은 그 방법밖에 몰랐거든요. ‘선악의 구분’은 ‘마음의 안락’을 얻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요.”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다시 질문했다.

 

“당신들이 하늘에서 온 사신이라면, 당신들의 지도자가 있나요?”

 

“당신들의 경전을 읽어본 적이 있어요.” 천사가 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은거하는 곳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지도자는 없답니다. 단지, 우리들의 의견을 취합하거나 조정할 뿐이지요.”

 

“그렇다면 그 대표는 당신과 같은 ‘천사’인가요?” 내가 물었다.

“‘하늘의 사신’이라는 원의미에서 보면 대표는 천사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죠.” 천사가 답했다.

“하지만 대표 역시 우리와 같은 존재이며, 종종 바뀌기도 한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의 대표는 하늘에 계시나요?”

 

인간의 입장에 본다면 욕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지금 천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제가 궁금한 건 한 가지입니다. 당신이 춤으로 답했던 진실의 실체. 그것을 듣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절망으로 다가온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하늘을 갈망한다. 그리고 천사가 품은 느낌을 갈망한다. 악마와 대지에 뒹구며 살아온 삶에 벗어나기 위해서이며, 내가 갈망하는 그곳은 나의 삶과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그곳이야말로-

 

 

“천국은 없습니다.”

 

천사는 말했다.

 

“지옥도 없습니다.”

 

 

나는 침묵했다. 천사는 계속 말했다.

 

“하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는 구름 위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대표는 구름과 구름을 건너며 우리를 이끕니다.”

 

천사의 고무관도 같은 머리카락이 사르르 움직였다.

 

천사는 어떤 신적인 존재도, 신이 만든 특별한 피조물도 아니었다.

 

 

생명체.

 

 

나와 똑같이 호흡하고 있는 – 종이 다를 뿐인 – 생명체였다. 이 신비로워 보이는 생명은 단지 구름 위를 밟으며 살고 있을 뿐이다.

 

“이게 당신이 말했던 들으면 잠식되고 절망할 사실인가요?”

 

천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껏 천사가 지은 얼굴 중에선 없던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나는 덫에 걸린 것처럼 눈앞의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평온하게 부유하던 머리칼에서 더욱 큰 이질감이 느껴졌고 피부에 닿는 공기는 왠지 낯설었다.

천사는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나는 기이한 적막 속에서 보류해뒀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그럼 이제는 알려줄 수 있나요?”

 

천사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나는 천사에게 질문했고 천사는 나의 질문에 답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하나의 단어로 쉽게 표현할 수 없었다.

그것은 광활한 하늘 꼭대기에서부터 추락하는 느낌이며, 두더지처럼 땅속을 파올라 짜릿한 햇살을 눈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천사는 얼굴을 내밀었다. 볼에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안녕히.”

 

천사의 머리카락 끝이 위로 올라가 허공을 아래로 두드렸다. 천사는 머리카락으로 하늘을 밟고 올라갔다.

나는 눈이 얼 정도로 시린 달빛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올라가는 천사를 계속 바라보았다.

뭉글한 구름이 지나갔고 천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의 질문이 무엇이었고, 천사는 무슨 답을 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천국도, 지옥도 없다.

 

그 진실은 나를 절망케 했지만, 나를 하여금 더 살아가게 만들었다.

 

나는 천사와 대화를 나누고서 59년을 더 살고 죽었다. 천사를 만난 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호스트 코멘트

* 어떻게든 마무리가 되었네요…다들 필력이 좋으셔서 쉽사리 건들지 못한 채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재밌는 글을 만드는 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스레드 소설에 참여해주신

# dcdcssss 님
# rambler 님
# 코코아드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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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아시하누 님
# 유기농볼셰비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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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월명 님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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